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의 모순.. 미국인으로 자라는 한국 아이들
최규화 기자 입력 2017.11.10. 15:04 수정 2017.11.10. 15:59
[특별기고] 김근규 미국 델라웨어주립대 교육학과-유아교육전공 교수
한국은 매년 출산율의 감소로 심각한 ‘인구절벽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지난 10여 년간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2016년 대한민국 출산율은 1.17명으로 세계에서 최하위권으로 분류돼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10년간 100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필자는 지난 20여 년간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 내에서 종종 해외로 입양되는 한국 아이들을 봐왔다. 새로운 미국인 양부모와 함께, 혹은 입양을 담당하는 한국의 근무자와 함께 미국으로 가는 한국의 신생아들이나 어린 영유아들을 보며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느꼈다.
한국의 해외입양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미국행 비행기표를 무료로 제공하는 조건으로 미국의 양부모에게 아이를 인계해주는 대리인을 모집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선배 중 한 분이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는데, “내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동”이라는 선배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 대한민국. 한국전쟁 이후 불가피한 해외입양이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했다고 자평하던 1999년부터 지난해인 2016년까지 미국에 입양된 한국 아이들의 숫자가 2만 318명에 달한다. 이 숫자는 우리나라 해외입양 중 가장 비중이 높은 미국에 국한된 숫자일 뿐,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 입양되는 한국 아이들의 수는 이보다 훨씬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국무부(U.S. Department of State) 총영사 입양 통계: https://travel.state.gov/content/adoptionsabroad/en/about-us/statistics.html
나라의 한쪽에서는 1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하며 출산을 장려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국내 입양가정을 찾지 못해 해외로 떠나고 있다. 이는 벼랑 끝에 선 대한민국 인구정책의 대표적인 실책이자 미래의 한국으로 나아가는 데 패착(敗着)이 될 수 있으며, 그 자체로도 커다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 1999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입양아 ‘2만 명’
2013년 아만다 리플리가 쓴 책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들’(The Smartest Kids in the World)에서, 대한민국 아이들은 장기간의 연구와 검증을 통해 세계에서 우수한 최상위 3개국 아이들에 선정될 만큼 훌륭한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그만큼 대한민국 아이들이 가진 지적능력과 재능은 탁월하다. 우리가 한낱 짐짝처럼 치부하는 한국의 아이들은 명품 중의 명품, 원석 중의 최고의 원석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일찍이 미국 행동주의의 선구자였던 심리학자 존 왓슨(John Watson)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에게 열두 명의 아이들을 달라. 그러면 나는 그들을 의사, 변호사, 예술가, 기업가 등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애초 목표한 대로 키워낼 자신이 있다. 심지어, 거지와 강도까지도.”
미국을 비롯한 해외로 입양되는 한국 아이들은 국가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훌륭한 인재로 얼마든지 키워낼 수 있다는 확신이 필자에게 있다.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미국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그리고 아이비리그(Ivy League) 대학을 비롯한 지역의 여러 명문대학의 교육현장에서 한국 출신의 아이들과 학생들을 만나왔다. 명석한 두뇌와 학습능력, 예의, 예술적 재능, 뛰어난 운동능력 등 일선 학교의 미국인 교사들 대다수는 한결같이 한국 아이들을 칭찬했고, 한국 아이들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최고의 학습자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지난 18년간 미국에 입양된 26만 7098명의 아이들은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바나나’로 부른다. 겉은 한국인(황인종)이지만 속을 까보면 미국인(백인종)인 그들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한국과 미국이 경기를 할 때면, 한국이 아닌 미국을 응원하고 있다. 그 아이들 중에서 조국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정치인, 경제인, 법조인, 교육자들이 나올 것을 생각하면 이는 한국의 엄청난 국부(國富)를 미국에 유출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국내 입양율이 저조해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은 민주선진국가를 자처하는 국가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아마추어적인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혈연 중심의 유교문화와 입양가정을 보는 편견과 거부감이 국내입양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이라면, 버려지고 소외받는 아이들이 국가 차원에서 모두 거둬 키우는 ‘국가주도-입양 및 양육책임제’를 제안하고 싶다.
◇ 버려지는 아이들을 국가가 키우는 ‘국가주도-입양 및 양육책임제’
‘국가주도-입양 및 양육책임제’는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첫째, 국내입양이 불발된 아이들은 나라에서 모두 입양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국공립유치원 수준의 양육시설을 갖춘 영유아 교육시설에 아이들을 위탁하고 보육과 교육을 하는 것이다. 기숙시설을 일반 가정의 아이들 방과 같은 구조로 갖추고, 아이들에게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하며 아이들의 신체 건강을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아이들의 크고 작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둘째, 검증된 질 높은 교사를 채용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 영유아기에는 국가 주도의 영유아 교육시설에서 지내고, 초·중·고등학교 때는 모든 아이들을 기숙형 사립학교(말 그대로 특수목적의 사립학교)에서 교육하도록 한다.
셋째, ‘후견인 제도’를 도입한다. 한 아이당 적어도 네 명의 후견인을 두도록 한다. 사회의 덕망 있는 지도자가족(교수, 법조인, 의료인, 기업인, 종교인 등)들이 주말마다 아이들을 찾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식사는 물론 다양한 활동(놀이, 레크리에이션, 스포츠, 야외활동, 캠프 등)을 하면서 일반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 역할을 대신한다.
마지막으로, 대학 진학 시 학자금대출시스템으로 아이들을 지원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 진학과 졸업 때까지 아이들에게 학자금을 대출해주고 기숙사비을 지원해주며, 취업 후에 원금만을 상환하도록 한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교육은 단지 우리 삶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활동 중 하나가 아니라, 삶의 기본 원리이자 핵심이며,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활동”이라고 했다.
인구절벽과 출산율 저하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100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도 문제의 기본을 해결하기는커녕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역대 정부의 모순적인 행정을 보면서, 적어도 현 정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내실 있게 계획하고, 공적지원을 통해 철저히 실행하며, 장단기 효과를 평가해가는 장기적 안목에서 고도의 수완을 발휘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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