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옥의 新 남도기행- 만귀정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입력시간 : 2010. 01.05. 00:00 유서깊은 서창 들녘에 만귀정 수백년 역사가 깃든 도학 요람 사계절 멋드러진 풍치 자랑해 광주 상무지구를 지나 공항로를 달리다 극락교 아래로 접어들면 들판이 보인다. 광주 땅에서 가장 넓다는 서창 들녘이다. '서쪽의 곡창'이라는 이름처럼 쌀의 곡창지대다. 극락강을 마주하며 한적한 2차도 로를 타고 들어가 서창(西倉)에 접어든다. 옛날에는 해운의 요충지로 세곡을 수납하는 창고가 있어 서창이라 불렸던 서창동은 동쪽에 우뚝 솟은 백마산과 깊은 골 사이로 구릉지가 넓게 분포해 있다. 서쪽에는 황룡강과 극락강이 합류된다. 남서쪽에는 서석 평야의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국을 지닌 마을이다. 교회에 이어 만귀정 회관 간판이 크게 보인다. 만귀정 회관 간판이 서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동네초입으로 만귀정이 들어서 있다. 만귀정은 흥성 장씨의 선조인 만귀(晩歸) 장창우(張昌雨)선생이 1670년께 이 마을에 입촌해 초막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만년을 보냈던 도학사상 요람이다. 도학이란 유교, 특히 성리학 또는 주자학을 일컫는 말로 도덕지양의 학문이다. 선비정신을 실천해 싹을 심었던 이 터에 후손들이 그의 유덕을 기리고자 1934년에 중건하고 1945년에 개수했다. 정자의 석축과 계단석, 목재 다리, 수목이 어루러진 소중문화유산(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5호)이다. 큰 못 가운데 습향각(襲香閣), 묵암정사(黙菴精舍)가 한 줄로 늘어서 있다. 선의 날렵함이 고혹적인 습향각은 만귀 선생의 7세손 묵암(黙菴) 장안섭)이 1940년에 지었으며 묵암정사는 선생의 후손인 장안섭 송정읍장의 공로와 덕행을 기리기 위해 1960년 광산 군민이 성금을 모아 건립했다. 3개의 정자에는 중건상량문, 중건지, 중수기 등과 만귀정원운(晩歸亭原韻)과 팔경(八景)등 많은 시문과 현판등이 걸려 있고 경내에는 만귀정시사창립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만귀 선생의 시 '팔경'을 음미하며 당시의 풍광을 되새겨 본다. 瑞石明月(무등산에는 밝은 달이 떠 있고) 龍江漁火(용강에는 어부들의 불빛이 있네) 馬山淸風(마산에는 맑은 바람 산들거리며) 樂浦農船(낙포에는 농사를 위한 배가 오간다) 漁燈暮雲(어부들의 등불에 저녁 구름 피어나고) 松汀夜雪(송정에는 흰눈이 밤을 밝히며) 錦城落照(금성에는 아름다운 저녁노을) 野外長江(들밖에 길고 긴 강물이 흐르네) 동네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은 광주사람들에게 이름난 유원지로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에는 창포 꽃이 땅바닥을 뒤덮고, 잎지는 가을엔 연못가에 붉게 물든 상사화가 군락을 이루고, 겨울이면 눈꽃을 안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버드나무, 삼나무, 단풍나무, 벽오동, 왕벚나무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신성일, 윤정희, 허장강 등 옛 유명 스타들이 출연했던 영화 '꽃상여', '탈선 춘향전'도 이곳에서 촬영했단다. 지금도 그 풍광만으로 겨울 낭만객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주변볼거리 - 세동마을과 향토 예절학교 만귀정 아래 마을에 서창의 세동(世洞)마을이 있다. 마을 명칭은 의병장인 삽봉 김세근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민족정기를 없애기 위해 '세(世)'를 '가늘 세(細)'로 고쳤다. 넓은 세상으로 기상이 뻗어나가는 의미(世)를 가늘고 힘없고 빈궁하다는 의미(細)로 바꿔버린 그들의 심보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얘기에 씁쓸함을 느꼈다. 일제의 잔재를 흔적없이 지우고 민족정기를 되 살리기 위해 '세하동(細荷洞)'이라는 이름을 본래의 이름인 '세하동(世荷洞)'으로 고쳐야함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세하동 세동 마을에는 한국 고전건축을 그대로 재현해놓아 고전미 넘치는 한옥건물인 향토 예절학교가 있다. 민속용품 전시장과 다실이 있고 서구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전통문화 체험장도 있다. 바로 옆에 돌담장이 보인다. 담장 너머 묵직한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야은당(夜隱堂)이 있다. 야은 김용휘는 김세근 의병장의 9대손이다. 고종 13년(병자 1876) 18세에 초시에 합격해 29세에 통훈대부 강릉참봉을 제수받았던 김용휘 선생이 나라의 시국난간을 한탄하면서 관직을 포기한 채 귀향해 편모를 봉양하고 주경야독하며 은거했던 거처지이다. 1936년 병자년에 자제들이 공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 새끼 말을 거느린 어미 말을 닮은 백마산(159m)은 서창동을 수호하듯 마을 중앙부에 우뚝 솟아 있다.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지만 산세 수려하고 골이 깊다. 이곳 수원 골에서 자신이 조직한 사병들을 훈련시켰다고 해 일명 수련곡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김세진 장군이 장정들을 훈련시킨 백마산 골짜기를 '수련골'이라 하고 세동 마을에서 절골로 넘는 고개를'수련재', 장정들의 숙소와 휴식처로 차일을 쳤다는 '차일봉'과 그 당시 사용했던 샘을 '옥동샘'이라 부르고 있다. 백마산 상봉에 깊이 3미터 가량의 굴이 있는데 장군이 기거하면서 심신을 단련했다 해서 '장수굴'이라 부른다. 장군에 관한 또 다른 전설이 있다. 백마산자락 동하마을 김성(김장군의 후손)씨의 집에는 큰 바위 한 개가 끼워져 있는데 그 옛날 마을 뒤 백마산 굴에서 살던 김세근 장군과 무등산에 살고 있던 김장사가 서로 힘겨루기를 했다. 김세근 장군이 백마산에서 던진 바위는 무등산 까지 날아가 정확하게 떨어졌지만 무등산에서 김장사가 던진 바위는 백마산 못 미쳐 이 마을에 떨어졌다. 김성씨 집 담에 박힌 큰 바위가 바로 그것이라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온다. 서창동 불암마을에는 선사시대 고인돌 군이 있으며, 팔학산 기슭에는 삽봉 김세근 장군의 위업을 기려 제사 지내는 학산사와 묘소가 있다. 먹을거리- 한라봉 도덕 농장 세창마을에서 포충사 가는 구소동 대촌마을에 가면 비닐하우스에 겨울 과일의 황제라 불리는 한라봉이 노랗게 주렁주렁 열려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양손으로 다 감싸 안아도 넘치는 크기의 탐스런 한라봉을 따서 껍질을 벗기자 향긋한 향이 겨울 감기로 맹맹한 코를 간질간질 자극한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통통한 알맹이를 입에 넣자 달콤함에 저절로 눈이 스르르 감긴다. 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수확한 도덕농장 한라봉은 밀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당도가 높다. 보통 밀감의 당도가 7~16bx(브릭스)라면 한라봉은 최소 15bx 이상이 돼야 제 맛이 나는 관계로 절대량이 제주도에서만 생산된다. 그러나 도덕농장 이명수 사장은 일본까지 찾아가 그 재배 방법을 터득, 생산하게 되면서 제주도산을 능가하는 전국 제일의 한라봉을 수확하게 됐다. 높은 일조량과 일교차, 미생물 토질 등 세 조건을 갖추고 소비자 기호에 맞는 당도, 향, 수확시기를 맞춰 생산한다. 문의:www.dodeokfarm.com(한라봉명수) 017-621-7722. 사진/ 1.겨울 눈이 소복이 내려 앉은 만귀정 일대. 얼음이 두껍게 언 연못, 흰 눈을 뒤집어 쓴 낙락장송 등이 그림 속 선경인 듯 고즈녁하기만 하다. 2.탐스럽게 잘 익은 한라봉과 온갖 노력을 기울여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낸 이명수 사장. 무등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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