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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대보름 맞이하는 신(新)대동제

ngo2002 2012. 6. 22. 13:47

[길에서 만난 사람]대보름 맞이하는 신(新)대동제

오랜만에 사람 사는 마을다운 생기가 도는 것도 바로 오늘이다.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터를 지키고 살아온 당산나무가 원만하고 기품 있는 둥치로 우뚝 서서 그들을 반긴다.

자여마을 주민들이 줄다리기가 끝난 후 달집 태우기를 하며 소원을 빌고 있다.

풍물꾼들이 지신밟기로 땅의 기운을 어르고 달래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난다. 상쇠가 꽹과리 소리로 악귀를 물리치고 상모잽이는 벙거지 끝에 매달인 채끝을 둥글게 돌려 두둥실 보름달만 같은 평안을 기원한다. 마을 사람들은 수백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농협 앞 당산나무에 동그랗게 어울려 그저 한 해의 무탈과 풍년을 위한 치성을 드린다.

신과 자연, 인간의 소통과 어울림
동이 트자 경남 창원 동읍 읍내가 술렁인다. 제의에 앞서 풍물꾼들이 마을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지신밟기를 하면 제의가 가까웠다는 신호다. 농협 앞 당산(堂山)나무 아래에는 이미 마을 아낙들이 정성껏 제상을 차려놓았고, 울리는 풍악소리에 삼삼오오 모여든 동리 사람들도 정결한 차림새로 앞마당과 골목으로 모여든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마을다운 생기가 도는 것도 바로 오늘이다.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터를 지키고 살아온 당산나무가 원만하고 기품 있는 둥치로 우뚝 서서 그들을 반긴다.

“자여마을은 창원시 동읍의 봉산, 송정, 용정, 외단계, 내단계 다섯 마을을 모두 아우르는 말입니다. 우리 마을의 동제는 이웃 마을인 신방리 음나무 당산제와 함께 창원에서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오는 정월 대보름 대동제 중의 하나지요. 예부터 이 회나무가 마을을 지켜왔습니다. 마을의 수호신이니 정성껏 예를 갖추어 제를 지냅니다.”

동리 어른 대표들이 망건에 도포를 제대로 갖추어 입고 당산나무 앞에 손을 모으자 드디어 자여마을 동제(洞祭)가 시작된다. 마을 주민을 대표하는 제관이 잔을 올리고 절을 하자 동네 어르신인 함판출씨(창원시 동읍 자여마을)가 축문을 낭독한다. 이어 제관들이 술을 올리고 모두 함께 절을 한다. 마을의 안녕과 평화, 그리고 그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축문을 올리고 예를 갖추어 제를 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기원을 올리고 당산나무에 마른 생선을 묶고 남은 음식을 올리면 제의가 마무리된다. 이후 음복을 나누고 참가한 마을 사람들 중 원하는 이들 역시 차례에 따라 정성껏 술을 올리고 소원을 빈다.

온 동리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자여마을 동제는 마을 주민을 대표하는 제관이 잔을 올리고 절을 한 후, 동네 어르신인 함판출씨(사진)가 축문을 낭독하면서 시작된다.
사실 자여마을 동제는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과거 동제의 명맥을 이어 다시 복원된 것이다. 일제강점기까지는 봉산마을과 송정마을이 함께 지내고, 단계마을과 용정마을이 함께 제의를 지냈다. 그러다 일제에 의해 마을의 당산나무가 하나둘 사라지고 석제단 2기만이 봉산리와 단계리에 남게 되면서 급기야 1935년쯤 당산제가 중단되기에 이른다. 이에 자여마을에 속한 각 마을의 청년회가 다시 그 뜻을 모아 매년 정월 대보름 동제를 지내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제 30년 정도가 되었으니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편입니다. 그러나 현재 마을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아 점차 그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내기 세 이레(20일) 전에 마을회의를 열고 생기복덕을 가려 정결한 원로로 제관을 선정합니다. 제관으로 선정된 마을 어른은 이때부터 금기생활을 해야 합니다. 술과 담배를 금해야 하며, 상가(喪家) 출입을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출생과 관련된 곳에도 가면 안 됩니다. 부부관계 또한 당산제가 끝날 때까지 금지하게 됩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만큼 신성한 제의에 앞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것이지요.”

자여마을 주민들 역시 한 마음으로 동제를 준비한다. 청년회에서는 당산나무 주변에 만국기를 달고 농기(農旗)를 주위에 세우고, 마을 앞 너른 터에 주민들이 함께 대보름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한다. 당산제의 제수와 대보름맞이 음식은 마을 아낙들이 도맡는다. 4개 마을 부녀회에서 해를 바꿔가며 윤번제로 준비하는 것. 부녀회에서는 전날부터 정성껏 준비한 제수음식으로 제상에 진설을 하고, 온 동리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한다. 온 동리 잔치에 남녀노소가 따로 없고, 부잣집도 가난뱅이도 따로 없다. 얼씨구 절씨구 신명이 나는 날이니만큼 모두가 하나 되는 대동의 마음으로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비교적 약식화가 되었지만 현재는 마을의 안녕과 평안의 기원, 그리고 주민들의 친목 도모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도시화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우리 마을처럼 동제를 하는 마을들이 비교적 화합이 잘 되고, 그만큼 마을이 번성한다고 믿습니다.”

복과 정을 나누는 신명의 대동놀이
제의가 끝나면 다시 풍악패의 길놀음을 시작으로 정월 대보름 놀이가 펼쳐진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음식을 나누어 먹고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한다. 그리고 이어서 주민 화합을 위한 갖가지 놀이가 펼쳐지는데, 맨 먼저 마을별 윷놀이 대항이 펼쳐져 새해의 복을 점치고 신명의 기운과 어울림의 정을 나눈다. 징소리를 시작으로 남녀노소 구분 없이 대표적인 대동놀이인 줄다리기 대결이 이어진다. 힘 좀 쓰는 장정이 앞에 서고 아낙들이 그 뒤를 따른다.

위쪽 _ 제의에 앞서 풍물꾼들이 마을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지신밟기를 하고 있다. 가운데 _ 당산제를 지내는 모습. 아래쪽 _ 주민 화합을 위해 열리는 마을 대항 줄다리기. 줄다리기에서 이긴 마을에 그 해 풍년이 든다고 알려졌다.
“예전에는 줄다리기할 때 줄이 굵었습니다. 본래 쌍줄로 암줄과 수줄로 한 짝이 되어야 했는데, 이제는 약식화가 되어 하나의 통줄(외줄)을 사용하게 된 것이지요. 또 옛날부터 남자와 여자가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는데, 여자가 이겨야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농업이 삶의 근본인 우리 땅에서 땅의 기운은 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의 비중이 낮아지고 점차 도시화로 변해가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지금의 동제는 주민들 사이에 얼굴을 익히고 정을 나누는 화합의 의미와 우리 고유의 민속을 이어가자는 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줄다리기는 송정마을과 봉산마을의 경계인 길목에서 이루어진다. 마을별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여 풍년을 기원하고, 동네 고만고만한 어린아이까지 모아 옛 어른들의 놀이를 통해 마을의 전통풍습을 이어가는 것이다. 줄다리기는 참여하는 마을의 주민들이 양편으로 나뉘어 세 판을 겨뤄 승부를 결정짓는다. 이번 동제를 준비한 자여마을 청년회장인 김갑모씨는 “예부터 줄다리기 때 승부에서 이긴 마을은 그해 풍년이 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주민들이 있는 힘을 다해 경기에 임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과 주민들의 화합을 목적으로 함께 즐겁게 하루를 보냅니다. 저녁에는 보름달 아래 달집 태우기도 함께 합니다”라며 막걸리 한 잔에 흥을 더한다.

달이 차오르듯 큰 기운도 차올라라
정월 대보름 저녁. 자여마을 주민들이 너른 들판 가운데 달집을 세우고 한데 모여 저마다의 소원과 마을의 안녕을 담아 두 손을 모은다. 자여마을 청장년들이 하루 전날 구하기 쉬운 대나무와 소나무 가지 등을 재료로 하여 달집을 만들어 세운다. 그리고 저녁 어스름 달이 차오를 즈음이 되자 마을주민뿐 아니라 인근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 역시 일손을 멈추고 달집 주위로 빙 둘러 모여든다. 그리고 저마다의 소원을 기원하는 문구를 적어 달집 사이사이에 매달아 놓는다.

“달이 뜨면 달집의 문에 불을 지피고 불이 꺼질 때까지 주위를 빙빙 돌며 모두의 복을 기원합니다. 불이 붙은 대나무 마디가 펑펑 하고 우렁차게 터지면 나쁜 기운이 혼비백산하고 도망을 간다고 합니다. 또 옛날에는 달집이 다 타고 난 후 바닥에 박아둔 대나무를 득남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가져갔습니다. 그러면 집안의 자손이 끊어지지 않고 번창한다고 믿었지요.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아 보름달을 볼 수는 없지만, 그 대신 하루 종일 눈발이 날렸으니 우리 마을에 분명 풍년이 들고 좋은 일이 많을 듯합니다. 오래도록 마을의 동제가 이어져 우리 마을이 발전하고 뿌리 깊은 우리 전통문화 역시 후손들에게 이어지길 바랍니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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