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산행,걷기)

28지리산길(상) -길이 인생에 묻는다. 어느 길을 가느냐?

ngo2002 2011. 8. 25. 14:59

지리산길(상) -길이 인생에 묻는다. 어느 길을 가느냐?


입력시간 : 2008. 12.18. 00:00


속도와 수직 대신 느림의 길이고 수평의 길

다랑이논은 천국의 계단처럼 끝없이 이어져

- 긴 칼 시퍼렇게 갈고 갈아 늘어진 길들을 댕강 잘라내야 하나. 잘라내면 누이 떠나지 않고 꽃상여 타지 않아도 될런가. 그럼 울 아비 어찌 돌아오고 그리운 아들은 어쩌나. 하늘 길은 어찌 자르고 바닷길은 또 어찌 할거나 -

마른풀 밟고, 푸른 잎새 피해가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길을 간다. 여럿이서 또는 혼자서. 주어진 길을 가기도 하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길도 있다. 가는 길에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이 있는가 하면 쭉 뻗은 신작로도 있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달릴 때도 있고 때로는 질퍽거리는 농로 걸을 때도 있다.

살다보면 원하는 길만 가는 것이 아니다. 원치 않은 길을 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그래도 슬퍼하지 말일이다.

원치 않은 길이 더 그립고 소중히 느껴지는 게 세상사일지니. 시간이 퇴색할 무렵 뒤돌아보면 추억의 바구니에 담겨 빛나는 것은 기쁨보다 고통의 열매들이다.

길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흐른다. 사람처럼. 길 위의 인생이 아니던가. 품어보지도 못한 임, 떠나보낸 곳도 길이고 쪽진 머리의 누이, 난생 처음 흔들흔들 가마타고 떠난 곳도 길이다.

길은 해질녘 소달구지 몰고 오는 아버지의 지친 삭신도 나르고 도회나간 아들도 그리움처럼 길은 나른다. 포승에 묶여 끌려가던 녹두장군의 머리가 성문밖에 내걸렸다는 소문도 길은 나르고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강화도로 도망갔다는 ‘썩을 놈의 소식’도 나른다. 그뿐이랴. 끝내는 너나없이 올라타야 하는 꽃상여도 길은 마다하지 않는다.

긴 칼 시퍼렇게 갈고 갈아 늘어진 길들을 댕강 잘라내야 하나. 잘라내면 누이 떠나지 않고 꽃상여 타지 않아도 될런가. 그럼 울 아비는 어찌 돌아오고 그리운 아들은 어쩌나. 하늘 길은 어찌 자르고 바닷길은 또 어찌 할거나.

그 길을 간다. 마른 들풀 즈려 밟고 그 사이로 아직 푸른 잎새 피해가며 길을 간다.

이 설레임은 무엇인가. 길을 가다 어떤 유심(有心)과 무심(無心)을 만나게 될 것인가. 만나서 어떤 눈길을 교환하게 될 것인가.

돌이켜보니 유람처럼 시작한 산행이 벌써 만 4년이 다 됐다. 군사훈련 같은 산행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군대용어로 말하면 군기빠진 사제행군이다. 설레임의 근원이 여기에 있나보다. 그렇다 오늘은 꿩총 매고 소풍가듯 군기 빠진 행군의 즐거움이다.

광주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반이나 달렸을까. 차가 섬을 느끼면서 선잠에서 깬다. 어디쯤인가 하여 ‘뚤레뚤레’ 살피는데 ‘매동마을회관’이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이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까지의 지리산길 1구간 12㎞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800리에 달하는 국내 최초 도보 길

출발 전에 지리산길이 생소한 독자를 위해 여기서 잠시 광고말씀(?)을 듣고 가자.

‘지리산길이라고 불리는 이 길은 지리산 외곽의 전남, 전북, 경남의 3개도 5개 시군(구례, 남원, 하동, 산청, 함양), 16개 읍면, 80여개 마을을 잇고 있습니다. 이 길은 속도의 길이 아니라 느림의 길이고 정상으로 치닫는 수직의 길이 아니라 수평의 길입니다. 2011년 모든 구간이 완성되면 300㎞ 800리에 달합니다.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환(環)형으로 연결한 국내 최초의 장거리 도보 길이죠. 2008년 4월 남원과 함양을 잇는 1구간 12㎞가 개통된데 이어 8월에는 함양의 금계마을에서 세동마을까지 10㎞구간이 개통됐습니다. ’

이 정도면 지리산길이 ‘뭔길’인지 대충 감 잡았으리라. 머리로 알았다면 이제는 몸으로 아는 일만 남았다.

방한모에 장갑이며 이것저것 채비를 갖추고 지리산길로 발길을 막 옮기려는데 뒤에 높다란 봉우리 하나가 고개를 내밀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넨다. 바래다주고 싶은 마음 간절해서 일까. 상고대를 한 바래봉이다. 상고대가 마치 웃음 띤 얼굴의 하얀 치아처럼 싱그럽다.

매동마을회관에서 바래봉의 배웅을 받으며 땀이 날 듯 말 듯 한 몸으로 산길을 오르다 보니 비옥한 땅, 척박한 땅을 가리지 않고 이 땅 어디에서나 자라며 우리네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소나무들이 도열하듯, 때로는 산책하듯 여기저기 모여서서 웅성거리고 있다. 게 중에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녀석도 있다.

황룡사벽에 그림으로 그려져 수많은 날짐승들을 슬프게 했다는 솔거의 소나무. 늘어선 소나무들의 기품이 황룡사 소나무 그림의 환생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만큼 고고하다. 담론이 뜨겁게 달아 올랐는지 모두들 붉게 상기된 몸들이다.

솔거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새들을 골탕 먹이려는 것은 아닐 테고 그럼 무엇이었을까. 소나무들이 웅성거리는 이유가 솔거 이야기로 신명나 있기 때문인가 보다. 새삼 저 소나무들을 길러낸 이 땅이 새삼 감사히 여겨진다.

소나무들의 두런두런 이야기를 1시간정도 들으며 조그마한 언덕 하나를 넘으니 ‘히야!’소리가 저절로 난다. 하나는 손바닥만한 논들이 층층이 쌓아 올려진 중황마을과 상황마을의 다랑이 논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너머 1시 방향에서 4시 방향으로 펼쳐진 하얀 중절모를 쓴 듯한 지리산 주능선들이다. 그러고 보니 하나 더 있다. 내 가슴을 휘젓고 지나는 1000m 고지의 차갑고도 달콤한 공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다랑이 논은 모두 추수가 끝나 텅 비어 있고 드물게 ‘나도 있소!’하듯 흑염소 서 너 마리 풀을 뜯으며 구색을 맞추고 있다. 로마가도에서도 아우토반에서도 느낄 수 없는 지리산길 만의 멋이자 여유이고 사색이다.

신들도 쉬어 오르는 천국의 계단

산비탈을 깎아 만든 다랑이논은 마치 신들이 다니는 천국의 계단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저 아득한 논이 계단이라면 신들도 차마 쉬지 않고는 오르지 못하리라.

내 눈썰미가 맞다면 논다랑 하나 마다 기껏해야 20-30평 정도에 지나지 않을까 싶은데 논을 받치고 있는 축대는 마치 피라밋처럼 중압감으로 다가선다. 크고 작은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들고 그 위에 논을 조성했는데 큰 돌은 성인 몸무게 두 세 배가 족히 넘겠다. 저 돌을 이고지고, 넘어지고 깨어지면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렸을 것이다. 저런 논이라도 있어 목구멍에 거미줄은 치지 않아도 됐을까. 손바닥만한 다랑이논의 소출을 생각하니 어린 시절 고향의 농촌이 생각나 안타까워진다.

사람의 입이 호랑이 입보다 무섭던 시절이다. 어디 편한 일이 하나라도 있던가. 보리를 심기 위해서는 먼저 흙을 잘게 부셔 일궈야 하는 일부터 허리가 무너져 내리던 보리베기의 고통에 이르기 까지. 보리농사 벼농사 콩농사 고구마농사..., 농삿군의 한숨과 땀방울이 스며들지 않고 영그는 알톨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아들자식 수업료조차 제 때 내본 적이 없었으니.

더구나 자신의 눈물을 빼고는 물 한 방울도 하늘에 맡겨야 하는 첩첩산중의 다랑이논이야 더 말해서 무얼 하겠는가.

이 마을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이 깊은 곳에 어떤 사람들이 흘러들어와/ 마을을 만들었는지/ 나는 굳이 알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빈 산골짜기로 올라와서/ 비탈에 하나씩 둘씩 돌을 쌓고 땅을 고르고/ 마침내 씨앗 뿌려 질긴 목숨 끌어갔음을 본다/ 참으로 사람이야말로 꽃피는 짐승/ 가슴 가득히 불덩이를 안고/ 피와 땀을 뒤섞이게 하는/ 그것이 눈물겨워 나도 고개 숙인다(이성부의 ‘피아골 다랑이논’ 일부)

물려 줄 이도 없는 논다랑을 이제 허리 굽은 늙은이들이 차마 떠나지 못해 겨울 지리산 같은 머리로 남아 있다. 그들의 간난한 삶은 이제 멋진 풍경이 되어 지나는 사람의 눈길을 잡는다. 조영석 김대중컨벤션센터사업본부장

<다음주 계속>

가는길

▲대중교통: 남원행 버스 - 인월행 버스 갈아탐(남원터미널-인월간 30분소요) - 매동마을까지 걷거나(9㎞)나 시내버스이용(10분소요)

▲자가용: 지리산IC - 인월- 인월면 지리산길안내센타(주차)- 매동마을까지 걷거나 시내버스 이용

기타 사세한 사항은 지리산길안내센터 (전화 063-635-0850)나 지리산길 홈페이지(http//www.trail.or.kr)참조

준비물

▲식수(겨울철에는 많이 필요치 않으며 도중에 주막이나 사찰에 들려 구입 가능)

▲여벌옷(자주 쉬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보온을 할 수 있는 여벌 옷 필요)

지도(지리산길안내센터에서 소책자 구입 가능. 사전에 지리산 지도를 구입해서 보는 것도 도움이 됨)

▲도시락(도중에 점심을 먹어야 함)

▲비상약(일반 산행에 비해 부담이 없으나 평소 많이 걷지 않은 사람에게는 4-5시간이 소요되는 산길이라고 생각하여 비상 약품이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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