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오후 4시. 제기동역 2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알싸한 한약재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양편으로 한약방이 죽 늘어선 대로는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지만, 정작 약재 상가에 들어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갑작스레 풍경이 싹 달라진다. ‘OO물산’이라는 간판을 내건 가게들, 뻥튀기나 두부, 반찬 등을 파는 가게들이 한약상점 사이에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경동시장이 한창 잘나갈 땐 상상도 할 수 없던 풍경이다. 아예 문을 닫은 가게도 열 집 중 하나꼴로 눈에 띈다.
인삼을 파는 손승식 씨는 “경기가 나쁘면 건강식품 판매는 바로 급감한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개시도 못 하는 날이 부지기수다. 우리 가게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이 다 그렇다. 단골도 옛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재래시장도 변화해야 한다고 해서 이젠 카드도 받고 재래시장 전용 상품권도 받지만 손님들 자체가 오지 않으니 아무리 정부에서 각종 지원을 한다고 해도 매출이 느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덧붙였다. 경동시장에서 김, 멸치 등 건어물을 29년째 도매로 팔고 있다는 이미영 씨는 “2월부터 매출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고 하소연한다. 이 씨는 “도미노다. 한약상점이 잘 안되니까 주변 식당이 잘 안되고, 식당이 안되니까 우리 같은 건어물점도 잘 안된다. 단골로 거래하던 이들의 발길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나마 오는 이들도 구입하던 물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며 한숨을 쉬었다.
직물, 한복, 침구, 수예용품, 폐백, 제수용품 등을 취급하는 종합시장인 광장시장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107년 역사를 자랑하는 광장시장은 한때 맞춤 한복과 직물원단 수요가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었던 곳. 지금은 먹거리, 구제의류 잡화 정도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광장시장에서 주력으로 취급하던 직물원단과 한복은 판매 감소가 심각하다. 조병옥 광장시장상인총연합회 사무국장은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직물원단은 물론 의류 부자재 시장까지 축소됐다. 한복은 특히 경기에 민감하다. 경기가 안 좋으면 혼수용품 장만, 회갑·칠순 잔치나 명절 때 한복을 입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당연히 광장시장은 직격탄을 맞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광장시장에서 수십 년째 전통혼례용품과 민예품을 팔고 있는 비단금장. 요즘 하루에 비단금장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은 6~7명 정도에 불과하다. 김대승 비단금장 대표는 “장사가 요즘처럼 안 되는 적이 없었다. 매장에 방문하는 손님 수도 들쑥날쑥해 장사가 안 되는 날은 3~4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가끔 손님이 찾아와도 가격을 크게 깎아주지 않으면 발길을 돌려버린다. 김대승 대표는 “어쩌다 가격을 물어보는 손님이 있으면 손님을 안 뺏기려고 울며 겨자 먹기로 대형매장보다 10% 정도 저렴하게 부른다. 마진은 거의 생각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당장 장사할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일단 팔고 본다는 설명이다.
평일 오후 2시의 중부시장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장 한복판에 서 있어도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1분에 한 명꼴에 불과하다.
중부시장에서 23년째 김과 멸치를 팔고 있는 한복순 씨는 “올 들어 사람들이 통 나오질 않는다. 예전엔 새벽 3~4시부터 개시를 해서 9시까지 아침도 못 먹고 일할 정도였는데 이젠 7시면 칼같이 밥을 챙겨 먹는다. 손님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말했다. 옆에서 북어포를 파는 김형석 씨도 “예전엔 2m 폭의 이 골목이 사람들로 막혀서 걸어다니기 힘들었는데 이젠 대로변처럼 휑하게 느껴진다”며 고개를 저었다.
매출 감소는 고스란히 세수에 반영이 된다. 상인들에게 세금을 대신 걷어 납부하는 중부시장 상인연합회 납세조합의 김상만 사무장은 “세금을 한 푼도 못 내는 이들이 40%다. 400명 조합원들이 한 달에 600만원 세금을 낸다. 1인당 1만5000원씩 내는 꼴”이라며 “한때 800만원까지 걷히던 세금이 25% 줄어들었다. 요즘은 카드결제를 해서 세원이 더 투명해졌는데도 내는 세금이 더 줄었다는 건 사실상 소득이 25% 넘게 줄어든 셈”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권리금은 남의 나라 얘기다. 경동시장 상인 박현상 씨는 “예전에는 약초 골목에서 가게를 내기 위해서는 최소 2000만~3000만원 정도 권리금을 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차로 바로 옆 큰길가가 아니면 권리금의 ‘권’ 자도 못 꺼내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상인들은 권리금 내고 들어왔는데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당장 나가도 돈이 부족해 권리금을 줄 수 없다고 상가 주인들이 버티고 있다. 그게 억울해서 못 나가고 있는 상인들이 부지기수다. 여기 남아 있는 재래시장 상인들이 장사가 잘돼서 남아 있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동시장 신관 1층은 점포 수가 총 80여개지만 영업을 하는 곳은 70여개에 불과하다. 2층은 더 심각하다. 총 65개의 점포 중 33개 점포만 문을 열었다. 나천수 경동시장 발전위원회 사무국장은 “1층도 실제 점포 주인은 31명뿐이다. 외부에서 상인이 안 들어오니까 기존 상인들이 옆의 점포를 2개, 3개씩 쓰고 있어 장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래시장 상인들의 대부분은 맞벌이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손승식 씨는 “부부가 같이 주업으로 약재를 팔던 사람들은 대부분 불황을 못 버티고 다 나갔다. 지금 시장에 남아 있는 상인들은 남편이나 부인이 택시, 경비를 하거나 야쿠르트를 배달해서 버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나가면 권리금 못 받아 장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