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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29. 속세를 떠났으니 진정한 유토피아다(4)-스탠바이 법주사

ngo2002 2011. 6. 7. 17:52

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29. 속세를 떠났으니 진정한 유토피아다(4)-스탠바이 법주사


2010년 07월 12일 00시 00분 입력


법주사는 호서지방에서 가장 큰 사찰로,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온갖 번뇌와 사방으로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는 참진의 세계를 상징한다.
법주사는 마음 하나로 가다듬는 참진의 세계

많은 전각과 문화재 보유한 '대사찰'

팔상전은 균형미가 돋보이는 건축물

정이품송 인공수정으로 장자목 생산

법주사 가는 ‘S'자 형태의 꼬불꼬불 꼬부랑길은 열두 굽이를 돌고 돌아 넘어야 하는데 해발 430m의 말티고개가 사찰의 관문이다. 나사못 돌 듯 차가 고개 길을 돌 때마다 고개 밑에 있는 차는 수직으로 포갠 것처럼 한 줄 위로 있는 듯하고, 커브 길을 돌 때마다 오금이 저리고 짜릿짜릿하다.

말티고개 마루에서 바라보는 속리산은 속세의 온갖 잡념과 먼지까지 떨쳐 버리게 해주는 웅장한 산세가 山이름처럼 세속(俗離)이라 신선의 세계다. 이 고개는 고려 태조 왕이 속리산으로 첫 행차를 할 때 닦은 길인데 조선 세조는 가마를 타고 고개를 넘을 수 없어 말을 타고 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말티고개로 부른다고 한다.

고개를 넘어 단숨에 속리산관광호텔의 높은 굴뚝을 지나자 길 양편에 서있는 나무 가지들이 하늘을 덮어주는 수목 터널이 계속되는 오리(五里)숲 길이다. 법주사 입구 상가 밀집 지역인 사내 골에서부터 수정교에 이르기까지 2㎞에 달하는 울창한 숲은 수십 년이 넘는 큰 느티나무와 떡갈나무, 소나무 등이 어우러져 한 낮인데도 어둡고 침침했지만 돋아나는 가지들로 봄을 만끽할 수 있기에 충분했다. 숲의 길이가 오리나 된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자연 경치가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절경이었다.

숲 속 길을 지루한 줄 모르고 걷다보니 어느새 일주문 앞이었다. ‘호서제일가람’ 이라 쓴 현판이 이색적이다. 여느 산문 같았으면 ‘속리산 법주사’ 라고 했을 텐데 이 문이 뜻하는 의미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사찰로,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온갖 번뇌와 사방으로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어 참진의 세계로 향함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월드컵 축구장보다 넓은 법주사 경내의 한 복판에 자리한 팔상전(국보55호)은 아름답고 장중한 모습의 오층 목탑건물이다. 밖에서 보면 균형미 넘치는 미스 코리아 같은 날렵한 몸매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통 층으로 된 하나의 실내 공간이다.

건물의 규모는 상단까지의 높이가 약 65m이고, 건평이 49평이나 되며 사용된 나무 기둥의 숫자가 561개이고 오층까지의 중심기둥이 한 개로 통해 있는 것이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다.


실내로 들어선 나는 합장한 후 위를 쳐다보았더니 천장이 아스라이 높게만 보였다. 여러 개의 나무 기둥이 촘촘히 서있는 실내로 보아 전각이 아닌 목탑이 분명했다. 내부의 벽면에는 석가의 탄생에서부터 성불까지의 일생을 여덟 가지 모습으로 그려 배치했기 때문에 팔상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목탑 바로 앞에는 쌍사자석등(국보 5호)이 서 있었다. 통일신라시대 성덕왕 19년(720)에 조성된 팔각 석등은 높이가 3.3m로서 신라시대의 석등이며 그 중에서도 견고한 조각 수법과 넓은 지대석, 옥개석 등의 비례가 어울리고 장중하면서도 아름다운 석조 예술품의 걸작이라 하겠다. 특히 축소한 콘크리트로 모형을 본떠서 일선학교의 정원에 보급했기 때문에 눈에 익어 친숙하게만 보였다.

두 마리의 사자 중 하나는 입을 벌리고 있는데 염불과 경학을 상징하는 것이며, 한 마리는 입을 다물었다. 참선에 열중하는 입 다문 사자는 언젠가는 성불할 수 있다는 수행자의 진솔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마당의 서쪽에 고즈넉이 자리한 석연지(국보 64호)는 팔각의 댓돌 위에 커다란 반구형의 돌을 깎아 연꽃을 만들었다. 석연지는 나무에 새긴 모습처럼 구름이나 연꽃잎, 꽃, 난초, 넝쿨 등의 무늬가 살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인 조각 솜씨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다.

법주사 경내에 있는 청동미륵대불은 화강석으로 만든 기단이 8m이며 높이가 25m, 둘레 17m의 거대한 청동 불은 동양최대 규모의 서 있는 불상으로서 소요된 청동은 약 120톤에 이른다. 오층 건물인 팔상전의 지붕이 미륵불의 배꼽높이에 불과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대불의 높이에 압도당한 사찰마당의 모든 것들이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미륵불의 손바닥 위에 세 사람이 설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입상규모가 법주사 일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미륵불은 처음에는 용화 보전으로 동으로 구성한 50척 크기의 미륵불상(신라 해공왕 때 진표율사 건립)이었으나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정책으로 당백전을 만들면서 재료로 쓰기 위해 파괴해 버리고 말았다.

그 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되었으며 너무 낡아 해체하고 1989년에 청동을 녹여 지금의 모습으로 조성했다. 하지만 오늘은 청동분칠 공사를 다시 하느라고 공사 가림 막을 쳤다. 멀리서만 볼 수 있어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호서제일의 사찰로 손색이 없는 법주사는 많은 전각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대가람이라 하겠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문화재를 다볼 수 없어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산악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주차장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즐비한 상가에서는 술 따르는 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가 질펀해서 찾기도 힘든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은 한쪽 모퉁이에 초라하게 서 있었다. 가까이서 쳐다보니 오른쪽 큰 가지가 잘려지고 밑 둥에는 외과 수술한 흔적이 보여 안쓰러웠다. 그래도 고고한 자태와 드높은 기개만은 남아 있었다. 수령이 600년으로 우산을 펼친 듯한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보여 주기를 바랐다.

최근에는 정이품송이 인공수정으로 대를 잇는 혈통보존으로 장자목(長子木)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산림청 임업 연구소에서는 전국에서 소나무중 가장 우수한 유전자형질의 소나무를 골라 신부나무(암컷)로 간택한 다음 인공수정을 시켜서 정이품송을 아비로 한 친자목이 나온 것이다.

인공수정을 통해 자식 목을 육성했고 엽록체DNA지문법에 의해 정이품송의 친자임이 최종적으로 확인까지 마쳤다.

정이품송은 소나무지만 고위차관 급에 해당하는 이품의 관직에 속한 만큼 이에 어울리는 신부 목을 구해 아비의 혈통을 이어가야 한다. 이러한 명제에 틀림이 없는 장자 목으로 국립산림과학원이 후손 소나무를 생산해낸 것이다.

신부 나무로는 강원도 삼척의 백년 생 금강송 한 그루를 골랐다. 자연 상태에서 수정을 하면 혈통이 좋지 않는 나무가 가루받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인공수정을 했다. 양쪽의 혈통을 절반씩 이어받은 한국 최고의 2세 소나무가 태어난 것이다. 현대과학기술이 정이품송의 후손을 길러내고 맥을 이었다. 사람 키만큼 자란 후손 소나무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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