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新농사직썰⑫] “모든 식물병 잡아낸다”…국내 최대 식물종합병원

ngo2002 2021. 10. 28. 07:46

 

 

 


입력 2021.10.14 07:01 수정 2021.10.13 18:21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 전문가들

국내 식물병 분야 ‘어벤져스’로 통해

4000종 넘는 병균 데이터베이스 구축

도열병 등 국내 식물병 예방・방제 컨트롤타워

 

국립농업과학원 관계자가 전자현미경으로 식량조직을 분석하고 있다. ⓒ배군득 기자

#.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농서다. 1429년에 관찬으로 간행해 이듬해 각 도 감사와 주, 부, 군, 현 및 경중 2품 이상에서 나눠줬다. ‘新농사직썰’은 현대판 농업기법인 ‘디지털 농업’을 기반으로 한 데일리안 연중 기획이다. 새로운 농업기법을 쉽게 소개하는 코너다. 디지털 시스템과 함께 발전하는 농업의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가 펜데믹에 빠졌어. 코로나는 새로운 바이러스로 아직까지 완벽한 치료제를 찾지 못하고 있지. 식물도 마찬가지야. 매번 새로운 병이 발생해서 큰 피해를 입기도 하지. 우리나라에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 식물병의 발생 원인과 방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어. 국내 유일한 식물종합병원인 셈이지. 식물병은 인류와 함께 시작됐어. 그만큼 식물병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없다는 의미지. 하지만 꾸준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예방과 방제하는 것은 가능해.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 연구진들을 ‘식물병 분야 어벤져스’라고 부르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아.”

 

식물병은 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시작됐다. 인류가 주식으로 식물을 본격적으로 재배하면서 식물병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이어져왔다. 식물병은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 등 생물적 원인과 온도, 습도, 대기오염 등 비생물적 원인으로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에서 전문인력들이 국내 식물병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병원으로 생각하면 3차 의료기관인 셈이다. 연구진들은 4000종이 넘는 식물병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향후 발생할 식물병 예방・방제에 불철주야 노력 중이다.

 

 

그러나 연구인력 부족과 새로운 식물병을 연구할 첨단시설 확충이 아쉬운 대목이다. 농업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데 전문인력 육성은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어 국가 차원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1692년 마녀사냥 원인은 호밀빵의 ‘맥각병’

 

식물에도 병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인류가 알게 된 것은 1800년대 중반 이후 부터다. 그 이전에는 식물이 병에 걸리는 것이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잘못을 저지른 인간에 대한 신의 응징이라고 믿었다.

 

이로 인해 맥각병에 걸린 호밀빵 섭취로 인한 중독증상을 마녀사냥으로 해결하며 희생자를 발생시켰는데 훗날 이 맥각에 환각제 일종인 LSD성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맥각병은 1692년 미국 세일럼 지역에서 호밀빵을 먹은 이들이 발작 증세를 보인 사건이다. 환자들이 온몸이 타는 것 같다고 호소해 당시에는 병명을 ‘지독한 불길’ 또는 ‘악마의 저주’라고 하거나 환자들을 돌본 성인 이름을 따서 ‘성 안토니오의 화염’이라고 불렀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에 저장된 각종 식물병 샘플들. 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 식물병 예방과 방제법의 기초가 되고 있다. ⓒ배군득 기자

그 유명한 마녀재판이 바로 맥각병으로 불리는 식물병이었던 것이다. 병전염병 원인을 밝히지 못하자 사람들은 마녀들이 악마의 저주를 불러왔다고 해 마녀재판으로 이어졌다. 전염병 원인을 마녀들에게 돌려 당시 마녀재판으로 20여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사형을 당했다.

 

마녀사냥은 이후 200년이나 지난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맥각병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맥각병은 곰팡이균에 감염된 호밀이다. 낟알이 커지고 딱딱해지며 갈색 또는 검은 각상돌기로 변하는데, 이 돌기를 맥각이라고 한다.

 

최효원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 농업연구사는 “밀에 비해 맥각병이 걸리기 쉬운 호밀은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먹는 식재료였다.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맥각병이 유행하게 된 것”이라며 “사람이 맥각중독증에 걸리면 복통과 근육경련, 불안, 떨림, 환각 및 정신이상 등이 발생한다.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효원 연구사가 고추흰가루병에 걸린 고추잎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다. ⓒ배군득 기자

앞서 1518년 로마에서 발생한 댄스사건에도 맥각병이 등장한다. 한 여자가 춤을 추기 시작해 마을 사람들 몇 천 명이 발광적인 춤을 췄는데, 병적으로 추는 춤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밥을 먹거나 용변을 보면서도 춤을 춘 사건이다. 이를 두고 맥각병이 원인이라는 추정이 강하게 제기됐다.

 

19세기 중엽, 150만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아일랜드 대기근은 감자역병이 원인이었다. 1845년에 시작해 1846년까지 발생한 감자역병으로 아일랜드 국민 4분의 1에 해당하는 100만명 이상이 고향을 떠났다.

 

감자역병은 기온이 서늘하고(16~20°C) 비가 많은 봄, 가을에 발생이 심하기 때문에 공기 중 습도와 병 발생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환경조건이 맞으면 병이 순식간에 번진다.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 6월 강원도에 감자역병이 발생해 고랭지 감자 수확량이 감소한 전례가 있다. 역병에 걸린 감자는 잎의 일부가 갈색으로 변하며 심한 경우 잎 가장자리에 흰색 실모양 병원균이 보인다. 줄기도 갈색으로 변하면서 약해지기 때문에 바람이 불었을 때 부러지기도 한다.

 

이밖에 스리랑카는 커피녹병으로 인해 나라 산업이 바뀌기도 하는 등 식물병은 역사적 사건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7년에는 바나나 멸종을 가져올지도 모를 파나마병이 세계 바나나 농가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국내에 발생한 메가톤급 식물병 ‘벼도열병’

 

국내에서도 매년 크고 작은 식물병이 발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역사적으로 심각한 식물병이 바로 ‘도열병’이다. 도열병은 여름 장마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상저온이 지속되면 발생하는 벼의 대표병이다. 주로 벼의 잎, 이삭, 이삭가지 등에 발생하고 잎에는 방추형 병반을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이삭목이나 이삭가지는 옅은 갈색으로 변하면서 말라죽는다.

 

지난 1978년 노풍벼 사건의 원인이 바로 도열병이다. 우리나라 쌀 자급 달성을 위해 힘쓴 육종가들 이름을 길이 남기고자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뜻으로 당시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 장장들 이름을 딴 벼 품종인 노풍벼와 내경벼에 도열병이 대발생한 사건이다.

 

1977년 통일계 신품종 재배 확대로 쌀 자급의 대업을 이루게 됐고 이듬해인 1978년에 전국적으로 통일계 신품종인 노풍벼와 내경벼를 무리하게(약 70% 이상으로 추정) 이앙했다.

 

그러나 그해 봄철 가뭄과 벼 생육기 저온, 그리고 일조부족이라는 도열병에 최적인 환경 조건과 더불어 통일계 품종을 침입하는 새로운 변이형 도열병균 출현으로 도열병이 대발생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최 연구사는 “도열병은 전세계적으로 벼 재배 지역에서 약 30% 수량 감소를 초래한다. 피해가 심한 경우 60~90% 수량이 감소되기도 한다”며 “올해도 늦장마와 이상기온 현상으로 도열병이 감지되고 있어 지속인 모니터링을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열병은 1960년대 냉전시대에 벌어졌던 생물학적 무기 개발 프로그램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국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반미성향 아시아 국가 식량안보에 타격을 주기 위해 벼도열병균을 무기화하는 실험을 진행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벼에 인위적인 곰팡이균을 주입해 키다리병 경과를 보는 실험. 키다리병은 국내에서 2013년 대규모로 창궐한 대표적인 병균이다. ⓒ배군득 기자

벼에 발생하는 또다른 식물병인 ‘키다리병균’도 골칫거리다. 벼의 키가 비정상적으로 자라는 증상이다. 모내기를 위해 모판에서 벼를 키울 때 전형적인 키가 크는 병징이 나타나며 이후 말라 죽는다. 최근에는 6월 말에서 7월 말까지 논에서 삐죽삐죽 나온 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1828년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병으로 일본어 발음은 ‘바카나에’로 불린다. 1926년 일본 과학자 쿠로사와에 의해 밝혀진 벼키다리병균은 곰팡이가 생산하는 물질에 의해 벼의 키가 크는 것을 밝혀냈다.

 

1931년 일본에서는 벼 수량의 20~50%가 감소되는 피해가 보고됐다. 또 태국,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인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적게는 3.7%에서 많게는 50% 수량 감소율을 보였다.

 

최 연구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까지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발생이 증가하고 있다”며 “2006년 이후 많은 연구를 통한 효과적인 방제법으로 2012년까지 감소하는 추세였는데 2013년 대발생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보리나 밀 이삭이 피는 시기인 4~5월에 비가 자주 내리게 되면 걸리기 쉬운 붉은곰팡이병, 한여름 고추밭에서 마치 포탄을 맞은 듯이 고추가 말라비틀어지는 현상의 고추탄저병 등이 국내에서 피해사례가 큰 식물병으로 꼽힌다.

 

◆꾸준한 예방・방제가 중요…적극적인 투자와 관심 있어야

 

농업에서 꽃은 생산량 향상과 기술개발이다. 항상 최전선에서 주목을 받고 성과가 좋으면 승진이나 명예가 주어진다. 식물병처럼 원인을 찾아내고 이를 예방하는 과정은 꾸준한 연구와 성과에 대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림자 역할을 하는 전문인력 육성이 절실한 이유다. 이는 식물병의 예방・방제가 선순환돼야 생산량과 기술개발도 빛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인간의 질병도 약물치료, 건강한 식습관, 예방주사 등 다양한 방법을 병행하듯 식물병도 종합적 방제가 필수다. 식물병 종류와 특성, 원인을 파악하고 해당 병에 맞는 최적의 방제법을 사용해야 한다.

 

식물병은 인류와 함께 가야할 운명이다. 전문인력 육성과 과학적인 시스템 도입은 향후 예방・방제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배군득 기자

병원균 특성 및 병의 발생 정도, 작물 생육 상황, 환경조건 등을 분석해 정확한 방제법을 적용해야 한다, 곰팡이병은 살균제, 세균병은 항생제를 사용하고 골든타임(최적기)를 놓치면 방제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농업을 위한 식물병 융복합 연구도 고민할 때다. 센서링을 통한 자동 방제, 인공지능에 의한 병 진단 시스템, 로봇을 활용한 재배 및 경작지에 대한 관리 등 선제적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김현란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장은 “종합 방제법은 전문가, 농업인 등 각자 역할이 필요하다. 이러한 분야에 작물보호과가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라며 “식물병은 앞으로도 인류와 함께할 운명이다. 인간이 농작물을 섭취하며 살아가는 이상 식물병은 계속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미래 환경변화에 다양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과장은 이어 “식물병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병의 원인과 작물과의 상호작용 등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며 “기후변화와 농업생태계 변화에 따른 재배작물의 다양한 방제법을 연구해야 한다. 국내 실정에 맞는 작물별 병해에 관한 종합적 관리 전략을 수립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10월 21일 [新농사직썰⑬]이 이어집니다.

#농촌진흥청

#농진청

#식물병

#맥각병

#도열병

#키다리병

#과수화상병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