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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어린이집 원장들, 내부고발자 '집요한 보복'

ngo2002 2013. 10. 30. 09:12

비리 어린이집 원장들, 내부고발자 '집요한 보복'

[전화·문자로 고발 교사 협박… 블랙리스트 돌려 취업도 막아]<br><br>비리 제보했던 학부모들엔 "당신 아이 이제 갈 곳 없다" 어린이집들에 소문 내 따돌림<br>내부고발자 신원 노출도 심각 조선일보 | 김형원 기자 | 입력2013.10.30 04:14 | 수정2013.10.30 05:51

기사 내용

"사진은…. 안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이 어렵게 입을 떼자, 참석자 모두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경찰이 "보복 범죄는 가장 엄히 다스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수상자를 안심시켰지만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지난 24일 오전 9시 30분쯤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열린 '비리 어린이집 신고 포상식' 풍경이다. 이 자리는 비리(非理) 어린이집 수사를 진행했던 송파서가 결정적 제보로 도움을 준 시민 8명에게 보답하기 위해 마련했다.

↑ [조선일보]

지난 1년간 진행된 비리 어린이집 수사 성과는 적지 않았다. 서울·경기 일대 비리 어린이집 238곳을 포착, 84억원에 이르는 국고 횡령을 확인했다. 200여명의 비리 어린이집 원장이 사법처리를 받았다. 수사는 아동 학대와 식자재비 부풀리기, 리베이트, 유령 교사 등재 등 어린이집의 비리 운영 백태(百態)를 밝혔다. 송파구 방이동 어린이집 원장 박모(여·60)씨는 돌도 안 된 영아(嬰兒)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게 붙잡혔고, 강동구 한 어린이집은 유통기한이 지난 생닭으로 죽을 끓여 원생에게 먹인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내부 고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수사였다. 그런데 수상자로 선정된 어린이집 보육교사·조리사·학부모들은 "어린이집 원장의 협박과 등쌀에 시달려 그간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었다"며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29일 경찰에 따르면, 실제 경찰 수사를 받은 일부 어린이집 원장은 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자신을 고발한 보육교사들을 위협한 것으로 드러났다. 포상식에 참석한 보육교사 박소희(가명·40)씨는 비리 어린이집 임원으로부터 "당신 두고 봐" "내가 당신 주민등록번호 다 갖고 있을 거야"라는 폭언을 들었다.

내부 고발 이후 강제 퇴직을 당한 보육교사들은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비리 어린이집 원장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어린이집연합회에 뿌렸기 때문이다. 보육교사 김윤주(가명·30)씨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그쪽 원장이 면전에 대고 대뜸 '전화를 돌려보니 김 선생이 별로라는 소문이 자자하다'는 말을 하더라"고 전했다.

문제를 제기했던 학부모들도 피해를 봤다. 고발당한 원장들이 "내부 고발한 ○○ 엄마 때문에 아이들을 돌볼 수 없게 됐다"며 소문을 내는 식이다. 학부모 최수연(가명·34)씨는 "비리 어린이집 원장이 '너희 아이들은 이제 갈 곳이 없다'고 협박했는데, 실제 우리 아이들을 맡겠다는 어린이집이 주변에 한 군데도 없었다"며 "주변 눈치도 있을뿐더러 마땅한 어린이집도 없어 쫓기듯 경기도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비리 신고 내부 고발자 보호는 여전히 미흡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에 따르면, 2002년 이후 부패 신고 내부 고발자의 보호 요청 178건 가운데 조치가 이뤄진 것은 62건에 불과했다. 한 학부모는 "구청에 신고한 그날 원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제보자 이름과 내용까지 곧장 어린이집에 알려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 관계자는 "구청이나 어린이집연합회를 통해 내부 고발자 신원이 노출되는 경우가 있다"며 "내부 고발자 신원을 철저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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