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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농사직썰⑪] 품질관리는 과학…생산・수확보다 중요해진 ‘신선도’

ngo2002 2021. 10. 28. 07:46

 

 

 


입력 2021.10.07 07:01 수정 2021.10.06 17:28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품질관리에 눈 돌리는 세계 농업시장

농진청, 숨쉬는 필름 개발로 수출 공략

올해 CA컨테이너 시범사업 착수

 

홍윤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저장유통과장이 숨쉬는 필름으로 파프리카 수명을 한달까지 연장시킬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필름개발로 수출 농가들은 수익이 크게 개선됐다. ⓒ배군득 기자

#.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농서다. 1429년에 관찬으로 간행해 이듬해 각 도 감사와 주, 부, 군, 현 및 경중 2품 이상에서 나눠줬다. ‘新농사직썰’은 현대판 농업기법인 ‘디지털 농업’을 기반으로 한 데일리안 연중 기획이다. 새로운 농업기법을 쉽게 소개하는 코너다. 디지털 시스템과 함께 발전하는 농업의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누가 뭐라해도 생산과 수확이지. 이 두개는 우리나라 농업 발전의 양대산맥이잖아. 그런데 농업이 첨단기술과 종합산업으로 거듭나면서 생산과 수확만으로는 한계가 왔어.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얼마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야. 바로 품질관리를 통해 생산과 수확으로 거둔 식량의 유실을 줄이겠다는거지. 국내에서도 품질관리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어. 이제 우리도 선진국형 농업으로 한단계 도약하는 시기가 온거야.”

 

생산기업들의 전유물이던 품질관리가 농업에 정착하고 있다. 단순하게 씨를 뿌리고 이를 거두는 과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신선도를 유지하는 기술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 인식되는 품질관리는 불량품을 낮추기 위한 기업 생산 시스템이다.

 

농업에서는 신선도가 품질관리의 척도다. 얼마나 오랜 기간 과실의 신선도를 유지하며 손실을 적게 할 수 있느냐가 기술의 핵심인 셈이다. 이미 미국, 네덜란드,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같은 품질관리로 농업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꾸준한 연구를 바탕으로 품질관리 시장에서 경쟁국과 격차를 좁히는 모양새다.

 

◆신선도 유지 비밀은 ‘숨쉬는’ 필름과 용기

 

 

농산물 품질관리는 생각보다 까다롭다. 각 품종마다 온도가 다르고 생육시기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품종들의 적정 온도와 저장방식에 차별을 둔다.

 

과일의 경우 사과, 배, 대추 등 대부분 저장 온도가 0℃다. 복숭아는 품종별로 천도복숭아(5~8℃), 백도계(8~10℃)로 차이를 보인다.

 

채소는 대부분 상온을 유지해야 한다. 대표적인 수출품목 딸기는 0~4℃가 적정온도다. 파프리카・애호박・풋고추는 7~10℃, 고구마는 13~15℃ 수준이다.

 

농진청은 다양한 저장고에서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배군득 기자

저장온도를 결정짓는 것은 과일과 채소에 존재하는 ‘에틸렌’ 성분이다. 에틸렌은 식물호르몬의 하나로 화학구조가 지극히 간단한 탄화수소다. 다른 대부분의 식물호르몬들과 달리 에틸렌은 기체다. 식물의 여러 기관에서 생성되고, 대부분의 조직에서 소량으로 존재하면서 과일의 성숙, 개화, 잎의 탈리 등을 유도하거나 조절한다.

 

과일과 채소의 숙성 과정도 에틸렌 영향을 받는다. 이 에틸렌을 얼마나 늦추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느냐가 품질관리의 핵심이다.

 

홍윤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저장유통과장은 “에틸렌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신선도 유지는 달라진다”며 “국내에서 개발된 신선도 유지기술은 수출과 국내 유통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농진청에서 개발한 신선도 유지기술은 농식품 수출과 국내 유통에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신선 농산물 판매기간을 늘려주는 것은 물론 출하시기 조절을 통해 높은 가격에 수출이 가능하다. 수출국을 다변화하는 데도 일등공신이다.

 

대표 수출품목 중 하나인 딸기는 물러짐과 곰팡이 발생이 쉬워 선박으로 수출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딸기에 ‘이산화탄소(CO₂)와 이산화염소(ClO₂)를 동시에 처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딸기에 이산화탄소를 30% 농도로 3시간 처리하고 동시에 이산화염소 10ppm을 30분간 함께 처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물러짐과 부패를 15∼20% 줄일 수 있다. 또 저온(2℃)에서 신선도를 기존 7∼10일에서 10∼14일로 3∼4일간 연장할 수 있다.

 

농진청은 이 기술을 적용한 ‘이산화탄소・이산화염소 동시 복합 처리기’를 만들어 딸기 수출 단지인 충남 논산과 경남 진주 등에 보급해 동남아 딸기 수출 확대에 이바지하고 있다.

 

포도 수출의 일등공신 숨쉬는 필름과 용기. 이 기술이 도입되면서 포도의 중국 수출길이 열렸다. ⓒ배군득 기자

선박 수출 시 물러짐 등으로 잦은 클레임(이의제기)이 발생했던 포도에는 ‘엠에이(MA, Modified Atmosphere)포장기술’이 적용돼 수출길을 넓히는데 한몫했다.

 

이 기술은 포장상자에 유공비닐・흡습지·유황패드를 이용해 포도를 보관하고 운송온도를 0℃로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저장기간을 기존 2개월에서 5개월로 3개월이나 연장할 수 있다.

 

덕분에 포도 장기 저장유통이 가능해져 중국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또 ‘홍수출하’가 아닌 ‘분산출하’를 할 수 있어중국 명절 등에 맞춰 수출해 높은 가격을 받는 전략을 구상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포도 수출액은 전년보다 32.4% 증가한 3120만 달러를 기록하는 등 최근 가파르게 수출이 늘어나는 추세다.

 

쉽게 시들어 버리는 상추 등 잎채소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개발한 ‘숨 쉬는 포장 용기’는 신선도 유지기간을 2배 이상늘리며 잎채소 유통시장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숨 쉬는 포장 용기는 잎채소 호흡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에틸렌을 효과적으로 흡착할 수 있는 ‘야자수 활성탄’과 부패와 냄새를 억제하는 항균 기능이 있는 ‘키토산’을 사용해 만든 용기다.

 

이 용기를 이용하면 상추는 저장기간을 상온에서는 기존 2일에서 4일로, 4℃에서는 기존 10일에서 25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같은 신선도 유지 기술로 농식품 수출액은 75억6500만 달러로 전년보다 7.7% 늘었다. 이 중 신선 수출액은 14억28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홍 과장은 “농산물은 신선함이 품질과 가격을 좌우하는 만큼 품목별 특성에 맞는 포장기술과 물러짐이나 부패를 억제할 수 있는 환경제어 프로그램 등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유통 및 수출현장에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화중 충남 논산 농협 대리는 “이산화탄소·이산화염소 동시 복합 처리기 덕분에 수출 클레임이 많이 줄고 좀 더 신선한 딸기를 수출할 수 있어 한국산 딸기 이미지가 크게 향상됐다”며 “앞으로 동남아 전역으로 수출시장을 넓혀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품질관리에 눈 뜬 국내 농업…CA컨테이너에 주목

 

포장기술과 더불어 농진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기술이 바로 CA컨테이너다. CA(Controlled atmosphere)컨테이너를 통해 품목별 적정 환경조성이 가능하다. 과일과 채소별 다른 저장온도에도 적용할 수 있어 대량 수출이 가능하다.

 

농진청은 장거리 선박운송 중 발생하는 품질저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CA컨테이너 연구를 수행 중이다. 딸기 품종별, 포장방법별 CA 컨테이너 모의수송 선도유지효과 검증(3회)에서는 딸기(아리향, 금실, 설향 등 6종) 손실률 감소, 조직감 및 향미 유지효과를확인했다. 10일간 모의수송 후 부패율은 90(대조) → 40%(CA), 경도는 2.9(대조) → 3.1N(CA)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지난 7월에는 유럽수출용 새송이, 느티만가닥버섯 CA 컨테이너 모의실험이 이뤄졌다. 유럽 선박운송(45일 이상)시 품질저하 클레임 해소를 위한 CA 조건을 설정해 실제 과정을 그대로 재현시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올해 말에는 CA컨테이너를 활용해 동남아(베트남 등)시범 수출에 나선다.

 

올해 말이면 CA컨테이너를 통해 수출을 할 수 있다. 내년부터 농산물 수출이 고공행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배군득 기자

농진청이 CA컨테이너 기술을 추진하는 것은 이미 CA컨테이너를 보유한 국가들의 농산물 수출 실절이 눈에 띄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CA컨테이너를 도입한 일본은 그해 1~4월 농식품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다이킨공업이 개발한 동면기술을 적용해 온도・습도조절이 가능해져 2주간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수출국에 눈 도장을 찍었다. 일본은 농식품 신선도 유지 기술로 아시아지역 과일, 채소 수출을 선점하는 전환기를 맞기도 했다.

 

실제로 CA컨테이너는 아스파라거스, 아보카도, 바나나, 블루베리, 멜론, 키위, 망고 등 농산물 운송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특히 농산물 수출이 많은 중남미 지역에서는 품질 보존 유지기간 확대를 위해 기존 리퍼컨테이너보다 CA컨테이너를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홍 과장은 “CA컨테이너를 활용해 주요 수출 품목 상품화 기술 개발로 수출 활성화에 나서겠다”며 “침체된 내수시장의 활성화로 농가수익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0월 14일 [新농사직썰⑫]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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