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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열전](1) 박귀원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교수

ngo2002 2013. 3. 22. 09:50

[여의열전](1) 박귀원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교수

ㆍ선천성 기형 등 고난도의 소아 수술 3만건 ‘기네스북 감’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박귀원 교수(64)를 지난달 22일 만났다. 전날 밤새 눈이 내렸지만 이날은 금세 녹아버릴 것처럼 날씨가 화창했다. 박 교수는 갑자기 잡힌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수술이 잘 됐다고 귀띔했다. 박 교수는 경향신문이 새로 연재를 시작한 ‘여의열전’의 1호 인사다. 남녀 차별이 점차 사라지는 게 사회적 추세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는 수많은 여성들의 선구적 활동이 있었다. 의학 분야도 다르지 않다. 박 교수는 흔치 않은 여성 외과의사로 수술과 연구활동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쌓아 해당 분야에서 1인자 대접을 받고 있다.
  박 교수가 이날 수술한 환자는 담도폐색증을 앓던 생후 2개월(63일)된 아기.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연간 수술이 10~15건에 그칠 정도로 흔치 않은 병이다. 제때 치료를 안 하면 간경화가 진행되고 간이 망가져 결국 이식받아야 한다. 몸에 들어간 음식물에 담즙이 섞이지 않아 두부 같은 흰색 대변을 보고, 황달 현상 및 그 수치가 높고, 초음파 진단에서 담낭이 거의 안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수술로 담도를 열어줘야 하며, 2~3시간은 걸린다.

담도폐색증은 태아 때부터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2개월 안에 수술을 해줘야 결과가 좋아요. 시간이 지나면 수술을 해도 잘 회복이 안 됩니다. 아이들에겐 큰 수술에 속하죠.”

경향신문은 8일부터 뛰어난 여성 의사들을 선정해 소개하는 ‘여의열전 시리즈’를 시작한다. 첫회 주인공인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박귀원 교수가 지난달 22일 인터뷰 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 서울대병원 제공


박 교수는 지난 40여년간 이렇게 아이 수술만 3만여건을 시행, 한국 외과학 분야의 대표 여의사로 꼽힌다. 최근에는 연간 600건 정도, 전성기에는 1000건 이상, 가장 많을 땐 1200건을 넘기도 했다.“어떤 날은 하루에 8건의 수술을 하고 파김치가 된 적도 있어요. 소아탈장(서혜부 탈장 등), 선천성 항문폐색, 장폐색, 장 신경이 없어 대변을 못보는 질환, 각종 소아 간암, 악성 부신암, 양성·악성 종양, 기형종 등등 종류도 많아요. 아이들은 수술을 받고 나서 회복이 아주 빨라 의료진을 기쁘게 합니다.”박 교수는 외과 여의사로서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 일익을 담당해 온 지난 인생을 비교적 명료하게, 때론 추억에 잠기 듯 반추해 나갔다.

“1972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그해 3월 서울대병원 인턴 때부터 수술에 (보조로) 참가했어요. 레지던트 1년차(73년) 때 맹장 수술 ‘초(初) 집도식’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납니다. 초 집도식에는 교수님이 조수를 서는데, 최국진 교수께서 조수가 되셨어요. 수술 중 맹장이 터지고 난리(?)가 나서 당황하며 최 교수님을 바라보니 ‘나는 조수니, 알아서 하라’는 눈치예요. 속으로 떨렸는데, 안 떠는 척하며 수술을 마쳤죠.”
박 교수는 넷째 딸이다. 부친은 대장항문 분야의 개척자인 박길수 교수(서울대 의대)다. 큰 언니는 고려대 의대, 둘째 언니는 서울대 치대, 셋째 언니는 서울대 의대를 나왔다. 집안 식구가 다 의료계로 나갔는데, 박 교수는 정작 의대에 갈 마음이 없었다. 법대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학비를 안 대주겠다고 해서 결국 의대에 입학했다. 본과 1학년 때까지는 후회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2~3학년 때 임상을 하다 보니 ‘남을 위해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보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외과를 지망할 때도 난관이 적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위원회에서 까다로운 심사를 했고, 특히 외과 과장(진병호 교수)과 의국장(김진복 교수)의 도장을 받아야 하는 데, 모두가 만류했다. 부친은 더 심했다. ‘누가 여자에게 수술을 받겠는가? 당직실 숙박이 가능하겠느냐’ 등등이 이유였다. 산부인과 의사인 어머니는 “산부인과도 외과분야니 산부인과가 어떻겠느냐”는 중재안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박 교수의 ‘외과 일념’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저 이전에는 서울대병원 외과에 여의사가 한 명도 없었어요. 그러니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셨겠죠. 그러나 여자가 외과를 못할 이유가 있나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의사라는 이유로 (담당의사를) 바꿔달라는 환자는 한 명도 없었던 거 같아요. 환자에게 ‘여자가 수술하는 게 겁 안나느냐’고 하면 ‘바느질을 더 잘하지 않느냐’는 말이 돌아올 정도였다니까요. 힘들 때가 많았지만 1년 위인 김성덕 교수(마취통증의학과·현 중앙대의료원장) 등 선배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어요.”흔히 메디컬 드라마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힘겨운 수련과정을 마치고 박 교수는 1977년 외과 전문의를 땄다. 사상 최초로 부녀 칼잡이(외과의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원자력병원에서 근무하다 79년에 서울대병원에 소아외과가 생기면서 전임의로 부임했다. 이듬해 교수요원이 된 후 연애나 결혼도 ‘반납’하고 대학병원 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연구에 몰두하며 수술실과 병실에서 어린 환자들과 동고동락한 지 30년이 넘는다. 그가 달성한 의사 개인의 3만건 수술은 기네스북 감이다. 연구 논문도 300여편이다. 대한소아외과학회 회장,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등 학계 및 여의계의 중심 역할도 맡았다. 박 교수는 “과거에는 부모가 잘 몰라도 할머니, 삼촌, 이모, 동네 사람 등 주변에서 ‘쟤 좀 이상하다’고 해서 병을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요즘은 이웃뿐 아니라 가족과의 교류도 줄다 보니 조기발견이 더 늦어진다”면서 “소아과에 정기적으로 예방접종을 받으러 갔을 때 예방주사만 달랑 맞고 돌아가지 말고, 아이의 발육 상태를 의사에게 자세히 얘기하면서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정년을 1년 남짓 남겨놓고 있는 박 교수는 “저보다 앞선 여의사 선배들이 잘했기에 여의사의 입지가 넓어지고 국민의 호감도가 높아진 것”이라며 “외과를 택해 보람도 많이 느꼈고, 속상한 일도 있었지만 생명이 위급한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들을 고쳐주고 살렸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병원장·의료 전문가 등 추천과 자문 거쳐 선정

“무엇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해야 올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항상 최선을 다하자.”경향신문이 새로 시작한 ‘여의열전’의 첫회를 장식한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박귀원 교수가 좌우명처럼 갖고 있는 말이다. 이 시리즈는 국민건강과 의학발전을 위해 교육·연구·진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여의사들을 매주 만나본다. 대상자는 전국 50여개 대학병원의 원장과 의료원장·학장, 그리고 원로 여의사, 의료 전문가 등 60여명의 복수 추천을 집계하고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선정했다. 최근 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흉부외과, 비뇨기과 등 남성이 주도하던 영역에 진출하는 여의사도 상당하다. 하지만 박 교수가 외과를 지망한 1970년대 초만 해도 외과(일반외과)는 물론 외과 분야에도 여의사는 매우 드물었다. 국가중앙병원에서 ‘여성 외과의사 1호’가 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여의계 외과학 분야 개척’의 공로를 돌리는 첫번째 이유가 된다.소아외과학 분야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환자가 흉부와 복부의 선천성 기형이다. 단 한번의 수술로 완벽한 교정을 이뤄야 하는 고난도의 수술이 필요하다. 박 교수는 연간 100례 이상, 20여년간 쌓은 선천성 기형 수술의 임상 경험을 70여편의 국내외 논문에 담아냈다. 소아외과 분야에서 질적·양적으로 진정한 1인자라는 얘기다. 하루 7~8시간의 수술 후에도 항상 밝고 소탈한 모습으로 소아 환자들과 잘 놀아주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도 정평이 나 있다.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입력 : 2013-03-07 20:04:53수정 : 2013-03-07 20: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