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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雁過拔毛

ngo2002 2010. 7. 14. 15:04

[한자로 보는 세상] 雁過拔毛 [중앙일보]

2010.07.07 00:19 입력 / 2010.07.07 08:50 수정

안항(雁行)은 기러기가 줄지어 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기러기가 눈앞을 지날 때 털 몇 개를 뽑는다는 말이 있다. 안과발모(雁過拔毛)다. 범상한 경지가 아니다. 무예(武藝)가 고강(高强)의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훗날 그 뜻이 점차 바뀌어 작은 이익을 취한다는 것으로 변형이 됐다. 기러기가 지날 때마다 털 몇 개씩 슬쩍슬쩍 뽑아 챙기는 게 마치 어떤 일을 하다가 떡고물이 보이면 바로 그 기회를 잡아 떡고물을 취하는 경우로 해석하게 됐다. 말은 돌릴수록 커지고 떡은 돌릴수록 작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비슷한 쓰임새의 말로 당승육(唐僧肉)이 있다.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당승육은 당(唐)나라 스님(僧)의 고기(肉)를 말한다. 스님은 불법(佛法)을 구하러 인도에 가는 현장법사(玄奘法師)다. 이 당나라 스님의 고기를 먹으면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는 이유에서 온갖 잡귀가 모여든다. 이런 연유로 당승육은 누구나 먹으려고 몰려드는 ‘먹을거리’에 비유된다.

2년 후 열리는 여수 엑스포가 당승육·안과발모의 처지에 빠진 모양이다. 야간 조명 사업과 관련해 담당 국장과 시의회 의원 모두가 제각기 크고 작은 떡고물을 챙겼다. 전임 시장은 뒤가 구렸는지 아예 잠적해 버렸다. 이쯤 되면 지나는 기러기에서 털 몇 개 뽑는 안과발모가 아니다. 지나는 기러기를 통째로 잡아먹는 ‘안과흘안(雁過吃雁)’의 부패 정도다.

중국 서진(西晉)의 왕연(王衍)은 지극히 청렴해 돈이란 말 자체를 입에 담기 꺼렸다(口不言錢)고 한다. 하루는 아내가 그런 남편을 시험코자 그가 잠든 사이 침대 주변에 동전을 가득 쌓아 놓았다. 한데 잠에서 깬 왕연의 말이 걸작이다. “이것들을 치워라(擧却阿堵物).” 아도(阿堵)는 당시의 속어로 이것(這個)이란 뜻이다. 아도물은 따라서 ‘이 물건’이 된다. 왕연의 이 말이 있고 나서 아도물은 돈을 가리키는 또 다른 칭호가 됐다. 청렴을 귀하게 여긴 그의 정신이 돋보인다.

지난달 30일로 임기를 마친 민선 4기 기초단체장 중 무려 42%가 기소됐다고 한다.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3991명의 지방관 중 훗날 영어(囹圄)의 몸이 되지 않을 자 과연 얼마나 될까…. 참 무더운 여름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