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두 갈래의 야심
크고 작은 불협화음은 왜 일어나는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야심 때문이다. 그 야심에서 벗어날 때 인간의 삶은 자유로워진다. 마키아벨리는 <정략론>에서 야심의 본질을 이렇게 말했다.“옛 역사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이란 풍족하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따분해진다. 정말이지 존망을 걸고 싸울 필요가 없는데도 인간은 야심을 위해서 싸운다. 그 이유는 자연이 인간을 무슨 일이든 바랄 수는 있되 그 실현은 꽤나 어렵도록 창조한 데 있다. 인간이란 자신의 실력을 훨씬 웃도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늘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자는 보다 많이 획득하려고 하고, 어떤 자는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고 하여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운명의 갈림길이 분명해진다. 어떤 경우는 나라의 파멸로 이어지고 다른 경우는 국운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잘못된 야심으로 인해 크게는 나라가 위태롭고, 작게는 한 가문이 파멸의 길로 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야심의 폐해를 깨달았던 노자가 말한다. “그대에게 얄팍한 세속적 야심이 있는 한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크든 작든 인간은 다 나름대로의 야심을 갖고 있고, 그 야심들이 사사건건 부딪쳐서 파열음을 낸다. 그래서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헨리 8세>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크롬웰, 내가 네게 당부하는데, 절대로 야심을 갖지 말라. 야심은 천사까지도 타락하게 하는 죄악이다. 우리 인간, 그 모습이 신과도 닮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야심에 의해 출세할 수 있단 말이냐?”그러나 한 번 돌아보라. 우리 주변에는 그런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출세를 향해 달려가는, 야심만 가득 찬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바람직한 야심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거기에 해답을 제시한 사람이 있다. 바로 니체였다. “나의 야심은 다른 모든 사람이 한 권의 책 속에서 말하는 것, 다른 모든 사람이 한 권의 책 속에서도 말하지 않은 것, 그것을 열 개의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다.” 니체는 세상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존재한 바가 없는 좋은 책(<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을 선사하겠다는 야심을 피력한 것이다. 자신만을 위한 얄팍하고 졸렬한 야심이 아닌,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야심, 세상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그런 야심을 가진 사람과 한길을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입력 : 2012-08-09 21:30:39ㅣ수정 : 2012-08-09 21: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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