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열전](3) 심완주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
ㆍ심장영상의학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는데 큰 역할
부친의 생물도감 보며 의사 꿈
‘1등 여학생=소아과’ 불문율 깨고
한국 첫 여성 심장내과 전문의
“긍정심이 심장 건강의 묘약”
“임상에 몸을 담근 지 어느덧 30여년이 됐어요. 외래진료하고, 검사결과 판독하고, 병실 회진하고…, 비슷한 일을 계속하는 것이 단조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끔 ‘나의 진료와 결정이 아니었다면 생명에 문제가 생겼을 만한’ 드라마틱한 환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런 일이 1년에 한 건만 있어도 한 해 전체가 보람차게 되는 순간이죠. 환자가 의사를 잘 만나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에 속하는 것이고,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로 의사에게 큰 행운입니다. 환자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터득한 의료기술을 성실하게 적용하면 그런 행운이 드물지 않게 생깁니다.”
심완주 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 교수(60). 그는 한국의 첫 여성 심장내과(순환기내과) 전문의로서 혈관질환 영상진단 및 치료 등 심장영상의학 분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연간 1만~1만2000여명의 고혈압, 심장병 환자를 진료하고 심장초음파 등 1만5000건 내외의 심혈관질환 영상을 판독하고 있다.
1970년대, 성적이 우수한 의대 여학생들은 대개 소아과를 지망했다. 1972년 고려대 의대에 입학한 심 교수는 예과와 본과 6년간 거의 1등을 도맡았다. 하지만 1978년 의사 면허를 획득한 뒤 내과를 지원해 대학과 병원을 술렁이게 했다.
당시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던 고려대병원 내과는 여의사를 안 뽑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어렵사리 내과 의국에 들어가, 홍일점으로서의 고충과 적지 않은 견제 등 힘든 수련과정을 견뎌야 했다. 1983년 마침내 고려대병원 사상 첫 ‘내과 여의사’가 탄생했다.
심 교수는 또 심장 분야에 도전, 1992년 국내 여의사 최초로 심장내과 전문의 자격을 획득했다.
“전공의 수련 생활은 긴장의 연속인 데다 잠을 못 자고 일을 해야 하니 몸이 힘든 것도 문제지만 공부한 것과 현실에서 부딪치는 환자와의 괴리감,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답답함도 많았어요. 실수도 있었지만 반복적인 훈련을 받고, 때론 정신 확 나게 혼나면서 점차 어려움을 극복하고 익숙해졌습니다. 교수가 된 후에도 심장내과의 특성상 ‘수분 내에 생사가 갈리는 위급한 순간’에 처치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중압감을 늘 받고 있습니다.”
심 교수의 부친은 약사였는데, 생물도감 같은 책을 많이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수시로 읽으며 놀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대학 진로를 앞두고 친척 아저씨로부터 ‘의학이 생물학하고 가깝고 의학을 하면 더 분야가 넓어진다’는 말을 듣고 의대 진학을 결심했다.
남녀 차별 없이 자식을 키우고 딸의 결정이나 의견을 늘 존중했던 부친은 ‘하고 싶은 공부의 연장’이라는 말에 ‘돈 많이 벌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면 됐다’며 흔쾌히 허락했다.
“공부를 안 해 나중에 환자를 제대로 치료를 못하면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진료과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내과에 도전해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죠. 하지만 내과에서 환영을 못 받았어요. 8년 선배인가, 중간에 그만둔 경우가 있어서 여의사에 대한 평가가 나빴다고 합니다. 그래도 제가 내과를 고집하니 동료 몇 명이 ‘완주가 한다고 하니 우리가 양보하자’며 지원을 안 했습니다. 내과가 제 성격에도 잘 맞았고, 기운이 좋아(?) 잠 안 자고 뛰어다녔죠. 인턴 때 응급실 환자를 병실이 없어 다른 병원으로 보낸 적이 있는데 그걸 문제삼더라고요. 잘못된 것이 없었는데 여의사라 당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순환기내과 분야는 의대에서 생리학 공부를 할 때 특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심 교수는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큰 힘을 준 사람으로 은사인 서순규 교수를 손꼽았다. 심전도를 처음 도입했고 내과학회 회장, 순환기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심장학 분야를 발전시킨 인물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서 교수님은 심장내과의 매력을 늘 발산했으며 심장내과 과장으로서 논리적 연구, 환자를 치료하는 자세 등을 가르쳐주셨어요. 또 주니어 교수였던 노영무 선생님(현재 세종병원장)에게서 심장학의 새로운 분야를 많이 배웠고요. 가족은 언제나 힘이 되어주었죠. 청소년기나 20대에는 부모님의 신뢰를 받았고, 결혼 이후 물리학(입자물리학) 교수인 남편은 저의 캐리어를 항상 존중해주었어요. 아이들도 엄마의 일을 인정하고 잘 자라주었습니다. 제가 복받은 사람이지요. 저의 치열함, 또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자세가 가족에게 부담이나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이 이해를 많이 해줘서 늘 감사합니다.”
심 교수는 예과 때 ‘휴머니티와 사랑을 위해서 의사를 할 것’이라고 다짐을 했다.
심부전으로 10년 이상 고생하던 환자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서 응급실에 왔고, 급히 갔을 때 힘든 상태에서도 주치의의 손을 잡고 ‘이제 좋아지겠지…’ 하듯 안도해하던 눈망울을 늘 기억한다. 그 환자는 불행히도 심 정지가 왔고 2시간의 심폐소생술에도 결국 소생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든 환자를 다 살릴 수는 없다. 모두 다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왜 치료를 못했는지, 왜 질환을 놓쳤는지 그것만큼은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심 교수가 의대생이나 레지던트(전공의) 교육에서 늘 강조하는 이 말은 의대생으로 첫발을 내딛던 순간에 ‘의술과 인술의 길’을 생각하며 가슴에 썼던 다짐과 연장선상에 있다.
“최근 심장병 환자가 늘어나고, 급성심근경색 등으로 인한 돌연사도 많아지는 만큼 적어도 40대가 되면 심전도검사를 해봐야 합니다. 수명의 증가에 따라 심질환 자체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데다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신장병, 대사증후군 등 악화 요인도 늘어나고 있어요. 흡연자, 고지혈증, 당뇨, 비만, 가족력 등을 가진 고위험군에서는 심전도나 초음파 등 심장 정기진단과 정밀검사가 중요합니다. 지방이 많은 음식, 짠 음식, 패스트푸드를 줄이고 피하면서 비만 개선, 금연, 절주, 운동의 생활화를 실천하는 것은 기본이죠. 특히 자신에 대한 존중감, 긍정적인 마음, 적극적인 자세, 인생의 자신감 등은 심장 건강을 챙기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부친의 생물도감 보며 의사 꿈
‘1등 여학생=소아과’ 불문율 깨고
한국 첫 여성 심장내과 전문의
“긍정심이 심장 건강의 묘약”
“임상에 몸을 담근 지 어느덧 30여년이 됐어요. 외래진료하고, 검사결과 판독하고, 병실 회진하고…, 비슷한 일을 계속하는 것이 단조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끔 ‘나의 진료와 결정이 아니었다면 생명에 문제가 생겼을 만한’ 드라마틱한 환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런 일이 1년에 한 건만 있어도 한 해 전체가 보람차게 되는 순간이죠. 환자가 의사를 잘 만나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에 속하는 것이고,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로 의사에게 큰 행운입니다. 환자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터득한 의료기술을 성실하게 적용하면 그런 행운이 드물지 않게 생깁니다.”
심완주 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 교수(60). 그는 한국의 첫 여성 심장내과(순환기내과) 전문의로서 혈관질환 영상진단 및 치료 등 심장영상의학 분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연간 1만~1만2000여명의 고혈압, 심장병 환자를 진료하고 심장초음파 등 1만5000건 내외의 심혈관질환 영상을 판독하고 있다.
심완주 교수는 한국의 첫 여성 심장내과 전문의다. 심 교수가 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1970년대, 성적이 우수한 의대 여학생들은 대개 소아과를 지망했다. 1972년 고려대 의대에 입학한 심 교수는 예과와 본과 6년간 거의 1등을 도맡았다. 하지만 1978년 의사 면허를 획득한 뒤 내과를 지원해 대학과 병원을 술렁이게 했다.
당시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던 고려대병원 내과는 여의사를 안 뽑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어렵사리 내과 의국에 들어가, 홍일점으로서의 고충과 적지 않은 견제 등 힘든 수련과정을 견뎌야 했다. 1983년 마침내 고려대병원 사상 첫 ‘내과 여의사’가 탄생했다.
심 교수는 또 심장 분야에 도전, 1992년 국내 여의사 최초로 심장내과 전문의 자격을 획득했다.
“전공의 수련 생활은 긴장의 연속인 데다 잠을 못 자고 일을 해야 하니 몸이 힘든 것도 문제지만 공부한 것과 현실에서 부딪치는 환자와의 괴리감,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답답함도 많았어요. 실수도 있었지만 반복적인 훈련을 받고, 때론 정신 확 나게 혼나면서 점차 어려움을 극복하고 익숙해졌습니다. 교수가 된 후에도 심장내과의 특성상 ‘수분 내에 생사가 갈리는 위급한 순간’에 처치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중압감을 늘 받고 있습니다.”
고려대 안암병원 심장내과 심완주 교수가 심장초음파 영상을 판독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심 교수의 부친은 약사였는데, 생물도감 같은 책을 많이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수시로 읽으며 놀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대학 진로를 앞두고 친척 아저씨로부터 ‘의학이 생물학하고 가깝고 의학을 하면 더 분야가 넓어진다’는 말을 듣고 의대 진학을 결심했다.
남녀 차별 없이 자식을 키우고 딸의 결정이나 의견을 늘 존중했던 부친은 ‘하고 싶은 공부의 연장’이라는 말에 ‘돈 많이 벌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면 됐다’며 흔쾌히 허락했다.
“공부를 안 해 나중에 환자를 제대로 치료를 못하면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진료과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내과에 도전해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죠. 하지만 내과에서 환영을 못 받았어요. 8년 선배인가, 중간에 그만둔 경우가 있어서 여의사에 대한 평가가 나빴다고 합니다. 그래도 제가 내과를 고집하니 동료 몇 명이 ‘완주가 한다고 하니 우리가 양보하자’며 지원을 안 했습니다. 내과가 제 성격에도 잘 맞았고, 기운이 좋아(?) 잠 안 자고 뛰어다녔죠. 인턴 때 응급실 환자를 병실이 없어 다른 병원으로 보낸 적이 있는데 그걸 문제삼더라고요. 잘못된 것이 없었는데 여의사라 당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순환기내과 분야는 의대에서 생리학 공부를 할 때 특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외래 진료실에서 경향신문과 ‘여의열전’ 인터뷰 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심완주 교수.
심 교수는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큰 힘을 준 사람으로 은사인 서순규 교수를 손꼽았다. 심전도를 처음 도입했고 내과학회 회장, 순환기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심장학 분야를 발전시킨 인물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서 교수님은 심장내과의 매력을 늘 발산했으며 심장내과 과장으로서 논리적 연구, 환자를 치료하는 자세 등을 가르쳐주셨어요. 또 주니어 교수였던 노영무 선생님(현재 세종병원장)에게서 심장학의 새로운 분야를 많이 배웠고요. 가족은 언제나 힘이 되어주었죠. 청소년기나 20대에는 부모님의 신뢰를 받았고, 결혼 이후 물리학(입자물리학) 교수인 남편은 저의 캐리어를 항상 존중해주었어요. 아이들도 엄마의 일을 인정하고 잘 자라주었습니다. 제가 복받은 사람이지요. 저의 치열함, 또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자세가 가족에게 부담이나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이 이해를 많이 해줘서 늘 감사합니다.”
심 교수는 예과 때 ‘휴머니티와 사랑을 위해서 의사를 할 것’이라고 다짐을 했다.
심부전으로 10년 이상 고생하던 환자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서 응급실에 왔고, 급히 갔을 때 힘든 상태에서도 주치의의 손을 잡고 ‘이제 좋아지겠지…’ 하듯 안도해하던 눈망울을 늘 기억한다. 그 환자는 불행히도 심 정지가 왔고 2시간의 심폐소생술에도 결국 소생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든 환자를 다 살릴 수는 없다. 모두 다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왜 치료를 못했는지, 왜 질환을 놓쳤는지 그것만큼은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심 교수가 의대생이나 레지던트(전공의) 교육에서 늘 강조하는 이 말은 의대생으로 첫발을 내딛던 순간에 ‘의술과 인술의 길’을 생각하며 가슴에 썼던 다짐과 연장선상에 있다.
“최근 심장병 환자가 늘어나고, 급성심근경색 등으로 인한 돌연사도 많아지는 만큼 적어도 40대가 되면 심전도검사를 해봐야 합니다. 수명의 증가에 따라 심질환 자체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데다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신장병, 대사증후군 등 악화 요인도 늘어나고 있어요. 흡연자, 고지혈증, 당뇨, 비만, 가족력 등을 가진 고위험군에서는 심전도나 초음파 등 심장 정기진단과 정밀검사가 중요합니다. 지방이 많은 음식, 짠 음식, 패스트푸드를 줄이고 피하면서 비만 개선, 금연, 절주, 운동의 생활화를 실천하는 것은 기본이죠. 특히 자신에 대한 존중감, 긍정적인 마음, 적극적인 자세, 인생의 자신감 등은 심장 건강을 챙기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 심완주 교수는
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 심완주 교수(내과 과장)는 첫 여성 심장전문의다. 심혈관 영상 및 고혈압, 심부전, 허혈성 심질환 분야의 진료 및 연구·교육에 매진해왔다.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장, 심혈관센터장, 대한심장학회 이사, 순환기학회 감사, 대한내과학회 간행위원, 한국심초음파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아름다운 중년> <건강한 중년, 날개를 달다> 등을 썼다. 국내외에서 17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심 교수는 “심초음파 등 영상의학을 이용한 심혈관질환 진단 및 치료는 한국이 가히 세계적”이라고 말했다.
심초음파 등 영상의학을 이용한 심혈관질환 진단 및 치료는 한국이 선도하고 있는 분야다. 이는 심 교수가 거둔 임상 및 연구 성과에 힘입은 바 크다. 이로써 환자 진료는 물론 순환기내과 분야의 심장전문의들이 보다 간편하고 정밀한 검사와 진단을 가능케 했다는 게 의학계의 평가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 심완주 교수(내과 과장)는 첫 여성 심장전문의다. 심혈관 영상 및 고혈압, 심부전, 허혈성 심질환 분야의 진료 및 연구·교육에 매진해왔다.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장, 심혈관센터장, 대한심장학회 이사, 순환기학회 감사, 대한내과학회 간행위원, 한국심초음파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아름다운 중년> <건강한 중년, 날개를 달다> 등을 썼다. 국내외에서 17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심 교수는 “심초음파 등 영상의학을 이용한 심혈관질환 진단 및 치료는 한국이 가히 세계적”이라고 말했다.
심초음파 등 영상의학을 이용한 심혈관질환 진단 및 치료는 한국이 선도하고 있는 분야다. 이는 심 교수가 거둔 임상 및 연구 성과에 힘입은 바 크다. 이로써 환자 진료는 물론 순환기내과 분야의 심장전문의들이 보다 간편하고 정밀한 검사와 진단을 가능케 했다는 게 의학계의 평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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