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협력의 자본주의, 공유경제 현장을 가다] <4> 공유경제와 대안적 자본주의

ngo2002 2013. 6. 14. 09:35

[협력의 자본주의, 공유경제 현장을 가다] <4> 공유경제와 대안적 자본주의

"내 여윳돈 필요한 사람에게" P2P금융, 탐욕의 악순환 끊어낸다
英 P2P대출 규모 8700억… 예금자-대출자금리윈윈
네트워크 통해 신뢰 쌓아 채무 불이행 비율 0.34%
"가치있는 일에 돈쓴다" 문화예술 작업 후원하는 십시일반 펀딩 사이트도
  • 영국 P2P 대출 플랫폼 업체 조파의 직원들이 런던 사무실에서 거래 규모 3억파운드를 돌파한 것을 기념해 이 수치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채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영국의 조파는 유럽 1위 규모의 P2P(개인 간 온라인 거래) 대출 플랫폼 업체다. P2P 대출이란 개인이 맡긴 여윳돈을, 필요로 하는 개인에게 빌려주는 금융 형식이다. 금융 위기 이후 은행 금리가 예금자와 대출자에 불리하게 조정되고 금융기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떨어지자 P2P 대출이 각광 받고 있다. 영국의 P2P 대출 규모는 현재 약 5억파운드(약 8,740억원)에 달하며 이중 조파를 통해 거래된 돈은 3억1,300만파운드(약 5,479억원)다.

조파의 성공 요인은 예금자와 대출자에게 유리한 금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1~3년 동안 돈을 맡기거나 빌릴 때는 4.6%, 4~5년에는 5.1%다. 반면 영국 은행의 예금 금리는 2%로 물가 상승률 2.4%보다 낮다. 은행이 직원과 지점을 유지하는데 많은 간접비용을 지출하는 반면 P2P 대출 업체는 대출 중개 과정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이런 금리가 가능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P2P금융

P2P 대출의 급격한 성장은 공유 문화 확산의 필연적 결과다. 조파 예금자 4만명의 약 4분의 1인 1만1,000명이 올해 증가했다. 조파의 홍보 담당자 매트 개즐리는 "공유경제 경험자 사이의 신뢰가 돈을 주고 받을 정도로 두터워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조파에게는 이용자들의 사회적 관계도 자본이다. 이 업체는 블로그 운영과 네트워킹 파티 개최 등을 통해 예금자와 대출자의 만남도 주선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회복하려는 시도다. 그 결과는 매우 낮은 채무 불이행 비율로 나타난다. 2010년 이후 상환되지 않은 돈은 0.34%에 불과하다.

같은 콘셉트의 사업이 다른 국가에서도 운영되고 있다. 경조사, 집수리 등 개인적 지출 용도로만 대출을 허가하는 조파보다 투자 성격이 강한 미국 업체들의 규모는 더 크다. 프로스퍼의 총 대출 규모는 50억달러(약 5조 6,000억원), 렌딩클럽은 19억달러(약 2조1,500억원)다.

P2P 금융의 성장은 소수 전문가가 독점한 금융 카르텔의 틈을 파고든다. P2P 금융에서는 돈의 흐름이 단순하고 투명해지는데, 이는 세계 경제 위기를 초래한 금융 자본주의의 폐단과 반대되는 특징이다. P2P 경제 연구기관인 P2P파운데이션 창립자 마이클 보웬스는 "P2P 금융은 윤리적 금융"이라고 말한다. 그는 "개인이 돈을 버는 목적 이외에도 사회적 책임, 이타주의 등 선의로 금융 네트워크에 참여하기 때문에 투명한 시스템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돈은 가치 있는 일을 위한 수단

프랑스 다큐멘터리 작가 라파엘 보그랑은 2010년 프랑스에서 옛 소련을 거쳐 일본 히로시마까지 자전거로 횡단하며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을 때 문화예술 전문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키스키스뱅크뱅크의 덕을 봤다. 키스키스뱅크뱅크는 영화감독, 사진가, 디자이너 등이 작업을 등록하면 이용자들이 제작비를 모아주는 십시일반 후원 플랫폼이다. 보그랑은 석 달간 181명으로부터 1만8,000유로(약 2,680만원)의 제작비를 모았다. 일부러 그를 찾아온 이도 있었다. 보그랑은 "제작사 투자를 받는 것과 달리 진짜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후원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2010년 3월 시작한 키스키스뱅크뱅크를 통해 3년 만에 문화예술 작업 3,500건에 필요한 제작비 600만유로(약 90억원)이 모였다. 창업자 빈센트 리코르디외는 이 사이트의 목적이 "돈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위한 수단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크라우드펀딩도 P2P 금융의 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키스키스뱅크뱅크와 비슷한 콘셉트의 미국 사이트 킥스타터에서는 지난해 177개국 224만명이 참여해 1만8,000여개 작업에 약 3억2,000만달러(약 3,600억원)을 모아줬다. 100만달러(약 11억3,000만원) 이상 모금한 작업도 17개나 된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출품작 중 10%가 여기서 제작비를 조달했다.

P2P 금융, 사회적 신뢰 성숙의 시험대

P2P 금융의 약진은 공유경제가 단순 소비자 운동을 넘어 생산, 소비, 유통, 금융 등 전 영역을 갖춘 종합적 경제 모델로 체계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공유경제가 기존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열쇠다. 모르는 사람에게 믿고 돈을 빌려줄 만큼 사회적 신뢰가 성숙하는 것이 공유경제의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독일 공유경제 기업의 평판 시스템 개발업체인 크레드포트의 창업자 남주 화이는 "공유경제에서는 신용이 아닌 신뢰 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크레드포트는 이용자의 페이스북, 링크드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내용, 이베이 등 P2P 사이트 거래 내역 등을 종합해 그에 대한 소개서를 만들어준다. 이베이에서 물건 팔고 받은 평가, 페이스북 친구, 취미와 취향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된다. 화이는 "사람들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정보에 대한 신뢰가 아닌 마음의 신뢰를 보편화하는 것이 사업목적"이라고 강조했다.

[협력의 자본주의, 공유경제 현장을 가다] 공유경제의 쟁점들

대기업 자본 진입 "토양 망칠것" "긍정작용도"
개인거래 규제 "법적 회색지대… 현실화를"
공유경제 기업에만 투자하는 미국 벤처투자사 컬래버레이티브펀드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크레이그 샤피로는 "공유경제는 과잉소비로 인한 자원 낭비, 불황과 급격한 기술 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 사회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기대에 힘입어 공유경제는 20세기형 자본주의의 대안 체제로서 꼴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지난달 프랑스에서 공유경제를 주제로 열린 IT 콘퍼런스 르웹의 기획자 로익 르 뫼르는 "공유경제가 진정성과 비물질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사적 선의에 그치지 않고 체계화할 수 있는 이유는 참여자들이 '탐욕은 나쁘지만 돈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유경제를 새로운 수익 창출원으로 주목한 대기업들이 이 영역에 진출하면서 우려도 나온다. 공유경제는 지역과 소규모 기업, 이용자 간 사회적 관계를 토양 삼아 성숙해 왔는데 이 속성이 위협받을 것이란 우려다.

반면 공유경제 컨설팅 단체인 컬래버레이티브랩의 창립자 레이첼 보츠먼은 "대기업 자본 유입의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 GM이 2011년 P2P 카셰어링 업체 릴레이라이즈에 1,300만달러를 투자한 것은 결과적으로 릴레이라이즈에서 중개되는 차량의 편리성과 보안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GM의 텔레매틱스(자동차와 무선통신을 결합한 시스템으로 내비게이션, 통신, 보안 등의 기능을 갖춤)인 온스타가 장착된 자동차 소유주들은 릴레이라이즈 등록 절차가 간소화됐고 이들 차를 빌리는 사람들도 열쇠가 아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문을 열거나 잠글 수 있게 됐다.

공유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제기된 또 다른 쟁점은 개인 거래에 기존 산업 규제 잣대를 적용할지 여부다. 공유경제를 선도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조차 규제 당국과 현실은 충돌한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해 4월 에어비앤비도 호텔세 과세 대상의 예외가 아니라고 규정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역시 에어비앤비를 면허 없는 호텔로 간주한다. 지난해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공시설위원회는 P2P 택시 서비스 업체들에 "면허 없이 택시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2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런 충돌이 잦아지자 법률가와 경제학자, 공유경제 기업가 등을 중심으로 공유경제 관련 법을 논의하는 움직임도 생겼다. 프랑스 변호사 안 로르 브랑뷔숑은 1년 전부터 법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포괄하는 법 논의 플랫폼 셰어렉스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등에서 150여명이 참여해 지역화폐, 시간은행(참여자들이 서로 돕고 이를 시간 단위로 축적해 타인의 도움을 받는 데 쓰는 거래 시스템), 크라우드펀딩, 공동 상표 등 다양한 공유경제 분야에 대한 법적 사례들을 논의하고 있다. 결과는 올 여름부터 온라인 상에 공개된다. 브랑뷔숑은 "공유경제는 기업과 이용자, 규제 당국 모두 법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회색 지대"라며 "셰어렉스 논의를 바탕으로 기존 법을 현실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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