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배론성지는 마음을 다스리기에 더없이 좋은 순례지이다. 이곳은 경기 광주의 천진암과 함께 대표적인 가톨릭 성지이다.
고요한 마음으로 초여름의 신록을 맞이한다. 수목이 싱그럽게 여름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푸르게 정화되어가는 듯하다. 사랑과 평화가 깃든 성스러운 숲길을 걸으며, 자연을 마주하는 마음은 더없이 정결해진다. 한 걸음은 고요하고, 또 한 걸음은 성스러우며, 마침내 한 걸음이 평화롭기를.
기쁨 가득한 숲길로의 여행
고요한 숲길에 들어서면 누구든 서두름 없이 담담하게 길을 따를 것이다. 한동안 분주하던 마음도 들여다보고 작은 꽃을 헤아리며 길을 따라 걷는다. 서붓서붓 앞장을 서는 순례자의 뒤를 따라 느린 발걸음으로 성지를 돌아본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한 순간 한 순간을 머무를 때마다 작은 새소리에 마음이 열리고, 무언지 모를 기쁨이 빈 가슴을 가득 채우는 듯하다.
충북 제천 배론성지는 마음을 다스리기에 더없이 좋은 순례지이다. 이곳은 경기 광주의 천진암과 함께 대표적인 가톨릭 성지다. 배의 밑바닥 모형을 닮았다는 이 고요한 숲에는 봄·여름·가을·겨울 없이 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배론성지는 천주교 박해시대의 교우촌으로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의 배론 산골에 숨어들어 마을을 형성했다. 조선 후기 천주교도인 황사영(1775∼1801)은 이곳에 머무르며 백서(帛書)를 썼다. 당시의 토굴이 재현되어 있으며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교의 모습도 둘러볼 수 있다. 1856년에 프랑스 신부들이 세운 이 신학교는 어린 학생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쳤으며 많은 성직자를 양성한 터다.
마음 가득 평화가 깃드는 길
하지만 1866년 병인박해로 많은 신부와 신도가 처형당하고 신학교가 폐쇄되었다. 조선 천주교 사상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도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최양업 신부(1821∼1861)의 묘가 뒷산 언덕 양지 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초기 천주교인은 당시 우리 사회가 깨어나야 한다는 개화사상을 갖고 서양학문을 익히고 민족의 계몽에 앞장섰던 인물들이다. 그런 점에서 천주교 성지는 한국 개화의 출발지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역사·문화적인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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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론성지 입구에 자리한 카페 허브사랑은 원주 가톨릭사회복지회 ‘살림터’에서 운영하고 있다. 고 순옥 원장수녀가 장애근로인과 함께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 |
최양업 신부의 묘지와 더불어 배론성지에서 순례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오르던 모습을 14가지 형상으로 표현해놓은 고난의 언덕길로 숲 사이로 상징적인 조형물이 적절히 배치돼 있다. 사람들은 길을 오르는 사이사이 멈추어 서서 기도를 한다. 꼭 신자가 아니어도 가만히 눈을 감거나 잠시 멈추어 서서 마음을 바라본다. 십자가의 길은 누구든 잠시 머물러 서서 평화로운 생각들을 마음에 그려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다. 고요한 정적 속에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에 이내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해진다. 숲길을 따라 길을 오르면 마음 가득 평화와 안식을 얻는 셈이다.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지 곳곳을 둘러보면 가슴이 맑고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다.
사랑으로 피어난 허브차의 성스러움
성지를 천천히 둘러보고 내려오면 고단함과 욕심으로 가득했던 가슴에 마음 가득 편안함이 깃든다. 배론성지 입구에 자리한 카페 허브사랑(www.herblove.org)은 그러한 마음으로 찾아 잠시 머무르며 차 한 잔을 마시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사회복지법인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살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 카페는 장애근로인이 직접 재배한 허브차를 판매하고 있는 곳. 허브향 그윽한 카페에 들어서니 한 수녀님이 허브차를 손수 내어놓는다. 장애근로인과 함께 살림터를 꾸려가고 있는 고순옥 원장수녀가 소녀처럼 맑은 미소로 순례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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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근로인이 살림터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살림터에서 생산하고 있는 제품은 모두 친환경 무농약으로 재배된 것이다. |
“살림터의 허브차는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살림터의 허브는 모두 우리 장애근로인이 직접 재배한 것입니다. 조금의 거짓이나 눈가림이 없이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일하는 장애근로인들의 진실하고 정성스런 손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살림터는 1999년부터 허브 재배를 시작했다. 중증장애인의 재활 및 직업교육을 돕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으며, 직접 농장에서 허브차 등을 재배하여 허브사랑 카페에 내놓고 온라인 판매도 하고 있다. 고순옥 원장은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차를 신뢰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살림터의 허브차 향은 특별한 향기를 지녔다는 의미다. 순수한 장애근로인들의 참된 노동과 정성스러운 손길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림터에서는 생산하고 있는 제품은 모두 친환경 무농약 재배를 고집한다.
“좋은 차와 좋은 사람의 공통점 중 하나는 아주 특별한 향기를 지녔다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우리 살림터의 허브티에는 우리 장애근로인들의 맑은 영혼과 순수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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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 배론성지를 천천히 둘러보고 내려오면 고단함과 욕심으로 가득했던 가슴에 마음 가득 편안함이 깃든다. |
살림터에서는 허브차뿐만 아니라 도자기, 허브화분, 종이공예품과 묵주도 손수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또 각종 채소와 콩, 참깨, 들깨 등의 곡식과 고추, 상추 등도 살림터의 장애근로인들이 손수 재배해 내어놓는다. 고요한 성지를 둘러보고 맑은 마음 가운데 마시는 향기로운 허브차 한 모금, 마음을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이제 성지는 꼭 천주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잠시 머물러 서서 평화로운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다. 성지란 종교적·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기 때문이다. 성지라는 말은 한자로 성지(聖地)와 성지(聖址)로 구분될 수 있는데, 거룩한 땅, 거룩한 장소, 거룩한 사적이라는 의미이다. 넓게는 거룩한 땅(Holy Land), 좁게는 거룩한 장소(Holy Place)를 뜻한다. 많은 이들이 성인들을 본받고자 이곳에서 기도하며 그들의 사랑을 배운다. 남을 위해 내것을 내어주고, 희생과 사랑으로 남을 대하는 것은 꼭 종교인이 아니어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지 곳곳을 둘러보면 마음이 깨끗해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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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 배론성지를 천천히 둘러보고 내려오면 고단함과 욕심으로 가득했던 가슴에 마음 가득 편안함이 깃든다. |
또 성지는 성인들의 아름다운 넋이 깊이 배어 있는 곳으로 선각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장소이다. 그들의 삶과 철학,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 등을 통해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교육적 장소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성지에는 부대시설로 매점과 휴게실,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어린 자녀를 둔 가족단위의 여행객은 종교와 역사·문화를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다.
온 가족이 함께 조용히 손을 꼬옥 잡고 산길을 오르고, 묵주를 든 노부부들이 두 손을 모아 기도와 소망을 염원하는 성스러운 숲길로의 산책, 바쁜 일상으로 흩어진 마음을 다스리기에 충분하다. 누구든 이 숲길을 천천히 걷다보면 아름다우며 거룩한 영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leegha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