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휴먼-80] - 스티브 잡스, 엘론 머스크 모두 거주지 영향을 받았다. - 구텐베르크는 포도주가 발달한 도시로부터 인쇄술의 영감을 얻었다. - 우리에게도 기술 발전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거주지가 필요해 보인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애플 컴퓨터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아이폰으로 세상을 편하게 만든 IT 산업의 거물이다. 그가 IT 비즈니스의 거물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시대적 배경이 중요했다. 빌 게이츠와 같은 1955년 생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는 시점에 젊은 시절을 보낸 것은 이들에게 행운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에서 더욱 중요한 요인은 어린 시절 거주지였다. CIT에서 리포맨으로 일하던 아버지 폴 잡스를 회사가 팰로앨토 지사로 전근시키면서 잡스네 가족은 그 근처에서 부동산 값이 조금 저렴한 마운틴뷰로 이사를 하였다. 당시 첨단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국방부 하도급 업체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곳이었다. 1956년에는 잠수함 탑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록히드 미사일 및 우주 분사가 설립되었다. 한편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휴랫패커드(HP)는 기술 장비 제조사로 빠르게 성장하며 자리 잡았다. 주위에 기술자와 개발자들이 넘쳐났다. 훗날 반도체 칩 기업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1971년에는 '일렉트로닉 뉴스' 칼럼니스트 돈 호플러에 의해 이 일대가 '실리콘밸리'로 명명된다. 실리콘밸리에서의 어린 시절 삶은 스티브 잡스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월터 아이작슨의 책 '스티브 잡스'에 잡스 본인의 증언이 나온다. "자라면서 이곳(실리콘밸리)의 역사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 그래서 저도 그 역사의 일부가 되고 싶었지요. …. 우리 동네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광전변환소자나 배터리, 레이더 같은 흥미로운 분야에 종사했어요. …. 저는 그런 것들이 놀라웠고 기회만 되면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서 자랐지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사업을 통해 끊임없이 인류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엘론 머스크도 거주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났다. 당시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실시되는 곳에서 엘론 머스크는 벗어나고 싶어했다. 무엇보다 18세에 백인 남성이라면 의무적으로 군에 입대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세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이때 하지 않았을까? 부모의 만류에도 17세의 머스크는 외갓집이 있는 캐나다로 건너가 대학에 진학한다. 학비를 벌기 위해 온갖 노동을 하며 버티던 그는 더 큰 기회를 잡기 위해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주립대를 들어갔다가 1995년 실리콘밸리의 중심인 스탠퍼드 대학원에 들어간다. (책 '엘론 머스크, 대담한 도전', 다케우치 가즈마사 저) 당시 이 지역은 인터넷 비즈니스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뜨거운 열기를 느껴 본인도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스탠퍼드대학교 박사 과정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그만둔다. 더 크고 더 깊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찾아 계속 이동하던 머스크 역시 사는 곳이 중요했다. 자신의 고향 남아프리카에서 벗어난 것, 캐나다에서 안주하지 않은 것, 미국 동부에서 서부, 그것도 창업의 요람 스탠퍼드대학교로 옮긴 것 모두 그러했다.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매일경제 김재훈 기자
거주지는 특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거나 기술을 발전시킨 인물들에게 중요하다. 잡스나 머스크와 같은 현대의 인물뿐만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도 이런 인물이 있다. 바로 활자 인쇄기를 발명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고향 마인츠는 그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까? 마인츠는 인쇄의 도시는 아니었다. 그곳은 강가를 따라 포도밭이 발달된 도시라서 동네 어디에서나 포도를 짜는 압축기를 볼 수 있었다. (책 '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우연학 입문', 빈스 에버트 저) 놀랍게도 구텐베르크는 술을 만드는 그 기구에서 인쇄술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활자 인쇄를 위해 충분한 압력이 필요한데 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렵자 포도 압축기 원리를 응용한다. 그 결과 대량 인쇄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3년에 걸쳐 활자판 여섯 대와 인쇄기 열두 대를 사용하여 성경 180부를 인쇄한다. 그 이후 널리 퍼져나간 이 기술은 유럽에 인쇄 붐을 일으킨다. 1500년 이전에 유럽에서 간행된 인쇄본을 뜻하는 '인쿠나불라(Incunabula)'가 500만부나 찍혀 나왔으며, 260여 유럽 도시의 1100여 개 인쇄소에서 2만7000종의 책이 출간되었다. (책 '케임브리지 독일사', 마틴 키친 저) 이 모든 것이 포도주의 고장 마인츠에서 태어나 압축기 기술을 인쇄술에 응용한 구텐베르크 덕분이다. 마인츠는 실리콘밸리처럼 이미 기술적 토대가 갖추어진 거주지인 셈이었다.
중국 역사에도 그런 사례는 등장한다. 종이를 발명(혹은 개량)한 인물인 후한의 채륜이 그랬다. 그 역시 거주지(생활환경)가 종이 발명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채륜은 환관이었다. 주 생활무대는 궁궐이다. 채륜은 상방령이었다. 황실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제작하는 일의 책임자다. 또한 황제의 측근으로서 자주 황제에게 보고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문서를 다룰 일이 많았을텐데, 아무래도 사용이 불편했던 것 같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전의 문서는 대나무, 비단 등 부피가 크거나 무겁고 값비싼 재료를 이용했다. 황제에게 보고서 하나를 올리는데 대나무를 잔뜩 들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불편할지 상상이 간다. 가벼운 문서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채륜이 이전에 주로 포장지 용도로만 사용하던 종이를 개량을 거듭해 가볍고 편리하게 만들어낸다. 궁궐에서도 새로운 물건을 개발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다양한 형태의 문서를 접했던 채륜이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새로운 생각을 해내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거주지의 영향은 강력하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매일경제 한주형 기자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기술을 발명하고 발전시킨 인물들은 거주지로부터 중요한 영향을 받았다. '기술'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과 상상력 허용성이 중요하다. 앞선 예들에서 알 수 있다. 앞으로 펼쳐질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전보다 기술의 역할과 비중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기술, 로봇 그리고 데이터와 끊임없이 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이런 거주지가 있을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당연히 자신의 거주지로부터 영감을 얻은 창업자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에게는 '부동산 불패'로 불리는 서울 강남이 있을 뿐이다. 교통과 교육, 쇼핑 인프라가 잘 갖추어졌다. 특히 교육은 단연 최고다. 개인별 맞춤식 교육이 가능하며, 국내 대학은 물론이고 미국의 아이비리그를 보낼 수 있는 방법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 친화적 거주지는 아니다. 맹모삼천지교의 수준에 머문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중요한 변곡점에 창의적인 생각을 해내고, 새로운 기술을 진보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는 거주지 하나쯤은 우리에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년 지방자치선거 때 기술 친화적 거주지를 지향하는 멋진 공약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