경제일반

매경시평] `경제민주화 규제`의 전제조건

ngo2002 2012. 7. 30. 09:44

매경시평] `경제민주화 규제`의 전제조건
"금융서비스 가격 문제 등 경제민주화 실현 위해 규제·조정을 하더라도 자유와 창의 존중하면서 합리적·객관적 절차 거쳐야"
기사입력 2012.07.29 17:38:18 | 최종수정 2012.07.29 17:38:53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지난 3년간 정부 규제가 대폭 증가했다고 한다. 얼마 전 매일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2009년 1만1050개였던 정부 규제는 2010년 1만2120개, 지난해 1만3146개로 늘어났고, 올해 6월 말 현재 1만3594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최근 6개월 동안에만 448개에 달하는 새로운 규제가 생겨난 셈이다. 증가한 규제 중에는 경제적 규제가 다수 포함되어 있고, 특히 최근 부각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들도 있다. 경제민주화를 목적으로 하는 규제는 향후 큰 폭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여야가 이구동성으로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고, 이를 위한 선거 공약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민주화가 최대 화두로 부상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경제적 양극화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심화되어 있고, 이를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 우리 헌법도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경제민주화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가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있다.
첫째,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가 존중되어야 한다. 우리 헌법은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것을 대한민국 경제 질서의 기본이라고 규정함으로써 경제민주화의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우리 경제 질서는 자유와 창의를 기반으로 성장과 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 체계여야 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만약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이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근본적으로 침해한다면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 되고 만다. 예를 들면 최근 은행의 가산금리, 펀드 판매수수료, 신용카드 수수료 등과 같은 금융서비스 가격에 대한 규제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금융서비스 가격은 기본적으로 당사자 사이에서 위험 분배와 조정에 따라 정해지는 것으로서 시장경제의 핵심적 요소다. 그러므로 경제상 자유와 창의가 근본적으로 침해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만약 당사자 중 일방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는 등의 부당 행위로 가격이 왜곡된 경우에는 가격 결정 과정의 합리성이나 투명성이 침해된 것으로서 위법행위로 다룰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왜곡의 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정부가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것은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침해하는 것일 수 있다. 최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가산금리와 관련해 "금리 수준 자체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더라도 은행의 금리 결정 절차는 합리성과 투명성을 갖출 수 있도록 감독을 강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는 금융서비스 가격 자체에 개입하기보다는 그 결정 과정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뜻으로 이해돼 수긍할 수 있다.
둘째, 경제민주화의 논의 방식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경제민주화에는 여러 이해당사자가 있고 따라서 이해관계도 각양각색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성급하고 일방적인 규제는 경제적 자유와 창의를 침해할 수 있고, 경제민주화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목적에서 급작스럽게 작위적으로 쏟아내는 경제민주화 규제들이 과연 그러한 절차를 제대로 거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같은 정당 내에서도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규제 방안을 성급하게 공약(公約)으로 내세우면 결국 공약(空約)으로 끌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리고 5년 뒤에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되지는 않을까? 경제민주화 실현이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논의 절차를 거치는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한기정 서울대 법대 교수ㆍ금융법센터장][ⓒ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