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소탕으로 명성이 높았던 미 연방검사 출신의 루돌프 줄리아니가 1993년 뉴욕 시장에 당선된다. 줄리아니는 이듬해 시장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전공’을 살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범죄의 온상이던 뉴욕 지하철의 낙서를 지우는 데 엄청난 공을 들였고, 신호위반, 쓰레기 투기, 무임승차, 노상방뇨 등을 철저히 단속했다. 작은 범죄의 싹을 잘라 큰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실제 뉴욕의 범죄가 크게 줄면서 줄리아니는 찬사를 받았다. 재선에 성공했고,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됐다. 그러나 이후 많은 범죄학자들은 줄리아니의 치안정책으로 범죄율이 급락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했다. 뉴욕의 범죄 감소가 줄리아니가 시장이 되기 전인 1990년부터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임 시장이 시행한 경찰 인력의 대대적인 확충이 핵심요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특히 당시는 뉴욕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범죄가 감소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괴짜경제학>의 저자 스티븐 레빗 미 시카고대 교수는 줄리아니가 시장이 되기 20년 전인 1973년 미 연방대법원이 내린 낙태 합법화 판결(로 대 웨이드 판결)을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분석했다. 레빗은 낙태를 하려는 여성 대부분이 불우한데, 이들이 낙태금지법으로 낙태를 못하고 출산을 하면 그 아이들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낙태 합법화로 이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게 됐고, 범죄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실증적 분석을 내놓았다. 이처럼 현재 벌어지는 사태의 근본 원인이 당장 눈에 보이는 것보다 과거의 다른 요인들인 경우는 흔하다. 장기적인 추세 속에서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며 변동하는 경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최근 각종 경제 지표들이 악화되면서 경제위기론이 제기된다. 모름지기 경제위기쯤 되려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정도는 돼야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 경제가 그 정도로 악화될 조짐은 없다. 그래도 보수 야당·언론 등에서는 일부 지표를 강조하며 ‘외환위기 이후 최악’ ‘금융위기 이후 최악’ 등이라고 위기론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특히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정책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이미 한참 전부터 오늘의 결과를 내포한 구조적인 문제가 시작됐다. 대표적인 것이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조선과 자동차 등 고용유발 효과가 큰 산업의 침체다. 이들 산업의 부진은 공장이 몰린 부산, 울산, 경남, 전북 등의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등 각종 서비스업의 불황으로 이어지며 고용을 감소시키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주력 산업의 침체다. 이를 외면하고 오로지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만을 공격하며 경제위기론을 주장하는 것은 다른 속내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위기론은 전통적으로 기득권자들, 부자들의 무기다. 무엇인가를 잃지 않으려거나,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집값이 안정될까 싶으면 집값 폭락 위기를 부르짖는 식이다. 요즘 경제위기론을 설파하는 이들은 ‘기업의 기를 살려라’ ‘노조를 죽여야 경제가 산다’고 외친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조금씩 성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무산된 데 이어 탄력근로제 확대가 추진되면서 아직 본격 시작도 안 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흔들리고 있다. 거기에 덤으로, 아니 어쩌면 더 핵심일지 모를 현 정부와 지지층 간의 갈등까지 끌어냈다. 정부의 개혁 후퇴에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와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거리로 나섰다.
정권 내내 보수 기득권층의 공격에 시달리고, 경제는 집값에 발목 잡혔다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등을 추진하며 진보진영으로부터도 비판을 받아 허무한 결말을 맞았던 참여정부의 ‘데자뷔’가 보이기 시작한다. 앞으로도 경제지표들은 단시간에 크게 호전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 경제도 이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고, 산업은 더 적은 고용을 필요로 하는 길로 가고 있다. 그럴수록 기득권층은 더욱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수정을 요구할 것이고, 진보진영은 개혁을 후퇴시키지 말라고 반발할 것이다. 정부는 진퇴양난이다. 개혁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부문에서는 기득권층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가 주도권을 잡고, 양쪽을 리드해 나가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극단으로 갈라진 목소리 속에 소통은 안되고 정권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다. 이 시대의 진짜 위기는 경제위기가 아닌 합리적 소통의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