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1부 - (1) 아이슬란드를 가다

ngo2002 2012. 5. 4. 13:11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공포로 변해버린 ‘금융허브의 꿈’

ㆍ1부 - (1) 아이슬란드를 가다

싼이자로 빌린 외국돈이 재앙의 부메랑으로
건설업체 줄도산 신축건물 대부분 공사중단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북쪽의 항구 근처에서 지난 12일 바라본 대규모 빌딩 건설 현장. 아이슬란드는 지난 몇년간 부동산 거품을 타고 주택과 빌딩 신축이 활발했으나 국가부도 직전까지 내몰리면서 곳곳에서 공사가 중단된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 | 김재중기자>


지난 7일 자정 무렵 아이슬란드 유일의 국제공항 케플라비크 공항에 도착한 기자를 차에 태운 현지 가이드는 “상황이 어떠냐”는 첫 질문에 “엉망이죠”라고 짧게 답하고 시동을 걸었다. 수도 레이캬비크로 향하는 왕복 4차선 고속도로는 부슬비에 젖어 가로등 불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 외신을 통해 아이슬란드 주민들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취재일정 중 그런 곳을 찾을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가이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환율이 폭등하면서 물가가 엄청나게 뛰었지만 아직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외국 돈을 빌려 집을 산 사람들과 부동산 업자들은 다 죽게 생겼습니다. 레이캬비크 외곽지역의 한 쇼핑몰에서 전자제품 액세서리 가게를 하고 있는 피욜라(37·여).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남편과 그는 지난 4월 큰 맘먹고 2400만 크로나(당시 환율로 약 4억8000만원)를 대출 받아 집을 샀다. 실제로는 크로나화가 아닌 미국 달러, 일본 엔, 스위스 프랑, 유로 등 네가지 외국 돈을 섞어서 받았다. “1년 전부터 집 살 돈을 빌리기 위해 은행을 찾아가 상담을 하기 시작했는데 외국 돈을 빌리는 것이 훨씬 더 저렴하다고 조언을 해줬어요. 크로나화는 금리가 무척 비쌌지만 이자율이 싼 외국 돈들을 소개해줬죠.”

대화 도중 손님이 찾아오자 상냥한 미소로 맞이하던 그녀는 손님이 나가자 이내 심각해졌다. “그런데 지금 집을 판다고 해도 처음 대출 받았던 금액은 그대로 남아요.” 두딸을 키우고 있는 피욜라가 갚아야 할 대출금은 현재 4100만 크로나로 부풀었다. 거의 두배가 된 것이다. 매달 상환할 대출금도 두배가 됐다. 그러나 4000만 크로나에 산 집의 가격은 40% 가까이 떨어졌다. “일단 생활비를 4분의 1로 줄이기로 했어요. 처음엔 될까 했는데 어떻게 살아지긴 하더군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북유럽 민족 특유의 회색 섞인 푸른 눈동자가 흔들렸다.

환율! 환율!

금융위기 이후 아이슬란드는 순식간에 반토막이 돼 버린 크로나화 가치의 공포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누구든지 몇마디만 나누면 환율과 통화 이야기부터 했다. 금융위기 이전 1달러 당 65크로나 정도 하던 환율이 순식간에 137크로나로 폭등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에 따르면 2008년 4월 현재 아이슬란드 가계부채의 23~24%가 외환대출이다. 금융위기 이전 2100억 크로나이던 아이슬란드 전체 가계의 외환대출 규모도 현재 3300억~3500억 크로나가 됐다.

금융위기전 아이슬란드에서는 집값의 100%까지 가능했던 은행돈을 빌려 새 집을 짓거나 사는 게 유행이었다. 레이캬비크 외곽의 경우 고급주택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부촌’으로 지도가 바뀌었고, 시내 중심가 곳곳에는 사무용 빌딩 신축 붐이 일었다. 레이캬비크에서 3개의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는 올라브르 토르파손(57)은 “당시 20년도 안 된 집을 허물고 더 고급스러운 집을 짓는 게 유행이었어요. 미친 짓이었죠”라고 말했다. “하기야 당시엔 그게 미친 짓이 아니었어요. 2004년부터 레이캬비크의 주택가격은 매년 20~30%씩 뛰어올랐으니까요.” 주택뿐 아니다. 대학이나 동네마다 있는 실내체육관 건물도 지어진 지 2~3년밖에 되지 않은 새 건물 냄새가 났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 이사인 에르나 지슬라도티르는 “건설업계는 모두 끝났고, 다른 기업들도 절반이 살아남는다면 천만다행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내 곳곳에는 타워크레인이 우뚝한 건물 신축 현장이 쉽게 눈에 띄었다. 물론 대부분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10일 초저녁 레이캬비크 중심가 레이가베구르 거리의 한 레스토랑 앞에서 독일인 모녀 관광객 2명이 메뉴판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이슬란딕 퓨전 메뉴’라는 부제가 달린 메뉴판을 꼼꼼히 살펴보던 이들은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어깨를 으쓱인 뒤 길 반대편 레스토랑 쪽으로 사라졌다. “크로나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는 하지만, 지금 전세계가 위기인 상황이라 그리 만만할 것 같지는 않다”라는 토르파손의 말이 생각났다.

전통적으로 실업률이 1%대에 머물던 아이슬란드에서 실업의 공포는 서서히 검은 심연을 드러내고 있다.

시장점유율 12%의 자동차 수입회사 ‘비앤엘(B&L)’의 현대차 담당 매니저 브자르니 시구르드손을 11일 만났다.

시민 쇼핑카트엔 우유만 두팩뿐
실업 대란 예고 전국민의 1% 실업자 될판
살인적 물가에 “자본주의 끝났다” 탄식도


그는 컴퓨터 마우스를 몇번 클릭하더니 모니터를 보여줬다. 현대차 판매 추이였다. 모니터 중간쯤에 그어졌던 선이 10월을 기점으로 곤두박질쳤다. “현대차를 한달에 60~100대가량 팔았지만 지난달엔 겨우 16대가 나갔습니다. 회사는 40% 감원계획을 세웠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시구르드손은 대답 대신 사무실 유리창 너머 번쩍이는 새차들로 가득차 있는 매장으로 시선을 보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회사 80여곳에서만 모두 3000명을 감원한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노동인구가 아닌) 아이슬란드 전체 인구의 1%가 거의 동시에 실업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슬란드 노동법은 해고전 3개월의 여유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나 내년 초쯤 되면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의 사무실을 나오자 지난달 국유화된 글리트니르 은행의 지점이 눈에 띄었다. 창구에 있는 중년의 여직원에게 은행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상냥했던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노”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주일 내내 은행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매번 이런 식이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들 기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한때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은행과 은행 경영진들, 정치인들은 금융위기를 불러온 주범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중앙은행의 지슬라도티르 이사가 말했다. “금융은 아이슬란드의 문화를 바꿔 놓았습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비린내 나는 수산업을 과소평가하는 대신 높은 임금을 주고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은행들을 칭송했죠. 이제는 사고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이 깨달음이 한발 늦기는 했지만요.”

아이리쿠르 다그비아르트손(43)은 레이캬비크 남서쪽에 있는 조그만 수산도시 그린다빅에서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수산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아이슬란드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 그는 6년 전까지 선장으로 배를 탔었다. “수산업계는 지난 10~15년간 작은 업체들을 사들이며 외국 돈을 빌려다 썼고 그 결과 우리의 재무구조도 은행과 비슷해졌습니다.”

12일 퇴근길에 대형매장 ‘보누스’를 찾은 오타 오스프 욘스도티르(40·여)는 두바퀴째 돌았는데도 쇼핑 카트에는 우유만 두 팩뿐이다. 그는 과일 코너를 가리키더니 “두 달 전까지만 해도 1㎏에 150크로나였던 사과가 359크로나, 159크로나였던 바나나가 268크로나가 됐어요”라며 도리질을 했다. 그를 따라 매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계란, 통조림, 밀가루 등 순식간에 올라버린 식료품 값에 대한 ‘증언’이 계속됐다. 그는 268크로나 하는 밀가루 봉지를 보더니 “저게 전에는 100크로나였어요”라고 말했다. 현재 아이슬란드 물가는 연초 대비 15~20% 올랐지만 중앙은행은 최대 30%까지 뛸 것으로 보고 있다.

골프용품점을 운영하는 시구르 기슬리(57)는 매장 뒤편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요청에 “그 재미난 얘기를 들으러 왔습니까”라고 농담을 하더니 커피를 권했다. 그의 둘째 아들은 노르웨이의 대학에서 유학중이다. “한달에 9만크로나를 부치고 있는데 내가 보내는 돈은 그대로이지만 애가 받는 돈은 반토막이 됐습니다. 애가 일자리를 구해본다고 하는데, 안되면 잠시 들어와 있으라고 할 생각입니다.”

기슬리는 점원 야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 친구 주장처럼 이제 자본주의가 끝난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련 공산주의가 끝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나는 자유시장경제가 맞다고 봐요. 그렇지만 이전과 같은 모습은 안됩니다. 뭐랄까, ‘규제되는 자본주의’여야 한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아이슬란드를 떠나기 전날인 13일 기자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구드문드손은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아이슬란드의 온천이나 자연경관에 대한 사진이 필요하면 언제든 e메일로 요청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명예한국총영사다. 관광지 사진 얘기를 몇차례 더 하기에 “취재목적이 관광지 소개가 아닌 줄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는 밍크고래 고기 한 조각을 집으며 말했다. “잘 압니다. 하지만 당장 아이슬란드가 기댈 곳은 수산업과 관광산업입니다.” 이것이 금융 허브의 신기루가 사라진 아이슬란드의 알몸이었다.

<레이캬비크·그린다빅(아이슬란드) | 김재중기자 hermes@kyunghyang.com>

아이슬란드 경제의 몰락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슬란드 경제학자들은 감시·감독 없는 금융의 과대성장을 경제붕괴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들은 “이 위기가 언제 끝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환율·금리 정책실패가 위기의 원인”

■ 토르올브르 마티아손
아이슬란드 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위기의 시발점은 어디인가.

“1996~2003년 은행들이 차례로 민영화됐다. 2001년엔 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중앙은행은 물가가 목표치보다 높을 경우 이자율을 올렸다. 이자율이 오르자 일본 엔화를 비롯한 외국 자본들이 몰려왔고 크로나화가 강세를 띤 게 위기의 시작이다.”

- 현재 외환시장 상황은 어떤가.

“외환거래가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금융허브로 불리던 아이슬란드가 외환거래에 있어 북한과 비슷한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

-한국 정부도 금융허브를 지향하고 있다.

“한국이 자국 통화 대신 일본 엔화를 선택할 수 있겠나. 그게 아니라면, 엄청나게 많은 외환을 축적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허브를 시도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규모의 통화를 가지고 금융부문이 과대성장하면 결국 붕괴한다.”

“이 위기는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몰라”

■ 올라브르 이슬레이프손
레이캬비크 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 왜 은행을 민영화했나.

“정부가 은행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서는 은행이 민영화될 당시 큰 비난을 받았다. 정치권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에게 은행이 넘어갔고, 은행 경영이 전문성이 없는 젊은 사람들에게 맡겨졌기 때문이다.”

-과도한 금융자유화가 문제라고 지적되고 있다.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은행소유주와 관련이 있는 기업들에 많은 돈이 대출되면서 은행을 약화시켰다.”

- 위기가 언제 끝날까.

“반대로 내가 물어보자. 세계적인 위기가 언제 끝날 것인가. 현재로선 세계적인 위기가 언제 끝날 지 전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지 않은가. 아이슬란드도 오히려 위기가 심화되는 조짐만 보이는 상황이다.”

-금융허브의 꿈은 살아날 수 있을까.

“금융허브의 꿈은 악몽으로 끝났다. 그 대가는 비싸다.”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 | 김재중기자>

입력 : 2008-11-26 17:56:56수정 : 2008-11-26 17:5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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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아이슬란드가 문제? 제어할 시스템 부재로 몰락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모델의 모범생 아이슬란드는 한때 그 놀라운 성장으로, 이제는 붕괴의 깊이와 속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지난해에도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유엔 주도 설문에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면서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았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아이슬란드는 ‘1976년 영국 이후 최초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서방국가’라는 치욕적인 ‘가시 면류관’을 쓰게 됐다.

아이슬란드의 급속한 도약, 그 도약보다 더 급속한 추락은 지난 30여년간 ‘시대정신’으로 군림해오다 그 지위를 도전받고 있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이처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아이슬란드는 수산자원과 전력자원, 온천과 간헐천, 빙하를 중심으로 한 관광자원 외엔 이렇다할 자원이 없는 나라였다.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물가상승이 항상 골칫거리였고, 정부는 금융을 철저히 통제해 왔다.

그러나 90년대 다비드 오드손 총리 주도의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장인 그는 91년부터 14년 동안 총리로 재임하면서 공격적인 금융 자유화를 추진했다.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법인세도 순차적으로 내려 90년대까지 50%였던 법인소득세율이 현재는 18%다. 97년부터는 정부 소유 대규모 은행의 지분매각이 시작됐다. 총리실이 진두지휘한 주요 은행들의 민영화는 2003년 완료됐다. 세계 각지에서 높은 이자율을 쫓아 돈이 몰려들었다. 외국자본이 넘쳐났고, 아이슬란드 크로나화는 강세를 보였다.

민영화된 은행들은 아이슬란드 내부 시장이 너무 작아 성장에 한계를 느끼자 영국·네덜란드·노르웨이 등 유럽으로 나가 몸집을 키워나갔다. 정부는 사실상 투기에 가까운 은행들의 영업행태를 용인했다. 카우프싱·란츠방키·글리트니르 등 3대 은행의 자산규모는 아이슬란드 국내총생산(GDP)의 12배가량에 달했다. 그러나 이 중 70%는 해외 자산이었다.

하지만 국내 제조업 기반이 낮은 아이슬란드는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2008년 2·4분기 대외채무는 약 1205억달러로 GDP의 7.3배를 기록했으나 외환보유액은 36억7000만달러(9월말 기준)에 불과했다.

결국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자신들이 복제했던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자 자금 회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졌다. 토르올브르 마티아손 아이슬란드 국립대학 교수는 “아이슬란드 위기는 금융 자유화에 따른 은행의 과잉성장과 그것을 제어할 시스템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김재중기자>

입력 : 2008-11-27 00:00:28수정 : 2008-11-27 00: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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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금융위기 진원지 월가·LA를 가다  

ㆍ금융인·서민 ‘몰락의 두 얼굴’
ㆍ월가 구직시장 썰렁해도 “아직 버틸만”…LA선 집 가압류 사태속 ‘빈털터리’ 증가

뉴욕 월가와 로스앤젤레스는 신자유주의의 황혼에 물들어가는 2008년 11월의 미국을 상징한다. 월가 금융인의 추락, 그들의 자본 놀음에 이용당한 서민의 절망을 말하기 위해서는 두 도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튼의 99센트숍은 13일 밤 늦게까지 손님들로 북적였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 고가의 상품을 파는 백화점 매출은 줄었지만 반대로 99센트숍의 손님은 두배 이상 늘었다. 뉴욕 | 유희진기자


두 도시는 대륙의 동과 서로 떨어져 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라는 폭탄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2000년 초반에 시작됐던 빚잔치를 끝내가고 있었다. 그 파티에는 너나 없이 초대받았고, 모두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 파멸의 기획자와 피해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7년 가까이 월가에서 모기지 채권 파생상품 판매를 담당하던 코그네티(33)는 금융위기가 시작되던 올 초 구조조정으로 자기 부서가 없어지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전같으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는 순간부터 헤드헌터들이 일자리 제의를 하며 몰려들었을 테지만, 이번엔 썰렁하다. 그래도 그는 매를 먼저 맞아 나은 경우였다. 비교적 일찍 해고됨으로써 구직 시장이 달아오르기 전에 부동산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회사에서도 경제위기로 끊임없이 해고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 이 자리도 그렇게 안정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아직은 버틸 만하다.

100년 동안 세계 금융의 심장이었던 월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계 경제 대국 미국에서도 명실상부한 상류층을 차지하고 있다. 미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내 금융산업 종사자 중 평균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곳은 이 월가가 위치한 뉴욕주였다. 뉴욕주 금융업계 종사자의 평균 임금은 13만1660달러(약 1억5000만원)에 달했다.

그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주저앉게 됐지만, 그동안 자기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위험이 있었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고액 연봉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받았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코그네티처럼 인생에서 한번 실패를 맛보았다 해도 새로운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그러나 저소득층은 아무 것도 몰랐고, 그리고 가진 것을 다 잃었다. 금융 자본은 마리사츠 루세로(37·여) 같은 가난한 자를 위험한 돈놀이 게임에 끌어들여 엄청난 이윤을 챙기고는 빚쟁이로 전락시켜 길거리로 내팽개쳤다. 이제 다 끝난 마당인데 돈이 없어도 내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미끼에 걸려든 루세로의 고통을 누가 알아주기나 할 것인가.

LA카운티 남부 란초쿠카몬가시에 사는 루세로는 생애 처음 가졌던 집에서 단 4년을 살고난 후 은행의 가압류에 밀려 쫓겨났다. 2004년 집값 100%를 은행 대출로 받아 집을 샀다가 상환액이 4개월 밀리면서 신용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죽을 고생을 하면서 모았던 금쪽 같은 그 모든 돈들이 집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미국에서 루세로처럼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집을 샀다가 가압류당한 주택은 2007년 한해 동안만 100만채가 넘는다. 가압류 주택의 수는 올해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해서 월 2500달러 정도를 벌고 있는데 한달에 월세로 1300달러를 내고 있어요. 남은 돈으로 다섯 식구가 먹고 사는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죠.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길거리에 나앉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그는 왜 이렇게 됐는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금까지 밤낮으로 일하며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요.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뉴욕·LA | 유희진기자>


 

입력 : 2008-11-30 18:35:54수정 : 2008-11-30 18: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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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이래저래 회사 눈치…“붙어 있어야죠”

ㆍ재취업한 코그네티 ‘침체기의 지혜’ 강조
ㆍ뒷모습 촬영도 거절…연방 찬물 들이켜

코그네티를 만난 곳은 뉴욕 42번가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시간은 오후 5시를 막 넘어서고 있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정신이 멍할 정도였다. 사람들 틈을 뚫고 터미널 한구석에 위치한 미니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얀 얼굴에 갈색 머리, 푸른 빛이 감도는 눈동자의 그는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다”며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코그네티를 소개해 준 지인에게서 “너무 개인적인 것들에 대해 물어보면 안 된다”고 사전에 주의를 받아뒀던 터였다. 그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의 중간이름(미들네임) 외엔 모든 정보를 숨겨달라고 했다. 뒷모습이라도 찍으면 안 되겠냐는 요청에 그는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회사에서 모든 언론과의 접촉을 하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거든요. 누가 알아보면 어떡해요. 혹시라도 문제될 수 있는 것은 안하고 싶네요. 한 번 해고된 것에 대한 후유증이 큰가봐요. 너무 소심해졌어요.”

경기가 어려울 때 재취업을 했기 때문에 이래저래 회사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 뿐이에요. 이 침체기가 길어질 것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침체기를 사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이 회사에서 절대 해고되지 않는 것이 그 지혜 가운데 하나겠죠.”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는 연방 속이 타는지 계속해서 찬물을 들이켰다. 블랙베리(휴대전화)를 꼭 움켜진 손은 마치 중요한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 연락올 데가 있나봐요”라고 묻는 기자에게 그는 검정색 블랙베리폰을 들여다보이며 “한때 월가에서 세일즈를 할 때는 블랙베리로 e메일을 확인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었거든요. 언제, 어디에 있든 수시로 확인을 했어요. 그 습관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이 직업병도 사라지지 않겠어요?”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 맞는 최악의 경제위기 한가운데 있는 코그네티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이었다.

<뉴욕 | 유희진기자>

입력 : 2008-11-30 18:36:53수정 : 2008-11-30 18: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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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2008년 11월 14일 뉴욕풍경

ㆍ선진금융의 고향… 자부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4일 모건스탠리 본사 건물. 전광판에서 당일의 증시 상황이 실시간 중계되고 있다. <뉴욕/유희진기자>


지금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금융위기의 진원지 뉴욕.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 금융폭탄을 터뜨린 뉴욕은 경제위기에 가장 느리게 반응하고 있었다. 막 쇼핑을 끝낸 여성들은 큰 쇼핑백 두세개씩은 들고 다녔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3명 중 한 명꼴로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 뉴욕은 여전히 흥청망청인듯 보였다. 그러나 뉴욕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구석구석을 돌아다닐수록 뉴욕에도 균열이 시작되고 있음이 감지되었다.

10:40 타임스퀘어

두달 전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 본사 건물이 있던 곳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길을 묻기 위해 48번가의 조그만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아르바이트생 카마라(29)는 길을 묻는 기자에게 바로 건너편에 있는 745번지를 가리키며 그 날을 떠올렸다. “이 주변은 항상 혼잡하지만 리먼의 마지막 모습을 찍기 위해 전 세계에서 취재진들이 몰려든 그 때의 타임스퀘어 주변은 정말 발디딜 틈도 없을 만큼 붐볐지요.” 본사 정문 앞에 설치된 수많은 언론사의 카메라들은 짐을 싸서 나오는 직원들의 모습을 담았다. 인터뷰를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을 쫓아가 끝내 마이크를 들이대는 모습을 잠시 구경하던 카마라는 그 때 ‘회사 하나 망한 게 그렇게 큰일인가’ 싶어 별 생각 없이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맨해튼 중심부인 49번가 745번지. 화려한 3단의 전광판을 앞세운 34층의 고층 빌딩에는 불과 두달 전만 해도 ‘리먼 브라더스’라는 금색의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이제는 ‘바클레이즈 캐피털(BARCLAYS CAPITAL)’로 바뀐 건물을 바라보며 카마라는 “당시에는 취재진들이 모여 짐을 싸서 나가는 리먼 직원들의 모습을 찍어가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 내가 해고 걱정으로 잠을 설치면서 그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인근에서는 ‘모건 스탠리’가 그 날의 증시를 전광판에 중계하며 여전한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11:30 우리아메리카 은행 맨해튼 지점

이병웅 이사는 “우리아메리카은행은 다행히 예금을 초과해 대출을 하지 않아 경제위기 속에서도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의 호텔비에 혀를 내두르는 기자에게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는 나이와 경력에 비해 과도하게 돈을 벌어 흥청망청 썼던 월가 사람들의 사치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1년에 억 단위의 보너스를 받는 30대 초반의 월가 금융인들은 보너스를 받을 때마다 아파트의 평수를 늘렸고 고급 식당에서 고급 술을 마셨다. 그들의 씀씀이에 맞추어 고급 호화 식당들이 속속 들어섰고 다른 가게들까지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자연히 월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붕괴는 동시에 월가를 겨냥해 만들어진 고급 식당·명품점들에도 직격타였다. 그는 “지금 당장의 뉴욕은 괜찮아 보이지만 월가에 해고 바람이 불고 있는 이상 서서히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12:30 택시안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뉴욕은 대낮부터 어둠이 짙게 깔렸다. 거리에 앉아 구걸을 하던 노숙자들은 비를 피해 건물 사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월가에 가기 위해 올라탄 택시. 택시 운전사 콴(38)은 “경기침체 취재를 위해 월가에 간다”는 기자의 말에, “나도 경제위기의 피해자”라고 응수했다. 그는 “요즘은 직장에서 해고된 젊은 사람들이 단기 아르바이트 삼아 택시 쪽으로 많이 밀려오고 있다”며 “승용차로 불법 택시 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 전보다 수입이 절반은 줄어들었다”고 불평했다. 차가 막혀 20분 정도 지나서야 택시는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이자 택시 기사의 수입을 절반이나 갉아먹은 월가에 도착했다.

13:00 골드만삭스 앞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 본사 건물. 지난 14일 이 건물 간판은 ‘바클레이즈 캐피털’로 바뀌어 있었다. <뉴욕/유희진기자>



30층은 족히 되어 보이는 붉은색 건물 어디에도 세계 1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를 상징하는 간판은 없었다. 오가는 직원들을 상대로 취재하려는 기자에게 건물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이슈로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없고 사진도 찍을 수 없다”며 모든 취재를 원천봉쇄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비밀 클럽을 연상케 하는 철저한 보안이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경비 태세에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14:40 뉴욕 증권 거래소

폐장시간을 1시간20분 남겨둔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는 불안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선진 금융의 상징이지만 이날따라 그 자부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 한 쪽에 명찰을 단 다섯명의 직원은 따로 떨어져 각각 건물에 기대고 서서 담배를 피웠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들어갔다 싶으면 10분 뒤에 다시 나와 초조한 얼굴로 건물 앞을 서성거렸다. 다음날 뉴욕 타임스는 14일 다우증시가 330포인트의 낙폭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15:30 JP 모건 체이스 은행

월가로 가는 입구에 위치한 이 은행 직원 4명이 모여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름 깊은 얼굴이었다. 넥타이를 풀어 헤친 루이스 도슨(33)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곧 감원이 시작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다들 아침에 30분씩 일찍 출근해 일을 시작한다”며 “모두들 자신이 해고 대상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16:40 월가 피트니스 클럽

월가 모퉁이에 있는 한 피트니스 클럽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중년 남자 1명만이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하며 땀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피트니스 클럽의 주인은 “월가 사람들은 건강이나 몸매 관리에도 철저해 주식시장 폐장 시간이나 퇴근 전에 들러 운동을 하고 간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월가에 해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 후에는 회원 수가 30% 이상 줄었다”며 “등록되어 있는 회원들도 시간을 내기 힘든지 뜸하게 오거나, 오더라도 운동을 즐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17:30 부동산 에이전트 크리스퍼 김

부동산 중개업자 김씨는 “월가가 한창 호황일 때는 그들의 수입에 힘입어 맨해튼 주변의 평균 아파트 가격이 11억원에서 13억원대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들 아파트 가격이 월가의 해고 바람으로 조금씩 빠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올해 월가에 보너스 잔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감당하기 힘든 고가의 아파트를 팔고 싼 아파트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 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입력 : 2008-11-30 19:01:34수정 : 2008-11-30 19: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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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월가는 오만했고, 똑똑하기보다 비열했다”

부동산 파생상품 트레이더 김항주씨의 고백

# 속도에 목숨을 건다

미국 최대 저축은행 워싱턴 뮤추얼에서 일했던 재미교포 김항주씨(34·사진). 지난 8년간 외환 전문 헤지펀드 QFS, 얼라이언스캐피털, 구겐하임파트너스 등 월가의 여러 회사를 거치며 월가의 흥망성쇠를 경험한 부동산 파생상품 트레이더(설계인)다.

미국 월가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던 김항주씨가 지난 13일 뉴욕 맨해튼 32번가에서 기자와 만나 자신이 겪은 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올해 초 워싱턴 뮤추얼에서 근무하고 있던 부서가 없어지면서 월가를 나오게 된 그는 현재 알파리서치캐피털이라는 금융 부티크 회사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요즘 하는 일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예전에는 월가에서 고공행진하는 부동산을 가지고 파생상품을 만들어 장사를 했는데 지금은 가치가 떨어진 부동산을 가지고 거래를 연결해주는 고물 장사를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난 13일 뉴욕 맨해튼 32번가의 한 찻집에서 만난 그는 남방에 편안한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분주했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일”이라며 “중간 중간 휴대전화로 거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끊어질 수 있으니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국으로 이민오기 전 서울 매봉역 앞 비닐하우스에서 어렵게 살았다는 그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월가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1992년 조지 소로스가 영국에서 환투기를 해서 1조원을 벌었다는 것을 신문에서 봤어요. 돈을 이렇게도 벌 수 있구나라고 깨달았죠. 새로운 세계가 보였습니다. 그 때 이쪽 분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인생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갔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에 진학해 금융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에서 금융을 전공했다. 졸업 후 월가에 첫발을 내디딘 후 2005년 월가의 마지막 직장인 워싱턴 뮤추얼에서 본격적으로 모기지 파생상품 일을 시작했다.

모기지 대출회사에서 주택담보부채권(MBS)을 사들여 그 것을 패키지화하고 구조화하는 작업을 해서 기관투자가들에게 팔았다. 혼자 한 달에 1조달러 규모의 거래를 했다.

# 한달 100만달러 거래는 보통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효율성과 속도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에요. 한 개인에게 1조달러 정도 맡기는 건 예사죠. 안에서 일하다보면 이게 참 모순이 많아요.” 그는 프랑스의 한 투자은행의 사례를 들었다.

“올해 초 프랑스의 한 투자은행이 7조원의 손실을 보았는데 이 손실을 나게 한 장본인은 서른살 먹은 트레이더였어요. 이 사람이 선물시장에서 매도할 것을 매수한 거죠. 이렇게 포지션을 반대로 해서 7조5000억원을 까먹었는데 그 사람 연봉이 3억원에서 5억원 사이예요. 의사 결정 과정이 너무 복잡한 것도 좋지 않지만, 월가는 효율성을 위해 그 많은 과정을 생략하다 보니 이런 일들이 생겨나는 거죠.”

그는 월가 내부의 모습을 묘사하며 시종일관 전쟁터에 비유했다.

“월가에서는 연구원들을 영입해 모델을 개발하게 하죠. 이게 파생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는 거예요.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는 연구원들을 전쟁터에서 쓸 무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복잡한 수학 공식이 이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해요. 그런데 이 연구 개발자들이 무기를 만들면서 너무 복잡하게 만들려다보니 한 가지를 빼먹었어요. 계산을 해보면 최종적으로는 이 무기가 아군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한 거죠.” 그는 바로 여기에서 위험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트레이더인 저는 그 무기를 받아 들고 옮겨요. 전쟁터에서 저는 그 무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 무기가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그 사이에 보호장치를 이것 저것 집어 넣습니다. 금융용어로 위험 헤지(방지 혹은 분산)를 한다고 하죠. 구조화를 하고, 묶는 것(패키지)이 바로 이런 작업들이에요. 그런데 여기서도 오류가 났어요.”

# 월가 사람, 능력 과신으로 기차와 함께 추락

연구원들이 아군도 죽일 수 있는 수학식을 만드는 실수를 했다면 트레이더들의 실수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떤 것도 다 헤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맹목적인 믿음”이라고 했다.

“부동산시장 전체 가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시장 전체가 망가지는 위험은 절대 없앨 수 없는 것인데, 없앨 수 있다고 믿은 거예요.”

그는 월가 사람들이 “오만했다”고 평가했다.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인데 집값이 언젠가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겠어요? 다만 자신의 머리와 능력을 너무 과신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직전까지만 장사를 한 후에 기차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생각한 거죠. 근데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 기차에 탄 채 함께 추락한 겁니다. 심지어 이 떨어지는 기차에 가속도까지 붙었어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거죠.”

# 월가 사람들에 대한 편견

그는 월가 사람들이 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건 환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투자은행 1위인 골드만삭스가 돈 버는 방법을 보면 똑똑한 게 아니라 비열해요. 기름을 잔뜩 사놓고 시장에 소문을 퍼뜨립니다. ‘오일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그럼 시장에서는 소문이 퍼지고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발전해 시장이 반응을 합니다. 상상이 가시죠?” 가격이 오를 때 골드만삭스는 미리 사두었던 기름을 풀어 돈을 번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파워가 있었으니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힘들겠죠.”

월가가 벌여놓은 일들을 풀어나가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것 또한 월가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월가는 인적 자원에 의해 돌아가는 동네예요.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 줄 아는 고도의 전문직들이 모여 있었죠.” 그는 만화에서 흔히 묘사되는 소림사 무술 배우기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소림사에서 3년 동안 밥하고 빨래 해준 후 무술을 배우면 천하를 제패할 수 있듯이 월가가 그랬어요. 학벌과 실력을 가진 사람이 월가라는 동네에서 3~4년 고생하며 기술을 배워요. 위험을 헤지하는 것, 투자자들 입맛에 맞게 상품을 짜는 것 등을 배우죠. 그러면 세계 금융계를 좌우할 수 있었죠.”

# 월가 안에서만 돌고 도는 금융기술

그렇게 해서 배운 기술들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월가 안에서 돌고 돌았다. 그래서 밖에서는 들여다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만들어 놓았다.

그 대가로 월가 사람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해 부실이 터져나오기 전까지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월가 생활 10년차를 눈앞에 두고 있던 그는 1년에 약 3억원에서 5억원 정도의 연봉을 받았다. 월가의 관례로 10년차가 넘으면 통상 연봉이 수직 상승한다. 말하자면, 그는 고액 연봉을 코앞에 두고 좌절한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면에서 잘나갔는데 중간에 꺾여버리니까 막막하고 허탈감이 밀려왔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두려움이 밀려왔어요.”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내가 한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벌고 너무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과연 월가는 정당했을까 생각했더니, 아니었어요. 월가는 방종으로 흘렀어요. 사람들 또한 고액 연봉만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질주하며 달렸죠. 1년에 적어도 4번은 호화 해외 여행을 다니고, 별장을 사고, 아이들도 고급 사립학교에 보냈죠. 요즘 그런 사람들 중 해고된 후 잠못이루는 사람 많을 겁니다. 월가는 현재 금융회사의 무덤이 되고 있어요.”

# 투자은행 설립은 망하는 지름길

투자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에 “망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일단 한국은 투자은행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월가의 투자은행은 의사결정 단계가 매우 짧고 빠르게 움직이죠. 가장 높은 사람까지 가는 데 두 단계밖에 안걸려요. 하지만 한국은 위계질서가 얼마나 분명한가요.” 그는 한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이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직원들에게 수조원을 다루도록 허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환경도 좋지 않아요. 미국은 처음에 따로 시작했다가 금융상품이 엮이기 시작하면서 위에서 꼬여 상황이 악화됐죠. 한국은 어떤가요. 이미 계열사끼리 얽히고 설켜 있어서 기본부터가 꼬여 있어요. 여기에 금융상품까지 얽히기 시작하면 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뉴욕 | 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입력 : 2008-11-30 19:03:41수정 : 2008-11-30 19: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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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1부-3. 세계 자본시장 통합이 초래한 ‘불황의 공포’

ㆍ하나의 불씨가 세계를 불사르다 - 미국발 금융위기의 특징
ㆍ개인들도 금융버블 가담
ㆍ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

 ‘그날’이 오기 전 우리는 금융거품과 부동산거품이 두텁게 깔린 소파의 푹신함을 즐기고 있었다. 컴퓨터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게 해준 금융세계화의 신속성, ‘선진금융기법’이 약속한 장기호황의 기대감은 우리를 매료시켰다. 우리가 달콤함에 취해있는 사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는 바람은 우리의 집과 직장, 재산을 쉽게 불에 탈 수 있게 바짝 말려가고 있었다. 대지가 건조해지면 단비가 내리는 게 시장의 원리라던 신자유주의자들의 외침과 달리 바짝 마른 대지 위에 마른 번개가 내리 꽂혔다. 2008년 9월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것이다. 리먼이란 불씨는 순식간에 세계 금융의 심장부 월가를 집어삼켰고, 그 불길은 다시 전세계를 불태우고 있다. 지구에 발딪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도 이 불길을 피해갈 수 없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과거의 금융위기에 비해 확산의 속도 및 범위, 부실규모가 빠르고 넓으며 크다.

확산 양상은 1930년대 대공황에 비해 즉각적이며, 90년대 아시아 등지의 금융위기에 비해 포괄적이다. 대공황은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영국·프랑스·독일 등 제국주의 열강에 서서히 영향을 끼쳤다. 이 열강은 그 위기에 식민지 수탈 강화로 대응함에 따라 그 부정적 여파는 세계적 규모로 확산되었다. 선진국에서 발화된 위기가 전 세계를 위기에 몰아넣는 위험한 것이라면, 개발도상국발 위기는 개도국으로 그친다는 점에서 덜 위험하다. 역내 인접 국가로만 퍼졌던 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가 좋은 예이다. 한성대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는 “아시아 금융위기는 2년에 걸쳐 아시아 지역에만 확산됐지 미국 등 선진국에는 닿지도 않았다”며 “반면 이번 금융위기는 불과 수개월 만에 전 세계 누구를 가릴 것 없이 ‘금융버블’에 가담한 모든 사람에게 파급됐다”고 말했다.

지난 9월 리먼 브라더스 파산의 충격은 2개월 만에 오일 달러가 풍부한 중동 바레인의 아랍뱅킹에까지 미쳐 이 은행에 12억달러의 손실을 입혔다. 투자손실뿐 아니다. 각국은 수개월 만에 세계 금융시장 경색에 따른 외자 이탈(환율 급등),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 타격을 받았다. 지난 10월 말 세계 주요 주식시장 53곳은 지난해 말 대비 28조9527억달러(시가총액 합산)를 허공에 날렸다.

대공황 때 주요 피해 계층은 1차대전 이후 급등한 곡물가로 떼돈 벌었다 주식투자로 파산한 미국 농민 대다수, 경기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전 세계 노동자들이다. 이번에는 서민들의 ‘금융시장 적극 가담’에 따른 직접 피해가 많다. 인하대 경제학과 김진방 교수는 “인터넷 등 정보기술 발달, 각국의 개개인들까지 역외 금융상품에 직접 가담할 정도로 전 세계가 금융자유화한 점 등이 과거와 다르다”고 말했다.

규모면에서 미국내 최대 3조달러(약 4426조원)로 추산되는 전체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외환위기 때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빌려 메운 부실(583억달러)이나 미국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파산 때 부실규모(1000억달러) 등 10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금융위기의 지속기간을 과거와 비교하기는 아직 이르다. 위기 해소 기준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점도 있지만, 이번 금융위기가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 경제토론회에서 서울대 사회학과 최갑수 교수는 청중인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차원의 문제로 대공황 때보다 심각하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은 1945년 제2차대전이 끝나서야 사라졌다. 즉 이번 위기는 15년 이상 진행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여러분들 청춘이 다 지나간다는 뜻이다.”

<장관순기자>


 

입력 : 2008-12-07 17:31:11수정 : 2008-12-07 17: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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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파리 공장노동자 “하루 임금 35유로나 깎여”

금융위기는 이 지구에 사는 거의 모든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크든 작든 사람들은 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럴듯한 금융회사에 다니며 남부럽지 않게 살던 이뿐이 아니다. 유럽의 이름 모를 소도시에 사는 평범한 시민들, 파리 외곽의 자동차공장 노동자들, 런던 교외의 노점상, 도쿄 시내 조그만 호텔에서 일하던 직원들, 일자리를 찾은 베이징의 젊은이도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들은 왜 그런지 알지 못한다. 뉴스에 등장하는 낯선 숫자들이 어떻게 자기 인생을 힘들게 할 수 있는 건지, 그 숫자가 왜 자기와 상관이 있다는 건지.

◇ 파리에서 - 연금생활자 “무보수 봉사 않고 개인 교습”

르노 공장 앞에서 시위 중인 파브리스 르베르(왼쪽에서 두번째).

지난달 7일 오전 파리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르아브르 시내 한 카페에서 근심이 가득한 얼굴의 파브리스 르베르(37)를 만났다. 평소라면 그는 공장에 있을 시간이었다. 인근 상두빌의 르노자동차 공장에서 8년째 일해온 르베르는 지난 9월 일찌감치 위기를 실감했다. 일하는 날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주 근무하면, 다음주는 쉰다. 순환휴직제가 도입된 것이다. “입사 초 임금이 월 평균 1500유로(약 278만원)였는데 지금은 하루 35유로 정도 삭감됐습니다. 그런데 물가는 오르더군요.”

매달 200유로의 할부금도 부담스러워져 최근 새 차를 팔고 중고차로 바꿨다. “2년 전부터 회사 상황이 나빠지더니 올 초부터 토요일 오전에 무임금 노동을 몇 번 했죠.” BMW의 프랑스 내 판매율이 지난해 10월 대비 16.6% 하락하고, 르노뿐 아니라 푸조자동차도 순환휴직제를 시행하는 등 자동차 업계 전반이 흉흉하다.

비좁은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는 아메드 에짐(왼쪽)과 스테판 카이에(오른쪽). 등 뒤로 다트 게임용으로 붙여 놓은 사르코지 대통령 사진이 보인다.

호세 리베로(48)는 파리 근교에서 부인 및 세 자녀와 함께 사는 평범한 건설 노동자이다. 27년 동안 이 일자리를 지켜왔던 그도 한달 전 갑작스러운 변화에 직면했다. 건설 공사 건수가 급감한 것이다. “건설사들은 아파트 분양 후 공사에 들어가는데, 아파트가 안팔려요. 공사가 중단될 수밖에 없죠. 이쪽 일 시작한 이래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공사 건수가 줄면 저희 같은 시급 노동자 수입은 덩달아 줄어요. 이달 보너스는 딱 절반만 나왔는데, 다음달은 아예 없을 겁니다.” 리베로는 “업계 대부분이 순환휴직 상태인데 법적으로 1년에 150시간 이상 못 쉬게 돼 있으니, 건설사들이 곧 해고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비관했다.

40세까지 건설 노동자로 일하다 프랑스의 최대 노동단체인 노동조합총연맹(CGT)의 상근자로 있는 벨라야 벤야이아(60)는 비정규직의 피해를 걱정했다. “5년 전만 해도 건설 분야는 최대 호황이었기 때문에 요즘 같은 날은 상상도 못했어요. 지금 공공 부문 건설이 30% 미만이고, 개인 소유 건축은 28%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개보수 수준입니다. 이런 불황에 처한 건설업계의 첫 희생양은 비정규직이 될 겁니다. 어떤 건설사는 1100명의 비정규직을 배제한 채 정규직 450명만으로 공사를 느릿느릿 진행하고 있어요”.

벤야이아는 지난 10월 사르코지 정부의 3600억유로 규모 구제금융을 비판했다. “국고가 비었다더니 도대체 3600억유로가 어디서 나온단 말입니까. 사회보장제도와 고용안정 등 사회적 비용 지출에는 ‘돈 없다’고 내치던 사르코지가 금융가 친구들을 위해서는 큰돈을 빨리도 마련했네요”.

파리 시내의 조그만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프랑스와 라몽드(72)는 은퇴자이다. 라몽드는 프랑스어 교사로 재직하면서 터키·멕시코·스페인 등지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고 당시의 법대로 55세에 일찍 퇴직하고 연금을 받으면서 나름 여유 있는 퇴직생활을 즐겼다. 비교적 이른 퇴직이라 전공을 살려서 여러 단체에서 외국인을 위한 불어 교사로서 무보수 봉사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점점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러 가는데, 특히 지난 2년부터는 물가 상승을 피부로 직접 느껴요. 매달 받는 연금은 똑같은데 물가는 같지 않아요. 그래서 무보수 봉사활동은 잠시 접고, 봉사활동 때 알게 된 외국인들에게 불어 개인교습을 해주고 있어요.” 그는 지금 개인연금 중 50%를 집세로 내고 있다.

파리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바스티유동네에 직장을 찾고 있는 세 젊은이가 월세 680유로의 28㎡짜리 좁은 아파트에 모여 살게 된 이유를 들려주었다. 혼자 살기에 적당한 이 아파트는 원래 아메드 에짐(30)이 2년 전 파리에 일자리를 구하러 오면서 임대한 것이다. 미술학교에서 그래픽을 전공한 에짐은 어렵게 디자인회사에 자리를 구했으나 최근 해고된 상태다.

고향 친구인 스테판 카이에(30)도 올해 초 파리로 직장을 구하러 오면서 비싼 임대료를 절약하고자 둘이 함께 지내게 되었다. 카이에는 법학과 박사준비과정을 수료하고 다시 영화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열정만으로 법학을 포기하고 영화를 공부했어요. 내 학위로 충분히 파리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불어 닥친 경기침체로 모든 게 불안해졌어요. 이력서를 200군데에 보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곳이 없습니다.”

에짐은 “처음 1년간은 한 번도 채용된 적 없는 이들을 위한 무직수당인 RMI 400유로, 주택보조금 200유로로 생활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6개월간 회사생활 경력으로 RMI보다 더 받을 수 있는 실업수당을 신청해 놓은 상태죠.”

반면 카이에는 저녁마다 4시간씩 설문조사 회사인 TNS 소레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ANPE에는 등록하지 않았다. “언론은 실업자가 200만명이라고 하지만 실제 더 많아요.” 이런 상황에 한 달 전부터 고향 친구인 샤샤(31)가 또 직장을 구하러 파리로 올라오면서 이 아파트의 식구가 셋으로 불어났다.

이 세 젊은이는 자동차회사 푸조의 최대 생산라인이 있는 스위스 국경지역 소쇼, 물루즈 지역이 고향이다. “저희 세 사람의 부모님과 카이에 형제 4명 전부 푸조공장에서 일해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 잠정 실업상태에 있어요.” 샤샤의 말이다. 샤샤의 고향과 같은 사례는 많다. 지난달 6일 미국자본의 몰렉스 공장이 철수키로 한 피레네산맥 근처의 소도시 빌뮈르의 경우도 그렇다. 이곳 경제활동인구의 대부분이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공장철수는 이 도시 전체의 재앙이나 다름없다. 전 주민 6000명 중 3000명이 폐업반대 시위에 참가한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이날을 ‘죽은 도시의 날’로 선포하고 시위를 주도한 이는 다름 아닌 빌뮈르 시장이었다.

샤샤는 계속 말했다. “저요? 글쎄요, 파리에는 일자리가 있을 것 같아 올라오긴 했지만….” 카이에가 끼어들었다. “지금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해요. 박물관과 미술관도 매월 무료 개방되는 첫 일요일에 몰아서 방문하고 있어요.”

<파리 | 박지연 통신원>

◇ 독일에서 - 벤츠 판매직원 “주문 50% 급감”

베를린 시내의 약국을 운영하는 안네 헤롤트(63·여)는 경기침체는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시내는 여전히 붐비고 사람들 쇼핑백도 빵빵해요.” 도선사(導船士)인 토비아스 디어베르크(39)도 “수송 물량이 줄어 독일-스칸디나비아 왕복 선박을 30~40%로 인하된 가격에 빌려주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해운업 자체가 침체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동차업체나 금융권은 다르다. 수출에 의존하거나 세계시장과 맞물리려 독일에서 세계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그리고 민감하게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니더작센 주의 소도시에서 벤츠자동차 판매업체 판매원으로 18년간 일해왔던 베안드 나돌니(42)의 말을 들어보자. “신차 판매량은 작년과 같지만, 중고차 구매가 줄어 수지가 나빠졌습니다. 방문 고객이나 전화 문의 고객 모두 50% 선으로 줄어들었어요. 매장을 찾아오는 고객도 25%만이 차를 구입할 뿐이지요”.

자동차 부품 납품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포 2세 윤성현씨(31)는 “쾰른의 포드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벌써 해고될까 걱정하고 있다”며 “우리처럼 공구를 공급하는 업체의 노동자 대부분이 이미 기간제 노동자로 전환되거나 해고한 상태”라고 전했다. 자동차업체가 처한 상황을 묻자 그는 말을 쏟아냈다. “요즘 들어 주문이 30~40%로 줄었어요. 최근 심지어 고객 중에는 창고비용을 아끼려고 이미 받은 제품을 반송한 경우도 있어요. ‘내년에 다시 보내달라’는 뜻이죠”.

경기침체에 따른 판매량 감소 탓에 BMW사는 올해 무려 5500명의 기간제 노동자와 정규직 직원 3600명을 해고했다. 폭스바겐사와 다임러는 성탄절 휴가를 5주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만 앞으로 5만~1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독일 노동부는 2009년 전체 실업자가 13만명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OECD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까지 독일 실업자 수는 7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독일 주식지수 DAX는 지난 12개월간 거의 반토막이 났다. 독일 주립은행 4개는 파산위기를 면하기 위해 정부에 구제 금융을 요청한 상태다. 최근 바이에른 주립은행은 주정부로부터 10억유로의 구제금을 받고, 전체 직원 4분의 1인 5600명을 해고해 투자은행 업무를 완전히 포기했다. 금융위기의 공포는 서서히 독일을 휩싸고 있다.

독일 서비스공공노조(Verdi) 바이에른주 위원장 요세프 팔비조너는 구제금융 조치 및 5600명 해고 대책을 내놓은 주정부를 비난했다. “우리가 가장 우려했던 게 현실이 됐다. 전례 없는 혼란을 일으킨 정치가와 은행 경영진 등 책임자들이 회의실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직원들은 이번 문제의 책임을 떠안도록 강요당한 채 존재 위협을 받고 있다. 구제대책은 모든 직원들에게까지 확대돼야 한다.”

<하네스 모슬러 통신원>

◇ 중남미에서 - 멕시코 제1철강사, 1만여명 실직

지난 10월 말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북쪽 과나화토에서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비공식 모임이 열렸다. 미국발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늘 팽팽한 설전을 벌이던 참석자들이 이날은 보기 드물게 만장일치의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모두 경제학 교과서의 상투적인 주장과 달리 국제적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미국으로 오히려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달러가 받아야 할 벌을 자국 통화가 받고 있는 현실에 분개했다.

현지 언론에 실린 이 일화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멕시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려준다.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지난 8월4일부터 10월23일까지 38.74%나 하락했다. 멕시코 금융시장의 80%를 지배하고 있는 씨티그룹·HSBC 등의 외국계 금융자본은 자산을 매각해 달러를 본국으로 보내느라 환율폭등을 더욱 부채질했다. 결국 멕시코는 미국과 통화스와프(맞교환) 협정을 맺고 나서야 환율시장 동요를 잠시나마 진정시켰다.

그러나 미국발 위기의 여파는 확산되고 있다. 국제파생상품시장에 뛰어들었다 큰 손실을 입은 대표적인 토종 유통업체 ‘코메르시알 메히카나’가 10월 말 채무지불중단을 선언했다. 이달 초 멕시코 제1의 철강회사 ‘알토스 오르노스’는 국제 철강 수요 하락과 신용 경색으로 각종 사업을 줄줄이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1만200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저명한 민간연구기관인 멕시코금융경영연구소(IMEF)는 최근 멕시코에서 이미 경기침체가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11월 멕시코 제조업·비제조업 지수들이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현저히 하락한 것이다. 페데리코 우르키사 연구소장의 발언은 더욱 비관적이다. “문제는 이 침체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 침체의 늪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불과 몇달 전만해도 중남미 대륙은 낙관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2003년부터 올해까지 평균 5%를 넘는 경제성장이 지속됐다. 40년 만에 찾아온 호황이었다.

하지만 경제성장의 우호적인 조건들은 동시에 찾아왔다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말았다. 자원 부국 중남미 국가들에 넉넉한 외화 수입을 안겨주었던 국제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은 끝났고, 낮은 이자율과 충분한 유동성으로 중남미 신흥국에 자금을 융통해주던 국제금융시장도 급속히 얼어붙었다.

미국경제의 일시적 호황으로 급증했던 중남미계 이민자들의 모국 송금액도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민자의 송금액이 석유수출에 이어 외화소득의 두 번째 원천인 멕시코의 충격은 더욱 크다.

브라질의 저명 경제연구기관인 제툴리우 바르가스 재단은 2008년 3·4분기 라틴아메리카의 경제활동 상태를 보여주는 경기지수가 1997년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국제기구들도 비관적인 분석에 합세했다. 중남미 대륙이 올해는 4.5% 성장으로 선방하겠지만 내년에는 3%대 혹은 그 이하로 하락하고 특히 미국경제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멕시코는 0.4~1%에 불과할 것이란 분석이다.

경기침체는 이 대륙이 최근 수년간 축적해온 사회분야의 성과를 수포로 돌릴지 모른다. 중남미 대륙이 최근 성장기 동안 이룩한 9%(44%→35%)의 빈곤율 감소의 성과도 무의미해질 상황에 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식료품 가격 인상까지 겹쳐 빈민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질 것이다.

<박정훈/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입력 : 2008-12-07 17:38:12수정 : 2008-12-07 17: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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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자본시장 지나친 팽창…투기거래 맞물려 재앙

이번 세계 금융위기는 금융시장에서의 투기적 거래와 신용의 과잉팽창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이 금융위기가 더욱 발달된 자본시장과 고도화된 금융세계화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1929년 대공황이나 80년대 이후의 여러 금융위기들은 모두 금융시장에서의 투기적 행동이나 과도한 신용팽창에 기초해 발생했다. 그리고 그러한 금융행동은 대부분 자유방임적 경제사조에 힘입어 증대될 수 있었다. 1920년 대공황 직전까지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융시장은 자유방임의 사고 하에서 아무런 규제나 감독도 없이 시장자율에 따라 자유롭게 작동하고 있었다.

또한 80년대 이후에도 세계 각국에서 다시 금융자유화가 전개되면서 금융활동이 자유와 시장자율에 따라 수행되었다. 그러나 자유방임과 시장자율 하에서의 금융활동은 1929년 미국에서나 80년대 이후 남미와 동아시아에서와 같이 투기적 행동과 과도한 신용팽창을 가져와 결국은 금융시장을 마비시키고 금융기관을 파산시키는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이번 금융위기도 신자유주의적 경제사조 속에서 시장 자율과 자유경쟁만을 강조한 자본시장 발전과 금융세계화 진전이 결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이에 기초한 자산유동화 증권과 같은 고위험의 투기적 금융거래를 과도하게 팽창하도록 만든 데서 발생했다. 따라서 이번 금융위기도 이전의 금융위기와 유사하게 기본적으로는 투기적 거래와 신용의 과잉 팽창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는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가장 선진화된 금융기법과 가장 발달된 금융시스템을 갖는 미국에서 위기가 시작되었다는 점, 은행의 대출채권 부실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유동화증권 등 유가증권 부실에 위기의 핵심이 있다는 점, 그리고 위기가 급속히 세계적 성격을 띠면서 세계화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1929년 대공황의 경우 금융활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식시장에 대한 규율 미비, 중앙은행의 잘못된 긴축정책, 예금보험제도의 결여 등이 금융위기를 발생시키고 또 확대시켰다. 80년대 이후 남미나 동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위험관리 기법과 효율적인 감독체제의 부족 등으로 인해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막지 못한 결과 금융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번 금융위기는 이전처럼 금융시장에 대한 무지나 금융시스템의 낙후, 또는 위험관리 기법과 감독체제의 미비 때문에 투기적 거래나 과잉팽창을 막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금융부문 전반의 발달이 투기적 거래와 과잉팽창을 부추긴 것이다. MBS, CDO 발행과 같은 유동화 기법의 발전과 CDS와 같은 보험상품의 발전, 그리고 자본시장을 통한 수시의 시장평가가 스스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과잉과 같은 투기와 팽창을 낳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본시장의 유가증권 부실을 초래한 것이다.

또한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달리 이번 금융위기는 한 국가나 특정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급속히 전 세계로 확산되었는데 이것 또한 고도화된 금융세계화의 산물이다. 1929년 대공황 때에도 공황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기는 했지만, 그때는 미국의 긴축정책과 국제적 금본위제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의 확산은 금융세계화 속에서 전 세계의 자본시장이 연계되고 통합된 결과이다.

이와 같은 이번 금융위기의 특성은 선진 금융기법이나 효율적인 감독체제라 할지라도 자유방임과 시장경쟁 속에서는 금융의 본성인 투기적 거래와 금융팽창을 억제할 수 없고, 금융위기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자유방임과 시장경쟁 대신 금융안정과 경제발전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는 질서와 공존에 바탕을 둔 새로운 경제질서가 필요하다.

<조복현 | 한밭대 경제학과교수>

입력 : 2008-12-07 17:34:05수정 : 2008-12-07 17: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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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세계를 뒤흔든 9일’

지난 9월12일 금요일 오후 6시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회의실.

씨티그룹의 비크람 팬딧,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디먼,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메릴린치의 존 테인 등 월스트리트의 내로라하는 최고경영자(CEO) 30여명이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위원회(FRB) 의장,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준비은행장 등 최고위급 금융당국자들도 참석했다.

가이트너 은행장이 입을 열었다. “정부는 구제금융을 할 의사가 없습니다. 내일 아침 다시 올 때 뭔가(공동 대응 방안)를 준비해 주십시오.” 위기에 빠진 리먼 브라더스와 메릴린치에 대해 한 말이다. 두 회사는 이제 백척간두에 서게 되었다. 누가 벼랑 끝에 서 있는 이 회사를 인수할 것인가. 폴슨도 “모두가 리먼 브라더스에 노출돼 있다”면서 금융회사가 자구책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이날 두 회사에 대한 구제금융 불가 선언은 리먼의 몰락을 재촉하는 불씨가 되었다. 그 불씨는 조만간 리먼을 삼키고 전세계 금융시장을 불태우게 될 것이다. CEO들은 오후 8시가 조금 지나 무거운 발검음을 돌렸다. 이로써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긴박한 주말’이 시작되었다.
 
9월13일 오전 9시 같은 회의실.

CEO들이 다시 모였다. 리먼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 미 최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처리도 안건으로 올랐다. 모건스탠리의 존 맥 CEO는 답답한 나머지 아무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 끝은 어디입니까.” 리먼 인수에 관심이 있었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정오가 다 될 때 쯤 인수 포기 결정을 내렸다.
 
9월14일 같은 회의실.

리먼 인수가 가능한 곳으로 영국의 바클레이즈만 남았다. 그러나 미 정부가 외국 은행에 돈을 대줄 리 없다고 판단한, 바클레이즈는 이날 오후 리먼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폴슨과 가이트너, 콕스는 남은 10여명의 CEO들에게도 “리먼 구제에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의 터줏대감인 리먼의 리처드 풀드 CEO는 백방으로 뛰었지만, 결국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9월15일 오전 1시 뉴욕의 리먼 본사.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리먼은 파산 보호 신청을 한다는 성명을 냈다. 158년 역사의 투자은행은 이렇게 사라졌다. 구제금융 불가 통보 30시간 만이다. 리먼의 몰락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로 잠재하던 세계 금융위기에 불을 댕겼다. 미국·유럽·아시아·중남미 증시가 즉각 반응했다. 뉴욕증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최대 폭락을 기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성명을 냈다. “유로 금융시장 안정 유지를 위해 노력할 준비가 됐습니다.” 그리고 300억유로를 투입했다. 영국의 잉글랜드은행(BOE)은 50억파운드를 쏟아부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성명을 냈다. “미 금융시작의 혼란은 미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입니다.”
 
 
9월16일 일본, 유럽, 미국

일본은행은 1조5000억엔을 단기 금융시장에 긴급 수혈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는 “적절한 금융시장 조절 등을 통한 원활한 자금결제와 금융시장 안정 확보에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FRB도 AIG에 8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결정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금융시장 정상화 워킹그룹을 긴급 소집했다.
 
9월 18~20일

미국 등 6개 중앙은행은 18일 긴급 유동성 지원공조에 합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18, 19, 20일 연속 대국민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하며 7000억달러 구제금융안을 발표했지만, 불길은 이미 대륙을 넘은 뒤였다.
 
그후.

금융강국이라는 아이슬란드에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했다. 게이르 하르데 총리는 10월 7일 국가부도 가능성을 경고했다. 8일 선진 주요국 10개 중앙은행은 이자 인하를 발표했고, 10일에는 G7이 고강도 금융안정대책을 발표했다. 10월 말 아이슬란드·파키스탄·우크라이나·헝가리·벨로루시 5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월스트리트에서 발화한 불씨는 이제 전세계를 태우고 있다. 신흥경제국과 개발도상국, 동유럽, 중동, 중남미를 가리지 않는다. 세계 경제 성장동력인 중국의 성장률은 7년 만에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아르헨티나는 민간연금을 국유화하고, 브라질과 멕시코의 기업 가치는 50% 하락하고 칠레는 통화가치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아프리카는 선진국의 원조 감소로 허덕이고 있다.
 

<조찬제기자 helpcho65@kyunghyang.com>

입력 : 2008-12-07 17:35:12수정 : 2008-12-07 17: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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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순박한 북극마을 홀린 달콤한 고수익의 꾀임

ㆍ노르웨이 나르비크에 무슨일이

1만8000여명이 사는 노르웨이의 작은 항구도시 나르비크. 나르비크는 지난 9월8일 노르웨이 최대은행 DnB에 지고 있는 빚 5200만 크로네(현재 환율로 약 107억원)를 갚지 못하겠다고 발표했다. DnB은행은 즉각 반발하며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맞섰다.

북극권(북극 주변의 북위 66도 33분 지점을 빙 둘러 이은 선. 이 지점에선 하지에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고, 동지에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음)보다 200여㎞ 북쪽에 자리잡고 있어 겨울이면 신비로운 오로라(북극광)를 볼 수 있는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마을 사람들이 지난해부터 경험하고 있는 일들은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품과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금융기관, 고수익이라는 달콤한 꼬임에 넘어간 순박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블랙 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이 사태 역시 겨울철 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나르비크가 온화한 기후의 전혀 다른 먼 곳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연결된 결과였다.

나르비크는 지난 2001년 주요 수입원인 수력발전소에서 향후 들어올 수익금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빌렸다. 노르웨이 테라증권이 소개한 펀드에 투자하기 위해서였다. 투자금 가운데는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기 위해 따로 떼어놓은 돈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이 펀드는 미국의 거대 금융회사인 씨티은행이 고안한 것이라고 했다. 나르비크가 투자한 금액은 총 5200만 크로네. 나르비크 1년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해 여름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따금씩 1~2%의 수익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테라증권 측에서 투자금의 55%나 손실됐다고 통지한 것이다.

여러 지자체에서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자 진상조사에 나섰던 노르웨이 금융당국 역시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테라증권이 안전하다고 다짐했던 상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반으로 파생된 부채담보부증권(CDO)이었다. 구조 자체가 극도로 복잡하고 위험성도 매우 높은 상품이었다. 더구나 상품설명서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옵션들이 부대조건으로 달려 있어 최악의 경우 투자한 만큼 돈을 더 물어줘야 하는 구조였다.

조사 결과 테라증권이 각 도시에 상품설명서를 보내면서 씨티은행의 상품설명서가 기술한 위험성을 고의적으로 뺀 사실이 밝혀졌고, 테라증권은 지난해 11월 영업허가가 취소됐다. 테라증권은 다음날 파산했다.

테라증권의 파산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씨티은행은 자신들에겐 책임이 없다며 일찌감치 발을 뺐고, 노르웨이 정부도 구제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미래’를 담보로 이뤄진 투자가 한순간에 휴지로 변한 대신 은행에서 빌린 돈은 고스란히 남았다.

외신들은 이번 사태가 시 예산에 악영향을 미쳐 공공서비스 위축을 가져오고 있다고 전한다. 나르비크의 시의원인 토르게이르 트랠달은 지난 6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소방서, 의료, 학교, 노인복지, 청소년 클럽 등 문화 및 복지예산 축소가 불가피하다”면서 “사람들은 미국에서 벌어진 위기가 어떻게 이런 결과를 가져왔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화를 입은 소도시는 나르비크뿐 아니다. 하트피엘달·라나·헴네스 등 8곳에 이른다. 이 소도시들은 ‘테라스캔들’로 명명된 이번 사태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돈을 빌려준 DnB은행에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교수는 “노르웨이에선 지자체가 빌린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은행이 이를 알고도 돈을 빌려줬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만약 은행이 소송에서 이길 경우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중기자>


 

입력 : 2008-12-14 18:19:53수정 : 2008-12-14 18: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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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투자 한푼 안한 우리 서민들은 무슨 죄인가”

월가의 위험한 금융 게임이 펼친 숫자 놀음은 금융 자유화에 노출된 사람이면 누구나 예외없이 공격을 했다. 이 게임에 참여한 사람이건 아니건, 금융 자유화를 원했든 아니든, 상관없다. 펀드·주식에 투자하지 않은 서민들의 삶도 흔들 만큼 돈장난의 파급효과는 깊고, 치밀하고 집요하다.

“처음에는 TV에서 미국 금융위기 이야기가 나올 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했어요. 그런 얘기는 그냥 뉴스일 뿐이고, 배운 것 없이 그저 몸으로 때워서 먹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은 신경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 일용직 노동자 정영태씨

서울 북창동의 한 인력소개소에서 지난 11일 만난 정영태씨(가명·52)는 “올해 같은 때는 없었다”고 푸념했다. 35년째 중국음식점 일용직으로 생계를 잇는 그는 이틀째 일을 못했다. 정씨는 “원래 연말연시에는 음식점이 호황이지만 올해는 10월 들어 경기가 죽더니 살아날 기미가 없다”며 “지난해만 해도 일주일 내내 일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한 주에 2~3일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하루 종일 일거리를 기다렸지만 소개소에서 일손을 보내달라는 전화 한통 받지 못했다. 정씨의 하루벌이는 7만원 남짓. 봉제공장 직원인 그의 부인은 월 120만원 정도 벌지만, 그걸로 살기 빠듯해서 고3 수험생 딸까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외환위기 때는 오히려 지금보다 나았어요. 다들 명퇴당하고 먹는 장사에 나섰을 정도로 이 나라는 요식업이 안된 적이 없었는데.”

인력소개소 관계자는 “서울 어디를 가도 새벽 인력시장마다 수백명이 몰려 들지만 일거리 찾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통계청의 ‘11월 고용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임시직 10만3000개, 일용직 5만6000개의 일자리가 줄었다. 건설 부문 일용직들은 일당이 깎이는 경우도 있다. 경기 부천시의 한 아파트 시공사는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40여명의 현장 노동자 일당을 최고 1만원씩 깎았다.

■ 현대차 하청 노동자 원문숙씨

현대차 아산공장의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 원문숙씨(31·여)는 3년간 행정적, 법적 투쟁 끝에 사측의 복직 결정을 받아냈다. 2005년 노조 활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뒤 원씨는 부모와 아들 등 4가족의 생계를 어머니(55)에게 의존했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몸져 누워 남편 대신 보험 일을 시작한 것이다. 월수입 100여만원. 그것이 원씨 가족의 유일한 수입이었다.

이런 사정이라 복직 소식이 너무 반가웠지만, 회사에서 아직 연락이 없다. 원씨는 현대차가 공장별 감산에 들어가 당장 일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사측을 통해 들었다고 한다. 원씨는 “최근 불경기 때문에 보험해약 사례가 늘어 어머니 벌이도 한창 때(170만원)에 못미친다”면서 “초등 3년생 아들은 형편을 잘 아는지 뭘 사달라고 조르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가 부른 한파는 투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삶을 산 원씨의 3학년짜리 아들에게조차 장난감과 군것질을 포기토록 강요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달부터 잔업을 없앴고, 쌍용차는 지난달부터 순환휴직중이다. GM대우차는 이달 들어 공장별로 최장 1개월 조업중단을 진행중이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자동차 조립라인은 매일 2시간 잔업에 주말 1일 특근을 꽉 채워야 월급 150만원 정도 손에 쥐지만, 감산하면 100만원선으로 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박동 연구위원은 “정부는 청년실업률을 6%대로 집계하지만 순수 취업률은 42%라 청년 100만명이 실업자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금융 위기로 국내 미국 자본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돈이 궁한 국내 은행들이 기업을 상대로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면서 “그러면 중소기업들은 도산하지 않을 수 없고, 당연히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관순·송윤경기자>

입력 : 2008-12-14 18:20:14수정 : 2008-12-14 1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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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나라 망하지 않는 한 원금 안까먹는다더니”

ㆍ1부 - 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투자자와 비투자자

고수익의 유혹은 달콤했다. 은행 직원들은 상냥했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들은 “요즘 펀드 하나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바보”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은 까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기저축과 다름없다던 그들의 말을 믿고 묻어뒀던 목돈은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피 같은 돈이 사라져 버린 공간엔 두세배로 커져버린 삶의 무게가 자리잡았다.

■ 부부 생이별한 오원금씨(가명·56)

오씨는 지난 9월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아내를 미국으로 떠나보냈다. 아내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처제의 갈비집에 허드렛일을 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선 것이다. 몇년째 좌골신경통과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도 2시간 뒤 이란 건설현장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80년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아부다비 방파제 토목공사를 시작으로 28년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건설현장을 들락거렸던 오씨지만 이처럼 중동행 비행기를 다시 타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오씨는 2005년 12월 퇴직금으로 생각하고 모아뒀던 1억원을 들고 우리은행을 찾아갔다. 우리은행이 ‘우리파워인컴’ 펀드를 대대적으로 광고할 때였다. 그는 5000만원씩 쪼개 자신과 아내 명의로 우리파워인컴에 가입했다. 한달 뒤 나온 통장에는 ‘펀드’ ‘파생상품’ 같은 단어가 찍혀 있었다. 평생 주식이나 펀드투자를 해본 적이 없던 오씨가 이 단어의 뜻을 묻자 은행 직원은 “그냥 상품 명칭일 뿐이고 3개월마다 고정이자가 지급되며, 무디스가 평가한 신용등급 AAA 채권에 투자하므로 아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단다. 이 직원도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절대 안전한 정기예금과 같은 상품”이라고 장담했다. 그 뒤로 3개월마다 원금의 6.4%에 해당하는 돈이 ‘예금이자’라며 통장에 찍혀 나왔다. 당시 시중은행 정기저축 예금 이자보다 1%포인트가량 높은 수준이었다.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는 아들(30)과 딸(25)이 걱정이긴 했지만 오씨에겐 은행에서 차곡차곡 몸을 불려가고 있는 1억원이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 돈은 오씨 부부의 노후자금이자 자녀들의 결혼자금이기도 했다.

지난 8월말 은행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은행 부지점장은 오씨 부부가 묻어뒀던 원금의 평가액이 마이너스 81%로 깎였다고 했다. 1억원이 2년9개월 만에 19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는 얘기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놀란 오씨가 은행으로 달려갔지만 황당한 이야기는 계속됐다. 예금보다 더 안전하다는 말만 믿고 투자했던 돈이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됐던 것이다. 3개월마다 통장에 찍혔던 예금이자는 원금을 조금씩 쪼개 지급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은행에 돈을 맡길 당시엔 펀드라는 말이 뭔지도 몰랐고, 파생상품이란 말은 더더욱 몰랐어요. 그런데 은행은 가입 때도 우리를 속였고, 손실도 제때 알리지 않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았어요.”

■ 콩나물값 깎아 모은 돈이 허공으로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40대 주부 김은희씨(가명)는 요즘 남편과 자식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은행에서 펀드에 들었다. 아파트를 사면서 대출받아 남은 돈 3000만원과 그간 푼푼이 모아뒀던 여윳돈 2200만원이었다. 은행에 갈 때마다 직원은 “아이고 사모님 이 돈을 왜 그냥 묵혀두나요”라며 투자를 권유했다. 깨알같은 글씨가 적힌 상품설명서를 받기는 했지만 그냥 일반적인 펀드인 줄로만 알았다.

지난 10월 3000만원짜리 펀드를 강제 환매당했다. 김씨의 손엔 300만원이 쥐여졌다. 김씨가 가입한 펀드는 1년 만기 선물환 옵션이 걸려 있었지만 김씨는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김씨가 환손실분을 추가로 내지 않자 은행 측이 강제로 환매하고 상품 계약을 종결시켜 버렸다. 그나마 2200만원짜리 펀드는 200만원만 깎였다. 펀드 가입을 권했던 은행직원은 이미 다른 지점으로 옮겨 자취를 감췄다.

여름부터 장사가 안돼 수입이 거의 없는 김씨의 남편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냥 은행에 예금으로 넣어둔 줄로만 안다. 매달 주택담보대출 이자로만 150만원씩 나가고 있고, 재수생인 아들의 학원비로도 100만원씩 나가고 있다. 당장 생계비가 걱정이다. 김씨의 하소연을 들은 친정 언니가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작년에 아파트를 사면서 이미 3억원을 대출 받은 터라 돈을 또 빌리기가 겁이 난다.

김씨는 “대형마트에 가면 100~200원씩 깎아주는 쿠폰을 잔뜩 들고 갈 때 눈물이 왈칵 났다”면서 “애들 결혼자금, 우리 부부 노후자금이었는데 남편에게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끔은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픈 충동이 생긴다”며 울먹거렸다.

<김재중·유희진기자>

입력 : 2008-12-14 18:18:36수정 : 2008-12-14 18: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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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태평양 건너 투자금과 빚… ‘금융 블랙홀’서 만나다

ㆍ1부- 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안산의 고대영씨와 LA의 루세로

경기 안산시 성포동의 한 도로변. 고대영씨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은 한적하고 조용한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미미, 앉아! 앉아!”
 정적을 깨는 다급한 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 주인을 찾으며 사납게 짖어대는 강아지 한 마리를 잠재우기 위해 고대영씨(40)는 끙끙대고 있었다. 10분간의 실랑이 끝에 겨우 강아지를 치료하고 나서야 고씨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테크요? 그저 가진 돈을 안정적으로 꾸려가고 싶었습니다. 펀드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5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병원 분점도 낼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업 확장에 부담을 느꼈다. 욕심 부리다가 화를 부를까 꺼려졌다.

 고씨의 병원에서 불과 몇 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우리은행이 있었다. 평소 거래가 있던 은행은 고씨에게 여유 자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빈번하게 그에게 ‘우리파워인컴’ 펀드에 가입할 것을 권했다.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대한민국이 부도날 확률과 비슷하다고 하니까 솔깃했죠. 예금과 같이 한달에 한번 꼬박 꼬박 이자도 나온다고 했어요. 제가 자꾸 의심하면서 이것 저것 캐물으니까 은행에서는 쉽게 설명하겠다며 '은행 예금이나 다름없다'고 설명을 하더군요.”

 그가 우리파워인컴의 가입 서류에 사인할 때까지 그는 은행원으로부터 '펀드'란 말은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


 # 2005년 11월18일 고씨, 세계 금융 게임에 접속
 ‘은행 예금’이라는 말은 결정적이었다. 고씨는 가입 서류를 작성한 뒤 가지고 있던 돈 4500만원을 ‘우리파워인컴’ 펀드에 넣었다. 2005년 11월18일. 가입 신청서 사인으로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계 금융의 위험한 게임에 편입된 것이다. 그가 이 게임에 접속한 곳은 안산 성포동의 우리은행 지점.
 “왜 나 같은 사람이 미국의 모기지 업체가 망한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합니까?” 그가 펀드에 가입한 후 3년.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촘촘하게 짜여진 세계 금융의 네트워크와 연결되었고, 그 촉수는 태평양 건너 미국의 한 서민과도 닿아 있었다.
 
 # 2004년 8월 루세로, 집을 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살던 루세로는 동네에 있는 주택담보대출 은행을 통해 담보 맡긴 집값의 100%를 대출받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루세로에게 사려는 집의 가치를 전액 빌려주다니. 그러나 은행은 자신 있었다.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기 때문에 빚진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은행이 루세로 같은 사람들에게 돈을 대출해준 후 “루세로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차용증서를 바탕으로 대출 채권을 만들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이 채권을 사갔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미국 정부가 보증을 서는 준정부기관이다. 은행으로서는 안정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은행은 두 국책 모기지기관에 채권을 팔고나면 다시 자금이 생겼다. 그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신규 대출을 해줬다. 예상대로 집값이 올랐고, 오른 만큼 대출 채권의 가격도 올랐다.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은 계속됐다.
 
 # 루세로의 부채, 국책 모기지기관으로 유입
 루세로의 빚진 돈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도 유용하게 쓰였다. 두 모기지기관은 은행과 모기지 대출업체들로부터 산 주택담보대출 채권 자산을 담보로 잡아 이것을 주식시장에서 팔 수 있도록 증권으로 만들었다. 루세로처럼 집을 사기 위해 대출받은 것만을 모아 담보로 잡은 후 발행한 증권이 ‘거주용 담보부증권(RMBS)’이다. 루세로가 돈을 빌려간 사실을 일종의 무형의 재산적 가치로 평가해 그 재산에 대한 권리를 증서로 표시한 것이다. 프레디맥과 패니메이가 자금을 융통하는 방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RMBS를 가지고 또 한번의 게임판을 벌인다. 이번엔 자신들이 발행한 증서 RMBS를 담보로 잡고 또 다시 증권을 발행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채담보부증권(CDO)이다. 빚을 채권으로 만들고, 그 채권을 주식시장 거래가 가능한 증권으로 만들고, 그 증권을 담보로 또다른 증권을 만드는 빚잔치의 릴레이였다.

 CDO를 만들 때 패니메이는 고민을 한다. 돈을 못갚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대출로 증권을 만들었기 때문에 제 값을 못받을 것에 대한 우려였다. 그래서 이들은 마술을 부린다. 안전한 자산과 다소 위험성이 있는 자산, 매우 위험한 자산을 약 7 대 2 대 1 비율로 섞어 하나의 증권을 만든 것이다. 이 증권에는 루세로와 같은 개인뿐만 아니라 탄탄한 기업들의 담보 대출까지 다 섞여 들어갔다.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던 불량 채권들은 우량 채권들 틈에 숨어 모습을 감췄다. CDO는 여러 새들의 화려한 깃털들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춘 까마귀의 모습이었다. 여기에 'MBIA'나 '암박'과 같은 채권보증업체(모노라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패니메이가 지급 능력이 없을 때 그것을 대신 갚아주는 보증 회사다. 이렇게 보증업체들이 보증까지 서면 패니메이가 발행한 증권은 신용등급이 올라갔다.

 이렇게 루세로가 돈을 빌려갔다는 그 무형의 가치는 RMBS로 멋지게 그 형태를 바꾸고, 나아가 CDO로 섞여 우량 기업들의 대출 속으로 숨었다. 그리고 좋은 등급을 받았다. 루세로의 무리하게 빌린 돈의 실체는 이렇게 잠시 모두의 머리 속에서 잊혀졌다.

 # 루세로의 부채, 세계 금융 엘리트들의 손에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만든 RMBS와 CDO상품의 1등 구매자였다. 세계 금융 천재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이것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사들인 파생상품 이외에도 이렇게 채권을 증권으로 만드는 유동화회사로부터 파생상품을 사들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루세로의 빚의 존재를 더 확실히 감추기 위해 다른 상품들과 섞은 후에 다시 한 덩어리로 만들어 쪼갰다. 루세로가 대출을 받은 은행에서부터 월가의 투자은행에 도달하기까지 '돈을 빌렸다는 사실'은 이렇게 무한증식하는 과정을 거쳐 '파생상품'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재탄생했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들을 팔기 위해 여러 수법을 동원한다. 그중의 하나가 이름만 있는 종이회사를 세워 자산 일부를 이 종이회사에 떠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별도 회사를 세워 거래를 하면 모(母)회사의 대차대조표에는 표시되지 않는 장외거래가 가능하다. 설사 이 종이회사를 통한 거래가 부도가 나도 모회사는 안전하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부실 위험이 높은 ‘위험 상품’을 취급할 때 주로 이런 종이회사를 만드는 방법을 이용했다.

 월가의 한 투자은행은 ‘CEDO Plc’라는 종이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발행한 주택담보대출 관련 합성 CDO의 한 종류인 자산부채담보부증권(CEDO)을 발행한다. CEDO는 채권의 신용위험에 따라서만 수익률이 결정되는 CDO와 달리 신용도에 주가지수 영향까지 받는다. 주가지수를 수익률과 연동한 주가연계증권(ELS)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상장된 주식이 폭락하면 꼼짝 없이 수익률도 하락한다. 원금은 당연히 보장되지 않는다. 루세로의 빚은 이렇게 금융 연금술사들에 의해 CEDO라는 이름으로 또 한번 위장된다.
 
 # 2005년 11월 안산의 고대영씨와 LA의 루세로 만나다
 LA에 사는 루세로의 빚이 CEDO로 변모되기까지의 과정은 안산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고대영씨와는 전혀 무관해 보였다. 그러나 고씨의 돈도 결국 CEDO로 흘러들어갔다.

 우리은행을 통해 들어간 고씨의 투자금은 우리은행의 자회사인 우리CS자산운용이 자금 운용을 맡았다. 그리고 우리CS자산운용은 투자 경험이 많은 크레디트 스위스 증권사의 자회사인 투자은행 CDFB에 이 자금의 운용을 위탁한다. CDFB는 우리파워인컴에 투자된 돈을 모아 월가의 파생상품인 CEDO에 70%를 투자했다. 안산에서 고씨가 힘들게 번 돈과 미국에서 루세로가 빌린 집의 가치는 이렇게 몇 단계 건너, 태평양을 넘어 스위스계 증권사의 손을 통해 만났다.

 2005년 11월 초 판매를 시작한 우리파워인컴 펀드는 순식간에 1100여억원의 투자금이 몰리면서 판매가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우리은행 직원들은 안정적으로 자산을 운용하고 싶어하는 은퇴자나 노년층에게 펀드 가입을 권유했다. 하지만 펀드 설정 3년이 지난 2008년 12월 기준 이 펀드는 마이너스 83%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원금 손실이 없는 정기 예금에 비유하며 마치 예금처럼 속인 결과였다.
 
 # 2007년 2월, 루세로 대출금 갚기 허덕
 2007년 LA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로 집을 샀던 루세로는 집값이 40% 이상 하락하면서 빌린 돈을 갚는 데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삼촌에게 돈을 빌려 근근이 대출금을 갚아 나갔다. 루세로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같은 동네 사람들은 이미 대출 상환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하고 집을 빼앗겼다. 미국 전역에서 집을 가압류당한 사람이 늘어났다. 이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자금난에 처한 소규모 은행부터 파산하기 시작했다. 2007년 3월에는 주택담보대출 업계 2위였던 '뉴센추리파이낸셜'이 계속된 연체로 자금을 융통하지 못해 결국 파산선언을 했다.
 
 # 루세로 집 가치 하락, 패니메이 넘어 월가 공격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약 1년여의 시간을 끌며 서서히 무너져갔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집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전역에서 집을 가압류당한 사람이 100만명이 넘어가자 모기지 대출 관련 업체들은 가속도를 내며 빠르게 연쇄 부도를 일으켰다.

 최초 주택담보 대출을 담보로 했던 RMBS, CDO는 다른 파생상품으로 둔갑해 세계 곳곳의 금융기관으로 팔렸다. 이 파생상품의 줄기를 타고 미국 전역은 그리고 전 세계의 금융 기관들은 거미줄처럼 엮이고 또 엮였다. 동반 추락이 불가피했다. 투자은행도 개인들의 가압류 사태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갔다.

 CDO에 숨어 없는 것처럼 취급되었던 루세로의 빚은 루세로의 집값이 40% 이상 하락한 순간부터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감쪽같이 숨겨주었던 CDO부터 공격했다. 루세로의 빚이 편입된 CDO가 집값 하락으로 부실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그 상품을 만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망가뜨리고 나아가 월가의 투자은행들도 위협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파생상품을 만들었던 투자은행이 나가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투자자들은 그때서야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을 실감하고 자기 돈을 다 빼기 시작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도 예외가 아니었다.

투자자들이 프레디맥과 패니메이의 RMBS에 대해 한꺼번에 지급 요청을 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두 모기지업체는 결국 2008년 7월 유동성 위기 사태에 직면한다. 이들이 RMBS 보증액수에 물려있던 금액은 무려 5조달러. 이것이 터지면 초우량 신용등급을 자랑하는 미국의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선택의 여지 없이 2000억달러를 투입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지분을 국유화한다. 그렇게 해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살아났지만,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두 회사가 발행한 파생상품의 안정성을 믿고 전 세계 금융회사가 대량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CS자산운용의 우리파워인컴펀드는 그 수많은 투자자 중 하나였다.
 
 # 루세로는 집 포기, 고대영씨는 펀드 가입 해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패니메이는 2008년 8월18일 기준으로 무려 주가가 마이너스 81.48포인트를 기록하고 프레디맥은 마이너스 90.62포인트인 5.9로 폭락한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가압류당한 루세로의 힘이었다. 제2, 제3의 루세로가 계속 나타난 결과였다. 우리은행이 집중 투자한 CEDO는 주가와 움직임을 같이 하는 ELS형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수익률은 폭락했다.

 우리은행이 수선스럽게 홍보하던 CEDO A3등급도 2007년 12월24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결과 신용 등급 BBB3로 내려갔다. CEDO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아시아 등에 상장된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에도 투자됐다. 그러나 분산 효과는 거의 없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퍼지며 동조화 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유럽 역시 미국과 약간의 시간차를 보였을 뿐 미국처럼 모기지 부실이 급속도로 드러났다. 파생상품이 전 세계로 뻗어나갔듯 위험도 전 세계를 넘나들었다.

 이때 엄청난 하락률을 견디지 못한 우리은행은 고대영씨에게 펀드가 마이너스 45% 수익률을 내 원금이 전부 사라질 수도 있으니 펀드를 중도 해지할지 결정해 달라고 통보한다. 결국 그는 4500만원에서 남은 2000만원이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펀드 가입을 해지한다.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던 중산층 고대영씨는 LA의 루세로와 서로 존재도 몰랐지만, 금융 세계화의 시스템 안에서 함께 만났고 휩쓸렸다. 인터넷을 통해 뉴욕에 앉아 전 세계 금융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금융자본의 수도 월가의 견제받지 않은 탐욕은 경기도 조용한 곳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던 이와 LA 외곽에서 우편 포장 일을 하던 이를 연결하고, 그렇게 연결된 수 많은 사람을 동시에 불행으로 인도할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입력 : 2008-12-14 18:16:03수정 : 2008-12-14 18: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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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투자의 지렛대’가 ‘파산의 지렛대’로

ㆍ금융위기 주요 원인 - 레버리지(차입) 효과

금융에 도입된 지렛대 원리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적당한 지렛대만 있으면 지구라도 들어 올리겠다”고 했다. 작은 힘을 큰 힘으로 바꾸는 막대 장치(지렛대, lever)는 고대 이집트에서 거대한 돌을 옮겨 피라미드를 쌓게 했다. 지렛대의 원리는 경제나 금융에서도 관철된다.

어떤 사람이 100만원으로 주식을 샀다고 하자. 한 달 후 주가가 20% 상승해 보유한 주식을 팔아 현금 120만원을 얻었다면, 투자수익률은 20%가 된다. 만약 이 사람이 자신의 돈 100만원에 더해 은행으로부터 400만원을 연리 12%의 금리로 빌린 뒤 총 500만원으로 같은 주식에 투자를 했다면? 한 달 후 주식을 처분하면 600만원의 현금이 들어온다. 은행에서 빌린 돈 400만원과 한 달 동안의 이자 4만원을 갚고 나면 수중에 196만원이 남는다. 즉 투자수익률이 96%로 올라간다. 경제학자들은 이처럼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린 돈을 지렛대 삼아 자기자본의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것을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라고 부르며, 자기자본 대비 총투자금액을 ‘레버리지 비율’이라고 정의한다.


차입의 이익은 가격 상승 때만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레버리지가 이익을 크게 늘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투자한 자산의 가격이 상승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레버리지에는 손실을 키울 위험도 수반한다. 주가가 20% 떨어지는 상황을 상정해 보자. 자기 돈 100만원만으로 투자를 할 경우에는 원금이 80만원으로 줄어 투자수익률은 마이너스 20%가 되고, 20만원만 손해를 본다. 그러나 레버리지 비율이 5일 때에는 손해가 훨씬 커진다. 총투자금 500만원이 400만원으로 줄어들고, 은행에 원리금 404만원을 갚기 위해서는 투자원금을 모두 날리고도 4만원을 더 가져와야 한다.

전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미국발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들로 금융사들의 탐욕, 감독기구의 무능, 지나치게 복잡하고 불투명한 신용파생상품, 금융사들의 도박행위를 부추긴 증권화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전모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레버리지에 주목해야 한다.


차입기계로 변한 월가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유례없는 강세장이 연출됐고, 금융사들도 고수익을 누렸다. 하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실물경제가 취약해졌다. 그럼에도 미국의 투자은행은 오히려 CDO와 CDS를 새 주력상품으로 삼아 사업 확장을 벌였다. 이들은 해당 상품의 중개를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 CDO와 CDS를 사들여 자신의 고유계정에 보유하는 한편 수수료 수입 이외에 투자 수입까지 노리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들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길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차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부채기계’가 되었다.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400억달러의 자기자본을 종잣돈 삼아 자산을 1조1000억달러까지 부풀렸고, 차입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는 300억달러의 자기자본으로 1조달러의 자산을 만들어냈다. 투자은행들의 레버리지 비율이 30~40으로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경기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레버리지의 자기강화적 속성 때문이었다. 투자은행들이 보유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담보로 잡힌 자산과 같은 종류의 증권들을 추가로 매입하게 되면, 이들 증권의 가격은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러면 가격이 올라간 만큼 그 가치가 커진 보유 자산을 담보로 다시 차입을 해 더 많은 CDO와 CDS를 매입해 수익을 더욱 키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거품은 부풀어 올랐고, 더 많은 CDO와 CDS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음악은 언젠가 멈춘다

한동안은 모두가 좋았다. 사람들은 목돈 없이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었고 건설회사는 주택판매를 늘릴 수 있었다. 또 여러 금융기관들은 저금리 시대임에도 높은 수익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모두가 증권화와 레버리지의 춤판에 동참한 셈이다. 문제는 음악이 언젠가는 멈춘다는 데 있었다. 일단 음악이 멈추면 과도한 신용을 낳았던 바로 그 메커니즘이 불어난 신용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정반대의 과정, 곧 역레버리지(deleveraging) 과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수요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을 때도 있다. 특히 시장에 커다란 충격이 가해진 경우가 그렇다. 사람들이 가격 하락을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란 신호로 받아들인다면 가격 하락은 매수를 늘리는 대신, 오히려 매도의 증가로 연결된다. 투자은행의 경우에도 보유한 자산들의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레버리지 축소 압력 속에서 보유 자산을 매각하게 된다. 이는 유가증권의 가격을 낮추고 보유 자산의 가치를 떨어뜨려 추가 매도를 낳는다. 얼어붙은 투자심리가 호전되기 전까지는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


자산과 부채 사이 불일치가 가장 큰 문제

많은 이들의 짐작과 달리 투자은행의 파산과 이번에 문제가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직접적 관련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에 대한 전체 위험노출 비중은 보험사 23%, 상업은행 18%, 헤지펀드 17%의 순이었으며, 투자은행은 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의 파산은 환매조건부채권(Repo)이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과 같은 단기부채를 통해 저리로 조달한 과도한 레버리지 자금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약속하는 장기자산의 보유비중을 높였던 이들 고유의 사업 모델에서 설명될 필요가 있다.

대차대조표의 자산 측면(CDO 투자)보다는 부채 측면(과다한 차입과 단기성 채무), 그리고 자산과 부채 사이의 만기 불일치가 가장 큰 문제였다. 과도한 차입이나 만기불일치는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환경에서는 문제되지 않는다. 부채의 만기가 순식간에 돌아오지만, 기존의 계약이 순조롭게 갱신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버리지 비율이 30을 넘는 투자은행들의 경우 보유자산의 가치 하락과 주 고객인 헤지펀드의 파산 속에서 지급능력에 대한 신뢰에 손상이 가기 시작하면, 하루에서 1주일 간격으로 부채의 만기를 연장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게 된다.


저금리가 과도한 차입 유인

과도한 레버리지를 가능케 한 1차적 요인으로는 이례적으로 낮았던 저금리 기조를 들 수 있다. 이는 오랜 기간 인플레이션율이 낮았고 경제도 안정돼 있어 투자자들의 리스크 평가 또한 낮아졌기 때문이었지만,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오랫동안 너무 낮게 유지한 결과이기도 했다. 헤지펀드와 투자은행은 저금리 덕에 더 쉽게 차입을 했으며, 이렇게 조달한 돈은 부채의 증권화와 신용파생상품의 증가로 이어졌다. 또 늘어난 신용파생상품은 위험자산의 신용위험을 더 낮추고 결국에는 차입을 한층 키우는 눈덩이 효과를 낳았다.

신용파생상품의 등장으로 신용위험이 분산됨에 따라 다시 위험의 값이 낮아졌고, 그 결과 중앙은행이 1%였던 정책금리를 2004년부터 5.25%로까지 올렸음에도 국채나 회사채의 수익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함으로써 차입행태를 더욱 부추겼기 때문이다. 특히 헤지펀드 등 투자자들은 투자자산의 낮은 수익률을 높은 자기자본 수익률로 전환하기 위해 레버리지 비율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부채의 증권화는 잘못된 금융감독정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신용파생상품의 발달로 금융시스템의 위험관리 능력이 커졌다고 믿었던 규제당국은 2004년 들어 대형 투자은행의 부채총액을 순자본의 15배 이내로 제한하던 기존 적용을 면제해 줌으로써 레버리지를 키울 합법적 통로를 열어주었다.


차입이 아니라, 나쁜 차입이 문제

과도한 레버리지가 미국발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면 레버리지 자체를 막아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레버리지란 금융의 본질적 속성이며,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은 레버리지를 활용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나쁜 레버리지가 좋은 레버리지를 몰아내고 레버리지가 과도하게 확대되는 상황이다. 생산적인 경제활동을 통한 현금 흐름이 개연성 있게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차입이 좋은 레버리지라면, 생산적 활동과 무관한 용도로 사용되는 차입은 나쁜 레버리지이다. 좋은 레버리지와 나쁜 레버리지를 사전에 가려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옥석을 가려내 나쁜 레버리지에 대해서는 크게 제한을 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 금융이 지나치게 번성해 실물경제를 압도하게 되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난 세기 케인스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종현|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 교수>


 

입력 : 2008-12-23 17:41:04수정 : 2008-12-23 17: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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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수학공식으로 만든 ‘AAA’에 발등 찍힌 월가

ㆍ1부 - 5 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 (上)파생상품-금융수학 논리와 허점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대출상품이다. 이들의 빚을 가지고 만든 금융상품이 위험하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하지만 월가의 ‘금융공학’은 상식을 뒤집어줄 만큼의 힘이 있었다. 금융회사는 금융공학을 통해서라면 미래에 닥칠 위험을 측정해 가격을 매겨 팔 수 있었다고 믿었다. 미래 손실도 예측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우리 모델은 손실 없이 돈 벌 수 있다.”

“우리의 모델은 매우 안전합니다. 모델에 기반하지 않는 어떤 거래도 승인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12월 AIG의 CEO 마틴 설리번이 투자자들에게 한 말이다. ‘모델’이란 금융공학자 게리 고튼이 설계한 수학모형을 말한다. AIG는 이 모형을 통해 손해 보지 않을 만큼만 신용부도스와프(CDS·파생상품의 일종)를 팔았다고 자부해 왔다. 일부 경영진은 “고튼 모델이면 손실 없이 돈을 벌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4000억달러 규모의 CDS를 팔았던 AIG는 천문학적인 손실에 시달리다 지난 9월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AIG에 150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믿고 있던 ‘수학모델’에 발등을 찍힌 곳은 AIG뿐만이 아니었다.

“AAA 등급의 가격이 1% 이상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어떤 부도 위험도 없는데 자산 가격이 20%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미국의 한 투자은행 위험관리 담당자는 지난 8월 ‘이코노미스트’에 이렇게 고백했다. “매우 낮은 위험의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줄 알았는데, 모두 고위험자산이었음이 판명됐습니다.”

스위스금융그룹(UBS)의 사례도 비슷하다. 이 은행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 중 AAA 등급을 주로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으로 인해 380억달러를 날렸다. 이 중 75%가 AAA 등급 파생상품으로 인한 손실이었다.

금융공학은 어떻게 위험한 재료(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안전한 자산(파생상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파생상품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몇 단계로 나뉜다.

먼저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하면 ‘대출채권’이 생긴다. 이 채권은 은행이 원리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다. 투자은행 등은 은행으로부터 이런 대출채권 수 천개를 사들여 이를 담보로 하나의 증서를 만든 뒤 다시 잘게 쪼개 판다. 이것이 모기지 담보채권(MBS)이다.

MBS에는 위험분산효과가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각각의 컵에 얼마나 채워졌는지 알 수 없는 자판기 커피 1000잔을 하나의 양동이 속에 모두 붓는다. 그리고 양동이에 든 커피를 다시 더 큰 컵 100잔으로 나누어 붓는다. 만일 자판기가 고장나 처음의 1000잔 중 50잔이 빈 것이라고 해도 그 ‘손실’은 100잔에 고루 퍼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같은 위험분산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처음의 커피 1000잔에 얼마나 채워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투자를 꺼리게 된다. 따라서 처음의 커피 1000잔에 커피가 어느 정도로 채워졌는지 안다면 투자 결정에 도움이 된다. 이런 상황을 알려주는 것이 신용등급이다.

이 등급을 매길 때도 수학이 동원된다. 돈을 빌려간 사람들의 소득, 지역, 주택유형, 주택가격, 시중금리, 주택경매 시 받을 수 있는 가격 등 각종 요소들을 수학모델에 따라 컴퓨터에 입력하면 ‘얼마나, 어느 정도의 확률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확률 분포가 나온다. 이는 과거기록을 토대로 한 수치다.

신용평가회사 또한 ‘과거기록’과 ‘확률’에 의해 파생상품을 검증하고 등급을 매긴다. 무디스의 자산담보부 책임자인 클레어 로빈슨은 “우리의 전문분야는 통계”라면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과거의 실적을 기반으로 1000명 중 몇 %가 대출금을 갚을지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뉴욕타임스, 로저 로웬스타인, 4월27일자)


CDO는 여러가지를 섞은 소시지 증권

MBS란 파생상품은 다른 파생상품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종류의 채권까지 함께 섞은 뒤 잘게 쪼갠 부채담보부 증권(CDO)이 그것이다. 전남대 이채언 교수는 “신용카드채권, 자동차채권 등은 일반 소비자의 경기까지 고려하므로 좀더 나은 등급의 평가를 받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한다.

CDO는 ‘소시지 증권’으로 불린다. 맛없는 고기라도 당근이나 양파를 섞어 맛깔나는 소시지로 탈바꿈시킨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CDO 상품은 여러 종류의 상품으로 재가공할 수 있다. 1000잔의 커피를 양동이에 부었다가 다시 100잔으로 나눌 때, 커피를 동시에 고루 나누는 것이 아니라 차등을 두면 된다. 종이컵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서 커피를 부으면 맨 윗줄의 컵이 모두 채워지고 넘치면 아랫줄의 컵이 채워지는 식이다.

만약 자판기가 고장나 처음의 1000잔 중 10잔이 비어있었다면 피라미드의 100잔 가운데 가장 아랫줄에서 1잔은 완전히 비게 될 것이다. 거꾸로 처음의 1000잔 중 900잔이 비었더라도, 맨 윗줄의 10잔은 가득 채울 수 있으므로 안전하다. 이런 원리로 위험을 맨 아랫줄의 종이컵에 몰리게 한다.

만약 나누기 전의 CDO가 BBB 등급이었다고 해도 피라미드 상의 선순위(윗자리) 상품으로만 묶으면 AAA 등급을 받게 된다. 대신 선순위 상품은 값이 비싸고 수익도 작다. 후순위 상품은 값이 싸고 그만큼 수익도 크다. 이러한 과정이 모두 고도의 수학적 계산을 통해 이루어진다.

파생상품은 같은 재료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앞서 커피가 채워진 종이컵 피라미드 중에서 가운데 세 줄의 종이컵들만 빼낸다. 이 종이컵에 들어있는 커피를 다시 양동이에 부은 다음, 이번엔 다른 종류의 종이컵 피라미드에 따른다. 이것이 CDO2이다. 같은 방식으로 CDO3도 만들 수 있다.

눈앞의 이익 좇아 무리수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은 높은 수익률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2006년 미국에 들어온 자금의 60%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에 몰렸을 정도다. 모건스탠리에 의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만든 CDO의 판매금액은 2003년 990억달러에서 2006년 5000억달러로 뛰었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도 늘어나는 법. 월가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기초자산(대출채권)의 안정성을 흔들었다. 파생상품의 기초재료인 대출채권을 늘리기 위해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대출을 해 준 것이다. 태풍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다.

게다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CDO2, CDO3, 합성CDO 등 각종 변종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한국의 한 금융공학자의 표현대로 “금융수학이 현실에 맞게 제대로 계산하고 있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계산은 계속됐다.”

신용평가회사 피치의 자회사인 한국기업평가의 한 관계자는 “1차 유동화 파생상품(MBS)의 경우 기초자산인 대출채권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어서 투자자가 수학계산 결과에만 의존하지 않고 복합적 판단을 할 수 있었지만 2, 3차 파생상품의 경우 오로지 수학계산 결과에만 의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용평가회사도 이 게임의 당사자이다. 신용평가회사는 투자은행의 파생상품 ‘제조과정’을 검증한 다음 등급을 매긴다. 말하자면 금융감독기능을 갖고 있는 사기업들이다.

그런데 투자은행이 발행한 CDO 대부분이 최상위 등급인 AAA를 받았다. 신용평가회사들은 파생상품 발행자로부터 평가비를 받는데 이 금액은 높은 등급이 매겨질수록 오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붐일 때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무디스의 수익은 거의 3배가 됐다. 국내의 한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는 “신용평가사는 ‘최종거래’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평가를 해야만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무디스, 피치, S&P 등 미 신용평가회사 3사는 불공정한 등급산정 문제로 기소된 상태다.


컴퓨터가 말해주는 ‘부실 가능성’

대출채권을 담보로 만든 파생상품의 거래가 늘면서 덩달아 늘어난 것이 CDS다. ‘당신이 갖고 있는 CDO, MBS 등의 파생상품이 부실화되면 원금을 모두 보상해줄 테니 대신 정기적으로 일정한 보험료를 달라’는 게 이 파생상품의 핵심 개념이다.

이 상품을 판 회사는 ‘보험’의 대상이 되는 파생상품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경우 앉아서 보험료를 번다. 그렇지만 보험대상이 된 CDO, MBS 등에 문제가 생기면 원금을 다 보상해줘야 하니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보험 대상 파생상품이 부실화할 가능성만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돈 버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이 부실화 가능성을 알려주는 ‘수학모델’의 하나가 바로 AIG의 게리 고튼이 고안한 모델이다. 그는 과거의 방대한 기록으로 AIG가 유사시 보험액을 지급키로 한 CDO, MBS 등의 부도가능성을 확률적으로 분석했다.

CDS를 판매하는 투자은행은 수학모델을 이런 방식으로 활용한다. 돈을 빌려간 이들의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수학계산을 거쳐 부도가능성에 관한 확률을 따진다. 이때에도 손실액은 극단적으로 크되,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은 쪽은 제쳐둔다. 주로 예상 손실액의 평균이 기준이 된다. 이 기준으로 따져서 예상손실액이 작거나, AIG가 받는 보험료로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계약을 체결한다.

현재 미국 금융기관이 발행한 CDS가 보장하는 채권은 62조달러에 이른다. 신용평가회사 피치에 따르면 2002년 CDS가 보장한 채권 가운데 부실화한 것은 10.7%였지만 2007년 7월 현재 40%를 웃돈다.


과거기록에 의존한 미래 예측의 결함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이 인기를 얻었던 것은 미래의 위험을 측정해 떼어 버리거나 적절한 값을 매겨 팔아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위험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 때만 통하는 얘기다. 대표적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등급을 매겼던 파생상품들의 시장 가치는 반 이상 폭락했다. 이미 신용평가회사 3사는 지난해 여름 수백억달러어치의 CDO 등급을 떨어뜨렸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먼저 과거기록에 근거한 확률계산의 한계를 들 수 있다. 금융공학의 수학모델은 그 자체로는 복잡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유사한 조건을 가진 과거기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2002년 3.4%에서 2006년 13.7%로 커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이렇게 커진 것은 처음이다. 시장이 이같이 커지면 상환불능 가능성도 높아지지만, 예측 모델은 이런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과거 기록으로 현재와 미래를 예측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미국 투자컨설턴트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지금의 상황을 ‘극단의 왕국’에 비유한다. 그는 ‘전문가가 계산한 확률 바깥에 존재하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사건’을 무시할 때의 위험을 경고한 책 <블랙스완>의 저자다.

그는 “대사건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평범의 왕국’에서는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법칙을 구성한다”며 “그러나 ‘평범의 왕국’에서 통하던 것이 ‘극단의 왕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흰 백조’밖에 없다고 믿는 세상에서 나온 경험치로 아무리 계산을 해 봐야 ‘검은 백조’가 등장했을 때의 경험을 미리 예측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금융공학은 ‘주술’과 같았다. 금융공학은 이성적 사고의 결과였지만, 이 무기를 쥔 월가의 탐욕은 비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송윤경기자 kyung@kyunghyang.com>


 

입력 : 2008-12-23 17:49:01수정 : 2008-12-23 17: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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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美투자은행만 돈버는 ‘무서운 계약’

ㆍ1부 - 6 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 (下) 키코 - 어떤 구조로 설계됐나
ㆍ환율내리면 본전, 환율오르면 파산

2008년 상반기, 현 정부의 경제수장이 수출증대를 위해 환율상승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후, 원·달러 환율이 오르기 시작하자 한국의 수출 중소기업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손실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품의 값이 싸지므로 당연히 수출이 잘되고 기업이익도 증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실제는 달랐다. 환율이 상승하자 환율과 연동된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하고 있던 중소기업들은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의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바로 ‘키코(KIKO)’ 상품 때문이었다.

옵션상품을 기초로 만든 파생상품, 키코

키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옵션이라는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옵션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주가지수, 환율 등의 가격에 의거해 어떤 금융상품이나 자산(외환, 주식, 원유 등)을 사거나 팔기로 하는 권리에 관한 계약이다. 주식시장의 선물(先物)거래와 비슷해 보이지만, 선물거래 때는 무조건 사고파는 거래가 일어나는 것과 달리 옵션은 권리에 관한 계약이기 때문에 권리를 행사해야 실제 거래가 일어난다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권리를 가진 사람은 미래의 특정한 시점에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옵션 거래는 계약 당사자간에 자산이 특정 가격대가 되면 사고파는 권리를 갖기로 미리 약속을 한 거래다. 따라서 달러를 예로 든다면 미리 약속한 달러값이 형성됐을 때 달러를 사고팔 권리가 생기는데 이 달러값을 행사가격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이고 계약 당사자가 1250원이 될 때 달러를 사고파는 권리를 갖자는 약속을 하는 식이다.

옵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행사가격에 자산을 살 권리인 콜옵션(Call Option), 그리고 행사가격에 자산을 팔 권리인 풋옵션(Put Option)이 있다. 콜옵션은 낮은 행사가격을 가지고 있을 때 높은 자산가격이 형성되면 낮은 행사가격으로 자산을 살 수 있으므로 그만큼 이익이다. 풋옵션은 반대로 높은 행사가격을 가지고 있을 때 자산가격이 하락하면 그 만큼 높은 가격에 자산을 팔아 이익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옵션을 살 때의 경우이고, 옵션을 팔 때는 이익이 반대로 나타난다. 콜옵션을 판다는 것은 행사가격이 됐을 때 콜옵션을 사는 자가 얻게 되는 이익을 준다는 뜻이 된다. 풋옵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옵션을 파는 자는 오직 손실만 보게 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옵션은 기본적으로 계약이기 때문에 한쪽 당사자의 거래파기 등으로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미리 계약금을 서로 주고받는다. 이것을 옵션 프리미엄이라고 하는데 사는 자가 파는 자에게 계약금을 주게 된다. 물론 계약금은 옵션이 행사가격에 도달했을 때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보다는 훨씬 적은 금액이다. 따라서 옵션을 파는 자는 옵션이 행사가격에 이르지 않게 되면 계약금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반대로 옵션을 산 자는 그만큼 손실을 보게 된다.

달러를 통화로 한 옵션을 예로 들어보자. 만일 현재 1달러에 대한 원화값이 1200원이고 향후 달러값이 오를 것(환율상승)으로 예상해 1250원에 1달러를 사겠다는 행사가격을 가진 콜옵션을 샀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콜옵션을 산 사람은 콜옵션을 판 사람에게 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1250원 콜옵션의 계약금이 20원이라고 가정하자. 환율이 올라서 1300원이 되면 콜옵션을 산 자는 50원의 차익에서 계약금 20원을 뺀 30원의 이익을 얻게 된다. 반면 콜옵션을 판 자는 환율이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거래에 참가하는데 만약 오르게 될 경우는 50원을 잃게 되지만 먼저 20원의 계약금을 받았기 때문에 손실은 30원이 된다.

반대로 환율이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행사가격이 1150원인 풋옵션을 계약금 20원에 샀다고 생각해보자. 환율이 올라 1300원이 되면 풋옵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만기가 되면 옵션은 소멸하고 계약금만큼 손해를 본다. 반면 풋옵션을 매도한 사람은 계약금만큼 이익을 내게 된다. 만일 반대로 환율이 1100원이 됐다면 풋옵션 매수자가 큰 이익을 보고 콜옵션 매수자는 계약금만 날리게 된다. 또 풋옵션 매도자는 큰 손해를 보고 콜옵션 매도자는 계약금만큼 이익을 보게 된다.

다른 성질의 옵션을 합쳐 만든 합성옵션

그런데 만일 풋옵션 1계약을 사고 콜옵션 1계약을 파는 두개의 옵션을 동시에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옵션의 매수와 매도가 각각 1계약이 되므로 계약금은 사라지게 된다. 또 자산가격이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떨어지면 이익을 보게 되고, 자산가격이 풋옵션 행사가격과 콜옵션 행사가격 사이가 되면 이익이나 손실이 없으며, 콜옵션 행사가격보다 높아지게 되면 손실을 보게 된다. 즉 자산가격이 하락할 때만 이익이 나는 구조로 변형되게 된다.

예를 들어 1150원의 풋옵션 매수와 1250원의 콜옵션 매도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 환율이 1200원에서 1300원으로 오르게 될 경우 계약금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콜옵션 매도에서 발생하는 손실만 남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풋옵션 매도와 콜옵션 매수를 한 사람 역시 계약금 지불없이 이익만 보게 된다. 즉 계약금을 생각할 필요 없이 오직 환율에 따른 이익과 손실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키코의 구조가 탄생하게 된다. 자산가격을 환율로 하고, 옵션의 대상자산을 달러라고 가정하자. 키코의 기본구조는 풋옵션 매수 1계약과 콜옵션 매도 2~3계약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이를 서로 다른 성질의 옵션이 합쳐져 만들어졌다고 해서 합성옵션이라 한다. 환율이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낮아지게 되면 합성옵션 구매자는 1계약만큼의 이익을 본다. 그리고 환율이 풋옵션 행사가격과 콜옵션 행사가격 사이에 있게 되면 기존 옵션 계약금의 1~2배의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콜옵션 행사가격보다 환율이 올라가버리면 기존 콜옵션 매도 때보다 무려 2~3배나 많은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투자은행이 손실보지 않도록 만든 구조

그런데 이런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합성옵션과 반대되는 옵션시장 참가자를 구해야 판매할 수 있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아예 투자은행이 콜옵션 매입 3계약을 하고 풋옵션 매도 1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옵션시장에 참가한다. 그런데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옵션 만기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바로 옵션을 정산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실은 이런 합성옵션을 만든 투자은행은 대부분 미국계 투자은행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옵션은 원래 만기일이 없기 때문에 옵션의 정산을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따라서 투자은행은 콜옵션 행사가격이 되면 바로 콜옵션 매입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해 옵션의 정산을 할 수 있다. 이것을 녹인(Knock-In) 이라고 한다. 그런데 반대로 환율이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 점이 ‘사기’라고까지 비난을 받게 되는 부분인데 환율이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떨어지게 되면 합성옵션을 만든 투자은행은 손실을 보게 된다. 그래서 미리 풋옵션 매입자는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환율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풋옵션 행사를 포기하도록 계약을 만들어 놓는다. 따라서 환율이 떨어져 풋옵션 행사가격에 이르면 자동으로 옵션 계약은 없었던 일이 된다. 이것을 녹아웃(Knock-Out)이라고 한다.

본질은 미국 투자은행의 환차손 회피용

키코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합성옵션 상품이다. 미국의 투자은행에서 개발된 금융상품을 한국의 은행들이 판매수수료를 받고, 환율하락에 따른 손실을 줄여줄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라고 판매한 것이다. 그런데 키코의 구조는 환율하락에 따른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율이 떨어져 풋옵션 행사가격에 이를 정도가 되면 풋옵션에 의한 이익을 내야 하지만 계약자체가 사라져버린다. 따라서 환율하락에 따른 환차손에 무방비상태가 된다.

반대로 환율이 오르면 기존보다 2~3배의 손실을 볼 수 있다. 만일 환차손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출대금만큼 키코 계약을 했다가 녹인 가격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대금의 2~3배의 손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중소기업이 2007년과 2008년에 각각 1억달러 수출계약을 했다. 당시 환율은 950원. 그런데 키코에 2007년 초 가입했다. 그리고 1억달러어치 키코 계약을 했다. 원화로 950억원어치다. 녹아웃 환율은 900원, 녹인 환율은 1000원이라고 가정하자. 2007년에는 환율이 떨어졌지만 940원이 최저한이었다. 당시 해당 옵션의 계약금이 10원이라고 가정하면 한국 기업은 10억원의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런데 2008년 환율이 1000원을 넘어섰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1억달러의 키코 계약에 의해 3억달러(3000억원)을 납부해야 한다. 환차익은 950원에서 1000원이 됐으므로 50억원이지만 키코 때문에 손실은 3000억원에서 1050억원(수출액+환차액)을 빼서 무려 1950억원의 손실이 난 것이다.

그런데 파생금융상품은 속성상 내가 손실을 보면 그만큼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다. 키코의 구조상 이익을 보는 사람은? 미국의 투자은행이다. 즉 키코는 미국의 투자은행이 한국에 투자했을 때 환율상승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미국 투자은행용 환헤지상품이며 한국의 수출 중소기업은 이것에 반대되는 합성옵션을 매입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본 것이다.

단기에 유리한 상품을 장기 계약해 화근

사실 키코는 새로운 상품이 아니라 매우 초보적인 합성옵션이며 10년 이상된 구형 상품이다. 키코의 처음 구매자는 수출 중소기업이 아닌, 한국의 수출 대기업들이었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외환위험 회피용 상품인줄 알았던 키코가 실제로 그런 기능이 없음을 알게 되자 구매를 하지 않게 됐고, 이후 키코를 수출 중소기업에 판매하게 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키코 구매계약을 하면서 보통 2~3년의 장기계약을 했다는 점이다. 키코 자체는 매달 풋옵션 행사가격과 콜옵션 행사가격의 중간을 기준가격으로 해 기준가격에서 상하한으로 약 5%씩 행사가격을 설정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이 구간 정도까지가 실제 옵션시장에서 자유로운 설정이 가능한 가격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생금융상품은 일종의 확률 게임이다. 예를 들어 주사위 1이 나오면 계약금의 10배를 물어주고 나머지가 나오면 계약금만큼 얻는 게임을 한다고 가정하자. 1회의 게임에서 이겨 계약금을 얻을 확률은 무려 83%나 되지만, 10번의 게임을 전부 이겨 손실을 보지 않을 확률은 16.1%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파생금융상품의 경우 가급적 단기로 계약을 해야 손실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도 최소 1년, 최장 2~3년과 같은 장기계약을 하다 보니 당연히 엄청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키코 판 은행도 위험관리 못해 손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키코 계약을 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선물환거래(미래의 일정시점에서 사고팔 달러의 가격을 현 시점에서 미리 고정하는 거래)에 따른 은행 수수료와 증거금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2007년까지 원화는 아주 완만하게 강세를 나타내고 있었고 2008년 초에는 대부분의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원화의 강세를 예측했다. 키코 계약자 입장에서는 키코 기준가격에서 한 달에 기껏 1~2% 정도 환율이 내리는 상황이니 해볼 만했던 것이다. 키코 설정구간 이내에서 환율이 움직이고 있었고, 게다가 천천히 내리고 있었으니 키코 계약 중소기업은 키코의 계약금을 수익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은행들도 문제가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키코는 미국계 투자은행에서 만들어진 것을 한국의 은행들이 단지 판매수수료만 받고 한국 기업들에 판매한 것이다. 게다가 많은 경우 한국의 은행들은 키코 계약자인 한국의 기업들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손실을 대신 지급하도록 계약했다. 한국의 은행들도 키코를 판매할 때 이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은행들은 지점장이 재량으로 키코를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판매수수료 수입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2008년 하반기 키코 손실 때문에 한국 중소기업들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러 결국 키코 손실액을 내지 못하게 되자 한국 은행들은 한국 중소기업들을 대신해 키코 손실액을 물어주느라 큰 손실을 보게 됐다.


인터넷 경제논객 SDE

공학박사 출신으로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경제학과 실물경제를 넘나드는 통찰력 있는 분석으로 필명을 날리고 있다. 최근의 세계적 금융위기와 한국 경제의 문제점 등을 다룬 <공황전야>라는 책을 출간했다.


SDE | 인터넷 논객

입력 : 2008-12-28 18:17:58수정 : 2008-12-28 18: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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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은행믿고 가입한 ‘키코’가 멀쩡한 회사 죽일 줄이야”

ㆍ1부 - 6 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 (下) 키코 - 무너지는 중소기업

전자업체 ㄱ사의 재무담당 임원 ㄴ씨의 요즘 일과는 이른 아침 다우지수 시황 및 해외 환율 동향을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키코라는 게 하루하루 속을 태우고, 뒤집고, 바싹 졸이면서 서서히 사람을 죽여가더라”고 했다.

“외환시장이 개장하는 아침 9시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데, 불안감 탓에 오후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환율이 하루에 50~100원 왔다갔다 할 때마다 회사 돈 6억~7억원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게 보여요. 안 그래도 요즘 회사가 극심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대로 당하다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계약 때 키코 상품 위험 듣지 못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치솟은 환율로 중소기업의 외환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수출기업이라면 환차익을 얻을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다. 그러나 환율 변동에 대한 보험 격인 키코(KIKO, Knock-in Knock-out 통화옵션)라는 금융파생상품의 족쇄가 중소기업을 옭죄고 있다. ㄱ사는 지난해 매출 700억원대에 이어 올해 1000억원 정도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손익구조는 역전됐다. 지난해 13억원 상당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과 달리 올해는 무려 130억원대의 순손실이 예상되는 것이다. 순손실 금액은 이 회사가 키코에 가입하는 바람에 입은 손실액과 같다.

이 회사는 유로화 환율이 1200원선이던 지난해 여러 은행과 키코 계약을 맺었다. 1년간 유로환율이 1200원 아래로 내려가면 은행들이 유로당 1260원씩 150만유로를 환전해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1년간 한 번이라도 1300원선을 뚫고 올라가면 최고 300만유로를 그 시세대로 비싸게 사다 각 은행에 1260원씩에 팔아야 하는 위험이 있다. 유로환율은 현재 1800원대에서 요지부동이다.

“이런 위험을 알았다면, 절대 가입 안했겠죠. 은행은 우리가 떠안을 위험에 대해 일절 얘기하지 않았어요. 은행이 좋다고 하니까 좋은 줄만 알았던 겁니다. 은행 측은 ‘남들 다 가입했는데 무능한 ㄱ사만 안했네’ 식으로 몰아갔어요. 거기에 당한 거죠. 그런데 올들어 정작 문제가 터지니까 은행 지점장들이 ‘당신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했지 않느냐’고 말을 싹 바꾸더군요.”

ㄱ사는 올해 안으로 보게 될 키코 관련 직·간접적 손실을 130억원으로 보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계약에서도 60억원 이상 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돼, 이 회사의 키코 관련 총손실은 200억원대다. 회사는 정부의 유동성 지원 자금을 20억원 받은 상황이다. 하지만 ㄴ씨는 “지원금액이 회사의 손실을 메울 만큼의 양도 아닌데다, 이 돈 역시 이자를 물어야 하는 빚일 뿐”이라고 말했다.

ㄱ사를 비롯한 여러 중소기업들이 연대해 키코 계약의 무효화를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ㄴ씨는 은행들이 “일부 중소기업이 투기 목적으로 필요 이상의 키코 계약을 맺었다”며 화살을 중소기업들에 돌리는 데 대해 분노했다.

“함께 소송을 벌이는 업체 대부분은 한 번도 통화 파생상품 거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눈 한 번 안 팔고 그저 ‘어떻게 하면 제품 잘 만들어 잘 파나’하는 생각만 했던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불황에다 원자재 가격까지 급등해서 수익 내기도 어려운 처지라, 키코가 아니어도 중소기업은 다들 힘듭니다. 없는 시간도 쪼개가면서 제품 개발과 생산에 몰두해야 할 사람들이 키코 문제에 시간과 노력을 다 쏟아붓는 것도 억울한 판에, 투기꾼 소리를 듣자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ㄴ씨는 정부가 환율 관련 언급을 자주하는 데 대해서도 비난했다.

“며칠 전 정부에서 ‘외환위기가 끝났다’고 하니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달러 환율이 30원 이상 올라버리더군요. 정부가 환율에 대해 뭐라고 하기만 하면 바로 시장이 불안해져요. 정부는 그저 입 다물고 조용히 있을 것이지 왜 자꾸 떠드는지 모르겠어요. 이쯤 되면 정부가 주기적으로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고의로 그러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예요.”

“키코 이해하는 데 몇달 걸렸어요”

의류업체 ㄷ사가 키코로 인해 입게 된 손실은 10억원 정도로 ㄱ사보다 규모가 작다. 지난해 매출 70억원대, 영업이익 2억원 상당이던 이 회사도 올해는 키코 손실액만큼의 순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사업규모가 작아 피해가 덜한 편이지만, 반대로 작은 유동성 압박조차 이 회사에는 큰 위험이다. 회사는 지난해 은행과 달러 환율 935원을 기준으로 하는 키코 계약을 맺었다. 달러 환율이 980원 아래에서만 움직이면 아무 문제가 없을 계약이었지만, 1500원에 육박하다 현재 1200원대 후반에 머무르고 있다. 이게 문제였다.

미래의 어떤 시점에 외환을 사거나 팔 권리(옵션)에 대한 계약인 KIKO에서 그 권리를 행사할 가격을 도출하는 데 동원된 수학 모델. 이 모델은 옵션가격 결정에 널리 쓰이고 있는 블랙·숄스 모델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 회사 대표 ㄹ씨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워 내가 정신병 안 걸리고 살아가는 게 신기할 정도”라며 “뭣 모르고 가입당한 키코가 이렇게 날 죽일 줄은 몰랐다”고 푸념했다. ㄹ씨는 은행의 ‘반협박’으로 키코에 가입했다고 했다.

“은행은 우리 회사에 의사 같은 존재입니다. 환자가 의사를 의심하는 거 봤습니까? 그만큼 절대적입니다. 은행이 그렇다고 하면 절대로 믿어왔고, 행여 밉보일까 눈치도 살피고요. 은행이 가입하라고 권유하는데 설마 ‘악마의 상품’을 내놓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가입 당시 은행에서 ‘이번에 ㄷ사 대출 연장 조건이 미흡하지만, 이걸 가입하면 잘 해드리겠다’면서 키코 가입서를 내밀었어요. 은행 말 믿고 가입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출이 안되면 끝까지 안되는 거지, 키코 가입하면 된다는 게 수상하기도 했어요.”

ㄷ사는 소규모이지만 해외시장에서 꾸준히 이익을 내온 우량 기업이다. 일정 정도의 달러를 상시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사정을 잘 아는 은행이 이를 이용했을 것으로 ㄹ씨는 보고 있다. ㄹ씨는 지난 5월이 돼서야 키코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환율이 치솟으니까 압박이 시작되더군요. 처음에는 뭣 모르고 가입한 게, 어처구니없이 당한 게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도 못꺼냈어요. 특히 계속 손실 내는 사정이 외부에 퍼져 회사 신용도가 떨어지고, 자금줄이 막힐까봐 겁도 났고요. 그러다 5월쯤 다른 중소기업체들과 함께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미국 월가에서 그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만든 상품 구조를 우리가 어떻게 금방 알겠어요. 키코 이것을 이해하는 데만 몇달 걸렸습니다.”

이 회사는 정부 구제지원금 10억원을 신청했지만, 받은 돈은 2억5000만원. ㄹ씨는 “우리 같은 경우는 당장 1억원만 더 들어와도 숨통이 트일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키코 문제로 회사 안팎이 뒤숭숭하다”고 전했다.

“어느날 팀장이 ‘우리 직원들 관리 좀 잘해야겠다’고 보고합디다. 직원들이 이직 준비를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직원들 앞에서야 ‘우리는 키코 같은 걸로 날아갈 만큼 허술하지 않다.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다’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막상 돌아서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니다. 다른 업체 사장은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잠적했어요. 주문은 밀려 있는데 결정권자는 없지, 바이어들의 재촉은 빗발치지, 그곳 팀장이 나한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하더라고요.”

그는 “하루하루 증발하는 키코 손실액을 환산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을 도통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장관순·유희진기자>

키코는 무엇이고 왜 피해 커졌나

환차손 피하기 위한 장외 파생상품
‘위험’ 모른 중소기업만 손실 눈덩이


올 한 해 수출기업들에 공포의 대상이 된 키코(KIKO)는 위험회피 통화옵션 상품이다. 환율이 오르거나 내릴 경우 같은 물건을 수출하고도 손해를 보는 ‘환차손’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5년 은행들이 수출기업을 상대로 계약을 맺기 시작한 이 상품은 그 위험 때문에 대기업이 거래를 그만두었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중소기업은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연초부터 환율 급등으로 키코 계약을 맺은 중소기업들은 지난 11월 말까지 4조5000억원대의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파생상품은 장내(場內)와 장외(場外) 두 가지로 구분된다. 상품을 증권선물거래소에서 거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로 나뉘는 것이다. 장내 파생상품은 일정한 규정에 따라 판매해야 하고, 증권사가 투자를 권할 때는 일반 투자상담사가 아니라 선물상담사라는 별도의 판매자격이 필요하다. 반면 장외 파생상품은 신고 없이 거래할 수 있고, 금융기관의 일반직원이 판매할 수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상품 판매에 따른 금융기관의 위험만 관리할 뿐 일반투자자의 위험은 관리하지 않는다.

‘사적 계약’에 의한 1 대 1 거래

금융감독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신학용 의원(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키코 등 장외 파생상품은 사적 계약에 근거한 당사자간 1 대 1 거래로 별도의 심사절차나 신고서 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건별 거래에 대한 보고 절차도 없고 전체 거래 규모, 건수 및 잔액 등만 보고받는다. 은행과 보험사로부터는 분기별, 증권사로부터는 월간 거래실적만 보고 받을 뿐이다.

금감원의 은행업 감독 업무 시행세칙에는 은행이 장외 파생상품을 거래할 때 거래 상대방에게 거래위험 및 잠재손실 등에 대해 충분히 고지하지 않을 경우 불건전 영업행위(64조)에 해당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또 65조 제6호에는 ①거래 상대방의 재무상황, 거래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거래 제안 ②거래 상대방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충분한 정보 제공 ③거래 상대방이 거래를 할 수 있는 적법한 권한이 있는 계약 체결 전 점검 등을 유의사항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미흡한 규제에 감독당국의 늑장 대응

은행들이 이런 미흡한 규정이나마 제대로 지키고 당국이 감독에 나섰다면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키코 문제가 언론에 의해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 3월25일 장외 파생상품 관련 유의사항 공문을 보낸 뒤 6월 말에야 파생상품 정보 집중 및 공유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키코 거래은행에 대한 조사는 지난 8월21일에서야 시작했다.

정석현 키코피해대책위원장은 지난 11월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파생상품 관리 및 정책과제’ 공청회에서 키코 사태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키코는 한국의 장래 환율 급상승을 예견하고, 파생상품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국내 수출 우량중소기업을 판매목표로 삼아 공격해온 상품이다. 당시 (미국 투자은행이) 국내의 금융감독당국이 신고나 허가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은 허점까지 파악하고, 국내 은행에는 간단히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구실을 줘 적극적인 판촉활동을 하도록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은행은 수수료만을 챙기는 중개자 역할에 지나지 않는 상품이므로 자기의 오랜 고객인 주거래 기업의 보호를 위해 기업이 현명한 판단을 하도록 지도해야 함에도, 파생상품의 전문지식이 없는 일선 지점 직원들에게 판촉활동을 하도록 해 기업의 피해는 물론 막대한 외화유출까지 초래했다.”

자통법 시행 때 ‘제2의 키코 사태’ 우려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시행되면 키코 외에도 다양한 장외 파생상품이 만들어져 시장에 나오게 된다. 자통법에서는 파생상품의 기반이 되는 기초자산의 범위를 증권, 통화, 일반상품 등에서 재해 및 재난, 범죄발생률, 날씨 등으로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또 지난 4월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고쳐 장외 파생상품에 대해 ‘헤지(위험회피) 목적’이라면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일반투자자와 거래할 수 있도록 했고, 장외 파생상품을 발행하는 증권사 등의 영업용 순자본비율을 300% 이상에서 200% 이상으로 완화했다.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는 장외 파생상품을 취급하는 금융기관의 건전성 기준을 크게 낮춰준 것이다.

키코 사태가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비판이 쏟아지자 금융당국은 지난 21일 몇가지 개선안을 뒤늦게 내놨다. 금융위원회가 마련한 ‘파생상품 시장 감독체계 개선안’에 따르면 상장기업이나 투자적격법인이라도 장외 파생상품을 거래할 경우 일반투자자로 분류해 투자자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고, 헤지 목적으로 거래하더라도 과도한 헤지를 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하지만 새로 등장하는 장외 파생상품은 금융투자협회가 자율심사하도록 맡겨 금융당국의 규제 대상 바깥에 두도록 했다. 이처럼 규제를 풀어놨기 때문에 ‘제2의 키코 사태’가 일어날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전국금융산업노조 정명희 정책부장은 “자통법이 시행되면 다양한 변형 파생상품들이 쏟아질 텐데 이의 위험성에 대한 판단을 민간에게 맡겨두고 사후감독만 하겠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서의동 경제부 차장, 조찬제 국제부 차장
김재중 문화부 기자, 장관순 정치부 기자
송윤경 사회부 기자, 유희진 사회부 기자


 

입력 : 2008-12-28 18:14:19수정 : 2008-12-28 18:14:22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제조업체도 금융업 진출 광풍

ㆍ전통적 제조부문 기술개발 소홀…자회사 키우다 ‘금융불똥’에 몰락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통적인 제조업체가 금융업에 진출, 금융부문을 확대시켜 나가는 현상이다.

제조업의 금융화를 대표하는 사례는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자신이 발명한 백열등을 비롯한 각종 전기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만든 에디슨제너럴일렉트릭과 다른 두 전기회사가 1892년 통합해 설립됐다. 그렇다면 현재의 GE도 여전히 제조업체일까. GE그룹이 올리고 있는 수익으로 보자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 GE의 금융부문인 ‘GE캐피털’은 금융위기 이전 GE그룹 전체 이윤의 40%를 차지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체였던 GE의 금융화를 진두지휘한 인물은 81년부터 20년간 GE의 회장으로 재직했던 잭 웰치다. 웰치 전 회장은 ‘주주가 최고’란 구호를 앞세워 ‘주주 자본주의’를 이끌었던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회장에 임명되기에 앞서 77년 소비자 섹터 총괄책임자가 되면서 금융업도 함께 맡았는데 이때 금융의 잠재력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는 2000년대 초 국내에 번역된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존의 사업들과 비교할 때 금융사업은 상대적으로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분야 같았다. 연구·개발(R&D)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할 필요도, 공장을 짓거나 매일 같이 금속 따위를 제련할 필요도 없었다 … 금융사업은 자본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잭 웰치 끝없는 도전과 용기> 중에서)

하지만 GE그룹의 덩치를 키워주던 GE캐피털은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그룹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GE는 2008년 3·4분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2%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금융서비스 부분의 수익이 38%나 줄어들어 감소폭을 키운 것으로 분석됐다.

GE와 더불어 미국인들에게 ‘국민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자동차 회사 GM 역시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미국 재무부는 최근 GM이 49%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금융 자회사 GMAC에 6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GM에 22억달러의 수익을 가져다 주던 효자기업 GMAC가 금융위기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GM의 숨통까지 옥죄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김병권 연구센터장은 “GM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 부문의 기술개발을 등한시하고 GMAC를 포함한 금융자회사를 키우는 데 열중하다 금융 쪽에서 부실이 발생했다”면서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고 금융은 손실이 막대해서 부도 직전까지 온 경우”라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금융업 진출도 이미 상당부분 진행됐다. 대기업들은 은행을 제외한 금융업 전반에 걸쳐 자회사들을 보유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금융업 진출은 사업다각화와 용이한 자금조달, 자사 제품 구매자에 대한 할부금융 제공 등 다양한 목적이 깔려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고 이명박 정부가 계승하고 있는 금융허브 전략도 이러한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특히 2009년 2월 시행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이 증권사에 지급결제 기능을 허용하는 등 증권사의 활동범위를 넓혀주면서, 대기업의 증권업 진출 또는 증권 자회사 몸집불리기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현대자동차그룹의 신흥증권 인수, 두산그룹의 BNG증권중개 인수 등이 연이어 이뤄졌다.

그러나 기업의 과도한 금융화는 본업인 제조업 홀대로 이어져 경쟁력의 기반을 잠식할 것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 초청 강연에서 “금융업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체는 주로 제조업체가 고객이다. 강한 제조업 없이는 강한 금융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재중기자>

입력 : 2009-01-04 17:39:48수정 : 2009-01-04 17: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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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대박 좇던 서민… ‘머니게임’ 가해자이자 피해자

ㆍ1부 - 7 금융위험에는 장벽이 없다

‘부자되세요’ 라는 새로운 복음

2001년 연말 가정의 안방과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에서는 새로운 복음(?)이 전해졌다. 외환위기가 남긴 상처를 안고 있던 시민들에게 “여러분, 부~자되세요”라는 덕담이 배달된 것이다. 이는 부(富)를 열망하면서도 부를 경멸하던 사람들의 이중적 가면을 찢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뒤 부자되기는 한국 사회의 공중도덕이 되어버렸다. 코흘리개 아이들을 위한 재테크 교육서가 서점 매대에 깔려 있는가 하면 재테크에 뛰어든 ‘현명한’ 주부들을 가리켜 ‘쩐모양처’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서울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이모씨(37)는 요즘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처음 시작했던 부동산과 펀드 재테크의 초라한 성적표를 볼 때면 허탈한 웃음도 나온다고 했다.

이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재테크가 뭔지 잘 몰랐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유일한 재테크의 수단이 있다면 은행이었다. 여윳돈은 비과세저축과 일반저축예금, 주택청약예금 등 은행계좌에 맡겼다. “누나가 은행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잘 알아서 해주리라는 믿음도 있었고, 치밀한 계산 속에 내 삶을 집어넣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6, 2007년 ‘부동산 대박’ ‘펀드 대박’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그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동산 붐이 일자 관공서에서 부동산 특강을 열기 시작하더군요. 특강을 들으면서 부동산에 매력을 갖게 됐습니다.” 미혼인 이씨는 집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던 터였다. 주변 사람들이 공매·경매로 큰돈을 벌어들였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그 영향으로 그도 어느새 인터넷 공매 사이트를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공매·경매 공부도 하면서 매물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드디어 첫 도전의 기회가 왔다. 지난해 8월 경기에 있는 시세 대비 30~35%가량 낮은 가격의 아파트 몇 채가 그의 눈에 띄었다. 그는 입찰했지만 실패했다. “내년에도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로 이어진다는데 당시 낙찰을 받았다면 부모님의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을 테고, 그랬다면 지금쯤 이자를 갚느라 허우적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은행에 돈 맡기면 바보취급

펀드 투자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대중매체들은 경쟁하듯이 펀드 재테크에 성공한 전문가들의 성공담을 ‘시대의 영웅’처럼 치켜세웠고, ‘금융자산 포트폴리오’ 홍보를 하더군요.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죠.” 계산을 싫어하는 이씨지만 어느 신문기사가 제시하는 대로 계산을 해보았다. 예를 들어 펀드 수익률을 12%로 잡으면 1000만원을 투자해 연 120만원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반면 같은 돈을 은행에 넣어두면 35만원 수준의 이자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매년 물가가 3~4%씩 뛴다고 하면 은행에만 돈을 맡겨두는 것은 돈을 불릴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며, 이는 곧 돈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결론이 나왔죠.”

스포츠 동호회에서 만난 증권회사 직원이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회원들에게 족집게처럼 우량 펀드를 추천해 주고 그 펀드에 실제로 투자한 회원들이 재미를 보는 것을 목도한 것도 이씨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그는 TV에 나오는 투자 관련 정보를 놓칠세라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스크랩을 할 정도로 재테크 공부에 열성을 보였다. 결국 2007년 말 ‘취향별 분산투자 포트폴리오’ 원칙에 따라 1000만원 남짓한 돈을 2개의 해외주식형 펀드와 1개의 채권형 펀드에 나눠 가입했다.

“은행에 다니는 한 친구가 2008년 펀드 시장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데 얼마나 많은 수익을 보려고 불안한 펀드에 관심을 갖느냐면서 은행 예치를 권유했지만, 당시엔 펀드에 대한 긍정론이 워낙 강세였죠.” 2008년 말 현재 그가 가입한 해외주식형 펀드는 각각 75%와 27%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채권형 펀드는 현상 유지하는 정도다. 이씨는 어느새 ‘재테크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2008년은 실패했지만 좋은 공부를 한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더 좋은 다음 기회를 기다려봅니다”라고 말했다.


머니게임에 빠져든 사회

97년 외환위기는 금융이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노동 유연성’이라는 이름의 정리해고는 고용불안을 일상화했다. ‘평생 직장’ 개념은 희미해졌고, 청년층에게 취업의 문은 좁아졌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자영업 쪽으로 이동하거나, 새로운 직장을 찾아나서야만 했다. 새로 찾은 직장도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다.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은 사람들도 언제 직장을 잃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어야 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돈을 은행에 쌓아두는 것만으론 이 불안을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노후생활에 대한 사회적 보장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결론은 돈을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뻥튀기를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금융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돈이 돈을 버는 투자게임’을 자연스러운 부의 축적방식으로 권장했다. 금융회사들은 행복한 노년생활을 위해선 최소한 몇 억원은 있어야 한다면서 투자를 부추겼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운용한 다음 이익금을 나눠주는 자산운용사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07년 9월 자산운용사들에 맡겨진 금액(269조원)이 은행 정기예금 잔액(278조원)을 넘어섰다. 성공회대 유철규 교수는 “2007년 10월 현재 펀드의 개인투자자 계좌수는 2000만개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 가구수 1640만을 웃돈다”면서 “가구당 중복 계좌수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 수치로 본다면 이제 주식투자와 무관한 가구는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이제 금융게임의 당사자이면서 그 재앙의 피해자라는 이중적 신분을 갖게 된 것이다.


정글사회로 변질되며 연대성 해체

여기에 전통적인 투기수단인 부동산 거품과도 맞물리면서 ‘돈 장난’은 증폭됐다. 아파트 값의 70~8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은행에서 대출받아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이 유행이 됐다. ‘돈 놓고 돈 먹기’가 일상화된 사회로 변한 것이다. 이는 노동과 부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장진호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11월14일 ‘한국문화인류학회 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 발표한 논문(‘일상생활의 금융화와 부자되기 신드롬’)에서 “도박장화된 금융시장에서 머니게임의 승자는 역사상 권력에 가까운 이들이거나 더 큰 자산의 동원력이 가능한 부자였음에도, 머니게임이 참여자들에게 부자가 될 수 있는 균등한 기회 창출의 장인양 계속 선전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장 연구원은 “‘너의 손실이 나의 수익으로 돌아오는’ 정글화된 상황에서 사회를 사회이게 하는 기반으로서의 연대성은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다”면서 “케인스의 바람대로 금융을 ‘종’의 역할로 묶어두는 제자리 찾아주기를 서둘러야 사회적 분열의 가속화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별취재팀

서의동 경제부 차장, 조찬제 국제부 차장

김재중 문화부 기자, 장관순 정치부 기자

송윤경 사회부 기자, 유희진 사회부 기자

<김재중기자 hermes@kyunghyang.com>

입력 : 2009-01-04 17:43:03수정 : 2009-01-04 17: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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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사기꾼 수법’과 다름없는 선진금융기법

ㆍ후불제 인수방식·사모펀드·공매도가 ‘문제’

#2005년 5월27일 금융감독위원회 제9차 정례회의는 주목할 만한 결정을 내렸다. 당시 여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던 리딩투자증권의 브릿지증권에 대한 합병을 승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금융기관의 인수·합병이 금융감독당국에 의해 허가되지 않은 첫 사례였다. 리딩투자증권은 그해 2월 브릿지증권 지분 86.9%를 1310억원에 사들이기로 브릿지증권의 대주주인 BIH(브릿지 인베스트먼트 라부안 홀딩스)도와 계약을 맺었다. 리딩은 계약금 20억원만 먼저 받은 뒤 187억원은 인수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리고 나머지 1103억원은 브릿지 증권을 사들인 뒤 이 증권사가 보유한 자산을 팔아 갚기로 계약했다. 자기 밑천의 65.5배나 되는 금융기관을 단돈 20억원을 투자해서 사들이겠다는 무모한 시도였다.



# ‘프리티 우먼’이란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인 에드워드(리처드 기어 분)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하는 기업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산이 탄탄한 제조업체를 인수한 뒤 갈기갈기 조각내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그에게 기업을 뺏기게 된 한 기업체의 사장은 이렇게 호소한다. “나에게는 기업을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기업이 산산조각이 나면 직원들은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지역 경제는 어떻게 하느냐.” 냉정한 에드워드의 대답은 간단하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첨단금융기법인가, 사기인가

브릿지증권 합병 시도와 리처드 기어가 구사한 M&A 기법은 후불제 인수방식(LBO·Leveraged Buy Out)으로 불리는 ‘선진금융기법’이다. 인수대상 기업이 가진 부동산이나 주식, 보유현금을 담보로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인수하는 방식이다.

지렛대(레버리지)를 이용해 작은 힘으로 큰 물건을 들어올리듯이 LBO는 외부에서 돈을 빌려와 그 돈을 지렛대로 덩치가 큰 상대기업을 사들이는 전략이다. 인수한 뒤에는 사들인 기업의 자산을 매각해 돈을 갚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 전략은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크게 확산된 뒤 전세계 기업 M&A 시장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을 연상케 하는 기법이다. 89년 KKR라고 하는 M&A 전문회사는 담배회사인 레이놀스-나비스코를 250억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KKR는 인수대금 가운데 190억달러를 레이놀스-나비스코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렸다. KKR는 나비스코를 사들인 뒤 60억달러짜리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대출금을 갚았다.

LBO는 90년대 기업도산이 늘어나면서 한때 위축됐으나 2000년 이후 저금리 기조하에서 다시 성장하기 시작해 2006년에는 7000억달러 규모에 이르고 있다. 전세계 M&A에서 사모펀드 LBO에 의한 기업 인수·합병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6년 17%에 달할 정도로 보편화되고 있다.

노동불안 심화

LBO는 실적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반면, 사모펀드의 LBO는 인수대상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해고 등으로 고용불안을 조성하고 우량기업까지 위협하는 부작용도 크다.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모아 조성된 사모펀드의 특성상 투자대상 기업의 장기적 발전 가능성에 주목하기보다는 단기에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주목한다. 자금을 투자해서 공장을 짓고 종업원을 고용, 상품을 만들어 실적을 내는 전통적 방식의 기업경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노동과 기술개발로 생산성을 높이기보다 ‘땀을 흘리지 않는’ 금융기법으로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노동의 가치를 좀먹는 것이다. 사모펀드가 가령 제조업체를 인수했다면, 부동산 등 알짜 자산을 잘라 팔아버리고 청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게다가 기업인수 초기 과정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대규모 감원을 하고 복지혜택을 축소하면서 노사분쟁을 초래한다. 인수 대상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여유자금을 자사주 매입에 쓰거나 배당금 증액에 사용하느라 투자축소, 경쟁력 약화를 감수해야 한다.

멀쩡한 기업 사들여 공중분해

브릿지 증권을 인수했던 BIH는 98년 대유증권을 인수한 뒤 2000년 일은증권을 다시 인수해 두 회사를 브릿지증권으로 합병했다. BIH는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이 호황을 맞은 99년 대유증권이 839억원의 흑자를 내자 BIH는 주식액면가의 70%인 주당 700원의 초 고배당을 통해 204억원을 빼내갔다. 이후 자사주 매입과 유상감자(자본금을 줄여 주주가 나눠갖는 것), 사옥매각을 통해 증권사를 껍데기만 남겼다. 마지막으로 LBO라는 방식으로 증권사 매각을 시도하려다 금융감독당국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당시 합병건을 심사했던 금융감독원 박권추 팀장은 “통상적인 LBO와 달리 브릿지의 경우 제3의 자금원이 없었고, 대주주에서 돈을 빌려서 상환하는 구조라는 점 등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브릿지증권 매각 반대를 주도했던 골든브릿지증권 강승균 노조위원장은 “매각이라기보다는 사실상 회사를 청산하겠다는 것이 당시 대주주인 BIH의 의도였다”고 말했다.


사기수법 닮은 공매도

올해 주식시장이 출렁였던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시장에 돈을 지속적으로 빼내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매도’라는 투자기법 탓도 컸다. 일반적으로 주식투자는 주식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 차액을 벌어들이는 방식이다. 반면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생각될 때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가격이 떨어지면 다시 사들여서 갚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주가가 100원일 때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100주를 빌려 팔았다고 치자. 1만원의 돈이 손에 들어온다. 그런데 주가가 하락해 주당 80원이 됐다. 주식을 빌려준 증권사에는 주식으로 갚는다. 투자자는 시세와 상관없이 100주만 갚으면 된다. 그러므로 8000원으로 80원짜리 주식 100주를 사서 갚는다. 2000원을 벌게 되는 셈이다. 이런 수익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공매도가 성행하면 기업가치와 무관한 주가가 형성된다.

국내 대표적인 기업들이 지난해 7월 이후 주가가 하락을 면치 못했던 것도 이런 공매도 탓이다. LG전자는 올 3·4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4.85%나 증가했는데도 주가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주가가 23.5%나 떨어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기업이고 환율급등으로 수출경쟁력까지 향상돼 개인투자자들의 투자가 몰렸지만 공매도로 결국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공매도가 성행할 당시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성공시키기 위해 주식을 산 뒤 증권가에 괴담을 유포시켜 해당 기업의 주가를 더욱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공매도의 폐해가 전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면서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 공매도 규제가 확산됐고 한국 정부도 지난해 9월 뒤늦게 공매도 개선방안을 내놨다. 금융경제연구소 채지윤 연구원은 “공매도는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위험천만한 투자”라며 “첨단투자기법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사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서의동기자>


 

입력 : 2009-01-04 17:46:28수정 : 2009-01-04 17:4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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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40년 만에 ‘금융·석유·식량위기’ 동반

ㆍ1부-7. 금융위험에는 장벽이 없다 
ㆍ투기자본 주연의 ‘충격·공포 드라마’

‘3차 오일쇼크’라는 드라마

지난해 7월 중순 유가가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배럴당 무려 147.17 달러. 연말이면 200달러로 치솟을 것이라는 ‘슈퍼 스파이크’론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지구촌을 휩쓸었다. 그러나 불과 사흘 만에 유가는 10% 폭락했고 두 달 후엔 90달러 선까지 무려 50달러나 떨어졌다. 세계 석유수요가 별로 줄지 않았음에도, 더구나 중동 산유국들이 모여 하루 50만배럴을 감산하기로 결의하고 멕시코 만 유전지대에서 생산량이 5% 줄었음에도, 송유관이 지나는 그루지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태풍 아이크가 미국 정유시설의 25%를 손상시킬 거라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석유가격은 속절없이 계속 추락했다.

그 추이를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원인은 명확했다. 금융투기세력들이 급속히 석유시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8월로 접어들면서 뉴욕상품선물거래소(NYMEX)에서는 원유선물거래에 뛰어들었던 투기세력의 매수포지션이 급감하고 그에 따라 전체 거래 중 순매수포지션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에너지 시장에는 어마어마한 투기가 있었다. 단지 수급균형의 문제가 아니었다.” 투기거래에 깊숙이 참여했던 JP모건체이스의 투자본부장 마이클 셈블리스트가 지난 9월 부유한 투자자들에게 보낸 e메일 내용 중의 일부다. 국내외 주요 언론들이 그토록 떠들어대던 수요 급증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피크 오일 등에 의한 공급의 감소·차질이 주요 원인이 아니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의회의 압박으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시작하고, 뒤이어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월스트리트에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되자 투기 자본들이 대거 이탈했다. 오클라호마에 본사를 둔 셈그룹(Semgroup)의 완전 철수, UBS의 장외시장 상품거래 폐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런던시장 에너지·상품거래 중단 등이 속속 알려지면서 가격 거품은 더욱 빠르게 붕괴됐다. 속락을 거듭한 유가는 2008년 말 현재 배럴당 겨우(?) 40달러선을 밑도는 수준. ‘3차 오일 쇼크’는 중반까지 긴장감이 대단했으나 5개월 만에 끝난, 결말이 허망한(!) 드라마였다.

아이티 사람들로 하여금 ‘진흙쿠키’로 끼니를 때우게 만들었던 식량위기도 마찬가지 양상이었다. 지난 3월 부셸당 12.70달러까지 치솟았던 밀 가격은 현재 5달러 수준. 호주 곡창지대의 가뭄과 미국 중서부의 토양침식 등 미디어들은 갖가지 원인들을 내세웠지만 식량 폭등의 가장 큰 원인 역시 유가급등과 바이오디젤 열풍을 틈탄 금융투기세력의 작품이었다. 대표적 네오콘이자 세계은행 총재인 로버트 죌릭이 끝까지 언론공개를 막았던 세계은행의 비밀보고서는 심지어 식량가격 상승의 75%가 미국에서 생산된 옥수수의 3분의 1이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데로 돌려지고, 그에 따라 투기가 기승을 부린 까닭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하반기에 금융 쓰나미가 직접 모든 것을 삼켜버렸음을 종합해 볼 때, 2008년은 실로 1970년대 초반에 이어 약 40년 만에 금융위기, 석유위기, 식량위기라는 세 마녀가 동시에 출현하여 전 인류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간 역사적 시점이었다.

누구의 작품이었나 - 주연 배우들

“현재의 석유가격은 수요·공급의 펀더멘털에 기반한 것이다. 상품시장은 투기거품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고 있지 않다.”( <골드만삭스 에너지리포트>, 2008·7·30)

유가가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초이다. 그때까지 20달러 선에 지나지 않았던 원유는 1년 후 40달러를 돌파하고 조정기를 맞는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아준 무티’. 그는 유가가 장기상승국면에 들어섰다며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과감한 예측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6년 말 그 예언이 현실화되자 ‘석유업계의 카산드라’로 불리며 명성을 얻는다. 이후 유가가 조정기를 맞을 때마다 상승모멘텀을 제공하던 그는 지난해 5월 유가가 130달러 선에서 주춤거리자 이른바 ‘슈퍼스파이크’론을 내세워 2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선언, 치솟는 유가에 불을 붙였다. 아준 무티는 바로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였다.

주지하듯이 골드만삭스는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 기업공개 주선 등 기업금융부문과 모기지 채권 등을 다루는 자산운용 및 증권부문 그리고 상품선물 등을 취급하는 자기자본투자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자기자본투자부문은 사실상 헤지펀드와 거의 같은 활동을 한다. 그 운용자산의 규모가 210억달러이니 사실상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인 셈이다. 그처럼 엄청난 규모를 배경으로 골드만삭스는 1990년대 중반에 석유선물시장에 진출한 이후 줄곧 업계의 수위를 달렸다. 특히 2005년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연체비율 증가 등 부동산 시장에서 이상 징후가 엿보이자 원유시장에 대한 진출을 대폭 강화하여 막대한 영향력을 확보한다. 골드만삭스가 가진 영향력의 1차적 원천은 GSCI(골드만삭스상품지수)로 대변되는 인덱스투자. 각종 연기금과 뮤추얼펀드, 기업, 국부펀드 등이 참여해 무려 2600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로 확대된 간접투자 중 60% 이상이 골드만삭스를 통해 이루어졌다.

직접투자의 위력 또한 막강했다. 자기자산의 수십 배를 차입(Leveraged Buyout)하여 그것을 5%의 증거금만으로 거래를 할 수 있는 석유선물시장에 집중했다. 대부분 거의 규제를 받지 않는 런던 역외시장(ICE)과 장외시장(OTC)에서의 스와프거래를 통해서였다.

수급동향 등 시장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기 위해 골드만삭스는 2006년 150여개의 저유소와 4만㎞가 넘는 송유관을 보유한 킨더모건사를 인수하고, ICE를 공동설립하는 등 석유 관련 인프라를 급속히 확장해갔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남들보다 앞서 장기매수 포지션을 정하고, 상승 예측을 발표해 시장을 주도했다.

ㆍ미디어들 앞다퉈 논리제공 ‘조연역’
ㆍ 전세계 국민·생산자본 상대 수탈

2007년 하반기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악화되고 달러 약세가 본격화되자 골드만삭스의 뒤를 따르는 에너지 관련 헤지펀드는 640여개로 급증했고, 간접투자를 원하는 연기금, 펀드들이 대거 시장에 유입됐다.(거래시장에 1억달러가 새로 유입되면 1.6%의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이른바 ‘자기충족적 예언’에 의해 2007년 골드만삭스가 거둔 45억달러 순익 중 31억달러를 상회했다. 원유선물거래에서 줄곧 2위를 차지했던 모건스탠리도 유사한 수익 패턴을 보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다른 투자은행들과는 달리 2008년 하반기의 금융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9월 이후 석유시장에서의 투기가 잠잠해지자 그 둘은 일반 상업은행과 유사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안간힘을 다한 공조 - 조연 배우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성공 드라마는 물론 그들의 힘만으로는 연출될 수 없었다. 가장 유력한 조력자는 세계 유수의 미디어들이었다. 유가가 급등했던 지난해 상반기 내내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관련 지면을 장식했던 분석은 이른바 ‘중국·인도 책임론’이었다. 신흥공업국에서 수요가 급증해 수급이 극히 타이트해졌다는 논리였다. ‘자원민족주의 유죄론’도 뒤를 이었다. 베네수엘라, 이란 등이 기술과 자본을 보유한 서방의 석유회사들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아 생산능력이 정체 또는 감소했다는 것이었다. 나이지리아, 이란 등에서의 지정학적 위기도 대서특필되며 아직 유가가 충분히 높지 않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 석유수요가 이미 2007년부터 줄고 있으며 그것이 중국 등에서의 수요 증가분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사실, 세계 원유생산량이 2008년 1·4분기에도 2.5% 늘었다는 사실, 따라서 전반적인 수급상황은 유가가 60달러였던 2006년 말과 거의 변동이 없다는 사실 등은 전혀 조명되지 않았다.

이러한 수급상황론에 대해 반론이 높아지자 새로운 논리들이 출현했다. 석유업계 및 금융업계와 연계된 연구소들에서는 “오랫동안 채굴장비와 선박들에 대한 투자와 인력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단기간 내에 공급이 늘어날 수 없다”며 추가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부시, G8 재무장관 등이 가세하고, 감독기관인 CFTC 위원장이 나서서 “어떠한 투기의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등 풀코트프레싱이 펼쳐졌다. 뿐만 아니라 엑슨모빌 등 거대석유회사들이 정유시설 가동을 10% 줄여 인위적으로 휘발유 공급부족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관측도 유력하게 제기되었다. 흔히 마약시장 다음으로 폐쇄적이라는 석유시장. 그 불투명성은 투기를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데에 철저하게 활용되었다. 세계최대의 곡물기업 카길이 여전히 비상장회사로서 베일에 가려진 채 활동하는 국제 식량시장의 형편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미 방영됐던 예고편 - 엔론 함정

석유와 식량 등 상품선물시장에서 투기세력의 발호는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돼 왔다. 2000년에 만들어진 ‘상품선물현대화법’ 때문이다. 이 법에 의해 장외시장, 역외시장에서의 선물거래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예를 들어 NYMEX에서는 지금도 옵션과 선물을 포함해 모든 거래가 다자간 공개경매 방식으로 이뤄진다. 모든 거래자, 거래량, 품목, 가격, 거래의 종류가 보고되며 철저한 감시와 승인 아래 이뤄진다. 그러나 장외시장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장소와 시간, 거래 종목에 어떠한 제한도 없다. 양자간 거래이니만큼 당사자간에 합의만 하면 된다. 마치 매입자가 카운터에서 물건을 사듯 1 대 1 거래가 이뤄지므로 규제당국을 포함한 제3자들은 심지어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 수 없다. 역외시장의 경우도 그리 다를 게 없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서부텍사스중질유(WTI)의 30% 이상이 거래되는 런던ICE에서는 모든 거래가 익명으로, 오직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이뤄진다. 그 대부분은 양자간 스와프 거래. 거래량의 제한이나 모니터링과 보고의 의무가 전혀 없는 이 시장 에너지부문의 주요 플레이어는 씨티은행과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거대 금융 자본들이다.

상품선물현대화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주도한 기업이 바로 한때 세계 최고의 혁신적 기업이라 불렸던, 그러나 실제로는 교묘한 수법으로 회계장부를 조작해 이익을 부풀려 발표했던 엔론이었다. 그들의 로비에 의해 상품선물현대화법안은 2000년 말 의회에 제출된다. 부시와 고어의 치열한 당선자 확정 소송이 끝난 직후 금요일 밤, 회기를 며칠 남기지 않은 채 1100여개의 다른 법안에 섞여서 …. 그리고 바로 이듬해 닷컴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엔론은 이 법이 제공한 규제의 사각지대를 활용해 전력을 다른 주로 빼돌렸다 되사오거나 인위적으로 전력난을 조장해 비싼 값을 받는 수법으로 엄청난 폭리를 취했다. 그것이 2001년 캘리포니아 전력 공급 중단 사태의 내막이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으로 궁지에 몰린 금융자본들이 상품시장으로 대거 이동해 7년 전 엔론이 파놓은 함정(Enlon Loophole)을 재활용, 전세계의 서민들과 생산자본을 상대로 벌인 희대의 수탈극. 그것이 ‘3차 오일쇼크’와 식량위기의 본질이다. 탈규제가 제도화됨에 따라 ‘전염성 탐욕’은 모든 영역으로 확산됐고, 금융투기의 대상에도 경계가 없어진 것이다.

미국 헤게모니 체제의 위기, 그 불안한 미래

“식량을 지배하는 자는 한 나라를 지배하고, 석유를 지배하는 자는 한 대륙을 지배하고, 통화를 지배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한다.”(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경계가 없는 금융투기는 곧 이번 위기가 얼마나 중층적이고 총체적인가를 상징한다. 그것은 금융, 식량, 석유라는 세 마녀가 함께 출렁거렸던 1970년대 초반 세계자본주의의 위기, 미국 헤게모니 체제의 위기에 버금가는 격변이 다가왔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71년 5월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한다. 달러투매와 자본유출이 벌어지고 결국 3개월 후 닉슨의 금태환 정지 선언이 발표된다. 그에 따라 달러화의 급락세가 계속되자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다시 ‘강한 달러’를 만들어내기 위해 키신저 등의 주도로 세계의 금융 및 정치계 내부자들의 비밀회합이 잦아졌다. 그리고 식량위기, 중동전, 1차 오일쇼크가 연이어 일어났다. 결국 4배나 폭등한 석유가 달러로만 결제되는 ‘석유-달러체제’가 만들어짐에 따라 달러의 위기가 진정되었다. 고전적 브레턴우즈체제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변동환율제로 이행했고, 그후 ‘강한 달러’를 바탕으로 30여년에 걸쳐 금융자본 우위의 신질서가 구축돼 왔다. 더불어 미국이 세계자본주의의 최종 소비자가 되고 중동과 일본을 위시한 신흥공업국들은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추진하며 거기서 발생하는 무역흑자로 미국 국채를 사주는 국제 달러환류 시스템의 골격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바로 그 ‘글로벌 불균형’이 다시 전반적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패러다임이 새로 구축될 것인가? 지금으로선 어떠한 예측도 섣부를 것이다. 대신 무엇보다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 미국 금융자본과 석유자본의 융합관계와 그들의 동향이다. JP모건과 합병해 JP모건체이스를 만들어낸 체이스맨해튼은행의 회장이 존 데이비슨 록펠러라는 사실, 최근 미국 구제금융 7000억달러의 총괄수탁은행으로 선정된 뉴욕맬런은행을 소유한 멜런가문의 걸프석유 소유, 엑슨모빌 주식의 73% 금융자본 소유 등에서 보듯 두 거대자본 블록은 사실상 한몸이 되어 군수, 화학, 자동차, 농업 등 전 분야의 자본과 얽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해온 통화주의자들 - 가이트너, 버냉키, 로렌 서머스 등 - 을 ‘검은 루스벨트’ 오바마 정부의 주요 포스트에 파견해놓고 있다. 비록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 해도, 70년대 초반처럼 식량과 석유를 이용한 압박과 지정학적 위기 조장, 전쟁으로 달러체제의 생명 연장, 경계 없는 금융투기체제의 복구가 재시도될 필요조건이 이미 마련돼 있는 셈이다.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이 자행됨에 따라 유가가 소폭 반등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만약 그것이 이란이라면 사태는 어디까지 번져나갈까? 중동 발 외신기사를 접하며 조만간 훨씬 큰 규모로 유사한 사태가 재현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지 못하는 건 단지 과민한 탓일까?

<이강택/ KBS PD>


 

입력 : 2009-01-04 17:38:28수정 : 2009-01-04 17: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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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파생상품 ‘시한폭탄’… 견제도 감시도 없었다

ㆍ금융위험에는 장벽이 없다-허술한 방어벽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극단적인 저금리정책으로 과잉유동성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 부동산 거품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것이 위기의 기본적인 배경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단기금융수익성에 혈안이 된 미국 투자은행들의 CEO들이 높은 차입비율에 기대어 위험천만한 파생상품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시적인 개별 기업이나 국가 차원에서 이런 행태에 대해 제대로 견제와 감시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일반 상업은행에 적용되는 레버리지(차입) 비율보다 두 배 이상 높은 30 대 1의 높은 레버리지를 이용했다. 과연 이들은 이렇게 높은 레버리지를 이용하여 무엇을 했던 것일까?

이들은 부동산담보대출채권을 증권화하여 새롭게 만든 부동산담보부증권(RMBS), 이 부동산담보부증권에 여러 가지 다른 채권(학자금대출·기업대출·카드론·자동차할부대출 등)을 혼합하여 리스크와 수익의 조합을 기준으로 조성한 다양한 형태의 부채담보부증권(CDO), 그리고 CDO 등의 디폴트 리스크(부도위험)에 대비하여 일정한 보험료를 지불하면 원금을 보전해 주는 보증보험계약의 일종인 신용부도스와프(CDS) 등의 거래에 뛰어들어 고수익을 추구했다.

그 결과 특히 위험이 아주 높은 신용부도스와프(CDS) 거래가 크게 성행했다. 2007년 2·4분기에 무려 62조1732억달러에 달했던 명목상의 CDS 계약 잔액이 2000년에는 아예 제로였던데서 알 수 있듯이 CDS는 지난 8~9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죽했으면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신용파생상품을 가리켜 지난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금융혁신이라고 했을까.

하지만 이렇게 급팽창하는 CDS 시장에 여러 가지 문제가 내재해 있었다. 우선 증권거래 규제를 총괄하고 있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크리스토퍼 콕스 위원장이 2008년 10월23일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공청회에서 한 증언이 문제의 핵심을 잘 말해 준다.

콕스 위원장은 CDS 시장에는 규제감독기관이 없고 시장형 금융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정보공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나아가 그는 CDS 거래에서는 현물증권을 보유할 필요가 없어 CDS 거래가 일종의 공매도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근거로 콕스 위원장은 CDS에 대한 규제권한을 SEC에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의회에 요구했다.

지난 몇 년간 베어스턴스,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투자은행들은 CDO를 판매함과 동시에 CDO의 디폴트 리스크에 대한 보험 상품인 CDS를 동시에 판매했다. CDO의 디폴트 리스크를 우려한 투자가들은 리먼브라더스로부터 CDO를 매입함과 동시에 리먼에 이에 대한 보험료인 CDS프리미엄을 지불했다. 문제는 CDO의 디폴트 리스크가 빈발하면 CDS를 판매했던 투자은행이나 AIG 같은 보험회사들에 대해 CDS 계약이행요구가 쇄도하게 될 때 이에 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CDS 판매자인 투자은행이나 보험회사들에 대해 보증에 필요한 준비금규제가 전혀 없어 CDS 판매자가 보증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CDS 거래의 대부분이 장외거래여서 일단 커다란 디폴트 리스크나 거대 중개업자가 파산되면 결제 및 청산에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해 9월처럼 주요 거대 CDS 판매자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AIG의 부실이 커져 ‘계약 상대방의 리스크’가 커지면, 결제 및 청산 리스크를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이 계약 상대의 리스크에 더 민감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지난해 9월 말 CDS 스프레드가 급속히 상승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신용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이렇게 허술해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1990년대 이후 파생상품거래량이 크게 증가하여 그 위험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린스펀 FRB, 로버트 루빈 전 재무부 장관, 레빗 증권거래위원장 등은 오히려 파생상품거래에 대한 공적 규제를 완화했다. 당시 FRB의 한 이사가 그런스펀 주도의 파생상품 규제완화에 대해 여러 차례 반대와 이견을 제출했지만 그린스펀은 그의 충고와 제안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당시 상품선물거래위원장만 CDS 거래에 대한 공적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린스펀과 루빈에 밀려 이렇다할 만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런 역학 구도에서 나온 파생상품거래에 대한 대폭적인 규제완화법이 바로 ‘2000년 상품선물현대화법’이다.

실제 이 법의 제정으로 CDS와 같은 고위험 신용파생상품이 아무런 규제 없이 거래될 수 있게 되었다. 애시당초 이 법은 업계의 자율규제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최근까지 드러난 것처럼 단기고수익창출이 지상의 목표인 업계에서 자율규제가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했다.

지난해 9월 말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결과적으로 리먼브라더스를 제외한 4대 투자은행에 대한 규제감독권한이 모두 FRB로 이양됐다. 이로써 금융감독기관으로서 FRB의 지위가 이전보다 더 공고해졌다.

문제는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은행지주회사에 편입된 증권자회사에 대한 규제감독권한은 여전히 SEC에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때문에 향후 미국의 금융감독체제가 얼마나 잘 작동할 수 있을지는 FRB와 SEC가 얼마나 서로 긴밀한 협조 관계하에서 거대 금융기관들을 효율적으로 감독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무기력하고 초라한 위상을 여실히 드러낸 SEC가 어떻게 자신의 위상을 재정립할 것인지가 아주 중요하다. 우선 SEC가 CDS 거래에 대한 규제권한을 확보할 수 있을지, CDS 거래의 중앙결제기관을 창설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SEC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통합하여 증권·파생상품거래업무와 행위규제의 책임당국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바로 이 문제가 버락 오바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SEC의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주어질 수 있을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입력 : 2009-01-04 17:48:29수정 : 2009-01-04 17: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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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금융위기를 보는 두개의 시각

노동·자본간 불평등 심화…금융 독재는 역사적 침몰

금융위기 속 ‘마르크스의 반격’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 ‘우파의 이념적 승리’는 완료됐고, 모두가 만족한 가운데 자본주의는 사회구조의 결정적 형식으로 굳어졌다.” 우리를 거의 설득시킨 이 담론은 2008년의 금융 대지진으로 무너졌다. 런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08년 10월13일은 영국 자본주의 시스템이 실패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 평가했다. 뉴욕 월가의 시위대는 “마르크스가 옳았다!”라는 팻말을 치켜들었다.

<자본론> 등 한 세기 반 이전 마르크스의 저작 모두를 현 상황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사회상을 제시한다. “금융 귀족이 법을 명하고 국정을 지도하며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어 여론을 지배한다. 이들이 전 영역에서 생산에 의하지 않고 타인의 부를 강탈하면서, 매춘, 사기 등을 재생산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는 1848년 혁명 직전 프랑스의 묘사다.

금융위기 원인으로는 복잡한 금융 상품의 휘발성, 자체 규제 불능의 자본시장,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 등이 거론된다. ‘실물경제’에 대한 ‘가상경제’의 시스템 붕괴가 원인이란다. 하지만 ‘가상’의 비극은 ‘실물’에 뿌리를 둔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은행 융자를 안고 집을 산 수백만 미국 가계의 부채상환 불능 상태에서 야기됐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축적의 일반 원칙’을 보자. 그는 자본가 계급이 생산의 사회적 조건을 사유할 경우 “생산 발전의 모든 수단이 지배 수단, 생산자 착취 수단으로 전복된다”고 설명한다. 생산자들이 희생되는 동안 축적된 자본은 자체 동력을 얻어 광적으로 비약한다. ‘한 극점에서의 부의 축적’은 정반대 극점에서 ‘비례적 빈곤 누적’을 초래, 격렬한 상업·금융위기를 낳는다.

신용위기의 파괴력은 생산위기로 전화됐다. 이는 노동·자본 간 분배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최근까지만 해도 시장 자유주의의 적실성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용납하지 않던 자유주의자들이 자본의 ‘도덕화’, 금융 ‘규제’ 등 위기 해결책을 들고 나선다. 자본의 도덕화란 블랙코미디다. 자유경쟁 체제가 망친 사회 미덕은 바로 ‘도덕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진정 도덕적 경제생활을 원한다면, 악덕 기업주의 잘못 따위 지엽이 아닌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 모든 개인적 행위들 너머 자본주의 원칙, 그게 문제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부를 창출하는 수단, 상품으로 전락시킨다. 물론 국가의 규제 기능으로 사회의 비도덕을 개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 감세, 우정 민영화를 벌이는 사르코지 등 우파 정권에 규제자 역할을 기대하는 일은 순진하거나 위선적인 짓이다.

사회적 관계가 근본적으로 재고돼야 한다. 마르크스는 <1844년 수고>에서 ‘소외된 노동’의 개념을 고안했다. 임금 노동자가 자신의 물질적, 도덕적 결핍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위해 부를 창출하는 저주스러운 상황을 뜻한다. 산업재해, 정리해고, 저임금 등 오늘날 임금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 이 개념을 뒷받침한다. 자본은 생산자들을 끊임없이 생산 수단에서 괴리시키고, 무한경쟁 상태로 내몬다.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 이념적 과정으로 생산자를 포섭, 종속시킨다.

금융위기는 인간소외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무도 위기를 원치 않았지만 모두 위기에 노출된다. 자본주의는 ‘일반화된 규제 철폐’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여 규제 부재의 황무지를 만든다. 스스로 규제할 능력이 결여된 체제는 구성원에게 엄청난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는 즉시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대안은 동유럽에서 실패한 공산주의 ‘실험’ 탓에 왜곡당한다. 스탈린-브레즈네프식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로 오인되는 동안 사람들은 진정한 ‘공산주의’의 의미를 도외시한다. “다른 사회란 파멸적 유토피아일 뿐이다. 우리는 인간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는 냉소가 퍼진다.

자유주의 사상에서 ‘인간’은 사회로부터 유래되지 않은 자생체이고, 오직 자신의 이익에 충만한 동물(호모 에코노미쿠스)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지배하는 사유 재산의 사회만 가능하다고 한다. ‘경쟁적 인간’ 이데올로기는 ‘살인자가 되자’는 비인간적 교육을 권장한다. 일확천금의 광풍 속에 전방위적 탈문명화를 진행한다. 하지만 결국 금융독재의 역사적 침몰 맨 밑바닥에 자유주의적 인간 담론이 깔려버렸다.

마르크스는 자유주의 담론에 대항할 혁명의 초안을 제시한다. 그는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자신의 여섯 번째 테제에 “인간의 본성은 개별적으로 분리된 개인의 고유한 어떤 추상물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전체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다”라고 썼다. 자유주의 담론과 반대로 ‘인간’은 ‘인간의 세상’에서 유래한다. 인간과 사회는 서로 상대방을 발달시킨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으며, 이는 사회를 바람직하게 바꾸는 조건하에서 가능한 것이다.

<루시앙 세브 프랑스 공산당 중앙위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췌(www.ilemonde.com) >

▲마르크스

자본주의는 내재적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극복 수단들이 결국 더 큰 한계를 새로 만들어낼 뿐이다. (자본론 3권)


금융거래 활동이 스스로 가치를 생산해낸다는 생각은 ‘가장 바보 같은 망상’일 뿐이다. (자본론 3권)


시장실패 아닌 정책 잘못…위기본질 지나친 개입 탓


신자유주의는 실패했나?

최근 비우량 담보 시장에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가 혼란에 빠지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시장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규제 완화와 작은 정부 때문이라고,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선언하면서 큰 정부의 도래를 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같은 진단과 해법은 금융위기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접근에서 나온 것이다.

그 본질에 접근하는 중요한 단서는 상환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이다. 이 담보 대출의 부실화에서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가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을 늘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야기한 원인이다.

그 원인은 세 가지이다. 첫째로 1995년 지역재투자법(CRA)을 대폭 개정해 은행들로 하여금 저소득층에 대한 담보 대출을 늘리도록 했다. “누구나 내 집 갖기”라는 주택 보급 정책을 위해서였다. 의회와 정부는 연방주택청(FHA)이나 주택도시개발부(HUD) 등 정부기관을 동원해 은행들에는 대출심사 기준을 대폭 낮추도록,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에는 비우량 주택 담보와 이에 근거한 유동화 증권을 구매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러자 은행들은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위험한 담보 대출을 늘리고 이를 유동화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주택가격의 버블을 야기한 두 번째 요인은 서민들의 주택보유를 확장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모기지 전문회사의 도덕적 해이다. 정부와 의회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손실에 대한 보증을 약속했다. 그래서 그들은 손실은 생각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비우량 담보 구입과 이에 기반을 둔 유동화 증권의 규모를 늘려갔다. 그 결과는 서민층 주택구입의 활성화와 주택가격의 버블이다.

금융위기의 세 번째 원인은 연방준비은행의 방만한 통화정책이다. 심지어 1%라는 초저금리정책을 통해서 유동성을 확대시켰다. 은행들은 늘어난 유동성을 소화하기 위해 저마다 대출처를 찾아 나섰다. 이것이 주택시장의 과열로 연결되었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자유와 책임, 작은 정부를 국정원리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저버린 정책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금융위기는 시장실패가 아니라 정부정책의 잘못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시장규제와 손실의 보증이 없었더라면, 유동성을 과잉 공급하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위기가 월가의 탐욕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은 옳지 않다. 탐욕은 자기 이익추구로서 특수한 사람이나 상황에서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늘 어디에서나 목격되는 인간의 불변적인 심성이다. 따라서 이것을 가지고는 평시와는 전적으로 상이한 금융충격의 발생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탐욕을 위기로까지 몰고 간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에 거침없이 풀린 돈과 정부의 시장 개입이 그 이유다.

금융위기가 규제 완화의 탓이라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80년대 말 이래 지속적으로 규제가 증가해왔는데 규제가 가장 많이 늘어난 부문은 주택 부문이고 그 다음이 금융 부문이다. 99년 ‘그램-리치-브릴리 법’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이 허용됐다. 이런 규제 완화가 금융위기의 원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겸업이 금지됐더라면 이번 금융위기로 상업은행들이 신용위기에 몰려 있던 투자은행을 흡수 합병하지 못해 위기의 여파가 더욱 극심했을 것이다.

감독부실이 위기의 원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식 문제 때문에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감독이 어렵다. 감독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감독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식이 필요한데 정부는 그런 지식을 전부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정부의 감독은 늘 부실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감독에 필요한 지식과 관련해 시장이 정부보다 현명하다. 시장은 그 같은 지식을 발견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교란되면 ‘발견의 절차’가 작동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시장을 교란시킨 요인이다. 그것은 방만한 통화 공급과 정부의 시장 개입이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정부의 개입임에도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문제의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때문이다. 시장 개입은 경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지금의 고통을 미뤄 나중에 더 큰 고통을 겪을 위험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고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손놓고 뒷짐지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확립하는 일이다. 개인의 책임과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제도와 규제들을 걷어 내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고 세금을 낮춰야 한다. 그러면 우리 경제는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정도(正道)다.


▲하이에크

국가의 경제 개입은 모든 개인을 노예로 만든다. <노예의 길>(1944)

정부의 시장 개입은 문제이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자유의 헌법>(1961)

세상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은 치명적 자만이다.

<치명적 자만:사회주의의 오류>(1988)

<민경국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입력 : 2009-01-11 17:59:13수정 : 2009-01-11 17: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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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대공황과 현재 위기 비교

ㆍ친부자 정책따른 소득분배 악화
ㆍ1920년대말 美상황 그대로 재현

최근의 미국발 경제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미국의 소득분배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상위 10%가 가져가는 소득의 비중은 1910년대 후반 40%였으나 1920년대 후반에 들어 45% 근처에 이르렀고, 1928년에는 더욱 악화돼 50%에 근접한 뒤 대공황을 맞았다. 2차 대전 이후 이 수치는 35% 수준을 유지했으나 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후 지속적으로 나빠져 마침내 2006년 50%를 넘어섰다. 마치 상위 10%가 소득의 절반을 가져가는 현상이 경제위기의 척도가 되는 양 두 번의 역사적 경험에서 모두 경제위기가 초래되었다.

소득분배 악화는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 등 경제환경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정부 정책이 핵심적 요인이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시작된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은 2000년대 부시 행정부의 친기업·친부자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는 1920년대 재무부 장관이었던 멜론과 상무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을 역임한 후버가 추진한 정책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러한 정책은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측면도 있으나 정부가 부자의 소득이 늘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내세워 부자와 대기업만을 위한 정책을 편 탓에 위기를 증폭시켰다. 1920년대에는 대량생산이 효율성을 좌우하게 되자 시설 확충 경쟁이 일었고, 이는 주기적인 경기침체를 가져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후버는 기업연합회를 통해 가격과 생산을 조절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대규모 기업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만 심화되었고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기업집단들의 과잉투자는 계속됐다. 80년대 미국은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규제완화 정책을 폈고 그 결과 금융산업의 비중이 커졌다. 그러나 비대해진 금융산업은 계속 규제완화를 요구했고 이것이 금융건전성 감독을 훼손하게 되었다.

거시경제 측면에서 보면 소득분배 악화는 결국 소비여력을 축소시킨다. 부유층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외형적으로 경제는 성장하지만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실질 구매력이 줄어들면서 경제전체의 수요기반이 축소된다. 이러한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구조조정 대신 문제를 피상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은 거품을 조장하게 되는데, 그 결과 주식 거품과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며 경제위기를 촉발했다.

대공황과 현재의 경제위기에는 차이점도 있다. 1920년대 당시 경제학은 경제위기를 예측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반면 이번에는 수년 전부터 많은 경제학자들이 미국 경제구조의 취약성을 지적했음에도 시장과 정책당국은 철저히 묵살해왔다. 이것은 경제의 안정을 바라는 국민경제의 요구에 반하는 정치·경제학적 장치가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경제위기는 기득권 세력의 몰락을 가져와 이러한 장치를 정지시킬 수 있는 체제전환을 가능케 한다.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정책이 구조의 전환을 가져왔고, 이번에도 그런 체제 전환의 성공 여부가 위기 극복의 최종 시험대가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차이점은 1930년대 미국은 세계 산업의 중심이었지만, 현재 미국은 대부분의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 전자나 자동차 등 제조업의 취약성을 보완해 온 금융산업이 무너짐에 따라 미국의 성장동력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이러한 미국의 구조적 문제는 필연적으로 국제적 갈등을 초래한다. 새롭게 세계 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른 중국을 포함해 여타 국가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국제적 공조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갈등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는 경쟁력을 갖춘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 챙기다 결국 파시즘이 발호했고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맞기도 했다.

경제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정책 대응의 효과를 주목해 보아야 한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1930년대와는 달리 무제한적인 재정·금융정책을 집행하고 있는데 그 성공여부는 확신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앞서 지적한 미국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 없이 재정·금융정책만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홍종학 |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 2009-01-11 18:00:27수정 : 2009-01-11 18: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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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신자유주의 체제가 위기 원인” 41%

ㆍ금융위기 원인과 대안…국내 전문가 51명 설문

경향신문이 전문가 51명을 대상으로 금융위기의 원인을 물은 결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이란 답변이 가장 많았다. 위기의 대안으로는 “시장 우위 구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신자유주의 체제 문제, 정책의 실패, 자본주의 자체의 한계 순으로 응답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에 따른 시장의 자기붕괴’라고 밝힌 응답자가 21명(41.17%)으로 가장 많았다. 이 응답자는 주로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등 비판적 학자, 시민운동가들이었다.

다음으로는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과잉, 부실한 금융감독 체계 등 정책의 실패’라고 답한 이가 14명(27.45%)이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 등 주로 시장 자유주의자들과 경제연구소 관계 자로부터 나왔다.

또 ‘생산관계 모순 등 자본주의 자체의 본질적 한계’란 응답도 7명이었다. 대부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견해였다. ‘신자유주의의 오류와 정책실패의 복합’이란 응답은 4명이었다. ‘방만한 통화정책과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이 문제라는 지적(1명)도 있었다. 이밖에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가 아닌 로마 제국처럼 수없이 명멸해간 많은 왕조와 같다”(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등 4명의 기타 의견이 있었다.

‘향후 세계 경제가 추구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는 ‘시장 우위 체제에 대한 개선’을 제시한 의견과 ‘시장 우위 체제 유지’ 의견이 22명(43.13%)씩 나뉘었다. 비판적 학자들과 시민운동가들이 주로 정부와 시민의 시장 개입 강화 등 체제 개선을 주문했고, 시장 자유주의자들과 경제연구소 관계자들이 주로 시장을 중시하는 답변을 내놨다.

체제 개선 의견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 체제 모색’이란 답변이 12명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정부 개입 강화, 복지 강화 및 자본 자유화 후퇴’란 답변이 10명으로 나타났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이미 유럽에서 제약사의 생산 계획에 시민이 참여하는 등 비사회주의 형태의 참여계획경제가 대안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체제 유지 의견으로는 ‘시장 우위 체제를 유지하면서 세계 경제 구심점 다극화’라는 응답이 15명으로 가장 많았다. 또 ‘시장 우위 하에서 정부 개입 강화 및 세계 경제 구심점 분산’이란 응답이 ‘미국 중심의 시장 우위 체제 지속’이란 보수적 응답과 함께 각각 3명씩으로 조사됐다. 신자유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도 1명 있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최소한 미국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를 넘어설 대안이 있어야 한다”(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국내 차원에서는 제조업과 중소기업 중심의 생산기반이 강화되고, 노동배제적 생산체제를 재편해야 한다”(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등이 제시됐다.

설문에는 경제·경영학자 21명, 비경제 분야 학자 13명, 경제연구소 관계자 11명, 시민운동가 6명 등이 참여했다.

<장관순기자>

입력 : 2009-01-11 18:07:27수정 : 2009-01-11 1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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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역사로서의 현재 -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ㆍ산업순환상의 위기·지배 이데올로기의 위기·패권국가의 위기

“현재의 위기는 약 10년마다 오는 산업순환상의 위기에, 시장만능론이라는 30년짜리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기, 그리고 100년에 한 번쯤 오는 패권국가의 위기가 겹쳐진 것이다.”(경향신문 2008년 12월3일자 경제칼럼) 말하자면 ‘3중의 위기’인 셈인데 1929년 즈음의 대공황기가 이에 해당하는 유일한 역사적 사건이었을 만큼(물론 패권국가 위기의 위치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지만) 우리는 지금 좀처럼 체험하기 힘든 역사의 고비에 서 있다.


‘3중의 위기’

그림에서 보듯이 우리는 1945년 이후 대체로 10년마다 찾아오는 6번째 산업순환상의 위기를 맞고 있다. 금융스캔들만 봐도 80년대 말에 터진 블랙먼데이(주가대폭락)와 저축대부조합(S&L)사건, 90년대 말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사태, 2001년의 엔론사태가 있었고 이런 문제들이 그때 그때 미봉되다가 급기야 수습 불능의 시스템 위기로 발전한 것이 이번의 위기이다.

60~70년 주기의 콘드라티에프 파동으로 본다면 45년부터 70년께까지의 호황(A국면)에 이어 그 이후 전개된 하강(B국면)의 마지막 단계에 우리는 서 있다. A국면은 주지하다시피 포드주의·복지국가·케인스주의가 일궈낸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 오랜 호황과 재정확대정책이 불러온 인플레이션, 달러본위제에 따른 미국의 경상수지 악화는 결국 71년 닉슨의 금태환 정지 선언과 73년의 오일쇼크로 이어져 ‘영광의 30년’은 끝을 맺었다. 공화당 후보 닉슨이 “우리는 모두 케인시언”이라고 선언한 바로 그때 케인스주의는 이미 막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 레이건과 대처가 등장하면서 금융자본 우위의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렸다. 이 흐름은 라틴 아메리카 외채위기를 겪으면서 90년대 초에 감세와 민영화, 그리고 규제완화라는, IMF-미 재무부-월스트리트 3각동맹의 ‘워싱턴 컨센서스’로 정식화되었다. 80년대부터 2007년까지 미국은 평균 2.9%의 경제성장을 거뒀는데(50~60년대에는 평균 4.25%) 성장의 과실은 주로 최상위 계급에 집중되었다. 69년도 말 53%를 넘어섰던 노동분배율은 클린턴 집권 8년 동안 잠깐 반등했던 것을 제외하곤 줄곧 떨어져서 현재 45%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상층의 금융자본은 결국 부동산·주식거품을 최대한 부풀리는 ‘허구의 성장’을 꾀할 수밖에 없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 그대로 30년간 우리를 지배한 시장만능의 논리와 신자유주의는 이론적으로도, 실제로도 허구였다.

미국의 부족한 민간소비와 정부지출을 메운 것은 외채와 전쟁이었고 이것은 곧 세 번째의 장기 위기를 불러왔다. 월러스틴, 아리기 등의 세계체제론자들에 따르면 미국의 패권이 발흥한 것은 1873년께이며 패권이 확립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였다. 이후 70년대 말까지 안정적이던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90년대 IT붐에 입각한 이른바 ‘신경제’는 미국을 슈퍼파워로 부활시킨 듯했지만 이후 금융화의 급진전과 이라크전은 결국 미국을 좀처럼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장 쉬워 보이는 10년짜리 위기의 탈출도 만만치 않다. 폴 크루그먼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경험에 비춰 볼 때 2년간 2조달러 이상의 재정을 쏟아붓고 그 이후로도 마이너스 이자율 상황을 상당 기간 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루비니의 말대로 지금 미국 정부는 ‘최후의 대부자’인 동시에 또한 ‘최후의 소비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경상수지적자와 재정적자가 모두 GDP의 6%에 이른 파산상태의 미국경제가 이런 대규모 지출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과연 오바마는 이미 여러번의 금융스캔들이 드러낸 잘못된 유인구조와 부적절한 규제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을까? 예컨대 회계법인은 기업의 분식회계를 도울 유인을 가지고 있고 신용평가회사는 실제보다 높은 평가를 내렸다가 문제가 생기면 한꺼번에 등급을 내려 위기를 촉진하며 경영자들 역시 단기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제도, 그리고 ‘그램-리치-브릴리 법’을 비롯해서 투자은행과 파생상품의 규제를 포기하게 만든 수많은 제도를 바로잡고 연방은행에 시스템 위기의 관리라는 광범위한 목표를 수행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묶어 지주회사로 편입시키면 오히려 위기가 확대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비책은 마련하고 있을까? 서브프라임 모기지보다 훨씬 규모가 큰 CDS·회사채·자동차채권 등에서도 앞으로 1~2년 내에 추가로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농후한데, 과연 현재의 금융 대책만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스티글리츠의 비유대로 수혈을 아무리 해도 뇌출혈 환자가 건강해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근본적으로 월스트리트는 위기의 진원인 동시에, 세계의 자본을 불러들여 부채를 보전하며 또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황금거위’인데 오바마가 여기에 과연 칼을 댈 수 있을까?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먼이 아닌, 서머스와 가이트너를 백악관과 재무부에 포진시킨 것은 이 모든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글로벌 불균형 해결이 난제

더 큰 난제는 현재의 글로벌 불균형과 국제통화체제이다. 45년에서 71년까지는 금태환을 전제로 하는 달러 페그제로 이른바 ‘트릴레마’(자유로운 자본이동·고정환율제·독립적인 금융정책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을 선택할 수 없다) 가운데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포기한 것이었고, 70년대 중반부터는 셋 중 고정환율제를 포기한 체제로 서로 다르지만 달러가 기축통화임에는 변함이 없다.

두 체제 모두 강한 달러를 배경으로 A국면에는 유럽의 수출주도성장을, B국면에는 일본과 아시아 닉스(NICs), 그리고 이어서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의 수출주도성장을 부추겼다. 모든 기축통화국가는 강한 통화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국제질서 유지의 비용을 국제수지 악화라는 형태로 치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미국의 경상수지가 적자를 넘어 80년대 이래 점점 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데 있다. 앞으로 미국이 금리를 올리든, 아니면 인플레이션으로 대응하든 아시아 국가들이 대외지불준비금(외환보유)을 달러로 보유할 유인은 점점 약해질 것이다. 이번의 금융위기는 이런 상황에 최후의 일격을 날린 셈이다.

이른바 ‘포스트 브레턴우즈’ 체제는 아마도 과거 유럽통화체제(EMS)의 복합바스켓 제도일테지만 이것이 공식 제도가 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아이켄그린이 예측하는 대로 달러와 유로가 사실상 복수의 기축통화로 기능하다 여기에 아시아 통화(위안이나 엔 또는 아쿠(ACU))가 추가되는 정도가 현실적인 경로가 아닐까?

어느 경우든 미국의 달러 패권은 무너진다.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압도적 우위를 자랑하지만 이라크전에서 보듯이 한 나라를 완전히 제압하기에도 역부족이다. 현재의 10년짜리 위기가 파국까지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앞으로 꽤 오랫동안 우리는 지극히 불안정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기존 패권은 무너지고 있지만 신흥 패권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 신자유주의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축적의 원리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도 80년대 중반의 플라자협정, 그리고 미일반도체협정을 떠올리며 만만한 나라에 비용을 치르게 하는 단기 해법을 선택할 것이다. 다만 이제 그 상대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사실이 미국의 고민일테고 훨씬 만만한 상대로 한국이 자동차 등에서 먼저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목숨을 건 환율전쟁, 금리전쟁, 통상마찰, 심지어 군사적 전쟁…. 그 한복판에 한반도가 있다.

<정태인 | 경제평론가 · 전 국민경제 대통령비서관>


 

입력 : 2009-01-11 18:05:55수정 : 2009-01-11 18: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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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1부-(8)끝을 알 수 없다

ㆍ“최악위기”엔 공감… 언제 끝날지는 진단 못해

1. 금융위기의 심각성

전문가들은 미국발 금융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로 평가하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번 위기는 대공황과 닮은 점이 많다”고 밝혔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미국 경기진단을 총괄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 전 의장인 마틴 펠트스타인 미 하버드대 교수도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고 진단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저금리 정책을 펴 글로벌 금융위기를 배태한 장본인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은 “한 세기에 한 번 있을 정도의 사건”으로 평가했다. 그린스펀은 앞서 지난해 3월 금융위기를 예고할 때만 해도 “2차 대전 이후 최대 금융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1987년 8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세계 경제대통령’으로 군림해온 그린스펀의 이 같은 평가는 생각보다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유엔 사무총장 특별보좌역을 맡고 있는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번 위기를 “1970년대 이후 최대 위기”로 진단했다.


2. 시장 규제의 실패냐, 신자유주의 몰락이냐

금융위기가 단순히 시장을 좀 규제하면 해결될 일인지, 아니면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 몰락인지, 더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을 예고하는지에 관해서는 엇갈렸다.

2년전 금융위기를 예언한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 <역사의 종말>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몰락이라기보다 시장 규제의 실패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루비니는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의 종말로 보지 않고 “시장 스스로 자기 규제를 할 수 없는 현저한 시장의 실패”로 규정했다. 후쿠야마는 미국 주식회사의 종말로 본다. 그는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로 미국은 ‘자본주의 비전’과 ‘민주주의 신장’이라는 두 가지 국가 브랜드가 손상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폴 크루그먼은 “시장 만능주의가 빚은 재앙”으로 진단했다. 그는 미국 금융체제는 붕괴하지 않을 것이지만 불황은 오랫동안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몰락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노엄 촘스키 미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시장 만능주의가 낳은 금융자유화 시대의 종말”로 보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확산 전략인 ‘워싱턴 컨센서스’는 대부분 서구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맹신이 현재의 위기를 불러왔다면서 “시장과 국가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회주의 잡지 ‘먼슬리 리뷰’ 편집인인 존 벨라미 포스터 미 오리건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종말이며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의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장하준 교수도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라고 지적했다. 진보적 지식인인 월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는 위기의 원인이 “지배적인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주의 태도가 정부의 규제를 불가능하게 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이자 <더 쇼크 독트린>의 저자인 나오미 클라인은 “월스트리트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에 있어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공산주의 종식을 가져온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는 금융 다음 붕괴 대상은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고 내다봤다.

세계 반미 전선의 선봉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본주의가 종말로 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이 말은 ‘정치적 레토릭’의 성격이 크다. 자본주의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시각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촘스키 교수에 따르면 현 체제는 국가의 개입이 활발한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다. 따라서 그는 “금융기관의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국가 자본주의의 핵심 기관은 기본적으로 변하지도 영향을 받지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3. 미국의 헤게모니는 퇴조할 것인가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되기는 하지만, 다른 헤게모니에 의해 대체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인 진단이다.

촘스키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상실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 등 국제적으로 신자유주의 질서는 무너진다 하더라도 세계 최대의 자체 시장을 가지고 있는 경제력, 나머지 국가들의 국방비를 합한 것과 견줄 수 있는 가장 강하고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군사력, 세계 곳곳에 있는 군사 기지 등을 감안하면 미국의 헤게모니는 쉽게 무너질 수 없다고 진단한다.

촘스키는 대신 지난 35년 동안 형성된 3극 체제 가운데 중국·일본·한국 중심의 동북아 센터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리오 패니치 캐나다 요크대 교수도 G20 정상회의가 워싱턴에서 열린 점, 모든 사람들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의 지도력에 기대를 걸고 있는 점을 들어 여전히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국가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파워에 대한 글을 써온 미 월간지 ‘애틀랜틱’ 기자 로버트 캐플란은 미국의 헤게모니 퇴조 관련 논의는 과장됐다고 밝혔다. 그는 대영제국의 해군력이 1890년대부터 쇠퇴했지만 대영제국은 반세기 동안 2차례의 세계대전으로부터 세계를 구할 만큼 강대국으로 남았다는 점, 1857~58년 인도의 세포이 반란 사건을 계기로 인도가 영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지만 영국의 인도 지배는 한 세기가 지나도록 계속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다만 캐플란은 미국이 다른 국가와 연합하는 방법으로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교수도 “주요 패권국가들은 각자가 충분할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 타협을 통해 최상의 조합을 모색하려 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무너지고 다극체제가 형성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4. 아무도 위기의 끝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위기는 어디까지 갈 것이며, 어디에서 언제 끝날 것인가. 위기의 지속 기간에 대해 짧게는 올해 상반기까지, 길게는 4~5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금융위기 초기에 “이르면 2009년 초 바닥을 친 뒤 상반기 중 침체국면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올해 초 열린 미 경제학회 연례회의에서는 “오는 2010년까지 주식시장 약세와 부동산 시장 붕괴가 지속될 것”이라며 예전에 비해 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FRB 부의장을 지낸 앨런 블라인더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제 갓 시작된 침체는 갈수록 길어지고 깊어질 것”이라면서 “2010년 1·4분기에도 경기부양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금융 통화부문 전문가인 배리 아이켄그린 버클리대 교수는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데는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면서 2010년에라도 전 세계가 경기침체가 끝나고 회복세로 돌아서면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마틴 펠트스타인 교수는 “최소 1년이 더 지나야 회복이 시작될 것”으로 진단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각 정부가 취하는 대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최소한 18개월 동안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월러스틴 교수는 경기침체가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4~5년 안에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 끝을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조찬제기자>


 

입력 : 2009-01-11 18:10:13수정 : 2009-01-11 18: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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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자본규제 시급” 한목소리

ㆍ1부 - (9) 신자유주의는 몰락할 것인가

‘신자유주의는 몰락한 것인가’를 주제로 한 1부 토론에서 토론자들은 미국 금융 시장은 과도한 자유를 누렸고 적절한 규제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엇갈렸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지금 위기는 신자유주의가 빚어낸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퇴조의 길을 갈 것”이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신자유주의 쇠퇴는 분명하지만 신자유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대안 모델들이 싸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금의 위기로 정부의 비중이 잠시 더 커지긴 하겠지만 경제가 회복되면 결국 다시 시장은 자신의 힘을 되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드러난다고 해도 정부로부터 자본을 해방시키려는 움직임이 크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쇠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발제 1 - 장상환 경상대 교수
빈부차 클수록 공황 심…규제완화 지속 어려울 것

금융 위기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로 국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노후에 대비해 펀드에 가입한 분들이 피해를 보고,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기 어려워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퇴조의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토론회

신자유주의는 1970년 나타났던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했다.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가들의 수익을 개선해주고, 금융 산업 내에서도 규제를 풀어 비정상적인 파생상품이 나오는 환경을 만든 게 신자유주의다. 규제 완화가 빚어낸 모순들이 지금의 대공황과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대공황 이후 케인스주의 시스템이 등장했던 배경도 자본활동이 너무 방만하게 이루어지면 위기가 닥친다는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본활동을 규제하고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노동자와 약자를 보호했다.

자본주의경제 체제에서 경제 순환 때문에 나타나는 침체기는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 강도가 너무 심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빈부격차가 심해질수록 공황의 강도가 심해지는데 1929년 대공황 직전인 1927년쯤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였다. 그 뒤로 세금을 많이 거두고 재분배를 강화해서 194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말까지 30~35%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규제 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상위 계층의 부는 점차 늘어났고 2006년쯤에는 대공황 때의 수준인 50%로 되돌아갔다. 스톡옵션 등을 통해 고위 임원들은 많은 소득을 가져갔고, 그들은 또한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서도 게임을 펼치며 부를 늘려갔다.

이렇게 미국 내에서 소득 분배가 점점 불평등해지면서 불거진 문제가 저소득층들의 주거 문제다. 이들에게 미국 정부가 어떻게 했나. 주택 보조금 제도라는 복지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는데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집을 사라고 했다. 이게 바로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이고, 이번 전 세계 경제 위기의 주요한 요인이 됐다. 결국 ‘복지의 후퇴’가 이 같은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발제 2 - 김상조 한성대 교수
국가와 시장의 역할 배분…시민사회 건강성이 관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보면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두 가지 특수 상품이 나온다. 바로 화폐와 노동력이다. 이 두 가지가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이것을 사회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특수상품으로 보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근본적 오류는 특수상품의 특수성을 망각하고 단순한 시장교환 대상으로만 취급했다는 데 있다. 이 특수상품의 재생산을 전적으로 시장에 일임해버린 게 바로 ‘시장만능주의’이다. 1980년대 이래 노동시장 유연화, 화폐를 다루는 금융산업에 일어난 대대적 규제 완화는 그를 증명한다.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핵심인 노동력과 화폐를 사회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시장에 맡기는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분명 쇠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러나 ‘쇠퇴’가 바로 ‘몰락’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대안 모델을 탐색하는 암중모색기가 진행이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대안 모델들이 치열한 싸움을 벌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삶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움직이는 기제는 시장과 국가다. 신자유주의는 중심축을 시장 쪽으로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경우인데 그 한계가 나타난 현시점에서는 무게추가 다시 한번 국가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또한 신자유주의 이전에 있었던 케인스주의를 되돌아봐야 한다. 금융 자본의 힘을 재규제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거치면서 붕괴됐던 중산층을 재건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냐가 문제가 된다. 그러나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는 것처럼 국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됐다. 국가와 시장의 역할 배분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인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시민사회의 건강성이다. 그러나 한국자본주의는 국가자본주의에서 곧바로 신자유주의로 건너뛰었기 때문에 한국의 시민사회는 시장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명확히 모른다. 그 역할을 지금부터 재정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 자본주의 재구축 과정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발제 3 -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정부 비중 확대되겠지만… 시장 자율적인 복원 가능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많은 비판과 지적들이 나왔다. 수긍하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호들갑스러운 부분도 있다. 1929년 대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시스템의 문제가 제기됐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이고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였다. 정부가 개입하면서 1932년 안정을 찾다가 다시 어려워지는 듯하더니 세계 2차대전 터지면서 전쟁 물자 생산과 공급과잉 설비가 정리되면서 경제가 완전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거대한 충격이 왔을 때 국가의 역할이 뭐였냐. 실질적으로 세계 2차대전이 살린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스템이 작동을 하다가 충격을 받는 때가 있는데 그 상황이 오면사람들은 “이제 이 시스템은 끝난 것 아니냐”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세계 2차대전 이후의 경험을 보면 그런 문제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 존재하는 특유의 복원력으로 해결해나간다. 정부와 시장이 적절한 관계를 맺어 문제들을 해결하고, 국가 간의 협력 등을 통해 제 모습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의 비중이 0이라면 극단적 자유방임이다. 정부가 100이면 극단적 사회주의다. 케인스주의는 정부의 비중이 약 50 정도이고, 신자유주의는 30, 자유주의가 10이라고 본다. 지금은 위기 상황이니까 정부 비중이 30에서 50~60으로 갈 확률이 높다. 다시 위기가 진정되고 여러 상황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정부 비중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시장은 힘이 있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려는 속성이 있다. 또한 정부 영향력을 배제하려는 속성이 있다.

금융 위기가 오는 과정에서 미국에는 분명 비정상적인 부분이 있었고 이것은 반드시 지적돼야 한다.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시장은 붕괴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현재 위기가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대공황하고는 비교가 안된다. 대공황도 헤쳐온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면 이 위기도 결국 특유의 복원력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장과 정부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조정되면서 회복되는 과정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

발제 4 - 임원혁 KDI 연구위원
신자유주의 폐해 있어도…자본은 지속적 국가견제

신자유주의는 세계 2차대전 이후 형성된 복지국가를 해체했던 일련의 정책으로 구현됐다. 규제를 완화하고, 특히 금융 정책에서의 규제를 없애고 노조를 약화시켰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여러 선진 경제국들의 정책 기조가 되었던 것은 케인스주의에 가까웠고 성과도 상당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서유럽 국가들은 사민주의에 가까운 복지 국가체제를 형성하고 경제를 발전시켰다. 미국은 1948년부터 1973년에 이르기까지 매년 2.8% 성장을 이뤘다. 노조 친화 정책과 누진적 조세 체계가 그 역할을 했다. 중산층도 견고하게 형성됐다. 그러나 결국 복지 사회의 성공은 쇠퇴로 연결됐다. 노조가 과도한 복지를 요구하면서 정당성과 힘을 잃었고, 대다수 중산층도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됐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나면서 유권자들은 과도한 복지 혜택에 대해 식상함을 느꼈다. 물론 유권자들이 의료보험과 같은 혜택을 싫어한 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복지혜택으로 벤츠 몰고 다닌다’는 에피소드들이 생기면서 반감이 생긴 것이다. 이때 대처와 레이건이 나타나 “민주 국가에서 자본은 소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정치적으로 세련되고 효과적으로 포장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신자유주의를 전파했다.

재미있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계속 힘을 발휘하면 생산성은 늘었는지 몰라도 소득 분배는 악화된다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가 대표적이다. 생산성은 연간 2.5%씩 늘어나는데 중산층의 소득은 같은 기간 2000달러가 줄었다. 미국 내에서 중산층이 흔들리면서 다시 진보 정치가 복귀되고 2008년 오바마의 승리로 연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가 쇠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복잡한 국제·정치적인 이유가 많지만 신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정부로부터 자본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수요는 상당하다.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신자유주의 폐해가 드러난다고 해도 자본은 계속 국가를 견제할 여건이 되고, 민주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유권자들이 본인들의 계급적 이해에 충실하게 투표를 한다는 보장도 없다.

<유희진 기자>


 

입력 : 2009-01-18 18:24:22수정 : 2009-01-18 18: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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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케인스주의도 보완책 필요” “10년이상 과도기 올수도”

■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 흔히 ‘신자유주의가 유지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우선 케인스주의적 방향이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케인스주의 한계다. 케인스주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기업의 수익률 악화에 대처 못하고, 임금과 물가를 연동시키려다 노동자 반발을 샀다. 그것을 넘어 경제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그 무엇이 필요하다. 금융이든 일반 기업이든 너무 사적 자본가들의 힘에 맡겨져 있다. 금융 기관의 공공소유화, 일반 기업 노조의 경영참여 등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을 통제해야 한다.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토론회

■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 신자유주의를 논할 때 주로 금융 문제에 초점을 두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루스벨트는 집권 초기 2년간 오늘날 미국의 금융산업, 자본시장의 주요한 구조를 만들었다. 이른바 뉴딜적 금융개혁이다. 당초 루스벨트는 공정거래위원회(FTC)에 강력한 자본시장 규제 기능까지 같이 주려고 했다 증권거래위원회(SEC)를 별개로 두는 쪽으로 틀었다. SEC는 신자유주의적 가설에 근거한 간접규제로 일관한다. 고작 2년 만에 기조가 바뀐 것이다. 윤창현 교수는 미국은 속도를 제한하고 우리는 속도를 올려야 균형이라고 했다. 노동력 및 화폐의 재생산 등 사회적으로 해결할 문제를 개인에게 맡긴 게 신자유주의의 문제다. 우리는 국가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바로 건너 뛰었다.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국가와 시장을 제어할 사회적 합의도 조성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당장 속도를 비교할 게 아니라 도로 상황과 교통경찰에 대한 신뢰 구축이 우선 아닌가.

■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시장경제는 결국 가계와 기업이 노동시장, 실물시장, 금융시장에서 만난다. 여기에 정부가 들어오면 정부가 시장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까. 정부가 시장을 대체한다는 것이 정말로 대체하는 것이냐, 아니다. 단지 운영주체만 공공적 주체로 바뀌는 것이다. 국유화된 은행이 있다고 금융시장, 간접금융 시스템이 없어지지 않는다.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했다면 정부가 혈세로 은행주식 좀 가진 뒤 돈을 대준 것뿐이다. 김상조 교수는 국가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바뀌었다고 했는데, 우리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한 적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신자유주의를 했다고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때문에 조금 시늉만 했다. 정부 역할을 더 줄여도 된다. 다만 마구 줄이는 게 아니라 규제할 곳은 해야 한다.

■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 민주 정부가 어떻게 자본을 제어하는가. 과거 뉴딜 때 보면 이른바 노동자·지식인 등 뉴딜 정치연합을 통해 정부가 조세·노동·복지 정책을 썼다. 이번도 2007~2008년 미국의 생산성은 늘었지만 중산층 소득이 감소한 점 등에 따라 중산층으로 하여금 민주당을 지지하게 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은 1930년대와 달리 세계적 차원에서 시장통합이 진행됐기 때문에 일국에서의 계층 타협이 쉽지 않다. 민주정부 차원에서 자본을 제어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 장상환 = 윤 교수 주장은 극단적이라는 생각이다. 선진국의 경우 복지국가를 거쳤기 때문에 국가가 상당히 탈시장화된 부분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면서 격차가 심해졌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목표 달성이 어려운 시대가 됐다. 신자유주의가 완충장치 없는 상태로 진행돼 극단적 모순이 나타났다. 우리는 자본의 힘이 너무 커졌다. 선진국의 국가 역할은 자본을 규제하고 노동을 보호하는 것이 더 크다.

■ 김상조 = 케인스주의 이후 신자유주의 부흥 징후는 60년대 말부터 나왔지만 신자유주의가 공고화된 것은 대처·레이건 이후나 사회주의가 몰락한 90년대 이후로 평가된다. 케인스주의 쇠퇴로부터 신자유주의 모델 작동까지는 10~20년 과도기가 있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자본주의 모습을 보게 되려면 10년 이상의 과도기가 필요할 것 같다. 신자유주의 성립 과정을 보면 하이에크 중심의 자유주의 복원 운동이 있었고, 프리드먼의 정책 통화 프로그램이 뒷받침했으며, 이를 레이건·대처가 현실 정치로 전환했다. 신자유주의 극복 대안도 이런 세가지 토대가 있어야 된다.

■ 윤창현 = 임원혁 위원은 신자유주의를 정부로부터의 자본 해방으로 표현했는데, 자유주의를 정치적으로 평가한 것 같다. 자유주의의 경제적 자유 측면은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가.

■ 임원혁 = 경제적 자유는 사실 우리만 하더라도 전제권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진입규제 등이 매우 강했다. 이에 대한 자유라 할 수 있다.

■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 = 19세기 초 경제적 자유란 장사하는 자유다. 전제왕권의 대기업 위주 중상주의에 대한 반발이다. 배제당한 중소기업들이 혁명 뒤 규제 철폐를 요구하며 자유방임주의를 외쳤다. 자유방임주의는 빈부격차와 공황이란 두 가지 병폐를 낳는다. 이에 대한 비판이 지속되다 2차대전 뒤 케인스주의 복지국가가 대안으로 자리잡았지만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았다. 개인주의 성향 미국 중산층은 사회보장제도에 반감을 가졌고 신자유주의를 지향했다. 하지만 자유방임으로 돌아갔더니 다시 빈부격차와 불황이 생겼다. 미국은 사회통합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럽식의 복지제도를 더 도입할 것으로 본다.

<장관순 기자>


 

입력 : 2009-01-18 18:24:39수정 : 2009-01-18 18: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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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미국의 역할’에 의문

ㆍ1부 - (9) 미국 헤게모니는 끝나는가

토론자들은 대체로 달러 가치 하락, 중국의 부상 등으로 인해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헤게모니 하강 속도와 강도에 대한 전망에서는 온도차가 느껴졌다. 서울대 문우식 교수는 “달러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달러 지위가 다른 통화로 넘어갈 확률은 낮다”고 진단했다.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도 “달러 지위가 빠르게 약화할 것 같지는 않아 헤게모니 부재시대의 불안정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미국 위기가 더 심화되면 달러를 한꺼번에 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구춘권 영남대 교수는 “(냉전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지역을 묶는 제국을 만들고 주변지역은 배제, 격리시키는” 제국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제 1 - 구춘권 영남대 교수
경제·문화적 영향력 하강…정치·군사적 측면은 복잡

경제·문화적 차원에서 미국 헤게모니는 하강하고 있다. 미 경제비중은 현격히 줄었고 생산력은 크게 떨어졌으며 금융위기로 달러의 ‘우월한 통화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문화적인 면에서도 개인의 자유와 소비를 결합시킨 미국식 생활방식의 매력은 크게 떨어졌다.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5%를 차지하는 미국은 부자들에게만 천국일 뿐이다.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토론회

하지만 정치·군사적 측면의 상황은 복잡하다. 미국의 문제는 그대로인데도 사람들은 90년대 이후 미국을 새롭게 봤다. 특히 강한 군사력에 주목했다. 냉전종식 때문이었다. 사실 냉전은 갈등을 얼어붙게 하는 ‘냉 평화’를 이끌어냈는데 이 평화가 냉전과 함께 종식됐다. 제2차 걸프전쟁, 유고슬라비아 공습 등 세계 곳곳에서 등장한 극단적 폭력이 그것이다.

냉전 이후 세계질서에 관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였다. 그 중 첫 번째가 유엔버전(유엔을 세계 중심에 두는 것)이다. 국민국가의 안정성이 전제돼야 했다. 그러나 상당지역에서 ‘실패한 국가’들이 나타나면서 작동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시나리오인 ‘제국버전’은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지역(미국·유럽·동아시아의 대도시)을 묶는 제국을 만들고 주변지역은 배제, 격리시킨다는 내용이다. 클린턴 시절부터 미국은 미국 주도의 제국버전을 실행하고자 했다. 오바마 역시 기본적으로는 제국버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을 종합해볼 때, 오늘날 세계는 그람시가 의미한 헤게모니는 존재하지 않는 ‘제국’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과연 미국은 이 제국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유럽연합은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로 머물러 있을 것인가.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제국은 세계평화를 담보할 수 있을까’이다. 경계 및 완충지대 설정으로 테러리즘에 대응해 평화를 유지해낼 수 있을까. 오히려 ‘지구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동반한 소통이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가 가능할 것이다.



발제 2 - 문우식 서울대 교수
美 자력갱생 힘든상황…동아시아 성장이 대안

먼저 미국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미 경제의 어려움은 오랜 기간 지속되리라고 본다. 먼저 부동산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압류한 담보물의 가치가 대출금액보다 낮더라도 추가적으로 빚 상환을 요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부동산담보대출 채권의 실제가치가 20~30% 정도 평가절하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미국은 부동산 연금이나 개인들의 주식시장 투자비중이 굉장히 높다. 주식시장이 폭락하면, 개인연금이 타격을 입어 개인 소비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미 달러체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달러의 위기는 71년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잘못은 미국이 했는데 그 결과는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부담했다는 점이 두 위기의 공통점이다.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전, 미국은 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통화를 찍어내 인플레이션을 겪었고, 이 인플레이션은 고정환율제를 통해 유럽·일본 등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이것이 첫번째 위기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신용위기다. 증권화·유동화를 통해서 신용이 지나치게 공급돼 이를 통해 미국의 위기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국가들이 영향을 받게 됐다. 미국이 주축이 돼 생긴 금융질서하에서 미국이 자신의 책임을 지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러나 달러 지위가 유로화·위안화 등 다른 통화로 넘어갈 확률은 매우 낮다. 국제통화 지위는 경제력뿐 아니라 정치·군사적 이유에 의해 많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위기와 관련해 달러를 많이 찍어냈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가치가 하락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국제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도 상당히 위태롭게 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할 대안은 무엇일까. 미국과 유럽의 실물경제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관건은 동아시아 국가의 성장이다. 다만 동아시아 경제가 세계경제의 견인차가 되려면 국제통화 유동성 공급 체제가 필요하다. 현재 국제유동성을 독점하고 있는 IMF는 그 대안이 될 수 없다. 지역적 차원의 아시아 신용기구 등 국제유동성 확보에 관한 다양한 채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발제 3 - 박복영 대외경제硏 연구위원
美 영향력 지속 이유, 달러에 대한 중독 탓

현재 미국 금융 헤게모니의 핵심은 두 가지다. 달러가 주요국 중앙은행의 준비통화금(현재 세계 중앙은행 준비금의 65%) 및 국제무역 결제통화(EU 역내교역을 제외하면 90%)로 쓰인다는 점, 국제 금융규범을 만드는 기구에서 미국이 막대한 영향력(IMF에 대한 30~50%의 출자금)을 지닌다는 점이 그것이다. 미국 금융 헤게모니가 형성될 당시 미국은 전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는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헤게모니가 유지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역사적 관성을 들 수 있다. 상당수가 달러를 쓰면 나머지도 달러를 써야 편안한 상황, 즉 네트워크 효과가 그것이다. 둘째로 대안통화의 부재 문제가 있다. 셋째로는 미국과 신흥수출국 간 암묵적 합의를 들 수 있다. 신흥수출국(60년대 유럽과 일본)은 미국 수출로써 성장해야 했고 이때 미국은 달러를 맘대로 찍어내 국민들 및 금융자본들의 구매력으로 이용했다. 신흥수출국은 수출경쟁력 때문에 가능한 한 달러를 고평가해 자국 통화를 저평가하려 했다.

전반적으로 80년대 이후 ‘경제적 파워의 이동’은 미 금융 헤게모니를 약화시켜 왔다. 특히 중국의 교역규모가 커지면서 홍콩과 상하이가 맨해튼처럼 성장할 것이다. 일본과 달리 중국은 일부 무역에서 위안화를 쓰는 등 자국 통화를 국제통화로 키우려는 의지가 있다.

이번 위기는 ‘미국에 돈을 맡겨도 안정적으로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달러 지위가 빠르게 약화할 것 같지 않아 헤게모니 부재시대의 불안정성이 예상된다. 또 이번 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위기만큼 강력하지 않기 때문에 재규제화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금융위기가 앞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에 대비하고자 각국은 더 많은 준비금을 모으려 할 것이고, 그것은 달러가 될 것이다. 달러의 불확실성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달러를 더 확보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예상된다.

발제 4 -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
美·中 통상마찰 가능성…아시아의 협력이 돌파구

앞으로 엄청난 혼란이 지속될 것 같다. 먼저 미국 위기가 심화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LTCM, S&L위기, 엔론사건 등 부동산 및 금융 관련 사건이 많이 터졌고 지금 나온 문제점(신용평가회사의 문제, 도덕적 해이의 문제)들이 이미 다 나왔지만 고치지 못했다. 오히려 규제 완화를 택했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게다가 클린턴 정부 시절 금융 규제 완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한 가이트너, 서머스 등 이른바 루빈사단과 시장주의자인 벤 버냉키가 현재 미국의 경제를 맡고 있다. 이들은 위기수습은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규제를 더 풀려고 할 것이다. 두번째로 콘트라티에프 파동을 보면, 75년 정도까지 진행됐던 A파동에 이어 B파동이 마지막에 도달했다. 마지막으로 달러의 문제다. 상당수가 사용하면 나머지도 따라서 사용한다는 ‘네트워크 이펙트’는 달러의 지위를 유지시켜 줄 수 있지만 반대로 구조가 일거에 무너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차이메리카’, 즉 중국이 수출을 해서 흑자를 내고 그것으로 미국 재정적자를 메워주면, 그것을 가지고 미국이 소비하는 구조가 과연 계속 이어질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현 위기로 봐선 유지되기 힘들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생길 텐데, 그래서 ‘글로벌 코디네이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역시 큰 성과가 없을 것이다. 불황에 빠져 있던 미국이 일본 엔화를 절상시키고 일본 금리를 낮추게 한 플라자 협정이 ‘글로벌 코디네이션’의 유일한 사례였다. 중국이 일본처럼 미국 말을 잘 들을 것인지 의문이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 1 대 1로 맞서게 되고 통상 마찰, 금리 및 환율 마찰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오랜 혼란이 예상되지만 아시아 국가끼리 협력을 한다면 국제적으로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나라 돈으로 외국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잠재적인 외환위기 위험을 안고 있다.

만약 역내에서 역내통화에 기초한 외채 발행이 가능하다면 외환위기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치앙마이 협정이 이번에 확대되는데 이것이 제도화되면 아시아통화기금(AMF)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는 일이다.

<송윤경 기자>


 

입력 : 2009-01-18 18:38:47수정 : 2009-01-18 18: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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