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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전자게임의 역사

ngo2002 2011. 2. 14. 14:36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38> 전자게임의 역사

잡스가 다니던 ‘아타리’에서 만든 ‘퐁’ … 전자오락의 시작이었죠

미국 애플의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가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공동 창업하기 전에 다니던 직장은 당시 유명한 게임회사였던 ‘아타리’였다. 아타리가 72년 만든 게임 '퐁'은 비디오 게임 1세대로 분류된다. 간단한 테니스 게임이었던 퐁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로부터 게임은 정보기술(IT)의 발전과 함께 진화를 거듭했다. 2차원 흑백 놀이문화였던 1세대부터 3차원 컬러 동작(모션) 인식 플레이까지 가능한 7세대까지 게임의 역사를 들여다봤다 .

박혜민 기자

1세대(1972~77년) 전자 게임의 시작

미국 게임업체 ‘아타리’가 1976년 출시한 게임 ‘수퍼 퐁’. 미국 시어스(SEARS)백화점이 판매했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 신림동 서울대 미술관에서 열린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게임+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전에 전시됐던 제품이다. [최승식 기자]
최초의 전자게임은 미국 물리학자 윌리엄 히긴 보덤이 58년 만든 2인용 테니스 게임이었다. ‘테니스 포 투’로 불린 이 게임은 뉴욕에 있는 브룩헤이븐 국립도서관 방문객의 심심풀이용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초기 컴퓨터 게임들은 개인이 취미 삼아 만들어 대학 내 대형컴퓨터에서 즐기는 수준이었다. 61년 미국 MIT 대학생 스티브 러셀은 ‘스페이스워’라는 미사일 발사 게임을 만들었다. 이 게임은 널리 알려진 첫 번째 컴퓨터 게임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게임은 메인프레임(대형컴퓨터)에서만 이용할 수 있어 사용료가 비쌌다. 일반인들이 싼값에 즐길 수 있는 게임은 71년 스페이스워의 후속으로 개발된 ‘갤럭시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스탠퍼드대 학생연합 사무실에 설치됐고, 동전을 넣어 작동시킬 수 있었다. 아타리의 창업자인 놀런 부시넬과 테드 대브니는 스페이스워를 동전 게임으로 개발한 상업용 제품을 만들어 일반인에게도 팔았지만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했다. 작동법을 익히기가 너무 어려워서다. 이들은 72년 ‘아타리’라는 게임회사를 만들어 테니스 게임을 응용한 퐁을 개발했다.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으로 나온 퐁은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전 세계적으로 1만9000대의 퐁 게임기를 팔았고, 수많은 아류 제품들이 생겼다. 아타리는 74년 ‘퐁’을 가정용 게임기로 만들어 또 한번 히트를 쳤다. 그래서 게임 업계에선 퐁을 시작으로 전자 게임의 역사를 얘기한다.

2세대(1978~82년) 아타리의 성장과 몰락

78년을 전후로 ‘스페이스 인베이더’ ‘아스테로이드’ ‘팩맨’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기 아케이드 게임들이 속속 등장했다. 특히 쇼핑몰이나 레스토랑 등에 아케이드 게임기가 놓이기 시작하면서 전자게임의 대중화 단계에 들어갔다. 타이토의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점수를 낼 수 있는 최초의 게임기다. 동전 부족 사태와 미국 청소년들의 무단 결석 사태가 발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80년 남코가 선보인 팩맨은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아케이드 게임기로 꼽힌다. 이름을 갖고 움직이는 캐릭터가 등장한 최초의 게임기다.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가정용 게임기인 콘솔 게임도 나왔다. 아타리가 77년 개발한 ‘아타리 2600’은 최초의 비디오 게임콘솔이었던 ‘마그나복스 오딧세이’와는 달리 여러 개의 카트리지를 번갈아 삽입하면서 게임을 바꿔서 즐길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81년은 ‘닌텐도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가 등장한 해다. 그는 일본 닌텐도의 인기 게임 캐릭터 ‘동키콩’ ‘슈퍼 마리오’를 개발했다. 82년엔 아타리·닌텐도 등 인기 아케이드 게임들을 즐길 수 있는 가정용 게임기 ‘콜레코비전’이 선보여 50만 대의 판매를 기록했다. 하지만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비디오 게임시장은 83년 갑작스러운 몰락을 맞는다. 황금시대의 주역이었던 아타리로부터 비롯되면서 ‘아타리 쇼크’로 불렸다. 아타리는 그해 히트를 쳤던 영화 ‘ET’의 붐을 노리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ET 게임을 사전 제작했는데 시간에 쫓기면서 만든 이 제품의 성능이 떨어져 소비자에게 외면받았다. 엄청난 재고는 뉴멕시코주의 구덩이에 묻혔고, 아타리 등 많은 게임회사가 파산 위기에 놓였다.

3세대(1983~88년) 닌텐도 슈퍼마리오의 등장

1985년 출시된 일본 닌텐도의 ‘수퍼마리오브라더스’.
이 시기는 일본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의 세상으로 불린다. 특히 닌텐도는 85년 패미콤(미국에서는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약자 NES로 출시)이라는 가정용 8비트 콘솔게임을 발표하면서 게임 시장의 부활을 이끌었다. 여기에 들어간 슈퍼 마리오 게임이 대박을 쳤다. NES는 아타리 쇼크의 원인인 게임의 질 저하를 통제해 안정적인 게임 시장을 확립했다. 이 게임기의 세계 누적 판매량은 6291만 대로, 닌텐도는 NES를 통해 세계적인 게임 기업으로 성장했다. 러시아 프로그래머 알렉스 파지트노프가 개발한 ‘테트리스’도 85년 출시됐다.

 83년 출시된 애플2 컴퓨터는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전반에 걸쳐 개인용 컴퓨터 붐을 이끈 주역이다. 한국에도 복사판이 많이 제작돼 8비트 PC 보급을 이끌었다. 컴퓨터 사상 최초로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용해 컴퓨터와 키보드가 합쳐진 다양한 주변장치를 연결할 수 있었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울티마’ 등 역사적인 게임들이 애플에서 시작됐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86년에 처음 등장했다. 같은 해 ‘드래곤 퀘스트’가 나와 일본 문화의 붐을 이끌었다. 다음해 일본 히로노부 사카구치는 역할수행 게임(RPG)인 ‘드래곤 퀘스트’를 본뜬 ‘파이널 판타지’를 만들었다.

4세대(1989~92년) 가정용 게임기 성장

미국 세가가 ‘세가 제네시스’로 16비트 게임기 시장의 선두로 올라섰다. 닌텐도가 대중적 게임기였다면 세가는 게임 매니어들이 즐기는 고난도 게임으로 유명했다. 일명 하드코어 게이머층이 형성된 것이다. 16비트와 32비트 가정용 게임기가 늘어나면서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아케이드 게임의 화려한 그래픽이 가정용 게임기에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 ‘스트리트 파이터’나 ‘모탈 컴뱃’ 등의 아케이드 게임이 인기를 얻었지만 이 흐름을 멈추지는 못했다. ‘댄스 댄스 레볼루션’은 아케이드 게임의 마지막 대표 주자였다.

 89년에는 닌텐도가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 보이’를 선보였다. 다음해 나온 ‘슈퍼 마리오3’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비디오 게임 카트리지 기록을 세웠다. ‘세가 게임 기어’ ‘아타리 링크스’ 등의 제품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90년 닌텐도의 수퍼 NES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활짝 열었다. ‘슈퍼 마리오 월드’ ‘젤다의 전설’ ‘마리오 카트’ ‘파이널 판타지4’ ‘콘트라3’ ‘메가맨X’ 등 전설적인 게임들이 잇따라 출시됐다. 수퍼NES는 4900만 대가 팔리는 빅 히트를 쳤다.

5세대(1993~98년) 카트리지에서 CD 시대로

2004년 출시된 일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포터블(PSP)’.
일본에서는 94년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 ‘PC-FX’ 등 CD 기반의 세 가지 인기 게임기가 나왔다. 세가 새턴과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은 95년 미국에도 출시됐다. 새턴은 한국에서는 삼성 새턴으로 출시됐다. 플레이스테이션은 급속한 인기를 얻으며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특히 닌텐도가 고전하기 시작했다. 카트리지 방식을 고집했던 닌텐도가 CD 방식으로 진화하는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서다. 카트리지 방식은 제조 비용이 많이 들고 저장 용량이 CD보다 적다. 닌텐도 NES용으로 제작되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97년부터 CD방식의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바뀌었다. 이 게임은 엄청난 인기를 끌며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정용 게임기 시장 1위에 올려놨다. 이에 닌텐도도 ‘골든 아이 007’이라는 새 게임기 ‘닌텐도64’를 통해 일인칭 슈팅 게임이라는 장르를 열었다.

6세대(1999~2004년) 복잡하고 세련된 게임

세가는 99년 사운을 건 차세대 게임기 ‘드림캐스트’를 내놓았지만 실패로 끝났다. 결국 게임기 하드웨어 제작에서 손을 떼고 소프트웨어 제작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 드림캐스트는 최초로 모뎀이 장착된 게임기로 온라인 게임을 가능하게 했다. 게이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그래픽 칩의 개발 지원과 게임 공급 부족으로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비운의 게임기’로 불렸다. 반면 소니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이어갔다. 2000년 등장한 플레이스테이션2는 DVD를 최초로 탑재한 기기였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게임기로 1억4760만 대의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 게임기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2000가지가 넘었다. 마이크로소트프(MS)도 게임 시장에 뛰어들어 2000년 엑스박스(XBOX)를 내놓았다. 첨단 게임들이 선보이면서 콘텐트가 점점 세련되고 복잡해지면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놀이문화로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등 다중사용자온라인게임(MMORPG)의 대중화 시대에 들어서기도 했다.

7세대(2004년~현재) 3차원 동작인식 게임

휴대용 게임기가 대중화됐다. 닌텐도의 닌텐도DS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SP)이 2004년 등장했다. 닌텐도DS의 터치스크린과 간편한 조작법은 어린이들도 쉽게 즐길 수 있었다. 이 제품으로 닌텐도는 부진을 씻어내며 게임 명가의 영예를 회복했다. PSP는 베테랑 게이머들을 위한 제품이었다. 모바일 게임시대에 들어서면서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팟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애플 콘텐트 장터인 앱스토어는 모바일 게임 시대에 기여했다.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는 ‘닌텐도 위’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혔다. 닌텐도 위의 기술은 엑스박스나 PS3에 비해 떨어졌지만 무선 리모컨을 이용한 동작 인식 작동법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2010년 MS는 닌텐도에 대항하기 위해 키넥트를, 소니는 PS 무브를 선보이며 닌텐도 위의 성공 모델을 벤치마크했다. 이들 제품은 리모컨 없이도 동작을 인식하는 최첨단 기기다.

●도움말 주신 분: 이정엽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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