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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길]흐르는 강물처럼

ngo2002 2013. 3. 19. 10:17

[신정일의 길]흐르는 강물처럼

어린 시절을 섬진강 발원지 부근 시냇가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내게는 유년 시절부터 강에 대한 그리움이 싹텄다. 그 그리움이 자라서 후에 ‘한국의 10대 강 도보답사’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처음엔 금강을, 그리고 섬진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을 발원지에서 시작해 하구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강의 발원지인 샘에 도착해서 머릿속으로 강을 그려보면 강이 한 그루 우뚝 선 나무와 같음을 알 수 있었다.

바다에 깊게 뿌리내린 나무가 여러 갈래의 줄기와 가지를 늘어뜨린다. 그 중, 가장 긴 가지의 끝이 강의 발원지다.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이고 모여 샘을 이룬다. 그 물이 흘러넘쳐 내려가면서 수없이 많은 지류들을 받아들인다. 아무리 오염된 지류라도, 아무리 작은 지류라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 뒤 끌어안고 가며 스스로 정화해 가는 것이 강이다.

“강을 보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근원인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가.”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의 말과 같이 강물은 낮은 곳으로만 내려가 화엄의 바다로 들어간다. 강물의 최고 미덕은 겸손함이다.

사람의 일생과 강의 일생이 너무도 비슷하다. 살아가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듯, 강물 역시 흘러가는 동안 무수한 지류를 만난다.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강물과 너무도 다르다. 사람은 겸손하게 낮은 곳으로 내려가길 싫어하며, 오로지 높은 곳을 열망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사람은 내치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적어지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져 외롭게 인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일찍이 강과 사람의 다른 점을 간파한 노자는 <도덕경>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강과 바다가 백 개의 계곡 물을 다스릴 수 있는 까닭은 강과 바다가 계곡 물보다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강과 바다가 백 개의 계곡 물을 지배하여 왕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이것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싶은 성인이 항상 말을 겸손하게 하여 자신을 낮추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비슷한 글이 실려 있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기에 그 큼을 이룰 수 있었고, 하해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기에 그 깊음을 이룰 수 있었다.” 사소한 것도 귀히 여기고 포용할 줄 알아야 큰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 오랜 강을 보라, 그는 쉬지 않고 흘러가나니.”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다.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물은 서로 다투지 않으면서 바다로 들어간다. 강물과 같이 서로서로 마음을 합하고 소통하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더불어 큰 바다에 닿지 않을까.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입력 : 2013-02-28 21:11:34수정 : 2013-02-28 21: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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