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4부 -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1) 일의 즐거움, 노동의 존엄성,[기로에 선 신자유주의]한국 배관공 “자식교육·여가·노후준비 꿈도 못 꿉니다

ngo2002 2012. 5. 4. 14:48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한국 배관공 “자식교육·여가·노후준비 꿈도 못 꿉니다”

ㆍ4부 -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1) 일의 즐거움, 노동의 존엄성
ㆍ덴마크 도축공, “땀 흘린 만큼 벌고 가족과의 삶 즐겨요”

5월29일 덴마크 링스테드시. ‘데니시 크라운’ 도축장 출구가 갑자기 부산해졌다. 오후 2시55분이었다. “무슨 일이 났나요?” 기자가 물었다. 도축공 초븐 렝스(43)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퇴근시간이잖아요.”

도축장 안쪽 인부들은 손질된 돼지고기를 정리하며 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자. 집에들 가자고! 휴일을 즐겨야지!” 퇴근 준비를 마친 초븐이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월요일은 ‘예수승천일’로 공휴일이다. 긴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 퇴근시간이다. 초븐을 따라 공장 밖으로 나왔다. 100여명의 도축 노동자들이 출퇴근 카드를 찍으며 주차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주차장은 차량 2000여대는 족히 세울 만큼 넓었다. 중동·동유럽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아직 해는 하늘 한 가운데 있었다.

같은 시간 한국의 건설노동자 박상익씨(50·가명)는 서울 중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건설현장에 있었다. 가장 힘든 시간이다. 꼬박 8시간째다. 아직 퇴근까지는 3시간 남짓 남았다. 아침 체조시간은 오전 6시50분인데 이 때까지 도착하려면 적어도 5시에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점심 식사 후 쉴 겨를도 없이 일하다 보니 졸음이 몰려왔다. 현장 한쪽에서 잠시 한숨 돌리려 했다. 그러나 이내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박씨, 밥값은 해야지.” 퇴근시간인 오후 6시. 아직 박씨가 맡은 층의 보일러 배관 마무리 작업이 조금 남았다. 현장 관리자는 “웬만하면 빨리 진행하자”고 했다. 다 마치고 나니 오후 7시. 머리와 옷에 쌓인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술이나 한잔 하지.” 그는 동료들과 근처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힘든 일한 만큼 보상받아야죠 ”

초븐은 도축공이다. 한국의 박씨와 같은 육체 노동자다. 경력도 비슷하다. 박씨는 1991년부터 18년째 건설현장 배관공으로 일하고 있다. 초븐은 93년부터 16년 동안 돼지고기 가공업체 ‘데니시 크라운’의 도축장에서 일했다. 입사 이후 10여년간 도축된 돼지의 배를 갈라 내장을 분리하는 일만 했다. 경력이 쌓여 최근 5년 동안 도축장 기계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 육체 노동자라 해도 초븐과 박씨의 노동조건과 삶의 질은 다르다.

초븐이 살고 있는 덴마크의 연간 근로시간은 1577시간(2007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한국보다 700시간 이상 짧다. 빈곤율은 0.05로 30개국 중 가장 낮고, 지니계수는 0.23으로 빈부격차가 가장 적다. 출산율은 2006년 기준 1.85명으로 유럽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삶에 대한 만족도는 76.8점으로 30개국 중 5위이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2316시간이다. 2006년에 이어 부동의 1위를 지켰다. 2위인 헝가리(1986시간)와 300시간 이상의 격차다. OECD 국가들의 평균 근로시간 1768시간을 한참 웃돈다. 가난한 사람은 30개국 중 6번째로 많다. 빈곤율은 0.15. OECD 30개국 중 6위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8.7명으로 3위.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합계 출산율은 2006년 기준 1.13명. 2년 연속 30개국 중 최하위다. 여가 시간은 주당 30.7시간으로 세계 평균(39.2시간)을 밑돈다. 평균 수면 시간은 하루 470분(7.8시간)으로 잠을 가장 적게 잔다.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23.1점으로 OECD 30개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24위이다. 한해 동안 겪은 고통, 우울, 슬픔 등을 나타내는 부정적인 경험 수치도 61.5점으로 OECD 평균인 35.6점보다 훨씬 높다. 요컨대 한국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자지만, 가난한 사람은 많고 자살률은 높은 병든 사회일 뿐 아니라 삶의 질은 최하 수준의 행복하지 않은 사회이다.

지난달 11일 만난 박씨는 땀을 훔치며 말했다. “요즘 과연 일을 계속 해야 할지 망설여져요.” 일이 고된 건 말할 수 없지만, 문제는 그렇게 고된 일을 하는데도 생활 유지가 어렵다는 점이다.

“건설 현장에 20년 있었지만 변한 게 없어요. 사람들이 ‘노가다’ ‘날품팔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건 변하지 않았어요. 거기다 임금은 안 오르고, 물가는 오르고. 뭘 먹고 살 수도 없는데 자식들 가르치고 이런 건 엄두도 못 내는 겁니다.”

박씨는 일용직이다. 아침 7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6시에 끝난다. 평균 10시간, 주 60시간 이상 일을 한다. 공사기간이 촉박해지면 일요일도 없다. 야간·연장근무도 다반사다. 수당을 제대로 쳐 주는 때는 거의 없다. 명절이나 공휴일엔 오히려 일거리만 늘어난다. “임금 체불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죠.” 그렇게 고생하면 한 달에 150만~180만원 정도 번다. 고 3인 아들과 아내의 생활비와 학비 대기에도 벅차다. 여가나 노후 준비는 생각도 할 수 없다. 박씨의 시간과 몸값은 이렇게 싸다. 삶의 절반 넘게 오롯이 일에 투자했는데도 사는 모양이 이렇다.

그러나 초븐은 “하는 일에 만족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너무 너무 만족해요. 무엇보다 급여에 만족합니다. 일한 양만큼 정확히 보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보상도 더 받는 것이죠.”

초븐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40시간을 일한다.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에 퇴근. 박씨와 출근 시간은 같지만 3시간 먼저 퇴근한다. 물론 주말과 공휴일엔 쉰다. 그는 “데니시 크라운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실시하고 있다”며 “오전 6시에 출근해서 낮 2시에 퇴근하는 사람도 있고, 야간 근무를 하는 이들도 있다. 공정에 따라 주 37~40시간으로 조금씩 다르지만 받는 돈은 일한 시간만큼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해서 초븐은 세전 월 3만 크로네를 번다. 원화로 700만원 정도다. 박씨에 비해 노동시간은 주 20시간 이상 적은 반면 급여는 4~4.5배 많다. 초븐은 수입의 약 40%가량을 세금으로 내지만 연금·의료·교육·보육 등을 모두 국가 공공서비스로 해결해 주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고 했다.

#“너무 일 많이 하면 조사받아요”

초븐은 깔끔한 하늘색 작업복과 흰 위생모, 나무로 만들어진 딱딱한 위생화 차림이었다. “도축장을 좀 둘러 보자”는 요구에 흔쾌히 앞장섰다. 그가 바람을 가를 때마다 돼지 생육(生肉) 냄새가 비릿했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선 외부인도 일회용 위생점프 슈트와 모자, 신발을 착용해야 한다. 출입구에서 3단계 자동 소독장치에 손과 발을 소독했다.

도축장 내부는 어둡지도, 축축하지도 않았다. 핏덩이가 말라붙은 낡은 갈고리도, 혐오스럽게 진동하는 피비린내도 없었다. 공산품을 생산하는 신설 공장 분위기에 가까웠다. 현대적이고 쾌적했다. 줄줄이 기계에 매달린 도축된 돼지들은 깔끔했다. 각 공정에 따라 점차 ‘돼지고기’의 형태를 띄어가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초븐과 같은 복장으로 일렬로 늘어선 돼지들 사이에 서서 배를 가르거나, 뼈를 분리하거나, 부위별로 고기를 잘랐다. 초븐은 내장을 분리하는 파트 앞에 서더니 “이게 내가 10년간 하던 일”이라며 포즈를 취했다.

돼지고기에서 빠진 핏물이 흘러 내려가는 수로 옆으로 노란 띠를 팔뚝에 두른 이들이 눈에 띄었다. ‘안전관리감독관’이다. 1200여명이 일 하는 이 공장에만 17명이 있다. 직원들의 안전 상태를 점검한다. 그 중 한 명인 헨릭 베렌디가 말했다. “현재 안전사고는 1년에 50건 정도뿐이에요. 처음에 노조의 직업환경 분야 담당팀이 문제제기를 했죠. 그래서 고용주와 함께 해결책을 찾아 지난 5년 동안 80%를 줄인 결과예요.”

그리고 그는 말했다. “칼로 인한 사고는 많이 줄었어요. 최근엔 소음 관리를 위해 현황 파악 조사를 했습니다. 소음 감소와 직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사측과 함께 고민 중입니다.”

데니시 크라운 도축장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산재보험 적용은 물론 나머지 치료비 전액도 회사에서 부담한다. 치료 기간엔 월급 전액이 지급된다. ‘과잉노동’ 금지 규정도 엄격하다. 헨릭은 말했다. “1시간 동안 고기 자르는 양이 정해져 있어요. 과도하게 어기면 직장안전관리청에 보고를 하게 돼 있고, 경찰·직장안전관리청에서 나와 조사를 하지요.”

박씨는 지난 1996년의 사고를 떠올렸다. 디디고 있던 파이프의 볼트가 빠지면서 3층 높이에서 추락했다. 코가 부러지고 가슴에 타박상을 입었다. 회사는 산재 처리를 거부했다. 직접처리(공상처리)를 고집했다. 산재 처리를 많이 하면 회사의 산재보험료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산재 다발업체’ 이미지는 공사 입찰에 지장을 준다. 때문에 많은 국내 업체들이 산재 처리를 꺼린다. 이건 위법이다.

“업체와 한 달 동안 싸워서 겨우 산재로 60% 보상만 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회사가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건설 현장에서 1년에 700명 이상이 죽어요. 매일 2~3명이 죽는 겁니다. 사고가 아니라 죽는 게 그 정도입니다.”

작업 환경은 열악하다. “바닥과 천장엔 암면 가루투성이입니다. 환기가 안돼요. 밀폐돼 있거든요. 일하다보면 숨쉬기가 힘들어요. 목이 칼칼해서…. 보안경을 지급하긴 하죠. 며칠 쓰고 나면 하얗게 돼서 보이질 않아요. 교체해달라고 해봐야 안 들어줘요. 샤워시설 같은 게 어딨대요.”

박씨는 이어 말했다. “잠깐 짬이 나 쉬기만 해도 눈치를 줘요. 그러다 찍혀서 ‘나가라’고 하면 나가는 수밖에요. 회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안중에도 없겠죠.” 그는 스스로를 ‘파리 목숨’이라고 말했다.


#“도축장 일한다고 무시당하진 않아요”

초븐과 박씨의 차이는 육체 노동자에 대한 사회 인식에서도 나타난다. 박씨는 아들이 가져온 가정환경조사서 직업란에 ‘건설업’이라고 쓰곤 했다. “건설업이라고 얼버무리고 마는 거죠. ‘너희 아버지 노가다 하고 다니냐’ 하면 애 한테 창피스러운 일이잖아요. 건설현장에서 배관 설비 일을 한다고 떳떳하게 얘기를 못하는 거예요.” 박씨는 덧붙였다. “나도 현장에선 내 기술에 자부심이 있어요. 하지만 아들은 나같이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반면 도축공인 초븐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단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한국에선 종종 ‘백정’이란 말로 폄훼되곤 하는 직업이다. 도축공으로 살면서 차별적 인식 탓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을까. 그는 그런 질문 자체에 놀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똑같이 땀흘려 일하는데, 아니요, 아니요 그럴 순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의사나 교수는 존경을 받습니다. 하지만 도축장에서 일한다고 남에게 무시당하진 않아요. 저는 여기서 15년 이상 일했습니다. 도축 분야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어느 누구보다 전문가예요.”

초븐은 대학에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에도 안 갔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받은 교육은 9년간의 초등의무교육이 전부다.

“초등교육을 마치고 농업에 종사하려고 농업 직업교육을 받긴 했죠. 여기선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삶에 크게 부족한 게 없었어요. 더 교육받을 생각은 안 해봤는데…. 언제든 원하면 필요한 분야를 찾아서 배우면 됩니다. 교육은 언제나 무료이거나 저렴하고 평생교육체제라 나이에 관계 없이 배울 수 있어요.”

덴마크의 성인교육 참여율은 58.5%에 이른다. 26.7%인 한국의 두 배 이상이다. 언제나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대학 진학에 대한 강박도 없다. 9~10년의 의무교육 이수 이후 인문계 고등학교 혹은 직업학교에 진학하고 이 중 일부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코펜하겐 직업훈련센터 TEC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예트 노셀은 말했다. “직장에 취업할 생각이면 직업학교를 선택하는 게 흔한 일입니다. 9학년 학생의 절반 정도가 직업학교에 가죠. 대학은 정말 학문적으로 ‘공부’하려고 가는 곳이에요.”

#“퇴근하면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야죠”

오후 3시 초븐이 2인승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집에 가서 더 이야기하죠.” 기자는 택시를 잡아 탔다. 선글라스를 낀 젊은 택시기사는 “여기는 인건비가 워낙 비싸 택시비도 비싸다”고 설명했다. 초븐의 집까지 택시 요금은 600크로네(약 14만원)가량 나왔다. 과연 고임금의 나라였다. 초븐의 집은 링스테드시 카라 벡스미네의 한적한 농촌의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회사로부터 35㎞가량 떨어져 있다. 결혼한 지 4년 만에 350만크로네(약 8억2000만원)짜리 집을 30년 장기융자로 마련했다. 덴마크에선 보통 30년간 저리로 빌려주는 은행 주택 융자로 주택을 구입한다고 했다. 아내는 파트타임 간호사, 아들은 셋이다. 차고엔 초븐이 타고온 2인승 차량 외에 한 대가 더 있었다. “한 대는 가족을 위한 차죠.” 잔디 정원은 넓었다. 아이들을 위한 미끄럼틀과 그네, 시소가 놓여 있다. 함께 간 가이드는 “이 정도면 덴마크에서도 무척 좋은 집에 속한다”고 귀띔했다.

이미 귀가한 아내와 아이들이 그를 맞았다. 오후 3시40분이었다. 아내 메톨리는 식탁에 앉아 동료에게 줄 카드를 쓰고 있었다. 저녁 땐 동료의 송별 파티를 하러 나간다고 했다.

“매일 이 시간이면 초븐이 회사에서 돌아와요. 퇴근 후에요? 가족과 함께해야죠.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아이들과 놀고, TV를 보거나 책도 읽고 그런 평범한 일상이요. 오늘처럼 외출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편은 아니죠.” 메톨리가 말했다.

초븐과 아이들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커피와 데니시 페스트리가 접시 위에 놓였다. 초븐은 기자와 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고, 메톨리는 병원에 들어온 어린 환자 얘기를 했다. 9살 맏이는 오늘 학교에서 배웠는지 ‘덴마크 왕정’에 대해 줄줄이 설명했다. 사진에 담기 위해 퇴근 후 지내는 평소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9살 꼬마가 “이런 게 평소 모습인데요?” 했다.

주말엔 정원을 가꾸거나 친구 가족들과 모여서 가든 파티를 한다. “퇴근 후 직원들과 회식 같은 건 안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회식이 뭐냐고 되묻는다. “그런 건 없어요. 음…1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런치 정도? 하하하. 퇴근하면 모두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에 갑니다. 남아서 술 같은 건 잘 안 마셔요.”

메톨리가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이날 저녁시간의 아이들 돌보기는 초븐의 몫이었다. 식사를 준비하는 초븐의 손길이 자연스러웠다.

박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산다. 1990년 결혼한 이듬해에 장만한 33평짜리 다가구 연립주택이다. 낡은 집이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이사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퇴근 후엔 대부분 잠을 잔다.

“새벽에 일 나가야 하고 일 하면서도 잘 쉬지 못하니 많이 피곤하죠. 일요일엔 등산을 가기도 하지만 거의 잠을 잡니다. 여가시간은 생각하기 힘들어요. 또 비가 오거나 자재가 안 들어오면 그 날 일은 허탕이잖아요? 그럴 땐 현장 동료들과 낮부터 술 한잔 하죠. 그게 아니라도 현장에 있으면 기분 나쁜 일이 많습니다. 임금을 떼이는 경우도 많고 업체 쪽 젊은 대리들이 막 대하거나, 자재 안 들어온 것에 대한 책임을 일 하는 사람들에게 전가하거나…. 그러면 또 그거 풀려고 술 마시고 그러죠.”

박씨의 아내는 이번 달부터 ‘희망근로 프로젝트’를 통해 일을 시작했다. 두 사람의 소득을 합하면 190만~220만원 정도. 고3인 아들을 학원에 보낼 여유는 없다. 생활비, 학비 대기에도 빠듯하다.

“아이를 한 번도 학원에 못 보내줬습니다. 아이도 나름대로 대학은 가야지, 학원은 안 보내주지, 답답하죠.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원하면 다 해주고 싶은데 미안한 마음이 많아요. 그래서 이해 좀 해 달라, 그 대신 대학에 들어가면 노력해서 가르치겠다 얘기했어요. 아이도 현실을 아니까 수긍해주더라고요. 고맙게 생각해요.”

저축은 생각지도 못 한다. 노후 대책을 물었다. “건설 현장 들어오기 전에 잠깐 제화 공장 사업을 했어요. 다행히 그때 나랑 집사람, 아들 앞으로 연금 보험을 들어 놓은 게 있어요. 그때 해 놨으니 망정이지. 일단 아이 대학까지 가르치고, 나와서 직장이나 다니면 우리 두 부부가 빠듯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 생각은 하지만, 사실 막막합니다.”


#“저축은 노후 아닌, 휴가 여행 위한 것”

초븐 부부의 총소득은 세전 연 70만크로네(약 1억6300만원)이다. 파트타임 간호사로 일하는 부인과 맞벌이로 어린 아들 셋을 키우지만 크게 힘들지 않다. 질 좋은 공공 보육시설에서 아이를 맡아준다. 비용도 저렴하다. 2살 막내는 공공탁아소에, 5살 둘째는 공공유치원에 맡긴다. 9살 맏이는 학교가 끝나면 학교에서 마련한 방과후교실에 간다.

“세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월 1만크로네(약 230만원) 정도면 충분해요. 보육시설 비용 외엔 아이들 취미생활로 승마, 축구 클럽 등에 보내는 비용이 들 뿐이에요. 학교는 물론 무료이고요. 아플 때도 병원이 무료니까 따로 돈 드는 건 없죠. 학원요? 따로 학교 공부를 위해 보내는 학원 같은 건 없는데요.”

노후를 위한 저축도 필요 없다. 연금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저축은 “휴가 때 여행가려고 가끔 하는 단기 저축 정도”와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자기 기반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들어둔 어린이 저축”이 전부다. 버는 돈은 모두 현재의 윤택한 삶을 위해 쓰는 셈이다.

“지출은 아무래도 세금이 제일 많죠. 그 외엔 주택 융자 상환으로 내는 돈이 좀 많아요. 최근 몇 년 사이 집값 폭등으로 상환액이 늘어나서 예전보다 좀더 부담스럽죠. 그래도 연금이나 애들 보육·교육·의료 등 나머지는 세금만 내면 국가에서 다 해 주니까. 개인적으로 보험을 든 건 개인 생명보험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부부 중 한 명이 죽어도 지금과 똑같은 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들어둔 거예요.”

#“도대체 6시 이후에 무슨 일을 하나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초븐은 기자에게 ‘당신은 얼마나 일하고 얼마를 버는가’를 물었다. 대답을 듣더니 깜짝 놀란다. “아니, 오후 6시 이후에 도대체 무슨 할 일이 있어요?”

초븐은 하루 8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다. 퇴근은 이른 오후다. 오후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초븐에게 최고의 가치는 ‘가족과의 삶’이다. 가족과의 시간을 즐긴다. 자녀 교육이나 보육·노후 때문에 결코 현재를 희생하지도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러나 한국 박씨의 삶은 너무 피곤하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다. 그렇게 일해도 저축은커녕 아이 학원 보낼 여유조차 없다. 여가는 낯선 단어다. 퇴근 후엔 부족한 잠 자기에 바쁘다. 세 식구가 저녁 식탁에 모여 대화를 나눈 것이 언제였는지도 까마득하다.

초븐이 말했다.

“저는 로또에 당첨되어도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습니다. 저에게 직장은 돈을 버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요. 고용주와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저는 고용주를 문제가 생기면 함께 해결책을 찾는 파트너 관계라고 생각해요. 회사에서도 저를 소모품으로 여긴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렇다고 더 오래 일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가족과 보낼 시간이 줄고 내 삶의 질이 떨어진단 걸 잘 알아요. 전, 지금 아주 만족합니다.”

◇ 특별취재팀

서의동 경제부 차장·조찬제 국제부 차장·김재중 문화부 기자·장관순·홍진수·송윤경 정치부 기자·이로사·유희진 사회부 기자

<링스테드(덴마크) | 글·사진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입력 : 2009-07-20 18:37:39수정 : 2009-07-20 18: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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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실업수당으로 다섯식구 생활…재취업 걱정 안해”

ㆍ4부 -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2) 실업? 불안하지 않아요
ㆍ덴마크 실레의 경우

실레 리네가 호이루프가 덴마크 코펜하겐 반료세 지역에 위치한 자신의 집 정원에서 11개월 난 셋째아이를 안고 있다.


“아니, 그럼 가족 중 돈을 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에요?”

실레 리네가 호이루프(34·여)는 겸연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5월29일 덴마크 코펜하겐 반료세 지역 실레의 집을 찾았다. 실레는 11개월난 막내 아이를 유모차에 눕혀 재우고 있었다. 유모차는 집밖 정원의 잔디 위에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덮어준 이불을 정성스레 매만졌다. “덴마크에선 신선한 공기를 쐬면서 자야 한다고 아이를 밖에서 재우는 전통이 있어요. 집으로 들어가시죠.” 아이는 파란 하늘 아래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실레는 실업자다. 수입은 0원이다. 남편 역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물론 그의 수입도 0원이다. 정원이 딸린 집은 총 650㎡(196평). 10살, 2살, 11개월짜리 아이도 셋이나 있다.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까.

“실업수당을 받고 있어요.”

실업수당은 한국에도 있다. ‘구직 급여’다. 고용보험 가입 기간에 따라 최소 90일에서 최대 240일까지 받을 수 있다. 1일 4만원으로 최고액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통상 퇴직 전 평균 임금의 50%를 받는다. 길어야 8개월, 다섯 식구가 그 돈으로 부족함 없이 먹고 산다? 무리다. 실레의 경우를 들어보자.

“제가 받는 실업수당 외에 남편 앞으로 나오는 ‘교육 지원 수당’이 있어요. 집에 수입이 없는데 교육을 받을 경우 제공되는 수당이죠. 아이가 있으면 또 돈이 좀더 붙어요. 그거랑, 은행에서 생활비용으로 돈을 조금 빌렸어요. 그걸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살고 있어요. 하하하. 절약하면서 살면 되죠.”

실레의 실업 수당은 월 1만크로네(약 240만원) 정도. 종전 월급의 85%가 조금 안된다. 가장 낮은 단계의 수당이지만 한국의 최대 실업수당 수급액보다 2배 이상 많다. 남편의 교육 지원 수당은 월 3500~5000크로네다. 원화로 85만~120만원가량이다.

덴마크의 실업수당 수급 기간은 4년이다. 저소득층이 일할 때 받을 수 있는 돈의 90%에 이른다. 하루 지급상한선 적용으로 고소득자의 경우 50% 정도. 평균적으로는 60% 정도다. 실레는 “나는 짧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일한 기간이 길지 않아 제일 낮은 단계의 수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실레는 ‘수당’만으로 아이 셋을 키우며 살고 있는 것이다.

실업요? 다시 취직하면 되죠

실레는 지난 1999년 첫째 아이를 낳고, 2000년 의상실에서 디자이너 보조로 일했다. 2002년엔 한 의류업체 매장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경기불황으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1년 만에 해고됐다. 이런 갑작스러운 해고는 한국에서라면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이다. 실레는 달랐다.

“인생의 좌절이라든지 하는 걱정은 전혀 안했어요. 실업보험기금연합(AK-Samvirke)에 가입이 돼 있거든요. 가입한 지 1년만 되면 수당을 받을 수 있죠. 단지 내가 어느 정도의 수당을 받을지가 불확실해서 그건 신경이 쓰였어요. 직장이야 또 구하면 되니까.”

실레가 갖고 있는 기술은 2년간 받은 직업교육으로 얻은 재단 기술뿐이었다. 학력도 변변찮다. 고등학교는 1년반 다니다 중퇴했고, 이후 직업교육을 2년간 받은 것이 전부다. 고등학교 중퇴 후 치과 보조원 일과 연극 프로젝트 활동을 하긴 했다. 내세울 만한 경력은 아니다. 그건 물론 한국 기준에서 하는 얘기다. 학벌이나 높은 학점, 공인영어성적, 인턴십 경력 등 ‘스펙’은 그에게 중요치 않아 보였다. 실레는 초조해 하지 않았다.

수당받은뒤 열심히 구직…정부선 직업훈련 권장
기술 취업생 원하지만 안되면 교육대학서 공부


당시 실레는 기존 월급의 80% 정도를 실업수당으로 받았다. 수당으로 생활하면서 구직 활동을 했다. 고용센터에 이력서를 계속 보냈다. 의상 디자인 회사들은 경기에 예민한 편이라, 수월친 않았다. 고용센터에선 최대한 실레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줬다. 고용센터에서 제공하는 짧은 코스의 성인 직업 기본 교육도 받았다. 그렇게 5개월 만인 2003년 4월 유치원 보조교사로 취직할 수 있었다.

“아이를 좋아해서 저에게 잘 맞는 일이었어요. 그러나 중퇴한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려고 그만두게 됐죠.”

이후엔 일을 하지 못했다. 2004년 다 마치지 못한 고등학교를 다시 다녔다. 2006년에 둘째를, 지난해 6월엔 셋째를 낳았다. 지난 3월에는 결혼식도 했다. 한숨 돌린 올해 본격적으로 다시 일자리를 찾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나라에서 수당만 받으면서 살았어요. 이제 일을 해야죠. 얼른 직업을 찾으려고 이력서를 일주일에 4개 이상씩 고용센터에 내고 있어요.”

아이를 낳으면 양육수당을 받았고, 양육수당 기간이 끝나면 실업수당을 받았다. 그렇게 수당만으로 살아온 지 5년이다. 한국에서라면 ‘낙오자’ 취급받기 십상이다.

5년째 구직 중이라는 한국의 고모씨(36)는 말했다. “이미 나이 때문에 웬만한 기업에선 저를 뽑지 않아요. 집에서도 ‘쟤는 틀렸다’고 포기한 눈치고요. 결혼도 못 했죠. 처음엔 좀더 좋은 직장을 구하려고 일을 그만뒀어요. 이제는 아무 데나 가려고 하는데도 쉽지가 않네요. 과연 제가 원하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요? 별로 희망적이진 않아요.” 그는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배제됐다고 느낀다”고 했다.

일주일에 4개 이상의 이력서

실업급여만 받고도 살 수 있다면 누가 다시 취업을 하려 할까? 실레가 말했다.

“그런 부분도 없지 않죠. 그렇지만 일단 실업수당을 받기 시작하면 열심히 구직을 해야 해요. 고용센터와 실업보험기금연합에 직업을 활발히 찾고 있다는 증거를 계속 보여줘야 하죠. 안 그러면 심사에 의해 실업수당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는 서랍장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 왔다. ‘실업 카드’라고 써 있다. 카드에는 항목별로 ‘이력서 내역’ ‘실업기간’ 등을 표시하도록 돼 있다.

“이거요? 제가 어떻게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지 기록하는 카드예요. 고용센터에 4~5주에 한 번씩 들고가서 확인을 받아야 하죠.”

실레는 양육수당 기간이 끝난 후, 실업보험기금에 구직등록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력서를 ‘이력서 은행(CV Bank)’에 내놨다. 이 이력서는 고용센터와 공유하게 된다. 고용센터는 고용부 산하의 직업소개상담기관. 지자체 단위로 광범하게 퍼져있다. 고용센터는 그때부터 실레의 취업알선계획을 시작한다. 해고가 자유로운 대신 재취업을 쉽게 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덴마크의 적극적 노동정책이다.

“이력서를 내놓으면 고용센터에서 연락이 와요. ‘이런 이런 일자리가 있는데, 가서 면접을 한 번 보라’ 하는 식으로요. 보통 임금수준이나 출퇴근 거리, 개인의 특정 기술 같은 걸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소개해 줘요.”

한국에도 고용지원센터가 있다. 그러나 덴마크 같지는 않다. 취업 상담은 보통 3~5분이면 끝난다. 본인의 이력을 써 내고 담당자로부터 구인 업체를 소개받는 게 전부다. 2006년 정부에서 제공하는 고용지원센터와 워크넷 서비스를 통한 취업은 전체의 3.7%에 불과했다. 직원 1명이 담당하는 경제활동인구도 8199명에 이르고 있다. 박명수 연구개발본부장은 지난 4월 고용정보원 심포지엄에서 “적합한 인력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구인업체와 구직자 양쪽에서 모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레는 요즘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일할 만한 곳을 찾는다. 아이를 돌보는 것 외엔 구직 활동이 하는 일의 전부다. 일주일에 4개 이상의 이력서를 넣고 있다. 그게 규정이다.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씩은 고용센터의 담당 상담자를 만나야 한다. 몇 개의 이력서를 넣었는지, 어디 어디 면접을 봤는지부터 개인의 신상에 관한 문제까지 자세히 이야기한다. 매주 고용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자신이 ‘구직 상태’라는 확인도 해야 한다.

식탁에 앉아 있던 실레가 일어섰다. “아이 좀 보고 올게요.” 그는 곧 잠에서 막 깬 아이를 안고 들어왔다. 재단 기술을 이용해 직접 만든 옷을 입혀놨다. 아이는 일자리가 생기는 대로 근처 공공 탁아소에 맡길 생각이다. 이미 탁아소 등록도 마친 상태다.

“직업을 구하는 동안엔 여행 같은 것은 못 가죠. 정기적으로 증명해야 할 것도 많고, 직업이 구해지면 바로 가서 일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고용센터에선 취업알선을 하기 전에 미리 아이들 보낼 탁아소, 유치원 등이 모두 갖춰져 있는지 확인해요.”

처음부터 실직자들을 압박하는 건 아니다. 30~60세 실직자들의 경우 9개월 동안은 조건 없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단, 실업급여 수급기간 4년 중 첫 1년을 제외한 나머지 3년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직업훈련 등 적극적인 재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재취업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아질 것을 우려한 정책이다.

실레는 아직 실업급여를 신청한 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됐다. 크게 압력을 받는 기간은 아니다. 그러나 실레는 더욱 적극적으로 정부의 직업알선이나 훈련에 참여하려 하고 있다. 얼른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취업으로 향하는 수많은 선택지

실레는 전형적인 미숙련 노동자다. 재단 기술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낡은 기술이다. 필요로 하는 곳이 많지 않다.

“요즘은 다 기계화돼서 제가 예전에 하던 그런 일들이 없어지는 추세예요.”

그럼 어떤 일을 찾고 있을까.

“그렇다고 무조건 슈퍼마켓 캐시어, 식당 서빙 같은 미숙련 직업만 찾진 않아요. 그런 일이라면 벌써 취업이 됐겠죠. 저에게 직업 경험으로 의미가 있는 일들을 찾고 있어요. 유치원 보조교사나 부티크 점원 같은 일들이오. 방송국의 조사 보조원 같은 일도 시도해보고 있어요.”

그가 생각하는 최선은 실습생으로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서 월급을 받으면서 일도 배우고 싶다. 그렇게 경력이 쌓이다 보면 승진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엔 한 디자이너 브랜드 매장의 점원으로 면접을 봤다. “실습생으로 시작하는 사람 치고 나이가 너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떨어졌다.

“계속 해 볼 거예요. 그래도 안 되면 기술교육대학에서 교육을 받을 겁니다. 교육이오? 무료죠. 고용센터와 얘기가 잘되면 실업수당을 받으면서 교육받을 수 있어요. 방법은 많아요.”

재취업 노력도 중요하지만 직업교육·훈련은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바다. 실업수당을 받으면서 교육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레는 기업실습생으로 취업이 안 되면 기술교육대학(TEC)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안 되면 옷을 다루는 새로운 기술을 배워볼까 해요. 신소재 기술도 있을 거고, 마케팅 분야도 있을 거예요. 특히 재단사처럼 사양길에 든 기술자의 경우 다른 교육을 받도록 권장하는 편이죠.”

덴마크 최대 고용지원센터의 옌스 시베르슨은 “실직자들을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로 보낼 필요가 있다”며 “실직자들과 상담할 때 주로 그런 영역의 기술을 훈련받게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유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덴마크에는 TEC와 같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교육 기관이 있는가 하면, 기업에서의 실습 프로그램도 있다. 또 기업에 대한 임금보조를 통해 채용을 장려하기도 한다. 주로 장기 실업자가 대상이다. 공기업에서 실업자를 채용하면 1년간 실업급여 상당의 임금을 보조해준다. 민간기업의 경우엔 기업과의 계약에 따라 임금의 약 50% 정도를 보조한다. 아니면 ‘직장순환제’와 같은 프로그램도 있다. 육아·병가·교육 휴가 등 유급휴가로 잠시 자리를 비운 노동자의 자리에 단기로 실업자들을 채용하는 제도다. 실레에겐 취업으로 향하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실레는 불안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 시작할 삶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는 “이제 낳을 아이도 다 낳았고, 취업을 위한 마음의 준비도 확실히 됐다”며 웃었다.

“전에도 제가 하고 싶은 직업은 항상 찾았어요. 지금도 꼭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알아요? 이 기사가 나올 때쯤 제가 벌써 취직해서 일하고 있을지…. 하하.”

<코펜하겐(덴마크) | 글·사진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


 

입력 : 2009-07-26 18:03:17수정 : 2009-08-19 10: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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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해고 쉬운대신 4년간 실업급여 주며 보호

ㆍ4부-다른 사회를 상상한다 : “고용 기적은 노동자 삶 보장될 때 가능” 
(2) 실업? 불안하지 않아요 덴마크 황금 삼각형 모델

지난 5월25일 만난 덴마크 고용부 노동청의 선임 국제고문 라이프 한슨은 말했다.

“여기선 직업을 잃는다는 게 당장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가에서 실업수당이 제공되죠. 그 전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요. 수당을 받으면서 직업을 찾으면 됩니다. 취업 알선, 교육 프로그램이 모두 갖춰져 있으니까요.”

최근 세계 노동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유연성’의 증대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불안하다. 사회보장 제도에 대한 지출도 줄어든다. 노동시장에서도, 사회보장 구조 안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자연히 노동자들의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덴마크는 유연성과 안정성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노동 정책들을 펼쳐왔다. 그 결과 노동자 보호는 물론 견실한 경제 지표도 얻을 수 있었다.

몇 가지 수치들을 보자. 덴마크의 1인당 GDP는 5만달러를 넘어섰다. 세계경제 포럼(WEF)이 발표하는 세계경쟁력 순위에서도 미국, 스위스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GDP 대비 조세 부담률이 50%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숫자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실업률. 2009년 4월 현재 3.3%에 불과하다. 고용률도 77%에 이른다. ‘고용 기적’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치다.

라이프 한슨은 덧붙였다. “많은 나라에서 이 모델을 배우러 옵니다. 대부분이 관심 있어 하는 건 ‘해고를 자유로이 할 수 있다는 점’이죠. 그러나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겁니다. 덴마크 모델이 다른 점은 자유로운 해고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삶의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것이에요. 그 둘이 함께 가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칼스버그, 레고, 그리고 유연 안정성 모델

유럽 연합은 2006년 유연 안정성 모델을 새로운 사회경제 패러다임이자 정책 모델로 채택했다. 유럽뿐 아니다. 세계 많은 국가가 이 모델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3월 AP통신은 “덴마크의 노동시장 모델은 칼스 버그 맥주, 장난감 레고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가장 유명한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고 보도했다. 덴마크 모델이 이렇게 ‘잘 팔리는’ 이유는 뭘까.

라이프 한슨은 “영·미식 신자유주의 경제구조조정에 반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덴마크 모델은 ‘유연 안정성 모델’로 통칭된다. 노동자와 자본 간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유연성과 안정성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정책이다. 신자유주의식 구조조정이 자본의 요구에는 대응하나 노동자들의 상대적 위치를 약화시켜 균형을 깨뜨리는 것과 다르다.

라이프 한슨은 칠판에 세 개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각 동그라미는 정삼각형의 꼭짓점에 위치해 있다. 각 동그라미 안에 ‘유연한 노동시장’ ‘사회보장’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라고 적었다. 이른바 덴마크 모델의 ‘황금 삼각형’이다.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결합했을 때 덴마크 모델이 가능합니다. 해고와 채용을 쉽게 해 기업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기 쉽도록 하는 거죠. 대신 실업자를 위한 종합적인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요. 또 이들이 다시 일자리를 갖게 해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취업알선·직업훈련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해고도 채용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

덴마크에선 해고가 쉽다. 성·종교·임신 등 사회적 차별을 제외하고는 어떤 이유에 의해서든 해고가 가능하다. 해고 예고기간도 1개월에서 6개월 정도로 짧다. 근속 9개월 이하의 생산직 노동자는 해고예고 없이도 해고가 가능하다. 법적인 고용보호 수준은 2004년 기준으로 미국·영국·캐나다 등 영·미권 국가에 이어 7번째로 낮았다. 영·미권 국가는 전통적으로 고용보호가 취약하다.

덴마크 돼지고기가공업체 ‘데니시 크라운’의 인적자원디렉터 얀 윈터는 지난 3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채용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 언제든 해고할 수 있고, 대신 정부가 그들을 보호해 주리란 걸 알기 때문이죠.”

ㆍ기업은 구조조정후 일자리 재창출
ㆍ노동자는 수당 받으며 재취업 노력

일자리도 빠르게 소멸하고, 만들어진다. 기업이 변화하는 상황에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매년 전체 일자리의 10% 이상(약 30만개)이 사라지면서 해고된다. 이와 동시에 비슷한 수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돼 채용기회를 제공한다.

자연히 직장 이동률도 높을 수밖에 없다. 매년 전체 노동인구의 29%가량이 직장을 옮긴다. 그중 70% 이상이 실업을 경험한 이들이다. 대부분은 짧은 구직 과정을 거쳐서 재취업한다. 장기 실업자로 남는 건 일부다. 평균 동일직장 근속기간은 8년. EU의 10.6년보다 짧다.

이는 노사 간의 자율적 합의에 의해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덴마크의 오랜 역사와 관련이 있다. 덴마크에선 노동법규보다 노사 간 단체 협약이 훨씬 큰 효력을 갖는다. 환경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덴마크노동조합총연맹(LO)의 국제고문 크리스티앙 와이스는 “노·사·정 모두 이 모델이 주는 이점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며 “사회적 파트너들 간의 상호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모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자리 보호가 아닌 사람 보호

해고가 쉬우면 노동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덴마크 노동자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직장 불안정성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 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소득 보장이다. 덴마크의 실업수당 수급 기간은 4년이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 실업 수당의 수준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신 재취업 의무를 전제로 한다. 실직자의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데 성공하고 있다. 2004년 덴마크 전체 실업에서 12개월 이상의 장기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2.6%에 불과했다. 덴마크 실업자의 80%가량이 1년 미만의 단기 실업자인 셈이다. 반면 EU 15개국의 장기실업 비중은 평균 42.4%로 덴마크의 두 배에 가까웠다.

‘새로운 일자리 찾기’가 단시간 안에 가능한 것은 덴마크 정부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덕분이다. 덴마크는 94년부터 대대적인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했다. 90년대 초반, 9%를 상회하던 고실업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덴마크의 실업수당 기간은 9년에 달했다. 이를 7년으로 단축했다. 또 ‘이중 수급기간제’를 도입해 수급기간을 ‘소극적 기간’과 ‘적극화 기간’으로 구분했다. 직장순환제도 활성화했다. 직장순환제는 재직자의 휴가로 비워진 자리에 실업자를 한시적으로 대체 고용하는 제도. 이를 위해 육아, 교육훈련휴가 등 유급휴가제를 도입했다.

ㆍ직장 순환·유급휴가 등 다양한 정책
ㆍ10명중 8명이 1년내 새 일자리 찾아

“덴마크의 사례가 ‘고용 기적’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때의 고실업을 잘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9~10%대의 실업률이 3~5%대로 안정화됐으니까요. 또 단순히 실직자를 단시일 안에 노동시장에 내보내는 정책보다 교육과 훈련을 강조했어요. 실업자 개개인의 사회적 배제를 방지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게 생산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었고요.”

이때 정착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직 2년차부터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취업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용센터와 취업계획을 정하고 이를 지켜야 하며, 직업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또 일정 기간이 되면 고용센터에서 정해주는 직장에서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엔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교육’을 더 강조하고 있다. 라이프 한슨은 “재취업 노력은 않고 교육만 받으려는 이들을 우려해 6주의 교육제한 기간을 두었다”며 “그러나 오는 8월부터는 미숙련자나 이미 낡은 기술이 돼 버린 직업인 경우 기간 제한 없이 교육받을 수 있게 완화했다”고 말했다.


땅벌은 과학적으로 날 수 없지만

기술교육대학에서 전기 기술 교육을 받고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 시민들. /코펜하겐 | 이로사기자

라이프 한슨은 ‘땅벌’ 이야기를 꺼냈다. 많은 이들이 덴마크 모델을 몸집이 커 날 수 없을 것 같은데 잘 날고 있는 ‘땅벌’에 비유했다. “땅벌은 (몸집이 커) 과학적으로 날 수 없어요. 그러나 시행착오 끝에 실제로 날게 됐죠. 이와 마찬가지로 전통적 경제이론에 있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고용 안정성은 상호 모순입니다. 함께 작동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이에요. 그 상식을 덴마크의 사례가 깼습니다.”

모순을 극복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통적으로 사회복지제도가 잘 구축돼 있었다. 노사관계 역시 높은 조직률을 기반으로 오랜 사회적 합의주의의 역사를 갖고 있다. 사회적 파트너들 간의 신뢰도도 높다. 라이프 한슨은 말한다.

“오랫동안 역사적인 경험에 의해 구축된 모델이란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어떤 계획에 의해 한 번에 이뤄진 게 아니란 거죠.”

오랜 역사적 노력의 결과인 만큼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도 그 기조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덴마크에선 ‘일자리 보호’가 아닌 ‘사람 보호’를 통해서만 고용증대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노·사·정 3자가 공유하고 있다. 기업은 해고 부담 없이 경쟁력이 약화된 부분을 구조조정하고, 장기적으로 더 경쟁력 있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노동자는 실업급여와 정부 프로그램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 없이 훈련 및 재취업 노력을 거쳐 노동시장에 복귀한다. 이 과정은 자기계발의 계기로도 활용된다. 덴마크 사회는 이 모델을 통해 ‘취약부문의 실업증가’라는 세계화의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시키고 있다고 평가된다.

라이프 한슨은 한 공장의 예를 들었다.

“얼마 전 경제 위기를 맞아 제가 사는 지역의 한 공장에서 600여명 중 90명을 해고했습니다. 그리고 14명을 채용했어요. 숫자로 보면 적은 것 같죠. 하지만 이게 큰 의미를 갖습니다. 유연 안정성 모델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면 이들은 해고만 시키고 (남은 사람들에게) 일을 더 하라고 하지 채용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코펜하겐(덴마크) |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입력 : 2009-07-26 18:24:18수정 : 2009-08-19 10: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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