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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길]황진이의 파격적인 답사

ngo2002 2012. 5. 25. 10:29

[신정일의 길]황진이의 파격적인 답사

도보 답사에 나서면 온통 여자들 세상이다. 열이면 아홉이나 여덟 명이 여자다. 우리 역사 속의 여자들 중, 산천을 제일 많이 답사한 사람은 아무래도 송도 기생 황진이 같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황진이는 금강산이 천하 명산이라는 말을 듣고 한 번 찾아가 맑은 흥취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함께 갈 사람이 없었다. 당시에 이생원(李生員)이라는 재상의 아들이 있었다. 사람됨이 호탕하고 소탈해서 명승지 유람을 함께할 만하다고 여겼다. 진이가 이생원에게 조용히 말했다.“저는 중국 사람도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 번 보기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 사람으로 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신선이 사는 산을 지척에 두고 진면목을 보지 못한대서야 되겠습니까?” 이생원이 같이 동행한다고 하자, 그로 하여금 하인 없이 베옷에 초립을 쓰고 양식 보따리를 짊어지게 했다. 그러고는 송라(松蘿)를 머리에 쓰고 베적삼에 무명치마를 입고서 죽장망혜로 뒤를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이 금강산에 들어가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러 절에서 걸식하고 혹 스스로 자신의 몸을 팔아 승려에게 양식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생원은 탓하지 않았다. 사대부들조차 산천을 유람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여자의 몸으로 대갓집 자제를 길동무 삼아 산천을 유람했던 사람이 황진이였다. 더구나 여자라는 점을 활용해 몸을 팔아 유람 비용을 마련했다니 놀랍다. 금강산 유람길에 길이 엇갈려 이생원과 헤어진 황진이는 다시 정처 없이 유람에 나섰다. 그 다음 여정을 보자. ‘일찍이 산수를 유람하면서 풍악(楓嶽·금강산)에서 태백산과 지리산을 지나 금성(나주)에 오니, 고을 원이 절도사와 함께 잔치를 벌이는데, 풍악과 기생이 좌석에 가득하였다. 황진이는 해어진 옷에다 때 묻은 얼굴로 바로 그 좌석에 끼어 앉아 태연스레 이를 잡으며 노래하고 거문고를 타되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으니 여러 기생들이 기가 죽었다.’ 허균의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 하권에 실린 글이다.  황진이처럼 파격적인 삶을 살면서 그처럼 빼어난 시를 남긴 사람도 흔치 않다. 황진이의 그 뛰어난 문학적 감각은 오랜 시간 단련을 통해서가 아니고, 시대를 뛰어넘는 자유분방함과 파격적인 행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세계의 곳곳을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누비고 있다. 그들의 가슴속에 황진이의 열정과 패기가 전해진 것일까?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입력 : 2012-05-24 21:18:39수정 : 2012-05-24 21: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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