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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길]집의 크기보다 생각의 크기를

ngo2002 2013. 2. 22. 09:55

[신정일의 길]집의 크기보다 생각의 크기를

요즘 TV를 보면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의 집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많다. 고대광실이라고도 하고, 초호화주택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그 집들을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하지만 걱정스레 보일 때도 많다. 많이 살아야 두세 명 사는 집을 저렇게 넓고 크게, 호화롭게 꾸며 놓으면 당장은 살기에 좋을지 몰라도, 그 집이 어느 순간 짐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음이다. 떠나고 싶어도 그 집이 너무 아까워 집에 매여 사는 것은 아닐까?
연산군 시절, 세상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서울 남산에 9만9999칸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호화주택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그 집을 구경하고자 남산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 그 집을 발견하고선 실망이 컸다. 왜냐하면 그 집이 판서를 지낸 홍귀달의 집인데, 허백당(虛白堂)이란 당호가 붙은 단칸 초막이었기 때문이다. 홍귀달은 그 단칸방에서 9만9999칸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을 다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의 생각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었는데, 그에 대한 일화가 <연려실기술> ‘연산조 고사 본말’에 실려 있다.홍귀달의 집은 남산 밑에 있었다. 그 언덕에 초가로 정자를 만드니 세로와 가로가 겨우 두어 발(丈)이었다. 그는 허백당이라 이름을 써 붙이고 매양 퇴근하면 복건을 쓰고 여장을 짚고 그 안에서 읊조리며 마치 세상을 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때로 그의 풍채를 흠모해 모여드는 이가 많아 즐거이 술상을 벌여놓고 회포를 풀며 시를 읊었다. 보는 사람들은 그가 정승을 지낸 귀인인 줄 몰랐다. 평생에 남과 눈 한번 흘긴 일이 없으나, 국사에 대해 말할 것이 있으면 침묵하지 않았다. 자제들이 때로, “왜 좀 참으셔서 집안 식구들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그는 “내가 역대 조정에서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또 이미 늙었으니 지금 죽은들 무엇이 아까우냐”고 말하며 끝내 고치지 않았다.
영국 사람들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 역시 홍귀달과 생각이 비슷하다. <햄릿> 제2막 2장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아, 나는 호두 껍데기 속에 갇혀 있어도 내 자신을 끝없는 천지의 왕이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야.”홍귀달은 단칸방에서 수많은 생각을 하였고, 셰익스피어는 호두 껍데기만 한 집에서도 천지에 얽힌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집의 크기와 상관없이 생각의 크기로 세상을 살아간 그들을 통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인생이란 잠시 세상에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것이다. 어떤 집에서 살다 가느냐보다 어떤 일을 하다 가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