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암과 싸우는 사람들⑨ 권성준 교수
한양대병원 암센터, 환자와 소통하는 암 치료
[MK헬스는 국민들에게 올바른 암 건강정보를 제공하고 암환자들의 암 극복 의지를 응원하기 위해 '암 정복 기획특집'을 마련한다. 이번 기획은 지난 3월 성공리에 막을 내린 제1회 국제암엑스포의 성과를 한데 모으고, 2011년 개최되는 제2회 국제암엑스포의 성공적 출발을 알리기 위해 진행된다. '암 정복 기획특집'은 △암과 싸우는 사람들 △암 예방이 희망이다 △암정복 신기술이 앞장선다 등 3개 주제로 구성된다.]
권성준 한양대병원 암센터 소장 |
"으하하하" 장난 섞인 웃음소리의 소유자 권성준 한양대병원 암센터 소장.
권 소장은 그의 연구실에서 맨발로 기자를 맞았다. 의사로서의 권위나 체면치레를 배제한 소탈한 모습이었다. 권 소장은 그의 연구실에서 신발을 잘 신지 않는다. 꾸밈없이 최대한 가볍고 편안하게 있고 싶어서다.
연구실에는 히말라야를 비롯한 각종 산을 찍어 놓은 사진들이 가득하다. 빈틈이 없을 정도로 연구실 벽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다. 또 그의 책상 위에는 큼직한 스피커가 4개나 놓여있다.
피아노와 성악을 전공한 아내와 딸들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늘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권 소장의 스피커에서는 최신 유행하는 곡에서부터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늘 다양한 음악이 흐른다. 이것만 보면 권 소장은 의사라기 보단 '자연인'에 가깝다.
그러나 연구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권 소장은 180도 돌변한다. 가슴은 따뜻하지만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까칠한 의사'로 말이다. 그는 환자들 사이에서 무서운 의사로 통한다. 권성준 한양대병원 암센터 소장을 만나 암 환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들어 봤다.
◆ 환자에게 확신을 주는 의사
암 환자는 다른 환자들과 조금 다르다. 암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 만으로 그들은 마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동요한다. 그렇기 때문에 암 환자들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주변 어르신들 말에 혹해 각종 민간요법에 의지하게 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권성준 소장은 이 같은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자칫 건강식품을 잘못 먹으면 암 치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동네사람 이야기 할 거면 찾아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동네사람이 암에 뭐가 좋다 하는 얘기를 듣고 그대로 따라 할 거면 병원에 왜 옵니까? 증명된 방법에 따라 체계적으로 치료해야 암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권 소장은 의사라면 환자에게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의 말을 믿고 잘 따라올 수 있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환자를 만나면 말투와 표정을 일부러 엄하게 한다.
그러나 늘 엄하기만 한 의사는 아니다. 권 소장 나름의 단계를 갖고 있다. 처음에는 무섭게 대하다가도 환자가 치료에 잘 따라와서 상태가 많이 호전되면 그동안 감춰뒀던 따뜻한 마음을 드러내 보인다.
또 그는 연구실을 나서기 전 꼭 거울을 본다.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환자를 만나야 믿음을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구두를 신고 넥타이를 깔끔하게 맨 후 머리도 한 번 손질하고 나서야 환자를 보러 나선다. 복도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은 인턴이나 레지던트를 보면 따끔하게 혼을 낸다.
◆ 환자의 상황까지 고려하는 의사
권성준 소장은 스스로에게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의사 가운을 입고 지낸 지난 22년 동안 그는 매일 아침 6시 50분이면 연구실을 나섰다. 7시 회진을 돌기 위해서다. 한 번 예외를 만들기 시작하면 자칫 나태해 질 수 있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늘 같은 시간에 회진을 돈다.
이처럼 칼 같은 성격을 가진 탓에 보수적인 사람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지만 권 소장은 사실 환자의 상황까지 고려하는 이해심 많은 의사다.
"1인실, 특실에 있는 환자한테는 성의껏 답해주고 7인실 환자들에게는 필요한 말만 하는 의사요? 저는 별롭니다. 돈 많다고 떵떵거리는 사람들 앞에서 왜 굽신거립니까? 저는 오히려 7인실 사람들에게 더 애착이 갑니다. 가서 손 한 번 더 잡아주고 보호자와 친해지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권 소장은 7인실에서 있었던 기억에 남는 일 하나를 털어놓았다. 한양대병원 식당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그에게 진료를 받던 때였다.
서른 살쯤 된 아들이 아주머니를 매일같이 극진히 간호하는 모습을 보고 권 소장은 "아들 참 잘 키웠습니다. 정말 효자네요"라고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 말 한 마디에 큰 감동을 받아 울먹거리더란다.
"7인실 사람들은 사회적 소외계층이에요. 더 이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검사 하나도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 한국인 특성 고려한 위암 병기 기준 만들 것
"지난 1월, 국제기구에서 위암 환자 병기 분류법을 개편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시아인의 데이터가 포함돼 있지를 않아요. 위암은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내년 4월에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위암학회 학술대회에서 개편된 병기 분류법의 부적절함에 대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 발표를 위해 권 소장은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18년 동안 수술한 위암 환자 2500여명의 데이터를 정리해 개편된 병기 분류가 왜 잘못 됐는지, 또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인의 안목에서 이뤄진 신분류법은 우리의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신분류에 따라 치료를 하다가는 자칫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권 소장의 생각이다.
"위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재발율이 5% 내외로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이미 진행된 암(4기)이라면 재발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80%가 재발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재발하는 암의 절반은 '복막파종'이라는 놈 때문인데 '복막파종'이 한 번 발생하면 대부분 1년 내에 사망하게 됩니다. 각 병기별로 체계적인 치료를 시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권성준 소장이지만 그는 "'실력 좋은 의사'가 되기에 앞서 '친절하고 말 잘 해주는 의사'가 돼야 한다"며 실력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상미 MK헬스 기자 [lsmclick@mkhealt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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