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와 일반적상식

[연합초대석] 안철수 KAIST 교수

ngo2002 2010. 9. 30. 09:31

[연합초대석] 안철수 KAIST 교수

"소프트웨어산업은 고용창출에 효과적"
"닌텐도 게임기 만들려면 수평적 사고 필요"
"어려운 시기는 문제 고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안철수 박사. '안철수'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보안 소프트웨어 벤처기업 범위를 넘어선다. 원칙 있는 경영, 새로운 가치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 등을 상징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그가 걸어온 길이 말해준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의대 교수직을 버리고 미개척지인 컴퓨터 보안업계에 뛰어든 것은 우리 사회의 상식을 뛰어넘는 선택이고 결단이었다. 그 후 안연구소의 CEO로서 성공적인 벤처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리고 4년 전, 또 다른 변화를 선택했다. 회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40대 중반 나이에 미 와튼스쿨 MBA 과정에 들어간 것. 귀국 후 카이스트 교수로 변신, 20대 학생들에게 자꾸 사라져가는 기업가 정신을 얘기해주고 안정지향적으로 가려는 젊은 세대의 흐름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현장경험에서 우러나온 안 박사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업을 들은 학생 중 진로를 바꾼 경우도 적지않다고 한다. 학생들이 매긴 강의평가에서 5.0 만점에 4.8점을 받을 정도로 인기 '짱'이다. 최근 그는 강의 외에 강연, 저술, 사외이사 등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분주하다. 중심 목표는 벤처산업의 성공확률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 중소기업, 벤처기업의 시스템적 문제에 대해 진단하고 조언해주는 컨설턴트,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시들어만 가는 벤처와 소프트웨어산업에 대한 얘기를 듣기 위해 안 박사를 만났다. 인터뷰를 하면서 최근 화제가 된 '닌텐도' 얘기를 꺼냈다. "최근 대통령께서 '우리는 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만들지 못하느냐'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그의 답변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우리가 닌텐도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에 오늘날 한국의 소프트웨어산업이 당면한 문제가 모두 담겨 있다는 지적이다. 표준 플랫폼의 확보와 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 동등한 관계라는 수평적 사고방식,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상생구조 등 3박자가 갖춰진 바탕 위에서 나온 결실이 닌텐도 제품이라는 얘기다.

벤처와 중소기업의 필요성에 대해 그는 고용창출의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대기업 위주의 경제시스템은 위기에 취약하기 때문에 중소기업과 벤처가 위험도를 낮추는 포트폴리오 역할을 할 수 있고 대기업에 대해서도 아이디어와 시장을 제공해줌으로써 대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준다는 것. 벤처 육성을 위해서는 정부 혼자서만 할 수는 없지만, 정부가 할 일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배후에서 해야 할 일은 더 많고 일해도 표시가 잘 안 난다고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고치고 벤처사업에 한번 실패하면 금융사범으로 만들어 다시는 창업을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바꾸는 것 등 이른바 '인프라' 구축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

"경제위기를 맞은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벤처ㆍ중소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호기인데 지금 나서지 않으면 5년 내로는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때는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 CEO 경험에 비춰 지금같이 어려울 때 기업 경영자나 직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 제가 IMF도 겪었고 그 다음에 회사가 다시 한번 위험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그걸 극복하고 다시 턴어라운드했던 경험이 있었는데요. 그 과정을 겪으면서 저 나름대로 깨달았던 것이 이 세상에는 사람도 그렇고 회사도 국가도 그렇고 항상 잘되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항상 안 되기만 하는 쪽도 없는 것이지요.

잘됐다가 힘들어졌다가 다시 잘됐다가 힘들어졌다가 반복이 되는데요. 사람의 인생이나 기업이나 국가의 라이프 사이클을 놓고 보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잘될 때가 아니라 안될 때를 어떻게 보내느냐 거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즉 잘될 때 조금이라도 더 잘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합니다만 전체 인생을 놓고 보면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미미한 것 같고요, 오히려 정말 안 되는 시기를 얼마나 잘 보내느냐가 인생의 핵심인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를 잘 보내게 되면 다시 모든 사람, 기업, 국가에 기회가 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 것이 잘 보내는 거냐. 제가 경험하고 책에도 썼습니다만 세 가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게 중요하고요. 두 번째는 그 동안 가지고 있었지만 고치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고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는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세 번째는 지금 당장 힘들고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자신과 회사와 국가의 장래에 대한 믿음, 언젠가는 잘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 그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은, 회사가 어렵다 보면 분식회계 유혹에 빠집니다. 그러면 당장은 편해지고 좋은 것 같지만 결국은 없어지지 않는 '주홍글씨' 같은 것이 됩니다. 유혹에 빠져서 편법을 쓰면 단기간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 장기간을 놓고 보면 오히려 그것이 발목을 잡고 나락으로 빠지게 하는 주범이 됩니다.

두 번째로는 문제를 고치는 건데요. 잘되는 시기는 문제를 알면서도 고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교만해지거나 또는 오히려 여력이 없어서 문제를 보고도 고치지 않는 법인데요. 그러면 문제는 언제 고칠 수 있느냐면 어려운 시기가 그 때입니다. 어려운 시기는 문제를 고치라고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문제를 고치면 새로운 기회가 올 때 다시 도약할 수가 있게 되는 거지요.

세 번째로 마음가짐인데요. 어려울 때 그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지금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정말로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분석하는 시각과 동시에, 자신과 미래에 대한 믿음과 열정을 가지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오랫동안 유혹에도 빠지지 않고 그리고 또 문제를 고치면서 기회를 기다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니까요. 이런 것들이 지금 개인, 또는 회사경영자들에게 중요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소프트웨어산업이 일자리 창출의 대안이 될 수는 없을까요.

▲ 예전에 정부 고위관료 한 분과 토론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들여다봤더니, 두 가지로 놀랐다. 첫 번째는 왜 그렇게 사람이 많으냐? 정말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있더라는 데서 놀랐다고 하시고요, 두 번째로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하는데도 매출액이 왜 그렇게 적으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적고 비효율적인 산업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혹시 바꿔서 생각해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람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산업이라는 것은 노동집약적(labour-intensive)인 산업이라는 말이고,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조금만 이 산업이 잘되더라도 엄청나게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그런 산업이다, 그런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소프트웨어 산업이라는 것은 제가 볼 때 고용창출을 어느 산업에 비해서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그런 산업입니다.

또 하나는 예전에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소프트웨어 산업만으로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 LCD 모니터라고 하면 하드웨어산업으로 알고 있는데 관계자 말을 들어보니까 원가의 40%가 소프트웨어 개발비랍니다. 그렇다면, 그게 꼭 하드웨어산업이라고만 볼 수가 없지요. 그 다음에, 우리나라가 조선산업이 세계 1위인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포함해서 IT 쪽 원가가 배 전체에서 얼마나 차지하겠느냐고 어떤 분이 물어보십니다. 그래서 10% 정도 아닐까요 했더니 30%랍니다. 그리고 또 요즘에는 자동차에 컴퓨터가 50대 가량 들어가다 보니까 예전에는 자동차 출시가 늦춰지는 이유가 설계를 잘못하거나 여러 가지 부품의 결함이라든지 이런 하드웨어적인 것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소프트웨어가 빨리 개발이 안 되거나 오류가 나면 그것 때문에 자동차 출시 자체가 지연된답니다.

그러면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산업 자체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력이 없으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자동차 선박, LCD와 같은 산업들이 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겁니다. 일자리 창출을 포함해서 다른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이제는 굉장히 크다는 거죠. 그래서 정말로 중요한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 벤처 붐이 꺼지면서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이 사라진 것 아닌지요. 안정적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인데 국가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스럽습니다.

▲ 우선 과연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선진국임에도 대기업만 존재해도 국가 전체경제가 문제없이 돌아가는 나라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어떠냐 그런 질문을 하십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니까 지금 한국의 경제상황에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가지는 의미는 세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국가 경제 포트폴리오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원래 포트폴리오 투자라고 하면 주식에서 한 주식만 사면 위험이 크기 때문에 여러 주식을 사서 분산투자 해서 위험도를 낮추는 게 포트폴리오 투자 기본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국가 경제도 대기업만 존재하는 경제시스템은 아무래도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요. 그건 이미 IMF 환란을 통해서 증명된 사실입니다. 대기업 경제구조와 함께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하나의 튼튼한 경제구조로 받쳐주면 장기적으로 위험도가 낮아질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고용창출입니다. 예전 IMF 이전에는 대기업 종사자가 200만 명 정도였던 시절도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IMF 이후에 매우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나왔음에도 국외로 공장을 이전한다든지 또는 효율성을 내세우다 보니까 기업규모는 커졌는데 고용규모는 130만 명도 안됩니다. 오히려 계속 줄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4천만 명 인구 중에서 130만 명만 그렇게 대기업에 고용되면 나머지는 일자리가 없습니다. 나머지 일자리들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서 만들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이 존재한다고 보고요.

세 번째로 가지는 의미는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튼튼하면 대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구글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그 회사가 바깥에서 보기는 너무나 튼튼해서 한국적인 상식으로는 저렇게 큰 인터넷 대기업이 있으니 지금 새롭게 인터넷 기업을 시작하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고 기회도 없을 것이다, 아예 포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실리콘밸리에 가보면 구글이라는 우산 아래서 수많은 인터넷 벤처기업들이 새롭게 생겨납니다. 구글이 자선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구글이 점점 커지면서 부족해지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전 세계적인 통계를 보면 혁신적 아이디어의 90%는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으로부터 생겨나고, 10% 미만만 대기업으로부터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글도 이런 생태계를 만들어서 자선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벤처기업들이 나오면 거기서 끊임없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공급받는 겁니다. 그러면 분기별로 수익은 모르겠습니다만, 장기적으로는 오랫동안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게 구글의 성공 비결인데요.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중소기업 벤처기업들이 튼튼하게 성장을 해주면 대기업에서 부족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끊임없이 공급받을 수 있어 계속 글로벌기업으로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시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제품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국내 소비자들이 그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를 해줘서 기술이 안정화되고 제품이 시장에서 증명되면 그게 미국으로 수출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끕니다. 중소기업, 벤처기업에서 건전한 중산층들이 많이 형성되어서 제품구매력이 높아지면 대기업들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되지요.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이렇게 기업가 정신이 쇠퇴하고 자꾸만 창업이 줄고 기존에 있던 중소기업들도 망하는 이런 현상은 단순히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위기가 아니라 장기적인 국가 경제 위기라 하겠습니다. 대기업만 잘 되어서는 절대로 계속 갈 수는 없어서 그렇습니다.

--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지원이 필요한지요.

▲ 정부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 또는 벤처기업을 둘러싸고 여러 이해관계자가 있지 않습니까. 당장 중소기업 본인들도 있고, 거래관계의 대기업, 공공기관들도 있고, 소비자들도 있고, 인프라에 해당하는 인력을 제공하는 대학을 포함해서 정부도 있습니다. 모든 이해당사자가 합심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정부만으로는 지금 같은 개방경제와 규제철폐의 시대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예전보다 더 어렵지요.

예전에는 정부 혼자서 하면 됐기 때문에 정부에서 계획대로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었는데요. 지금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이해를 구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그리고 전체를 조정하는 역할, 그것이 더 힘이 들고 전문성, 인내심을 요하고 더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고 그리고 또 일한 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하고요. 정부가 예전처럼 자기가 주인공인 것처럼 앞에 나와서 모든 사람의 인정과 평가를 받으려고만 한다면 이런 일은 굉장히 하기 어렵습니다.

평가를 못 받더라고 꼭 해야 하는 일, 장기적으로 중요한 일, 인프라에 해당하는 일을 한다는 그런 사명감, 마음가짐이 중요한 일이니까 사실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 청년문화에 대해 시대정신과 연계해서 말씀해주십시오.

▲ 저도 예전에 생각했던 것과 지금 카이스트에 교수로 가서 한 학기 정도 학생들을 가르친 후의 시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청년들과 직접 이야기를 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고 해서 요즘 청년들이 너무 안정 지향이고 전망만 따르고 많은 사람이 몰려가는 데로 가는 게 아닌가 해서 우려도 있고 실망도 했는데요, 이번에 학생들과 직접 접하고 가르쳐 보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은 옛날 청년이나 지금 청년이나 정신이나 마음가짐은 같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도전적이고 하고 싶은 일 찾고 인생에 대한 고민도 많고 심각하고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달라진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나 사회적인 인프라스트럭처, 인센티브 구조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도전정신이 있는 청년들을 안정지향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회책임인 것 같습니다. 불량청소년이 있는 게 아니라 불량 어른들만 있을 뿐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요. 그래서 청년 자체에서 문제점을 비판하고 위험을 감수하라고 윽박지르기보다는 그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 '한국에서는 빌 게이츠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발언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빌 게이츠 같은 스타를 기대하기는 무리일까요.

▲ 우선 스타시스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카(Carr)의 책을 봐도 나오는 이야기가 한 사람의 영웅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건가 아니면 역사의 흐름에서 선두에 있는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인가 이런 두 가지 시각이 있다고 보면 저는 사실 후자 쪽입니다. 한 사람이 아무리 똑똑한 천재나 영웅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갈 수는 없다고 봅니다.

만약 칭기즈칸이 없었으면 몽골이 그렇게 위세를 떨치지 못했을 것인가.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단지 그런 전체적인 흐름에서 거기에 대표되는 사람이 한 사람의 영웅으로 등장하고 역사책의 주인공이 되지만 한 사람이 역사를 송두리째 방향을 바꾸거나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제가 한국에 빌 게이츠가 와도 성공할 수 없다고 말씀 드린 그 이유는 빌 게이츠가 천재이고 정말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지만, 한국의 시스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천재가 전체적인 사회시스템까지 바꿀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요한 것은 사회시스템을 바꾸기 전에는 절대로 그런 스타가 탄생하거나 성공사례가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이라는 맥락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오해하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빌 게이츠 정도의 천재가 오면 성공하지 왜 못하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 뛰어난 한 사람이 기업을 먹여 살리고 국가 경제도 구해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 저는 그걸 믿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천재나 구국의 영웅이 나오더라도 그 사람은 결국 사회적 시스템의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결국은 정치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여러 명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어야 조금이라도 차별화를 기할 수 있다는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같은 맥락입니다. 사회적인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한 사람만 가지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한계가 있다, 또는 한 회사 정도는 먹여 살릴 수 있겠지만 한계를 벗어나서 크기는 어렵다 그런 맥락으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 최근 대통령께서 "우리는 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만들지 못하느냐?"는 얘기를 했습니다만.

▲ 저는 이번에 대통령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닌텐도 성공사례를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했는데요. 대표적인 것 중에 세 가지가 첫 번째는 플랫폼이라는 게, 표준화의 권리를 잡는 게 정말로 중요하구나. 두 번째는 흔히들 지금이 컨버전스 시대, 융합시대라고 하는데요. 융합시대의 시대정신은 수평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상생구조가 핵심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순서대로 설명을 드리면 첫 번째로는 닌텐도가 저렇게 성공한 원인이 거기서 만든 게임기가 표준 플랫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게임기 자체로서 수익을 얻기보다는 그건 원가 정도를 보상하는 선에서 그치고, 우선 목표는 그것을 많은 사람이 가지게 해서 그 플랫폼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들을 판매해서 거기서 수익의 대부분이 나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나 IBM PC 하드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표준을 자기가 획득, 확보하게 되면 거기서부터 엄청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고 부가가치가 많이 창출됩니다. 예전처럼 1등은 몇% 가지고 2등은 몇% 가지고 그런 세상이 아니라 1등이 전부를 다 갖는 그런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두 번째로 수평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아이팟도 같은 성공사례인데요. 아이팟이 왜 성공했느냐고 보면, 하드웨어 성능도 굉장히 좋고 디자인도 좋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지금의 성공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 성공의 배경에는 아이튠스라는 플랫폼이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플랫폼인데요. 아이팟을 연결해서 수많은 곡이나 비디오들을 내려 받을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서로 다른 두 분야가 동등한 입장에서,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의 장점을 취합해서 만든 그런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아이팟이고, 닌텐도입니다.

이런 성공은 수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드웨어가 우위이고 소프트웨어들이 그 뒤를 받쳐주는 하나의 부속품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아마도 가격정책들을 포함한 여러 정책이 달라지는데 그러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동등한 관계다, 누가 누구 밑이 아니라는 그런 관계에서 서로 장점을 취하려고 하고 협력할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평적인 사고방식이 지금 컨버전스. 융합의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입니다.

세 번째가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상생구조가 핵심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닌텐도를 보면 회사가 크고 수익이 많이 나지만, 자체적으로만 소프트웨어를 만들기에는 아이디어도 고갈되고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채택했던 것은 자기들이 플랫폼을 갖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그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도록 개방을 했습니다. 'third party'라고 하는데요, 닌텐도 이외의 회사들이 자기들 게임기에서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협조를 하고 그런 시스템을 만든 것이지요.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내니까, 닌텐도 혼자서만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거의 10배 이상의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게 된 거지요. 우리나라 관행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 또는 공공기관과 중소기업 간의 거래 관행처럼 인건비만 쳐서 주는 그런 방식을 썼다면 절대로 여기 협조하는 회사들이 없을 것이고 그러면 닌텐도는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정부에서 해야 될 일은 이러한 세 가지 측면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에 대해 관심을 두고 열심히 해보시면, 닌텐도 같은 회사가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 간단한 얘기가 아니군요.

▲ 그래서 회사 하나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회사 만들어서 닌텐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 교육현장에 몸담고 계신데요. 우리 교육이 창의적 인재를 키우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들과 말할 기회가 많았는데요. 한국에서 온 학생들에 대해서 한두 마디씩은 해주십니다. 공통적인 부분이 한국 학생들이 정말로 일을 잘한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한번 시켜보면, 미국의 일류 대학생들만큼 시킨 일에 대해서 그 결과물을 참 잘 만들어온답니다. 그런데 일을 시키는 게 아니고 더욱 더 근본적인 질문, 즉 왜 이런 일을 해야 되는가 또는 그 근본은 무엇인가 라고 질문을 던져보면, 미국에서 대학 나온 학생들은 학부 때부터 고민을 많이 해봤던 문제니까 쉽게 대답을 하지만, 한국학생들은 거기서 완전히 막힌다고 합니다. 한 번도 생각을 못해보다 보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시험을 치면 답은 잘 쓰는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창의력이라는 것은 이미 남들이 만들어놓은 정형화된 방법론에서 생겨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법론 이전에 더욱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고민을 하고 시간을 들이고 관심을 좀 더 넓게 둬야 창의력이 생기는 건데요, 창의력이 없다는 것은 거기에 기인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방식이라든지 학생들 선발하는 과정이라든지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지요. 왜냐하면, 결과는 이미 나와 있으니까요. 근본적인 곳을 수술해야만 되지 않겠습니까. 또 한편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학생 한 사람에게 들이는 공교육 비용에 사교육비까지 합치면 선진국보다 더 많은 비용을 교육에 쏟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나오는 결과는 떨어진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뒤집어서 보면 비관적이라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우리가 재정지출을 늘리지 않더라도 잘만 쓰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입니다. 우리가 선진국보다 투자를 못 하고 있으면 따라가기 벅찰 것이지만 그런 게 아니니까 오히려 희망을 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창의력을 갖는 건 불가능할까요.

▲ 저는 꼭 그렇게 믿지는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사고방식들에 많이 익숙해지면 어느 정도 창의력을 양성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겠습니다만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한국식으로 교육받더라도 대학에 가서 얼마든지 그런(창의적이 될) 가능성이 많이 열려 있다고 봅니다. 요즘은 융합의 시대이니까 다른 분야에 대해서 상식과 포용력을 가지고 전문성을 확보한다면 남들이 못 보는 연결고리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그런 부분도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 사회가 컴퓨터 보안문제에 무신경한 것은 아닌가요.

▲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발전해왔던 키워드 두 가지만 꼽는다면 아마도 제조업 및 하드웨어 기반의 수직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두 번째는 리스크 테이킹 (risk taking), 위험감수의 마음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이렇게 발전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마음이 다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첫째는 융합시대의 마음가짐, 수평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내가 지금 하는 분야가 있고 다른 사람이 하는 분야가 있는데 이 두 분야는 서로 동등하다, 서로 차이점이 존재하고 장단점이 존재할 뿐이지,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이 하는 일보다 더 고귀하거나 높은 것은 아니다는 그런 수평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는 위험관리(risk management)의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입니다. 성수대교가 붕괴했던 이유도 사실은 우리가 다리 건설하고 열심히 쓰기만 하고 관리를 안 하다 보니까 초기에는 비용도 많이 절감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다리가 무너져서 더 큰 손해를 본 것 아니겠습니까. 규모가 작을 때야 손해가 좀 나더라도 얻는 게 훨씬 더 많았지만,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상황에서는 조그만 실수도 엄청나게 큰 손해를 가져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위험관리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데요, 아직도 그게 좀 힘든 것 같기는 합니다. 보통 컴퓨터 보안이라고 하면 기술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기술 이슈가 아닙니다. 컴퓨터 보안은 기술 이슈가 아니고 문화와 인식, 습관의 이슈입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 드리면, 도둑이 많아서 최신식 자물쇠를 사서 설치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해지지 않아서 깜빡 잊고 안 잠그고 나옵니다. 그러면 도둑을 맞게 됩니다. 투자를 해야 된다는 마음가짐도 있고 실제로 구매를 했는데도 습관과 인식이 안되어 있어서 그 자물쇠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보안은 기술 이전에 인식과 습관,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가짐도 리스크 테이킹에서 리스크 매니지먼트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게 먼저이고 그 이후에 기술 이슈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인식이 잘못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더 좋은 기술만 개발되면 좀 더 안전해질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지식기반시대에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나가려면 어떤 방향으로 준비해야 하나요. 차별적 경쟁력은 무엇일까요.

▲ 우리나라에서는 좁은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습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압니다. 그리고 주위사람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러다 보니 질투심도 생기고 경쟁심도 생기고 독립심도 강하고 그런 게 저를 포함한 한국민족의 특성이지요. 피터 드러커가 한국 국민이 기업가 정신 측면에서 보면 세계에서 1위라고 말을 했던 이유도 거기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 다 독립심이 강하며, 내가 열심히 하고 여건만 된다면 나는 저 사람보다 잘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들, 아마 그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발전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또 고칠 점이라고 하면 그러다 보니 자기 주장이 강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인정을 하거나 또는 수평적인 관계, 동등한 상생, 또 투명성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숙제는 그런 쪽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자기가 가진 시각만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을 하고 단정을 하고 협조를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사회가 이렇게 복잡해지다 보면 자기에게는 상식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상식이 아닌 부분이 있을 수 있고요, 또 다른 사람에게는 상식이지만 자기는 처음 들어보는 부분들도 점점 생겨납니다.

옛날에는 상식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아는 것이었는데요. 사회가 복잡해지고 직업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상식이라는 말의 덫에 빠져서 내가 알면 상대방도 당연히 알아야 하고 모르면 그 사람은 바보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상식인데 내가 모르는 분야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서로 타협도 되지 않고 대화도 되지 않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 중요한 거죠.

-- 안연구소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저는 항상 판단을 할 때 세 가지를 봅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이 일이 정말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인가, 그리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리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인가, 그 세 가지만을 보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의사를 그만뒀을 때도 그랬습니다. 의대교수가 저한테는 정말 의미 있고, 재미있고,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은 우리나라에서 저 혼자 밖에 하지 않던 시대이다 보니까 이쪽 일이 더 의미가 크고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고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그 당시에 누가 봐도 말도 되지 않는 그런 결정을 하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벤처기업 창업 10년 만에 다시 그런 고민에 빠졌습니다. 안연구소 하나만 잘 경영하는 것도 의미 있고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만약 산업 전반적으로 벤처기업, 또는 중소기업의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다면 그건 한 회사 잘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가 큰 일이고, 더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제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사는 4년 전에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저는 산업 전반적으로 성공확률을 높이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물러난 직후 제가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자문을 해봤습니다. 제가 경험은 있지만, 남들을 잘 도와주려면 경험만으로는 되지 않고 경험이 잘 체계화가 되고 어느 정도 저변이 넓어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게 공부를 하러 가서 정리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였습니다. 사실 연구원이나 교환교수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듣고 싶은 과목만 듣고 마음 편하게 되어서 40대 중반의 소중한 시간을 제대로 잘 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처럼 토플 시험, GMAT 시험을 치고, 와튼스쿨 MBA로 학위과정에 입학했습니다.

들어가서는 고생하면서 많은 후회도 했지만, 2년 후 제대로 MBA 학위 받았고, 원래 제가 CEO 그만둘 때 생각했던 대로 카이스트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20대 학생들에게 자꾸 사라져가는 기업가정신에 대해서, 안전지향적으로 가는 청년층에 대해서 경고를 하고 바른쪽으로 인도를 해주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여러 가지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서 벤처산업 전반적으로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열심히 하는 중입니다.

-- 벤처가 생기지 않는 것은 비즈니스 할 대상이 없어서인가요.

▲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기업가라는 것은 남들이 못 보는 기회를 볼 수 있어야 되고 그걸로 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합니다. 인류역사를 돌아보면 항상 더 이상의 비즈니스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면 5년 후인 2014년에 지금 2009년을 돌이켜보면 명백하게 커다란 비즈니스 기회가 있었는데 몰랐구나라는 생각이 틀림없이 들 것입니다. 그 정보 많은 빌 게이츠 조차도 구글이 저렇게 클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실리콘밸리에는 새로운 벤처기업이 많이 생겨나는데 한국만 안 생겨납니다.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입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기업을 안 하려고 하는가. 크게 보면 두 가지 같습니다. 성공확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것과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점입니다.

성공확률이 낮다는 것은 이유가 또 세 가지인 것 같은데요. 첫째 벤처기업 하는 사람들이 실력이 부족합니다. 경영능력도 떨어지고요. 누구 탓하기 전에 벤처기업가 스스로 실력이 부족한 것이지요. 두 번째는 인프라가 부실합니다. 인프라는 인력을 제공해주는 대학이라든지 벤처캐피탈, 금융권, 또는 각 분야의 아웃소싱업체, 정부의 R&D정책 이런 것입니다. 인프라가 왜 중요하냐 하면 예를 들어 좋은 콜센터가 있으면 벤처기업마다 콜센터 만들 필요 없이 여기다 맡기면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고객만족도가 높으니까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전투할 때 전력을 분산 안 해도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인프라들이 부실하면, 벤처기업이 자기 일 이외에도 다른 많은 일을 같이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집니다. 세 번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거래 관행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이익을 다 가져가 버리니까 성공확률이 낮은 거고요.

리스크가 크다는 것은 이렇습니다. 실리콘밸리에는 실패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번 실패를 해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주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장기적으로 성공 확률을 높이고 더 창업을 많이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번 실패하면 금융사범이 되어서 다시는 재기를 못하는 사회시스템이니까 그걸 보고 아예 뛰어들지도 않는 겁니다. 그런 사회구조가 고쳐져야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벤처기업이 계속 생겨날 수 있습니다.

◇ 안철수 박사는 =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학박사,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공학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 스탠퍼드 대학 벤처비즈니스 과정과 고려대학교 기업지배구조 최고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3월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해 국내 대표 벤처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창립 10주년을 맞은 2005년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퇴임 후 곧바로 중소.벤처 업계 전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유학을 떠나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2008년 5월 귀국했다.

현재 카이스트에서 비즈니스 이코노믹스 프로그램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안철수연구소 CLO(Chief Learning Officer) 및 이사회 의장도 맡고 있다. 중소ㆍ벤처기업의 존재가 왜 중요한지, 성장을 위해 어떤 제도적, 인적 변화가 필요한지 역설하고 있으며, 인재를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 '바이러스 분석과 백신 제작' 등이 있다. 동탑산업훈장, 산업포장, 윤리경영대상, 한국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등을 수상했고, 비즈니스위크 가 뽑은 '아시아의 스타 25인', 세계경제포럼이 뽑은 '차세대 아시아의 리더 한국 대표 18인'에 선정된 바 있다.

jamieh@yna.co.kr

(서울=연합뉴스) 홍성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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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1 12:21:07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