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저승에도 커피가 있을까?
공주지역을 답사할 때의 일이다. 두 아들을 데리고 온 지인의 차를 타고 가다가 공주로 가는 4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택리지>의 저자인 이중환의 선대(先代)인 이진휴가 숙종 때에 세운 금강변의 사선정을 보려고 가다가 약간 지나쳤다. “정자를 지나쳤네요. 저 앞에다 차 세워놓고 보고 가죠”라고 하자, 그는 “차를 돌리면 되지요” 하고서 만류할 사이도 없이 차를 돌렸다. 그는 분명 유턴을 한다고 돌렸는데, 아뿔싸! 그 길이 중앙분리대가 있는 4차선임을 깜박하고 그만 역주행을 하게 되었다.
아, 나는 보았다. 2차선과 1차선에서 쏜살같이 달려오는 무수한 차들을.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순간 상황을 알아차린 그가 급하게 핸들을 꺾었고, 다른 차들이 우리 차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저절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저 사람 미쳤어, 아냐, 착각이었을 거야.’ 우리가 가끔 설왕설래하는 ‘착각’과 ‘미쳤다’는 것의 차이를 실감하면서 이번에는 ‘이렇게도 사는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우리는 저녁 뉴스에 무모한 역주행으로 세 명의 가족과 어느 한 사내가 대전~공주 국도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를 제공할 뻔했다.
사실 하루 중에도 위태로움과 환란에 처하는 경우가 몇 번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그 순간 운이 좋아서 그 위태로움을 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순전히 ‘운 또는 요행’이라는 말이 맞는 듯도 싶다.
온몸에 흥건하게 흐른 땀을 식히며 천천히 공산성을 올라가 쌍수정에서 자판기 커피를 눌렀다. 풀밭에 앉으면서 그에게 “저승에도 이렇게 맛있는 커피가 있을까요”라고 묻자,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옆에서 과자를 먹던 아이들은 “조금 전에 아빠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요”라며 투정을 부렸다.
공산성을 내려가는 길에 그림을 그리러 올라오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중에 한 아이가 뒤따라오는 아이에게 깎아지른 듯한 성벽을 보며 “이곳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라고 묻자, 다른 아이가 담담하게 “아마 최하 사망일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으며 아이들에게조차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마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일상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위험한 순간을 넘기고 마치 지옥에서 살아오기나 한 것처럼, 덤으로 살고 있느니, 또는 구사일생이었느니 너스레를 떨었던 내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흐르는 금강, 그 깊은 물을 바라보며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허겁지겁 살고 있는 삶을 돌아본 하루였다. 그 짧은 찰나가 우리의 인생이다. 그러니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이 길을 걷는 우리의 인연은 얼마나 소중한가.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입력 : 2012-11-22 21:23:52ㅣ수정 : 2012-11-22 21: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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