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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개편, 영국에서 배운다

ngo2002 2018. 10. 12. 11:27

연금 개편, 영국에서 배운다

입력 2018.10.12. 09:06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적대 정치' 극복한 시민참여 협의

[한겨레]

2017년 3월8일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부근에서 나이 든 여성들이 국가연금 혜택을 줄이는 데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REUTERS

연금개혁을 생각하는 정부는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하나는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안이다. 다른 하나는 여러 이해당사자가 타협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 장치다. 전자 못지않게 후자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2002~2008년 영국 노동당 정부의 연금개혁은 매우 흥미로운 사례다. 연금제도 자체를 보면, 영국은 본받을 만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대결의 정치’를 ‘합의의 정치’로 바꾼 모범 사례로, 시사점이 적지 않다.

마거릿 대처 정부의 연금개혁으로 영국은 민간연금 우위의 연금제도를 갖게 됐다. 방대한 직업연금과 개인연금이 공적연금을 압도했다. 얄팍한 공적연금은 기여를 조건으로 하기에, 실질적으로 보편적이지 않은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으로 구성됐다.

야당 시절 공적연금 강화를 약속한 노동당은 18년 만인 1997년 정권을 되찾자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야당 시절은 너무 길었고, 그동안 달라진 연금제도에 따른 이해관계가 새롭게 뿌리내렸다. 노동당도 과거의 노동당이 아니었다. 증세 불가를 공약한 ‘제3의 길’ 위에 선 신노동당(New Labour)이었다. 토니 블레어 정부는 1999년 공적연금을 조금 손보는 선에서 1차 연금개혁을 마무리했다.

2002년 재집권으로 여유를 갖게 된 노동당은 2차 연금개혁에 나선다. 노인 빈곤은 여전하고, 고령화는 가속화했다. 여기에 불안정 노동자가 늘어나 연금제도의 중추인 직업연금 가입자가 줄고, 어떤 연금에도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이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교체된 정부, 일관된 개혁

연금개혁은 2002년 시작돼 2012년 보수-자유 연립정부에서 끝났다. 10년이 걸린 셈이다. 중간에 정권이 교체됐으나 연금개혁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영국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핵심 내용은 △더 관대하고 보편적인 국가연금 △국가연금의 수령 나이 상향 조정 △새 직장연금 의무화로 요약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대처 정부 때 물가 연동으로 바뀌었던 기초연금을 소득 연동으로 되돌렸다. 의무 기여 기간을 대폭 줄이고, 관대한 돌봄 크레디트를 도입했다. 당시 남성 65살, 여성 60살이던 기초연금 수령 나이를 남녀 모두 2028년 67살, 2046년 68살로 올리기로 했다.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NEST라는 새 직장연금(기여율은 고용주 4%, 노동자 3%, 정부 1%)을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더 좋은 조건의 직업연금을 제공할 때만 이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100만 명 정도가 새로 연금을 갖게 될 것으로 예측됐다.

전체적으로 노후 보장에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사회적 약자의 연금권을 강화하는 방향의 개혁이다. 그러나 영국의 민간연금 우위 체계가 지닌 문제점을 치유하고 노인 빈곤을 해결하는 획기적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영국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개혁을 달성한 합의 방식이다. 단순다수제 선거제도와 양당 체제, 의회제 정부를 가진 영국의 정치제도는 정책을 좌절시킬 수 있는 지점을 말하는 거부점(veto point)이 적어 정부의 일방적 정책 결정이 쉽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적대 정치’를 영국 정치의 특징으로 꼽기도 한다. 과거 대부분 연금개혁도 적대 정치의 유구한 전통 속에서 정부의 일방주의에 따라 진행됐다.

그러나 2002년 블레어 정부는 이런 전례에 따르지 않았다. 우리가 주목하고 참고할 만한 ‘합의적 연금개혁’ 과정의 특징은 이렇다. 첫째, 블레어 총리는 재무부·노동연금부와 협의해 위원 세 사람의 연금위원회를 구성했다. 전 영국산업연맹 대표이자 당시 메릴린치 부회장이던 어데어 터너(총리 추천), 전 영국노동조합회 의장 지니 드레이크(재무부 장관 추천), 런던정치경제대학 교수 존 힐스(노동연금부 장관 추천)가 그들이다. 이들은 각자 출신에 따른 당파성을 자제했다. 터너의 놀라운 리더십에 따라 서로 협력하면서 탈정치적 논쟁을 통한 합의 형성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연금위원회는 여러 이해 당사자로 구성된 다른 나라의 대규모 사회적 합의 기구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단출했다. 연금위원회의 일차적 목적은 쓸 만한 정책 대안을 찾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심도 있는 조사와 심의가 가능한 군살 없는 조직이 유리했다. 또 각자가 자신의 조직을 대표하기에 자율성이 적고 견해를 바꾸기 힘든 사회적 대화 기구의 구성원과 달리, 이들은 되도록 초당적 관점에서 연금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는 합리적 정책 대안이 처음부터 모든 이해관계자가 모이는 사회적 대화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사실, 사실, 사실!”이라는 구호에서 잘 드러나듯, 연금위원회는 초기 단계에서 방대하고도 정확한 기초 자료의 구축에 집중했다. 개혁 불가피성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려는 조처다. 이렇게 구축된 자료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가공돼 대중적 협의 과정에 제공됐다. 사람들이 연금 관련 상황을 웬만큼 이해한 상태에서 토론하고, 조사에 응하고, 표결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국민연금의 8대 비밀’이란 글이 전국을 강타할 정도로 연금제도와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크고, 재정 추계를 놓고 ‘괴담’이니 ‘공포마케팅’이니 하며 큰 논란이 일어나는 우리의 상황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같은 사실에서 출발하지 않을 때는 합의는 물론 토론도 어려워진다.

셋째, 보고서 사실에 기초해 네 가지 대안을 마련한 위원회는 각각의 대안이 가진 이점과 부담을 선명하게 정리하고 권고안을 제시한 다음 다층적인 사회적 합의 구축에 들어갔다. 의견 수렴의 대표적 통로는 세 가지였다. △의회와 노동연금부가 여러 이해 당사자에게 요구해 수렴한 의견 △노동연금부와 연금위원회가 이해 당사자들과 진행한 각종 공식·비공식 협의 △더 대중적인 이벤트성 공적 협의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세 번째 방식이다.

대규모 공적 협의의 성과

2005년 2월 <연금백서>를 출간한 뒤 노동연금부 국무상들이 6월부터 11월까지 영국의 8개 지역에서 일반 대중, 지역 이해 당사자들과 ‘전 국민 연금 토론’을 열었다. 연금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가능한 선택지를 시민이 직접 의견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 노동연금부는 2006년 3월18일 숙의적 협의와 여론조사를 겸한 ‘전 국민 연금의 날’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는 영국 6개 지역에서 시민 1천여 명이 동시에 참여했다. 시민들은 하루 종일 연금에 대해 토론한다는 아이디어에 놀라움과 열정으로 반응했다.

참여자들은 우선 연금위원회가 제시한 대안을 놓고 투표했다. 그다음 연금위원회로부터 인구 고령화, 연금과 사적 저축의 실태, 노년 빈곤 전망 등 명확하고 쉽게 정리한 정보와 가능한 대안을 제공받았다. 참여자들은 대안을 놓고 활발한 토론을 벌이고, 다시 의견을 나타내는 투표를 실시했다. 비슷한 과정이 온라인을 통해서도 진행됐다. 영국 연금개혁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규모 공적 협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숙의적 공적 협의의 효과는 지대했다. 협의 이전 여론조사에서 시민 대부분은 자신의 기대 수명을 실제보다 훨씬 짧게 예측했다. 노후 문제를 먼 훗날의 일로 외면하고, 노년 빈곤을 싫어하면서도 증세나 연금 수령 나이를 올리는 것을 원치 않고, 저축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돈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등 무책임하고 모순적인 견해를 표출했다. 그러나 연금위원회가 제시한, 명백한 사실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불가피한 선택지를 토론하자 이전보다 훨씬 합리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다. 개혁에 따르는 비용과 부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돌아섰다.(표 참조)

영국 사례는 갈등을 최소화하는 합의적 연금개혁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국의 이해 당사자들도 처음엔 각자 이유에서 개혁안에 모두 반발했다. 그러나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엄중한 ‘사실’을 앞세운 연금위원회 주도의 다층적인 사회적 대화 과정은 결국 모두에게 개혁 필요성에 동의하고 각자의 쓴 잔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정치학 isola@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