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2) 아파트 생활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서지명 입력 2017.08.16. 04:01 수정 2017.08.16. 06:50
지은지 30년 넘어가면 재건축하려는 것도 문제
부부는 어느 휴일 딸을 데리고 어린이 놀이터를 가게 되었다. 그곳 모래밭을 밟은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울었다고 한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익숙한 아이가 발이 쑥 들어가는 모래밭이 공포로 다가온 것이다. 부부는 딸에게 자연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아파트 생활을 접고 자연으로 들어갔다.
우리의 주거환경이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급속히 바뀌면서 우리가 의도하지 않게 잃어버린 것이 많다. 그 젊은 부부처럼 적극적인 이주가 아니더라도 자연은 가끔 찾아 나서면 된다. 그러나 아파트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공동체의 삶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아파트의 동선 구조는 두 가지다.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한 층에 두 집이나 네 집 정도가 사용하는 구조를 ‘계단실 형 아파트’라 부른다. 이와 달리 복도를 따라 여러 집이 연접해 있는 구조를 ‘복도형 아파트’라 부른다.
━ 아파트 보급 초기엔 복도형이 대세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보급되기 시작할 때는 주로 복도형 아파트를 지었다. 복도형 아파트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의 숫자를 줄이고 더 많은 세대를 배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세대마다 뒤 베란다를 설치할 수 없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현관문도 조심해서 열어야 하고 복도 쪽 창문을 열어둘 수도 없다.
이렇게 복도형 아파트는 프라이버시나 공간적으로 여러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몇 가지 문제점 때문에 계단실 형 아파트가 복도형에 비해 고급이라고 인식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복도형 아파트를 거의 짓지 않는다.
그러나 복도형 아파트에 살아 본 사람들이라면 ‘공동체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구조라는 것을 잘 안다. 복도는 길이다. 긴 복도를 걸어가다 보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주민도 있고 마주치는 주민도 있다. 자연스레 얼굴이 익고 인사를 나누게 된다. 여름에는 현관문을 열어두고 발을 쳐둔 집도 많다. 마을 골목을 지나듯이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파트의 구조가 계단실 형으로 바뀌면서 우리 삶의 패턴도 바뀌었다. 계단실 형 아파트는 주차장에서 내 집까지 같은 동(棟) 주민을 거의 만나지 않고 출입하는 경우가 많다. 출퇴근 시간대나 라이프 사이클이 다른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경우가 없으므로 얼굴을 전혀 모른다. 현관문을 닫으면 무인도에 사는 것 같다.
━ 중국의 공동주거 공간 ‘토루’
중정을 둘러싼 거대한 공동주거의 아래층은 전부 주방과 창고이며 상부층은 침실로 구성되어 있다. 토루는 거대한 도넛 형상인데 내부 중정 주위를 복도가 둘러싸고 있다. 이 복도를 따라 걸으면 이웃과 자연스럽게 소통이 된다. 놀랍게도 가장 오래된 토루는 700여 년이 되었는데 그 구조가 유지되고 있으며 아직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badaspa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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