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우선매수청구권 본문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우선매수청구권
"기업 되찾는 황금열쇠" vs "투자금 회수에 걸림돌"금호고속 인수전서 적정성 논란 일어동부팜한농은 '오해 차단' 권리 포기매일경제 오수현 입력 2015.05.29. 04:01 수정 2015.05.29. 04:04◆ 레이더 M ◆
28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호그룹은 지난 27일 IBK증권-케이스톤사모펀드(IBK펀드)에 금호고속 인수계약금 및 중도금으로 3000억원을 지급했다. 양측은 지난 26일 총 4150억원에 금호고속 지분 100%를 금호터미널에 매각하는 내용의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딜은 2010년 금호그룹이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돌입한 뒤 외부에 매각한 계열사를 되찾은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번 M&A의 원동력은 2012년 8월 회사 매각 당시 IBK펀드와 체결한 우선매수청구권 조항 덕분이었다.
하지만 금호고속 인수과정에선 잡음이 나오며 우선매수청구권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 상황이다. 권리를 가진 회사 측이 계열사를 되찾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보니 다른 인수후보자들에 대해 과도한 견제에 나서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IBK펀드가 지난해 하반기 금호고속 매각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수후보들에게 금호고속 구사회 명의로 인수전에 뛰어들지 말 것을 종용하는 편지가 발송되며 파장이 일기도 했다. 결국 예비입찰에 참여했던 칼라일, MBK파트너스 등 다수의 PEF들은 모두 본입찰에 불참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쥔 금호산업 매각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채권단은 박 회장이 금호산업에 사재 2000억여 원을 출연하는 등 경영 정상화에 일조한 점을 인정해 작년 말 워크아웃 졸업과 동시에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앞서 올 2월 말 실시된 예비입찰에는 호반건설, 신세계, MBK파트너스, IMM PE, 자베즈파트너스 등이 참여했지만, 지난달 본입찰에는 호반건설만 단독 참여하는 데 그쳤다.
권한을 행사하기 전까지 일련의 매각작업이 시장 논리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돼 입찰가가 산출되는 게 중요한데, 구 사주 측의 강력한 인수 의지 표명이 인수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투자은행 관계자는 "PEF들은 앞으로 기업 인수 시 대주주 측에 회사를 재인수할 권리를 부여하길 주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우선매수청구권 제도가 유독 한국에선 기업 측에만 유리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이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닌 한국 기업 오너들의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오너들은 유동성 위기로 회사를 매각했더라도 이런 권리를 보유하고 있으면 여전히 매각한 회사를 '자기 회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재무적투자자에 내 회사를 잠깐 맡겨놨다가 찾는다는 인식이 재인수 과정에서 잡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논란이 불거지자 아예 우선매수청구권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례도 있다. 동부팜한농 매각을 추진 중인 동부그룹은 '우선매수청구권이나 콜옵션(매도청구권)을 요구하지 않고 회사를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우선매수청구권이 지분을 잠시 맡기는 수단으로 오해를 받자 구조조정에 대한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회사를 되찾는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와 달리 선진국 기업과 투자기관 사이에선 무리 없이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월 세계 최대 맥주회사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인베브)가 오비맥주를 되찾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AB인베브는 1998년 두산그룹으로부터 오비맥주를 인수한 이후 2009년 글로벌 PEF인 KKR-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 컨소시엄에 18억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매각 당시 AB인베브는 2014년 7월 오비맥주를 재인수할 권리를 부여받았고, 5년 만에 이를 행사하면서 오비맥주를 되찾은 것이다. 당시 매각으로 KKR컨소시엄 측은 4조원에 달하는 매각차익을 남겼고, AB인베브는 아시아 맥주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생산거점을 확보했다.
PEF들이 기업 인수 때 가격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너무 쉽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한 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같은 권리를 약속할 경우 인수가를 낮추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워크아웃 기업의 구 사주 측에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은 채권단과 경영진이 하나가 돼 기업을 살리는 데 힘을 모으자는 취지"라며 "배임·횡령이 없고 사재출연 등으로 경영정상화에 기여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용어설명>
▷ 우선매수청구권 : 회사 매각 때 제3자에게 회사가 매각되기 전 같은 조건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예컨대 입찰 최고가격이 1조원이었다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해 같은 가격에 회사를 되살 수 있다.
[오수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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