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도 열외 없다, 6만8000여 기관 감찰하는 ‘어사 박문수’의 후예들
어사 박문수를 아시지요. 탐관오리들의 무릎을 꿇린 암행어사의 표상 말입니다. 조선시대 그가 했던 역할을 오늘날엔 누가 맡고 있을까요. 바로 감사원입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어사 박문수처럼 일해달라”는 이재오 위원장의 말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예전부터 어사 박문수의 후예를 자처해온 곳은 감사원입니다. 감사원은 새해 들어 고위 공직자 비리·토착 비리 근절, 국방·금융 감사 강화 등에 나서기로 해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현대판 암행어사들이 모여 있는 감사원을 살펴봤습니다.백일현 기자
누구의 지시나 통제도 받지 않아
|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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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또 독립기관이다. 헌법상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돼 있지만 직무에 대해서는 누구의 지시나 통제도 받지 않는 독립 지위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감사원장은 국회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고, 4년의 임기 중 탄핵 결정이나 금고 이상의 형 선고를 받은 경우가 아니면 면직되지 않도록 신분을 보장받고 있다. 국회나 법원처럼 예산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감사원 스스로 규칙을 제정한다.
감사원은 합의제 기관이다. 대다수 정부 부처가 장관이 최종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는 데 반해 감사원은 감사원장을 포함한 7인의 감사위원(차관급)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의에서 주요 의사를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합의제 기관이다. 국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감사 결과 등에 대해 보다 신중한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다.
감사원은
감사원이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다. ▶결산 확인 ▶회계 검사 ▶직무 감찰이다.
●결산 확인 국가 재정이 국민을 위해 제대로 쓰였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매년 정부 부처에서 집행한 예산 내역 등이 포함된 국가결산보고서를 감사원에 제출해야 하며, 감사원은 결산 금액과 실제 집행 내역이 같은지 등을 점검한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감사원 검사를 거친 국가결산보고서를 다음 연도 5월 31일까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회계 검사 국민의 세금인 국가 예산이 바르게 사용되는지 검사하는 일이다. 감사원은 감사원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등 3만8700여 곳의 회계를 검사해 예산이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 무분별한 사업 추진으로 낭비되고 있지 않은지를 점검한다. 감사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거나 국무총리 요구가 있을 때 검사하는 기관도 2만9300여 곳이다. 감사 대상 기관이 모두 6만8000여 곳에 이르는 셈이다. 감사 인력이 700여 명인 감사원은 업무 중요도 등을 고려해 기관별 감사주기에 따라 감사를 실시한다. 원칙적으로 사기업은 감사 대상이 아니지만 국가·공공기관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보조금을 지원받은 경우 세금을 제대로 납부했는지 등과 관련해 감사를 받을 수도 있다.
●직무 감찰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공직자가 적법하게 직무를 수행하는지 감찰하는 것이다. 공무원의 부당한 일 처리를 바로잡고 불합리한 법령이나 제도, 행정관리상 문제점을 시정하도록 하는 활동이다. 감사원은 감사원법에 따라 청와대나 대통령도 감사할 수 있다. 1998년 외환 특감 때 외환위기와 관련해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상대로 판단의 적정성을 조사하기도 했다. 감사 결과 잘못한 기관이나 담당자에게는 변상 판정을 내리거나 징계·주의 같은 신분상 책임을 묻기도 한다. 퇴직 이후라도 국가에 끼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불합리한 제도는 고치도록 권고한다. 2008년 감사원이 공무원 횡령액 등을 물어내라는 변상 판정, 부족하게 징수한 세금 회수·과다 징수한 세금 환급 등으로 거둔 성과는 5861억여원에 이른다. 감사에 따른 예산 절감은 3.8조원, 수입증대는 0.7조원, 국민 부담 경감 6.4조원 등 간접적 성과도 10조9000억여원에 이른다고 감사원 측은 밝혔다.
감사원은 누가 감사할까
감사원은 직무상 독립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다른 기관의 감사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감사원 스스로 직원들을 감사하는 내부 감찰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감사업무 수행이 적법했는지 등을 점검하는 것이다. 감사원 직원은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내부 감찰이 엄격하다. 감사원은 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국정감사를 받는다.
특히 감사원은 감사 처리를 일방적으로 할 수 없다. 감사 결과를 처리하기 전에 반드시 결과에 대해 감사 대상 기관의 의견을 듣게 한다. 먼저 감사자가 대상 기관을 상대로 지적한 문제점과 처리 대책을 묻는 질문서를 발부하면 감사 대상 기관은 자유롭게 답변하게 된다. 이후 감사위원 등 제3자는 이러한 질문서와 답변서를 바탕으로 감사 결과의 적정성 여부를 심사한다.
또 감사원은 독특한 감사 결과 심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감사를 마치면 감사관은 지적 사항과 처분 요구·처리 대책 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감사를 지휘·감독한 직속 상급자의 검토·결재만 받는 것이 아니라 심의 전담 부서에 근무하는 베테랑 감사관 등이 재검토한다. 제3자의 시각에서 지적 내용이 적정한지 등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감사원에서는 ‘조정’이라고 부른다. 이런 제도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라고 한다. 감사의 품질을 높이고 감사로 인해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려는 감사원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감사원에서 일하려면 회계나 법률지식 등을 갖추는 것이 좋다. 감사원은 일반공무원과 달리 감사직을 공개 채용하고, 각종 자격증(변호사·공인회계사 등) 소지자나 행정고시 합격자, 박사학위 소지자 등을 대상으로 특별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감사원에서 일하는 여성도 점차 늘어 10% 정도에 이른다. 최근 인사에서 감사원 최초로 감사 담당 여성 과장이 탄생하기도 했다.
감사 청구하는 세 가지 제도
●국회감사청구제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특정 사안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할 수 있고, 감사원은 3개월 내에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한다.
●국민감사청구제도 감사원은 국민의 요청에 따라 감사를 실시하기도 한다. 공공기관이 법을 어겨 사무를 처리하거나 부패행위로 공익을 현저히 해하는 경우, 만 19세 이상의 국민 300명 이상이면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할 수 있다. 단, 지방자치단체의 사무 처리에 대해서는 국민감사를 청구할 수 없다.
●공익감사청구제도 공공기관 등이 주요 정책·사업 추진 중 예산을 낭비하거나 기관 이기주의 등으로 정책·사업이 장기간 지연되는 사항, 국가행정·시책·제도 등이 불합리해 개선이 필요한 사항, 기타 공공기관의 사무 처리가 위법하거나 부당해 공익을 현저히 해한다고 판단되는 사항 등에 대해 공익을 추구하는 시민단체, 감사 대상 기관의 장, 지방의회 등에서 공익감사를 청구할 수 있다.
불합리한 행정 불만 땐 신고하세요
감사원은 불합리한 행정으로 불편을 겪고 있는 국민들의 민원도 처리한다. 전화상담은 188번이나 1385번, 인터넷은 감사원 홈페이지(www.bai.go.kr)의 민원 마당에 접수할 수 있다. 단, ▶법원 판결로 이미 종결된 사항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에 계류 중인 사항 ▶개인의 사생활 관련 사항이나 개인 간의 분쟁 등 민사사항 ▶기타 감사원의 업무에 속하지 않는 사항 등은 민원으로 접수하지 않는다. 다음은 감사원이 밝힌 민원 처리과정의 대표적 사례.
①민원 발생 전남 곡성에서 두부공장을 운영하는 김한국씨는 어느 날 실제 내야 하는 금액보다 많은 상수도 요금을 납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역상수도급수조례’가 개정돼 요금체계가 바뀌었는데도 변경 전 요금체계로 납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②민원 제출 김한국씨는 해당 기관에 문의해 봤지만 이미 납부된 금액은 환급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김씨는 광주에 있는 감사원 ‘국민·기업불편신고센터’로 가서 민원 신고를 했다.
③접수·검토 및 처리 분류 민원을 접수한 나정직 감사관은 민원인과의 전화상담을 통해 사실을 파악한 후 민원사항을 직접 조사하기로 했다.
④조사 감사원에서 조사한 결과 수도요금이 과다하게 납부된 사실이 명확했고, 해당 기관에서 업무를 잘못 처리한 사실을 밝혀냈다.
⑤처리 감사원은 과다 납부된 금액 전체를 환급하도록 해당 기관에 요구했다.
⑥결과 회신 감사원은 청구인 김한국씨에게 수도요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는 민원 조사 결과를 회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