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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서울 홍제동 개미마을 찾은 젊은 청년들

ngo2002 2012. 6. 22. 13:25

[길에서 만난 사람]서울 홍제동 개미마을 찾은 젊은 청년들

ㆍ우리시대 마지막 달동네의 인정

하루 품을 팔아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개미집처럼 다닥다닥 뒤엉켜 사는 동네거니 해서 개미마을. 평생을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개미마을이라 불리던 동네.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았으니, 잘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가파른 언덕배기를 오르며 드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다. 노랑 은행잎이 처마 밑에 뒹굴고, 붉은 단풍이 낡은 창가에 어리는 바람 부는 가을날. 이 시대의 마지막 달동네, 그 서러운 기억을 찾아간다.

행정구역상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3동 산 8번지에서 91번지까지 일컫는 개미마을은 1만여평 면적에 100가구 가량이 살고 있다.

지하철 3호선 홍제역에서 내려 천천히 가파른 언덕배기를 따라 오른다. 개미마을은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중 한 곳이다. 행정구역상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3동 산 8번지에서 91번지까지를 일컫는다. 마을버스는 홍제역에서 출발하여 종점인 인왕산 등산로 입구까지 오르내리는데, 하늘과 맞닿은 동네는 모든 게 하늘의 끝자락에 닿아 있다. 가을색이 짙어진 인왕산 자락 아래 마치 판이 끝난 화투장을 펼쳐놓은 듯 네 집 내 집 없이 지붕이 얼기설기 엉겨 있다. 대문 앞 오래 된 뜰에 장독대 늘어놓은 늙은 집의 처마선이 저 멀리 젊디젊은 고층아파트보다 높은 등고선을 이룬다.

이 시대의 마지막 달동네
마을버스를 마다하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마을 어르신인 정연봉씨(77·홍제3동)를 마을 초입에서 만난다. “6·25 전쟁이 끝나고 갈 곳이 마땅찮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천막을 치고 판자를 잇대어 살기 시작한 곳이여. 하루하루 날품을 팔어야 먹고살 수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식구들 배 곯지 않으려면 할 게 뭐 있어. 배운 것은 없고 몸뚱아리가 밑천이니,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약도 팔고 혔지. 그나마 젊었을 때는 힘깨나 썼으니께.”

정씨는 약장수와 한 궁합인 차력사로 구경꾼을 모으며 길품을 팔아 여덟 식구의 생계를 꾸렸다. 으레 그렇게 사는 시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자식들이 무탈하게 잘 커서 다행이여, 이제야 모두들 살 만혀졌구먼.” 그렇게 늙어버린 아버지는 이제는 건너편 고층아파트에 경비원으로 출근하고 있다며 걸음을 서두른다.

정씨처럼 개미마을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따라지 인생들이 꾸역꾸역 모여들던 동네였다. 한 끝짜리 줄도 빽도 없는 한 뼘짜리 인생들이 온 산자락을 가득 메웠었다. 한동안 재개발 딱지가 나돌며 바람 잘날 없던 그때 그 시절에도 등한시되었던 동네였다. 그렇게 화투판의 떨거지마냥 비풍초똥팔삼만 같은 인생역정으로 지난 시절을 살아왔다.

수원여대 연기 영상과 학생들이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졸업작품 공연을 앞두고 개미마을을 찾았다. (왼쪽부터) 김기원(연극배우), 전송이, 이현주, 황세희씨는 개미마을에서 40여년을 산 오한섭(가운데) 할아버지를 통해 이곳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의 정상에 오르니 대략 40~50년 이상이 된 집들이 언덕 위에 위태롭게 버티어 서 있다. 다닥다닥 붙어서 온기를 나누며 살아온 집들 사이로 어깨를 비켜야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길과 높은 치받이길이 선명하게 마을을 가른다. 하루벌이를 나간 부모 덕으로 빈집을 지키던 아이들과 골목골목을 돌며 집집이 문을 두드리던 야쿠르트 아줌마의 모습은 여전하다. 그 산 중턱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낯선 이방인처럼 눈에 띈다. 연극배우인 김기원씨(20·안양 호계동)와 이현주(21), 황세희(21), 전송이(22)씨 등 대학생(수원여대 연기영상과)들이 이달 말에 있을 졸업 작품 공연을 앞두고 개미마을을 찾은 것이다.

삶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연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졸업 공연 작품으로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연극을 공연할 예정인데, 친구들과 함께 비교적 옛 모습이 남아 있다는 개미마을을 찾았습니다. 골목골목을 둘러보고 있는데, 참 따스한 풍경이네요. 이웃끼리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제는 도시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니까요. 실제 저희들이 경험하지는 않은 옛이야기들을 그려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실제 지난 옛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마을 경로당 근처를 기웃거리던 이들은 용기를 내어 개미마을에서 40여년을 살아왔다는 오한섭씨(80·홍제3동)에게 그간의 세월을 묻는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여기를 인디안촌이라고 하면서 많이 업신여기기도 했어. 

천막을 치고 산다고.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이름을 개미마을이라고 바꿔 부른 것이제. 주민 모두가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개미처럼 살았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모두 잘 사는 편이제.” 마을 주민들은 ‘인디안촌’이라는 이름이 영 내키지 않아 80년대 초에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을 손수 지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같은 하늘을 지붕 삼아 한 식구마냥 인정으로 살아왔다. 지붕 위엔 박도 걸고 손바닥만한 땅뙈기엔 텃밭도 일구었다. 그래 사는 게 녹록지는 않았어도 마음만은 넉넉했었다.

인정이 남아있는 동네, 개미마을
“우리 동네가 참말로 정이 많은 동네여.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노랑 개나리꽃, 진달래 들꽃들이 온 동네에 만발허지. 요즘도 여름이면 동네 사람들이 평상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가을 지나 추운 겨울이면 서로 연탄불도 봐주고 불씨도 나누면서 사는 마을이여. 모두들 바삐 사느라 옆집 안부 챙기는 게 쉽지 않지만 우리 동네는 달라요.”

몇 해 전 그림 그리는 대학생들이 찾아와 마을 곳곳에 색색의 벽화를 그린 후 개미마을을 찾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늘어났다. 대학생들 덕분에 개미마을은 동화 속 풍경처럼 아름답게 변했다.

늘 종종걸음으로 살아온 삶 속에서도 마을사람들은 서로를 보듬고 사는 법을 알았다. 아침이면 동네 군데군데 세워둔 공동간이화장실 앞에서 동동 발을 구르며 이웃의 안부를 걱정하고, 저녁이면 삼거리 슈퍼마켓에 모여 사는 걱정을 나누며 살았다. 개미마을 1번지쯤이라 불리는 삼거리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주인 아저씨는 “이 자리가 우리 동네에서는 명동 1번지쯤 되는 자리여. 옛날에는 어른들이 퇴근길 일을 마치고 오문, 모두들 여기 슈퍼에 모이가 사는 이야기도 하고 좋은 일품도 서로 나누고 혔제.”

현재 개미마을은 대략 1만여평의 면적에 100세대가량이 살고 있다. 4인 가구로 어림잡아 400여명의 주민이 차마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아직도 60~70년대 서울 달동네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개미마을. 수북이 낙옆이 내린 마을의 때깔이 참 곱디 곱다. 층층이 계단을 오르는 길은 여전히 가파르고 평탄치 않은 그간의 삶의 풍경이 구석구석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마을풍경 속에는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온 지난 시절의 이야기가 진하게 배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요즘 개미마을을 찾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부쩍 늘어났다. 몇 해 전 개미마을이 새롭게 다시 단장되었기 때문. “그림 그리는 대학생들이 찾아와 동네 구석구석 돌아댕김서 그림을 그렸제. 참 이쁘게도 그리드만.”

흑백의 풍경에 그려진 희망동화
그날 이후 개미마을의 모습이 변했다. 골목길 풍경과 담장들에도 색색의 벽화들이 그려지고 마을은 마치 어릴 적 동화 속 풍경처럼 아름답게 변했다. 그렇게 잿빛 담벼락에 하나둘씩 그려진 그림은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고, 오래되어 낡은 기와나 슬레이트 지붕이 얹힌 집 담장에도 밝고 재미있는 벽화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던 오르막 계단에도 ‘힘 내, 거의 다 왔어’란 희망의 메시지들이 새겨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사랑의 하트가 그려졌다.

개미마을은 이제 주말이면 카메라를 든 젊은이, 작은 아이들의 손을 잡은 젊은 부모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언젠가는 모두가 다 떠나버릴 것만 같고, 이 시대의 마지막 달동네가 곧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벌써 몇 해 전부터 하나 둘씩 이삿짐을 꾸리고 누구네 누구네도 하나 둘씩 아랫녘으로 내려가면서 마을에는 빈집이 태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젠가는 또 무지막지한 포클레인이 산을 뒤엎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발길을 재촉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둥근 달이 떠오르는 덕에 달동네라 불리던 하늘 아래 산동네. 석양이 지고 산 너머로 달이 차오르는 시간이 되자 마을에 하나 둘씩 노란 백열등 불빛이 켜진다. 사는 게 팍팍해 가슴앓이를 토해내던 시절,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일하며 옹기종기 모여 살며 희망을 꿈꾸던 개미마을 사람들. 그들의 옛이야기가 작은 창가의 불빛 너머로 들려오는 듯하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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