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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향에 취해 오지에 새 둥지”

ngo2002 2011. 10. 12. 08:49

“매실향에 취해 오지에 새 둥지”

ㆍ전북 진안 매실농장 최윤영씨

최윤영씨(41)는 2008년 1월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산간오지에 들어왔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덕태산 자락 600여m 고지에 자리잡은 매실농장이다. 왜 이 먼 데로 귀농을 왔을까.

그는 서울의 한 치과병원에서 치기공사로 일했다. 수입은 짭짤했다. 그런데 그의 뇌리엔 늘 물이 흐르고 나무가 무성한 숲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도시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외로움이었다.

11년간 일하던 치과를 그만뒀다. 경기도 가평의 사회복지법인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때마침 그곳은 북한강 발원지였다. 고향에 온 것 같았다. 사람들은 서울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그를 신기해했다. 그렇게 4년을 보냈다.

최윤영씨가 전북 진안군 덕태산 중턱 매실농장에서 양팔을 높이 들고 유기농업의 효과를 자신있게 설명하고 있다. | 박용근 기자
서울에 돌아와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예술치료에 마음이 닿았다. 예술치료연구소에 다니면서 자신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가 백운면과 인연을 맺게 된 출발점이었다.

“연구소장님이 시골에 자연치료공간을 물색 중이었어요. 늘 자연 곁에 가고 싶었던 저도 소장님을 따라 전국의 산하를 둘러보기 시작했죠. 이 농장을 찾았을 때는 매화꽃이 만발해 있었어요. 300여그루의 매실나무가 뿜어내는 향기에 잠시 취해버렸죠. 그야말로 숨어있는 새색시 같은 땅이었어요.”

2007년 이 땅을 연구소가 매입하고 최씨가 관리하게 됐다. 이곳에 이사하기 전 발효 공부를 했다. 미래는 발효가 대세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전통술과, 산야초 효소, 전통장에 자신이 생기자 짐보따리를 쌌다. 농장에는 허름한 컨테이너 가옥이 한 채 딸려 있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식수도 없고 핸드폰도 불통이다.

마을주민들은 한동안 그를 스님이라고 불렀다.

멀쩡한 여성이 혼자 고원지역에서 지내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인 데다, 늘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녔기 때문이다.

“멧돼지도 만나고 뱀과도 자주 인사합니다. 멧돼지를 만나면 서로 깜짝 놀라요. 내가 길을 살짝 비켜주면 조용히 사라집니다. 뱀에겐 ‘미안해 놀랐지’라고 말해 주죠.”

그의 주업이 된 매실농사는 농법이 특이하다. 농장은 해발 630m 고지에 있다.

그는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법을 고집하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너처럼 농사지으면 나무 다 죽는다고 했지요. 지금은 희한한 일이라고 혀를 내두릅니다. 사람 손이 닿으면 닿을수록 나무는 괴로워하거든요. 나무를 믿고 농사를 지어야 해요. 아픈 나무가 나타나더라도 스스로 회복하는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되죠.”

그만의 농사법은 또 있다. 나무와 매일 대화하는 것이다. 매실나무를 아이처럼 대한다. 아침이면 “잘 잤지. 아픈 데는 없어”라고 말을 건넨다. 나무들은 “예 엄마. 날씨가 추워졌는데 이불 잘 덮으셨지요”라고 화답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비료 한 번 주지 않았어도 10년 이상 된 나무들은 탱글탱글한 매실을 맺는다. 이곳에서 자연 그대로 숙성시킨 유기농 매실효소들은 잘 팔려나가고 있다.

흙과 나무와 어울려 농사만 짓고 살던 그는 지난 6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농장일을 보면서 읍내로 출근해 진안군 로컬푸드사업단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농촌사람이 된 그가 농촌마을을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이다.

“진안사람이 된 이상 농촌을 살릴 수 있는 로컬푸드 분야에서도 능력과 꿈을 펼치고 싶어요. 발효공부도 계속해 50대가 되면 발효연구소를 만들 거예요. 기본적인 환경만 만들어주면 나머지는 자연이 다 알아서 해준다는 믿음이 있거든요.”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입력 : 2011-10-11 22:35:07수정 : 2011-10-11 22:3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