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효과(Medici effect)와 인문학 열풍 - 1 | |
전상희 대표이사 | 입력 2016-07-27 18:12 |
15~16세기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 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높았던 시민 가문이었고 공화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였으며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문화예술가들을 후원한 금융 가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대에 메디치 가문을 위시하여 문화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몇몇 가문들 덕분에 유명한 조각가, 과학자, 시인, 철학자, 금융가, 화가, 건축가 등이 피렌체로 몰려들었고, 이렇게 만난 이들은 그들 각자의 분야와 문화를 교류하면서 점차 자신들의 벽을 허물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고 그 결과 피렌체는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시대에 폭발적인 창조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이질적인 분야를 접목하여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것을 ‘메디치 효과’라 한다.
1996년 건축가 믹 피어스(Mick Pearce)는 건축주로부터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 ‘에어컨 시설이 없는’ 쇼핑센터를 지어 달라는 황당한 제안을 받게 된다. 하루 평균 온도가 섭씨 40도가 넘는 짐바브웨에서 이런 제안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짐바브웨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에서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보내고 런던에서 건축을 전공한 믹 피어스는 흰개미가 개미탑을 시원하게 유지하는 데 착안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 냈다. 흰개미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곰팡이를 키우기 위해 개미탑의 내부 온도를 30도로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아프리카 초원은 한낮에 기온이 38도까지 올랐다가 밤이 되면 5도까지 뚝 떨어지는 매우 큰 일교차를 보이는 지역이라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흰개미는 한낮에는 개미탑의 바닥에서 시원하고 축축한 바람을 내부로 들여보내고 또 밤이면 공기를 꼭대기 밖으로 내보내면서 내부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이를 응용한 믹 피어스는 쇼핑센터 건물의 옥상에 통풍구를 뚫어서 뜨거운 공기를 배출하게 했고 지표 아래에도 역시 구멍을 뚫어 찬 공기가 유입되도록 했다. 이렇게 지어진 이스트 쇼핑센터(East Gate Shopping Center)는 한여름 가장 더운 시간에도 에어컨 없이 실내 온도를 24도로 유지할 수 있는 친환경 건축물이 되었고 믹 피어스에게 건축의 새로운 분야, 즉 자연을 모방한 설계를 최초로 시도한 혁신적인 생태모사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믹 피어스와 짐바브웨 이스트 쇼핑센터)
프란스 요한슨(Frans Johansson)은 그의 책 ‘메디치 효과’에서 혁신의 돌파구는 ‘서로 다른 분야들의 교차점’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 분야 내부에서 개념을 결합시키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을 ‘지향적’ 혁신이라 한다면, 다양한 분야들이 한 곳에서 만나는 교차점에 수많은 개념들을 결합시키면서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비약하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을 ‘교차적’ 혁신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혁신을 이루는 가장 좋은 기회는 이 둘 사이의 교차점에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교차적 혁신을 통해 세상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지향적 혁신을 통해 그 가치를 높여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작금의 시대는 한동안 지속된 지향적 혁신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모두가 비약적 혁신을 가져다 줄 것으로 여겨지는 교차적 혁신을 찾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열망이 공학과 인문학의 결합을 통해 교차적 혁신의 교과서적 사례가 된 잡스를 따라하고자 하는 소위 ‘인문학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기가 다소 불순(?)한 것도 사실이지만 인문학 열풍은 한국인의 과도한 긴장을 다소나마 이완시켜주는 효과도 있을 듯하니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인문학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해서 교차적 혁신이 불쑥 솟아나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고와 다양하고 깊이있는 지식 등 진정한 혁신을 위해서는 준비되어야 하는 것들이 많고 이중 일부는 후천적으로 얻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이러한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들여다보는 인문학은 자칫 졸음을 불러오는 수면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에 대한 열망을 통해 교차적 혁신을 바라는 것은 이러한 시도가 성공할 때 따라오는 보상이 상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과도하게 목표지향적일 때 그에 이르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상만을 바라보고 급히 오르는 것보다는 산중턱에 피어 있는 꽃과 들풀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천천히 음미할 수 있을 때 삶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인문학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다면 천재적인 교차점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메디치 효과에 따른 교차적 혁신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전상희 (딤프 대표/공학박사/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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