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과 청정의 공기로 산청에서 나는 특산물은 대부분 친환경이다. 특히 딸기·곶감·단감·배·꿀사과가 유명하고, 무농약과 유기농법으로 산청메뚜기쌀과 작설차, 한우와 흑돼지 역시 산천의 맛을 대표한다.
지리산 청정골 산청은 때 묻지 않은 한갓진 산골이다. 한양에서 먼 덕에 그동안 사람이 찾아들기가 쉽지 않아 도회 사람과의 인연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저 자연이 주는 그대로에 순응하며 살아가면 족한 것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산골짝의 능선을 둘레 삼아 기운 좋은 산양처럼 뛰노는 것이 이 산천에서 살아가는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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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능선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지리산 산청 응석봉 코스가 시작되는 내리저수지. |
지리산 천왕봉도 산청이다
산청은 산음과 단성까지를 아우른다. 본래 산청(山淸)이란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조선 영조 43년 때부터다. 산청의 면적은 794.62㎢로 서울의 면적 605.41㎢보다 넓으니 너른 터로는 어디에도 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구는 대략 3만5000여명에 불과하다. 사람의 때가 묻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산청군 문화관광과 임길선 계장은 “우리 산청이 기가 참말로 넘치는 땅이라얘. 지리산 천왕봉이 산청 땅인 거 아십니까. 사람들이 남원, 구례 짝으로 마이 드나드니 그 짝 땅인 줄 아는데, 아니라얘. 천왕봉이 바로 산청에 자리하고 있다 아닙니까. 산청은 지리산과 황매산의 맑은 기운이 한데로 모이는 땅입니다. 특히 그 성스런 자연의 정기를 사람에게 보(補)하는 기운이 넘치는 터입니다. 지리산의 정기와 때 묻지 않은 청정의 기운이 우리 산청의 자랑이라얘.”
산청군의 둘레는 대부분이 장엄한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 특히 서부는 지리산 천왕봉을 기점으로 한 지리산맥이 남과 북으로 내달려 경남 하동, 함양군과 경계를 이룬다. 또 백운산의 지봉인 황매산은 합천군과의 분수령을 형성하고 있다. “산청은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류의태, 초삼·초객 형제 등이 의술을 펼친 한의학의 본고장이라예. 지리산을 중심으로 산청에서 자생하는 약초를 기반으로 동의보감의 기초를 마련한 곳이지요. 산청에는 한의학의 신비한 효능을 지닌 1000여종의 약초가 자생하고 있습니다.”
한방약초의 보고 동의보감촌
삼시 세끼 산나물밥을 해먹고, 하루 온종일 산을 헤매어 내다 팔던 산약초가 이제 귀하디 귀한 대접을 받는 때가 됐다. 이에 따라 산청군은 금서면 특리에 ‘동의보감촌’을 조성하고 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산청나들목(IC)에서 우회전해 금서면 화계 방향으로 10분쯤 달리면 왼쪽에 동의보감촌이 나타난다. 동의보감촌은 2013년 ‘산청세계전통의약 엑스포’의 주무대가 될 곳. 올해는 <동의보감>이 발간된 지 400년이 됐는데, 2009년 공중보건의학으로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산청세계전통의약 엑스포는 이를 기념하고, 한의약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자리가 될 것이다.
“동의보감촌은 천왕봉에서 시작된 능선이 동북단 방향으로 내려오다 끝나는, 한국의 등뼈 같은 곳으로 신비한 기운이 휘감아 도는 신비한 지역입니다. 동의보감촌에서는 한방과 약초를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데, 한방테마공원과 한의학박물관, 약초둘레길, 한의원, 탕제원 등을 갖추고 산약초타운, 한방 휴양림 등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촌에는 지난 2007년 개관된 국내 최초의 한의학전문박물관이 있다. 한의학전문박물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구조로 기획전시실, 입체영상실, 전통의학실, 세미나실, 약초전시실 등 주제별로 7개의 공간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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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_ 조영배씨는 작은 텃밭 한 귀퉁이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새겨놓은 ‘이 땅’이란 자작시비를 세워놓았다. 오른쪽 _ 지리산 웅석봉 바로 아래에서 표고를 키우며 작은 농원을 운영하는 조영배씨. |
특히 한의학박물관 전망대에선 음양오행설과 인체 형상을 바탕으로 한 한방테마공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한의학 기초인 음양오행설과 인체 형상(신형장부도)을 토대로 한방을 테마로 조성된 공원이다. 인체의 장기를 주제로 꾸며진 공원은 서붓서붓 걷는 것만으로도 기운을 받는 듯하다. 곰·호랑이의 대형 조형물과 십이간지 광장이 마련돼 있고, 단군신화에 등장해 약초(쑥·마늘) 처방을 받은 곰과 호랑이를 기본 캐릭터로 만들어 재미를 준다. 한방을 상징하는 침(針) 조형물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데, 바로 곁에는 류의태 약수터를 본떠 물 긷는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다. 또 곰 전망대 안으로 들어서면 입을 통해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십장생 정원을 지나면 오행상생상극원과 12지신 광장이 늘어서 있다. 식도를 타고 가다 심장과 폐, 간, 위, 콩팥, 소장, 방광지를 지나고 호랑이 조형물과 함께 광장이 나타난다. “동의보감촌에서 지리산의 기운으로 심신을 보할 수 있습니다. 숨만 쉬어도 보약이 되는 곳이 바로 산청의 기운입니다. 뒤로 왕산, 옆으로는 필봉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특히 140톤에 이르는 거북바위, 자른 절단면에 봉황이 새겨진 돌거울(석경) 등의 기세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최근 기운이 모아지는 곳이란 입소문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방으로 한방 팍 터져야지요
특히 산청은 이제 대전~통영 고속도로와 국도 3호선이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덕분에 전형적인 산간 농촌지역인 산청에 새바람이 일고 있는 것. 한양이 천리만리같이 느껴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고속도로가 뻥하고 뚫린 덕에 몇 해 전부터 외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산청의 시절이 좋아지긴 좋아진 것이다.
“쪼매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갑소. 대전~통영 고속도로 뚫리고 나서 여그 산청사람들 속도 뻥 뚫린 셈이제. 인자 서울 광화문까지 총알같이 달리문 3시간이문 충분하니까. 외지 손님들이 많이들 안 들어오겄소. 우리 산청에 오면 일단 가슴이 뻥 뚫릴 것이제. 좋은 기운 얻으러 많이 오실 것이요.”
터미널 옆에 반나절 빈 택시로 이른 봄볕을 쬐고 있던 택시기사 박씨 아제가 그래, 제일 신나는 때가 요즘이다. 참말로 지루했다 싶던 박씨가 말의 포문을 연다. 온종일 권태롭기까지 했던 그의 운수대통의 골자는 바로 한방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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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산청세계전통의약 엑스포’의 주무대가 되는 동의보감촌의 모습. |
“이제 우리 산청이 한방으로 크게 터질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제. 내년에 한방엑스포가 열리는데, 군민들 모두가 기대하는 바가 억수로 크다는 것이제.” 그의 말대로 산청 사람들은 2013년에 열리는 산청세계전통의약 엑스포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래서 군민이 힘을 합쳐 새로운 산청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잘들 모르고 멀다고 생각해서들 안 찾아왔지, 산청에 없는 것이 없다 이거요. 지리산 둘레길도 산청에서 걸을 수 있어요. 또 여름에는 지리산 자락에 대원사 계곡이 손꼽히는데, 유홍준 선생이 대원사 계곡을 일컬어 남한 제일의 탁족처(濯足處)로 손꼽은 것 아닙니까! 또 저 짝 경호강에서는 래프팅도 합니다. 영월 동강, 인제 내린천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래프팅 명소 아닙니까.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가 바로 우리 산청에 있는 남사예담촌 아닌교. 그라고 하늘에 떠 있는 정취암은 예부터 소금강이라 불리던 곳이다 이거예요. 그라니 많이들 구경도 오고 기운도 받으러 오시라, 이거지요.”
선조들이 지켜온 청정의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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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홍준 교수가 남한 제일의 탁족처(濯足處)로 손꼽은 대원사 계곡. |
맑은 물과 청정의 공기로 산청에서 나는 특산물은 대부분 친환경이다. 특히 딸기·곶감·단감·배·꿀사과가 유명하고, 무농약과 유기농법으로 산청메뚜기쌀과 작설차, 한우와 흑돼지 역시 산천의 맛을 대표한다. 지리산 웅석봉 바로 아래에서 표고를 키우며 작은 농원을 운영하는 조영배씨(맑은산장농원)는 산청의 부지런한 농군 중 한 사람. 새벽 달이 아직 지리산 자락에 걸려 있지만,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의 습성은 어른에게 물려받은 내력이다.
“저기 앞이 바로 내리저수지 아닙니까. 거기 한 번 둘러 보이소. 또 저기 뒷산이 웅석봉입니다. 지리산 산청 웅석봉 코스라고도 하는데. 어른 걸음으로 3~4시간 지리산 능선을 따라 걷기에 그만입니다. 한 번 올라 보이소.”
산청이 고향인 조씨는 젊은 시절 읍내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0년 전 아버지가 조씨를 위해 사두었던 이 땅에 터를 잡았다. “떠나시기 전에 미리 자석들이 먹고 살 양식을 갈무리해주신 셈이지요.”
뒷동산 양지 바른 곳에 누워 아들의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조씨. 그는 이제 아버지가 물려준 그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작은 텃밭 한 귀퉁이에 서 있는 바위에 새겨진 ‘이 땅’이란 그의 자작시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의 그리움이 묻어난다. ‘이 땅을 아부지가 사셨다’로 시작된 시는 ‘이 땅에 영원히 머무를 것이다’로 끝난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