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붕어빵' 아파트 문화가 바뀌려면..
손웅익 입력 2017.11.08. 02:00 수정 2017.11.08. 11:05
대량생산·공급자 측면의 아파트 건설
수요자 중심의 거주 개념 도입해야
다양성은 주거문화 바꿀 중요 가치
건축주 부부는 건설업자가 잘 아는 사이였다. 특별히 고려할 건 없고 자녀들은 다 출가해 노부부만 사는 집이지만 좁지 않게 설계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여행도 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기본 계획안을 만들어서 부산으로 향했다.
건축주는 제조업을 하는 나이가 지극한 분이었다. 특별한 요구가 있는 주택도 아니어서 계획안을 놓고 자신 있게 설명을 진행하는데 뭔가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설명을 끝내자 안주인이 좀 차갑고 불쾌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주택 설계해 본 적 있나요?” 너무나 충격적인 질문에 당황해서 잠시 말을 못하고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계획안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중하게 되물었다.
그분의 집에 대한 기준은 명확했다. 거실이나 방, 욕실 등은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주방은 독립된 공간으로 거실이나 식당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분은 주방 문을 닫고 혼자서 조용히 요리해야 하는데, 거실과 식당, 주방이 다 터진 구조로 설계했던 것이다. 이렇게 주방 공간이 열려 있으면 불안해서 요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설명을 듣자마자 설계도면을 덮었다. 그리고 정중하게 사과드린 후 다시 설계해 오겠다고 하고 일어섰다. 당연히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미리 챙겼어야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주택 설계를 하지 않는 건축사사무소가 많다. 설계비는 적은 데 비해 건축주의 요구사항이 까다롭고 디자인도 복잡하다. 그래서 주택은 손해를 감수하고 설계에 임해야 한다. 물론 유명 건축가에게 많은 설계비를 지불하고 작품으로서의 주택을 소유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첫 프로세스인 주택설계 단계에서 비용 지출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건축가가 주택설계를 기피하는 것이다.
━ 주택설계를 기피하는 이유
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때 설계프로젝트가 많아 가까운 분이 주택을 짓겠다고 했지만, 설계 작업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디자인만 하고 해당 구청 인근 건축사사무소에서 인허가를 진행하라고 양해를 구했다. 건축허가가 났다고 해 도면을 보니 필자가 디자인한 것과 전혀 다른 도면이었다.
알고 보니 그 사무소에선 한 가지 주택도면으로 동일한 크기로 분할된 주거단지의 건축허가를 받아내고 있었다. 건축주의 요구사항은 아랑곳하지 않고 붕어빵 찍어내듯이 복사한 도면으로 허가를 받아냈던 것이다. 표기된 지번도 옆집 지번이었다. 지번도 고치지 않고 도면을 복사해 허가를 받은 것이다. 이렇게 디자인 능력도 없지만 참 부도덕한 건축사도 더러 있다.
주거 문화가 획일화에서 벗어나려면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 만연해 있는 획일화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다양성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며 우리의 주거 문화를 바꾸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수필가 badaspa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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