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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韓非子)』 내저설하(內儲設下)편에 나오는 말이다. 한비자(BC 280~BC 233)는 이를 ‘음모(陰謀)의 전형’이라 했다. 법가(法家)의 대가였던 그는 음모의 속성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한 철학자였다. 『한비자』에는 이 같은 음모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음모’는 병법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중국 고전에 비친 음모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고사성어 오월동주(吳越同舟)·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역 월(越)왕 구천(勾踐)과 오(吳)왕 부차(夫差)의 얘기다. 구천은 어느 날 부차가 복수를 위해 군사를 기르고 있다는 첩보를 받았다. 구천은 재상 범려를 불러 “우리가 먼저 암암리에 습격을 하자”고 제안했다. 범려의 대답은 이랬다. “아니 됩니다. 음모는 덕을 반하는 일입니다(陰謀逆德). 흉기(凶器)를 즐겨 사용하지요. 하등책입니다. 결국 불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사기(史記)』 월왕구천세가(越王勾踐世家)에 나오는 말이다. 『사기』는 또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趙高)와 승상 이사(李斯)가 꾸며 호해(胡亥)를 왕으로 옹립한 것을 ‘음모’로 규정했다. ‘음모’는 ‘악덕(惡德)’이었던 것이다.
강력한 왕권을 위해 음모와 술책의 정치를 주장했던 한비자가 친구의 음해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한비자는 재능을 알아본 진시황의 배려로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으나 이사의 모함으로 옥에 갇히고 만다. 그와 이사는 순자(筍子) 밑에서 함께 배운 동학(同學). 동학의 음모는 결국 한비자를 자살로 내몬다. ‘음모를 즐기는 자, 음모로 죽는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남의 뒷덜미를 치며 음모를 획책하는 자, 한비자가 왜 죽었는지를 생각해야 할 터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