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대회서 일본 이긴 엄복동은 일제 강점기 ‘민족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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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진 기자
18세기 말 프랑스 귀족이 만든 최초의 자전거
두 개의 바퀴를 연결해 움직이는 장치는 기원전부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자전거와 같이 보행을 돕는 탈것이 나타난 것은 18세기 말이다.
자전거의 시조는 1790년 프랑스의 귀족 콩트 드 시브락(Cont de Sivrac) 백작이 만든 ‘셀레리페르(Celerifere)’다. ‘빨리 달릴 수 있는 기계’란 뜻의 셀레리페르는 두 개의 나무 바퀴를 나무로 연결하고 안장을 얹은 형태였다. 하지만 이 기계는 페달이 달려 있지 않아 발로 땅을 구르면서 앞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또한 핸들이 없어 방향을 바꾸려면 자전거를 일단 세운 후 앞바퀴를 들어 돌려야 했다.
최고 속도 시속 15km, 방향 조절 가능한 자전거 등장
1817년 독일의 카를 폰 드라이스는 앞바퀴를 움직일 수 있는 핸들이 달린 자전거 ‘드라이지네(Draisine)’를 선보였다. 현재의 자전거와는 거리가 멀었고 최고 속도도 시속 15㎞였다. 드라이지네는 영국으로 건너가 개량돼 호비호스, 댄디호스라는 이름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 자전거 역시 발로 땅을 차서 움직이는 것으로 실용성이 없어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못했다.
대장장이가 페달 달아 대중에게 판매 시작
오늘처럼 페달로 바퀴를 돌리는 자전거는 1861년 파리에서 대장간 일을 하면서 마차도 만들었던 피에르 미쇼와 그의 아들 에르네스트 미쇼가 만들었다. 앞바퀴에 페달을 단 미쇼의 나무 자전거 ‘벨로시페드(Velociped)’는 현대 자전거의 효시로 달리기 쉬운 탈것으로 크게 환영받았다. 1861년 2대, 1862년 142대에 이어 1865년에는 400대가 팔려 대량 생산한 첫 번째 자전거로 기록되기도 했다. 영국으로 건너간 벨로시페드는 나무 바퀴 둘레에 철판이 씌워졌지만 노면의 진동과 충격이 운전자에게 그대로 전달돼 ‘본 셰이커(Bone shaker)’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스피드 빨라진 ‘빅휠’ 등장 … 장애물엔 약해
1868년 마르세유의 루소가 자전거 바퀴살을 발명했고 사람들은 점점 스피드를 추구하게 됐다. 1871년 영국의 제임스 스탈리는 앞바퀴가 유난히 크고 뒷바퀴는 작은 ‘빅휠(Big wheel)’ 또는 ‘오디너리(Ordinary)’로 불리는 자전거를 발명했다. 이 자전거는 페달이 앞바퀴에 직접 붙어 있어 바퀴가 클수록 더 멀리 나갈 수 있고 스피드도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페달이 한번 왕복할 동안 약 3.556m를 진행할 수 있었다.
체인 장착 ‘안전 자전거’ 나와
1874년 영국의 해리 로손은 같은 사이즈의 크지 않은 바퀴를 달고 앞바퀴 페달 대신 두 바퀴 중간에 있는 페달을 밟아 체인으로 뒷바퀴를 굴리는, 요즘의 자전거와 비슷한 ‘세이프티(Safety)’를 처음 내놓았다. 안장에 오르내리기도 쉽고, 달리기도 수월하며 위험하지 않고 안전한 자전거라는 뜻이다. 1885년 오디너리를 만든 제임스 스탈리의 조카인 존 스탈리는 세이프티 프레임을 다이아몬드형에 가깝게 하는 등 구조와 메커니즘에서 지금 자전거의 기본 요소를 모두 갖춘 ‘방랑자’라고 이름 붙여진 ‘로버(Rover)’를 선보였다. 그 후로 지금까지 변속 기어, 경량 구조, 브레이크 장치, 공기압 타이어 등이 계속 발전돼 왔지만 자전거의 기본적 모양은 스탈리가 만든 자전거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여성들 파리서 경주 … 19세기 여권운동 시초
로버 자전거는 1888년 영국의 존 던롭이 발명한 공기 타이어로 한층 더 편안하고 빨라지면서 개인 이동수단으로 각광을 받았다. 1880년대와 1890년대는 자전거의 황금시기였다. 여성들도 앞다퉈 자전거를 탔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데서 얻은 자유는 영국에서 여권운동이 크게 번지게 한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초의 여성 스포츠, 여성 최초의 스포츠 경기는 사이클 경기로 19세기 파리에서 개최됐다. 30여 명의 여성이 참가했으며 독립적인 이동 수단으로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줬다. 결국 이러한 정신은 여성해방, 인권운동의 시초가 됐다.
소재와 기술 또한 과학의 발달과 함께 크게 발전했다. 알루미늄과 티타늄 등 새로운 경합금 소재를 이용하면서 프레임과 변속기, 림과 타이어 기술 등에서 신기술이 꾸준히 개발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이전에 이미 알루미늄합금이 자전거에 쓰이기 시작했고 티타늄과 마그네슘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플라스틱을 활용하기도 했다. 80년대 들어서는 항공우주와 모터스포츠에서 사용하는 탄소섬유(carbon fiber)로 만든 프레임이 등장했다.
서재필 박사, 독립문 신축 때 타고 왔다는데 …
한국에 자전거가 도입된 시기와 계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 일설에 의하면 개화기 이후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1896년 고희성이 처음 탔다는 주장도 있고 1896년 서재필 박사가 독립문 신축 현장 때 처음 탔다는 설도 있다. 이때 한국 사람들은 자전거를 보고 ‘괴물차’ ‘나는 새’라는 별명이 붙였다고 한다. 20년대에는 엄복동씨가 국내 각종 대회에서 일본 선수들을 물리치고 많은 우승을 차지해 한민족의 의기를 북돋우는 주역이 됐다.
해방 후 4월 대한자전거경기연맹이 발족됐으며 47년에는 세계사이클연맹(UCI)에 가입해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최초로 한국이 세계대회에 참가한 것은 1948년 런던 올림픽이다. 한국은 아직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
계엄령 내렸을 때도 자전거 경기 행렬은 예외
나라를 잃은 민족의 울분을 표출했던 일제 강점기가 사이클 경기의 최고 인기 절정기였다면 해방과 정부 수립 이후에는 대통령의 스케줄에 맞춰 도로경기가 출발하고 행차 중에 사이클 행렬을 목격한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경기 행렬에 대해 박수를 보내던 시절도 있다. 특히 육영수 영부인의 저격사건으로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져 헌병들이 한강대교를 막고 모든 차량을 통제하던 상황에서도 사이클 경기 행렬에는 통제는커녕 바리케이드를 치우며 원활한 진행을 지원할 정도로 70년대까지 자전거는 어떤 종목보다도 인기였다.
친환경,무탄소 교통수단으로 떠올라
21세기 인류 문명의 화두인 에너지와 환경에 가장 적합한 대안으로 전 세계적으로 자전거가 급부상하고 있다. 자전거는 오염물질이나 탄소가 거의 배출되지 않는 친환경 무탄소 교통수단이다. 또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동수단 가운데 가장 에너지 효율이 높다.
<표 참조>
승용차와 비교하면 2% 미만의 에너지만을 가지고 같은 거리를 주행할 수 있다. 보행자가 걸을 때 소비되는 에너지의 3분의 1 수준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자전거는 대중교통과 비교해도 유지비가 10% 수준에 불과하다. 자전거는 올림픽에서 18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어 육상과 수영 다음으로 메달이 많은 종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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