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39> 2010 한국 영화 11선
소리 소문 없이 걸렸던 ‘계몽영화’ ‘여행’ ‘경계도시2’ … 전문가들도 박수
기선민 기자
‘대표영화’라고 하지만 대중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선정작 10편 중 소위 ‘흥행작’은 강우석 감독의 ‘이끼’와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 뿐이다. 한국영화의 도전의식과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숨은 보석’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더 어울릴 법하다.
우선 ‘칸 영화제 3인방’이 눈에 띈다. 지난해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과 대종상을 비롯한 국내 영화제 작품상을 휩쓴 이창동 감독의 ‘시’,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 비평가주간에서 이목을 집중시킨 장철수 감독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다. 홍 감독의 또 다른 저예산영화 ‘옥희의 영화’도 포함됐다. ‘계몽영화’ ‘빗자루, 금붕어 되다’ ‘경계도시2’ 등 독립영화가 3편이나 선정된 점도 이채롭다.
영화 복원이 한국영화의 뿌리가 된 ‘클래식(classic·고전)’에 대한 존중이라면, ‘올해의 영화’ 선정은 지금의 한국영화 흐름을 가늠하는 ‘컨템퍼러리(contemporary·동시대)’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11편의 영화는 30일까지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무료 재상영된다. 선정작업에 참여한 영화전문가들이 관객과의 대화도 갖는다. 일정 확인은 영상자료원 홈페이지(www.koreanfilm.or.kr)에서.
시 (이창동 감독, 윤정희·김희라·이다윗·안내상)
한국 리얼리즘 계보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보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완성도나 극적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의 틀을 빌려 지금 우리의 상처를 너무나도 선명하게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다. ‘시’는 ‘밀양’ ‘오아시스’에 이은 고통스러운 리얼리즘의 절정이다. 뒤늦게 시 쓰기 강좌에 등록한 할머니가 시 쓰는 과제를 받고 고민하던 중 홀로 키우던 손자의 비행(非行)을 알게 된다. 시 쓰기라는 행위와 인생의 본질을 절묘하게 병치시켰다. 지난해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돼 각본상을 받았지만 해외 언론의 찬사는 각본상 이상이었다. 원로배우 윤정희를 ‘흘러간 스타’에서 지금 이 시대 관객들과 재회시켰다는 점에서도 돋보인다.
독립영화로선 드물게 시대극을 시도했다. 친일파였던 아버지 덕에 유복한 생활을 누리는 주인공 학송(정승길)을 중심으로 일제시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정씨 3대’의 사연이 펼쳐진다. 역사에 얽힌 죄의식과 폭력이 한 집안에서 대물림되는 과정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이 돋보인다.
페어 러브 (신연식 감독, 안성기·이하나)
죽은 친구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중년남자의 이야기다. 꽃다발을 들고 어린 연인을 기다리는 장면 등에서 안성기라는 배우의 연기 폭이 생각보다 훨씬 넓음을 실감할 수 있다. 여배우 노출 장면, 드라마틱한 설정이 없다는 이유로 제작에 4년 가까이 걸렸다. 대신 그런 게 없이도 상큼하고 새로운 로맨스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장철수 감독, 서영희·지성원)
전국 관객 41만 명. 하지만 ‘아저씨’의 612만 관객만큼이나 지난해 돌풍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핏빛 복수극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잔혹코드로 이 영화를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 외딴 섬에서 평생을 성적·인격적 모욕에 시달려온 여인이 낫을 들고 마을 주민들을 몰살시키는 데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아픈 사연이 깔려 있으니까. 인간의 이기심을 꼬집는 현대심리물로서도 훌륭하다. 지난해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상영돼 ‘시’ ‘하하하’ 와 함께 칸 영화제에 ‘코리안 웨이브(한국영화 돌풍)’를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가 지난해 말 15주년을 맞아 관객 24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다시 보고 싶은 PiFan 무비’ 1위로 뽑히기도 했다.
여행 (배창호 감독, 박상규·박주희)
한국의 도시를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기획된 ‘영화 한국을 만나다’ 5편 중 하나. ‘여행’ ‘방학’ ‘외출’ 등 짤막한 세 편으로 구성됐다. 제주도를 무대로 청춘남녀·소녀·주부의 얘기가 펼쳐진다.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으로 1980년대 한국영화의 대명사로 통했던 배창호 감독의 삶에 대한 무르익은 시선을 음미할 수 있다.
이 밖에 ▶하하하(홍상수)=한여름 통영에서 벌어진 남녀들의 만남을 두 술꾼이 들려준다. 우연과 오해와 착각이 교차하는 홍상수영화의 특징은 여전하지만, 여느 때보다 웃음은 크게 터진다. 유준상·김상경·문소리·윤여정 출연. ▶옥희의 영화(홍상수)=옥희를 사이에 두고 나이 든 남자와 젊은 남자가 미묘한 사랑의 줄타기를 벌인다. 네 개의 다른 듯하지만 알고 보면 연결되는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묶였다. 이선균·정유미·문성근 출연. ▶빗자루, 금붕어 되다(김동주)=신림동 고시촌에 기거하는 50대 남자가 절망에 빠진 나머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다. 돈이 모든 걸 지배하는 각박한 사회의 단면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유순웅·김재록·최유진 출연. ▶경계도시2(홍형숙)=국가보안법 혐의로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재독 한국인 송두율 교수. 그가 37년 만에 귀국한 2003년 한국사회를 양분했던 거센 이데올로기 논란을 통해 분단의 상흔을 되짚어 보는 다큐멘터리. ▶이끼(강우석)=윤태호 인기 웹툰을 스크린에 옮겼다. ‘캐스팅 논란’이 거셌던 이장 역의 정재영을 비롯해 박해일·유준상·유해진·김준배 등 팽팽한 연기 앙상블이 원작의 긴장감을 배반하지 않는다. ▶부당거래(류승완)=스폰서 검사와 검경 갈등 등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핫 이슈를 통렬하게 짚은 사회파 코미디. 황정민·류승범 출연.
미국영화연구소(AFI)가 뽑았다
2010 세계 영화 톱 10
소셜 네트워크=17일(한국 시간) 열린 제68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드라마 부문)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실화와 허구를 멋들어지게 넘나든 ‘웨스트윙’ 작가 애런 소킨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데이비드 핀처의 합작품. 최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창립 뒷얘기,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블랙 스완=‘백조의 호수’ 캐스팅을 둘러싼 야망과 애증을 묘사한 심리 스릴러.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 1인2역을 차지한 행운의 주인공 니나 역의 내털리 포트먼이 생애 최고의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 제68회 골든글로브상 여우주연상 수상작(드라마 부문). 바버라 허시·위노나 라이더 출연. ‘더 레슬러’의 대런 아로노프스키 연출.
에브리바디 올라잇=산부인과 의사와 조경디자이너로 이뤄진 레즈비언 커플. 그들의 딸과 아들이 모인 기묘한 가족 안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웃음과 눈물의 드라마. 아네트 베닝과 줄리언 무어 두 여배우는 중견의 원숙미란 이런 것임을 확연히 보여준다. 아네트 베닝의 올해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작(뮤지컬·코미디 부문). 원제는 The Kids Are All Right.
윈터스 본=가석방된 아빠가 어느 날 실종되고, 두 어린 동생을 책임지게 된 소녀는 생존을 위해 아빠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참혹한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황량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처절한 현실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이제 겨우 두 번째 주연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여배우 제니퍼 로런스의 열연이 빛난다.
이 밖에 ▶인셉션 ▶토이스토리3 ▶파이터 ▶127시간 ▶더 타운 ▶트루 그릿에 대한 정보는 AFI 홈페이지(www.afi.com)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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