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산행,걷기)

청학동 품은 지리산 남쪽 전망대 청학동

ngo2002 2011. 10. 7. 13:42

청학동 품은 지리산 남쪽 전망대

청학동 가는 길은 아름답다. 대전이나 광주 방면에서 청학동을 가기 위해서는 호남·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하동 인터체인지를 통하여 갈 수도 있지만, 곡성 인터체인지에서 국도로 진입하여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가는 길이 단연 운치있다. 곡성에서 구례를 지나 하동에 이르는 국도는 섬진강의 맑은 물과 어우러진 주위의 산세들로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섬진강 오백리 물길은 전북 진안에서 발원하여 임실, 순창, 남원을 거쳐 곡성을 지나고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에서 섬진강 지류인 보성강과 합류, 구례에 이르러 지리산의 넓은 품에 안겼다가 남해바다 광양만으로 들어가 그 수명을 다한다. 장엄한 지리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흐르는 섬진강은 지리산 만큼이나 우리 민족의 아픔을 감내해 온 강이다. 해방 직후 백운산과 조계산 등지에서 활동하던 빨치산 사람들이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 섬진강을 건너야 했다. 섬진강의 맑은 물과 고운 모래 속에는 이러한 우리 역사의 애환이 서려 있다. 우리 일행은 청학동에서 시작하여 삼신봉, 불일폭포, 쌍계사로 이어지는 지리산 남부능선을 오르기 위해 산행기점인 청학동으로 향한다.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하동의 악양 벌을 지나 재첩잡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뒤로 하며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소위 청학동에 도착하기까지는 광주에서 무려 3시간이 소요되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태평성대의 이상향을 청학동(靑鶴洞)이라 불렀다. 일찌기 '정감록'에서는 "진주 서쪽 1백리…(중략)… 석문을 거쳐 물 속 동굴을 십리 쯤 들어가면 그 안에 신선들이 농사짓고 산다"고 하였으며, 이를 본 고려시대의 이인로, 조선시대의 김종직과 김일손, 유운용 등이 청학동을 찾아 나선 바 있다.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지리산 안에 청학동이 있으니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겨우 통행할 만하고 엎드려 수 리를 가면 곧 넓은 곳이 나타난다. 사방이 모두 옥토라 곡식을 뿌려 가꾸기에 알맞다. 청학이 그곳에 서식하는 까닭에 청학동이라 부른다"라고 하였으나 끝내 청학동을 찾지는 못했다고 하였다. 김종직은 피아골을, 김일손은 불일폭포를, 유운용은 세석평전을 청학동이라고 생각했지만 확신을 갖진 못했다.

  현재의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학동마을이 청학동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그 입지가 전설상의 위치와 비슷하고 한국전쟁 이후 이곳에 들어와 전통적인 복장과 독특한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는 소위 유불선합일갱정유도교(儒佛仙合一更正儒道敎)라는 종교인들이 터를 잡고 둥지를 틀면서부터다. 일행은 청학동에 도착하여 먼저 삼성궁(三聖宮)을 찾는다. 도인마을 못 미쳐 왼쪽 계곡으로 들어가니 점점 사람을 끌어 들이는 분위기다. 삼성궁 주차장에서 숲 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니 마치 마이산 탑과 같은 돌탑들이 우리의 눈 앞에 다가선다. 정문 바로 밑 '징을 세번 치고 기다리는 곳'에서 징을 세 번 친다. 잠시 후 도복을 입은 선량 한 분이 나타난다. 잠시 삼성궁을 소개한다. "이곳 삼성궁은 배달민족의 성전(聖展)으로 환인, 환웅, 단군 및 역대 나라를 세우신 태조, 각 성씨의 시조 등을 모신 신성한 성역입니다. 옛날의 소도(蘇塗)를 복원한 지금의 삼성궁은 배달민족의 정통 도맥(道脈)인 선도(仙道)의 맥을 지키며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고유의 도량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 민족 고유의 얼을 배우고 가시기 바랍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수 많은 돌탑들과 참선 수행하는 토굴,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갖가지 물품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생활인에게는 다소 어색해 보이기까지 한 이곳 삼성궁은 우리 민족의 얼과 뿌리를 찾기 위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삼성궁을 뒤로 하고 '유불선합일갱정유도교'라는 다소 긴 이름의 종교를 신봉하는 도인들이 사는 도인촌으로 향한다. 상투를 틀고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며 한 1백 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복장으로 승용차를 운전하고 현대화된 집을 짓고 살아가는 모습에서는 다시 오늘로 되돌아온다.

  이들은 '유불선과 동·서학을 합일하여 현대문화의 부조리한 면을 배제하고 인의예지의 인간본성을 수양하여 인간윤리를 실천한다'는 교리에 따라 외부세계와 담을 쌓고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청학동 사람들이 매스컴을 통하여 외부에 소개되고 교통망이 연결되면서 이곳도 변화의 물결을 피할 수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청학동 사람들이 지켜가고자 했던 그 '우리적인 것'은 청학동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가슴에 담고가야 할 것 같다. 청학동을 둘러보는데 약 1시간 정도가 지나가 버렸다.

  청학동에서 삼신봉을 향하여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각은 12시 15분.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늦어졌다. 상가가 끝나는 지점에서 100m쯤 올라가 '삼신봉 3km'라고 쓰여진 이정표를 따라 다리를 건너지 않고 곧 바로 산길로 진입한다. 지리산 계곡 치고는 그리 크지 않는 계곡이지만 물 소리가 시원하다. 잡목들로 이루어진 숲 길은 지리산의 어느 코스보다 다니는 사람이 적고, 경사도 비교적 완만하여 호젓한 느낌을 준다. 1시간쯤 올라가니 세석평전으로 가는 길과 삼신봉·불일폭포로 가는 길이 나눠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세석평전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의 통행이 적은 탓에 산죽을 비롯한 여러가지 잡풀들이 길까지 침범해 오고 있다. 비교적 선명한 길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삼신봉으로 향한다. 평범한 능선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은 후 삼신봉 정상에 도착한다. '삼신봉'이라 쓰인 조그마한 돌탑이 영험스러워 보인다. 지리산에는 영신봉, 노고단 등 영(靈)적인 느낌을 주는 봉우리들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삼신봉은 지리산을 영산(靈山)이도록 한 대표적인 봉우리이다. 그래서 오늘의 청학동이 삼신봉 자락에 자리잡았는지도 모른다. 지리산을 수 없이 올라왔지만 오늘처럼 화창한 날씨는 처음이다. 덕분에 지리산의 주릉을 한 눈에 조망해 볼 행운을 갖는다. 지리산 주능선 중 영신봉에서 뻗어내린 남부능선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이곳 삼신봉은 주능선을 기준으로 볼 때 북서쪽에 위치한 삼정산과 함께 지리산의 유장한 능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천왕봉이 우뚝 솟아있고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이 가깝게 다가오고 세석산장이 조용하게 앉아 있다. 나의 눈길이 영신봉과 칠선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따라가는데 갑자기 맨 땅이 나타난다. 이곳이 벽소령인데 최근에 지리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건립중인 벽소령 산장 터인 모양이다. 자연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인간의 편리함만을 우선적인 가치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어리석인 행위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형제봉, 토끼봉을 거쳐가면서 지리산의 제2봉격인 반야봉에 시선이 모아진다. 역시 멀리서 보아도 이름 만큼이나 자상한 모습으로 주위의 봉우리들을 아우르고 있다. 노고단 앞 쪽에는 왕시루봉으로 뻗어내린 밋밋한 산줄기가 지리산의 주능선을 받치고 있다. 작년(1995년) 여름 지리산을 종주하면서 지리산에 흠뻑 반한 이후 지리산의 이 골짜기, 저 능선을 주로 혼자서 많이 다니면서 지리산의 너른 품에 쏙 빠져들곤 하였지만 오늘 처럼 저 장엄한 산 줄기를 보면서 감동한 적은 없었다. 이러한 느낌을 주는 곳이 바로 삼신봉이기에 영적인 정기가 넘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지리산에 빠져있는 나에게 일행들은 배가 고프다고 난리다. 하기야 광주에서 새벽같이 나와 지금이 오후 1시 40분이니 그럴만도 하겠다. 삼신봉 정상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펴 놓고 지리산의 정기를 담아 입 속에 밥을 넣는다. 식사 후 오후 2시 25분에 삼신봉을 출발한다. 청학동에서 삼신봉까지는 비교적 길이 선명하게 나 있는데 정상을 지나면서부터는 길가로 우거진 산죽 등에 걸려 걷어부친 팔소매를 내린다. 여기에서 삼불재까지는 오르락 내리락 이어지는 능선 길이다. 중간중간 몇 군데를 빼고는 완만한 경사에 평탄한 길이고 도토리나무, 단풍나무 등 활엽수들 사이에 산죽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능선 길이지만 나무들에 가려 주위의 전망을 볼 수는 없다. 정상에서 1시간 쯤 지나 만난 1264고지나 그외 몇 군데에서만 청학동 등 주위의 풍경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면서 1시간 20분만에 삼불재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청학동으로 곧바로 내려가는데는 3km, 삼신봉까지는 5km, 불일폭포 5km다. 삼불재에서 불일폭포 쪽으로 10분 쯤 내려가니 물소리가 들린다. 여기에서 배낭을 풀고 그대로 엎드려 꿀꺽꿀꺽 물을 마시고 세수도 한다. 간장까지 서늘해 진다.  호젓한 숲 길은 계속된다. 삼불재에서 1시간 10분만에 불일폭포와 쌍계사로 나뉘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지금까지 거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히 많아진다. 등산객이 아닌 대부분의 관광객은 불일폭포까지만 왔다가기 때문일 터이다. 여기에서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200m쯤 가니 지리산 10경중 하나인 불일폭포다.  불일폭포의 내력을 되새긴다. 고려 회종 때(1205년) 지눌 보조국사가 폭포 옆에 있는 암자에서 수도하였는데, 이후 보조국사가 입적하자 국왕이 암자를 불일암이라 하고 폭포의 이름도 불일폭포라 부르도록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폭포 밑 용소에 살던 용이 등천(登天)하면서 꼬리로 살짝 쳐서 청학봉, 백학봉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서 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폭포 앞 바위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폭포수를 바라본다. 좁은 물줄기가 굽이쳐 내리면서 자연스럽게 퍼져 울퉁불퉁한 바위 면에 부딪친다. 부딪친 물줄기가 다시 밑으로 계속하여 쏟아져 내리면서 조그마한 웅덩이에 모아졌다가 다시 여러 줄기로 흩어지면서 쏟아진다.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영롱한 햇살을 받아 무지개 빛을 띤다. 무지개 빛 불일폭포를 보고 있노라니 황홀한 느낌이 다가온다. 한신계곡에 있는 가내소폭포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남성다운 폭포라면 불일폭포는 바위의 이곳 저곳을 섬세하게 감싸 안으면서 떨어지는 여성다운 폭포다.  폭포 근처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그 중 대부분은 대학생들이다. 모처럼의 여행인 듯 좋아서들 난리다. 옷을 입은 채로 폭포수를 맞는가 하면 괴성을 지르는 학생도 있다.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재롱부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밉지는 않다. 불일폭포에서 10분쯤 내려오니 야영장이다. 초가로 된 휴게소가 운치를 더해주고 나무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친근감을 가져다 준다. 쌍계사 조금 못미쳐 국사암 가는 길이 나온다. 시간이 오후 6시가 넘어 하산을 서둘러야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국사암은 쌍계사의 개창자인 삼법화상이나 진감국사가 은거하면서 수도하였던 곳일 뿐만아니라 진각국사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인 범패를 처음으로 보급시킨 곳이기도 하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 가는 길과는 달리 국사암 가는 길은 사람 그림자 하나 구경할 수 없다. 10분 정도 걸리는 국사암까지의 소나무 숲 길이 적막하다. 다시 쌍계사로 발길을 재촉한다. 쌍계사가 가까와 지면서 북 소리가 들린다. 저녁 예불 시간인 듯하다. 잠시 후 쌍계사에 도착하니 범종루에서 스님 한 분이 법고(法鼓)를 치고 있다. 범종루 옆의 돌계단에 걸터 앉는다. 승무를 치듯 법고를 치는 스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 없는 희열에 빠진다. 법고를 치고 난 스님은 운판(雲版)과 목어(木魚)를 두드린다. 그리고는 범종을 치기 시작한다. 웅장한 쌍계사의 범종 소리가 지리산 자락을 타고 온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살며시 일어나 대웅전으로 간다. 대웅전에는 5∼6명의 스님이 범종루에서 울려오는 종소리로 번뇌를 씻으면서 참선하고 있다. 계단 위 산비탈에 자리잡은 대웅전의 모습은 사뭇 장엄하다. 대웅전 계단 밑에 있는 신라 진성여왕 1년(887년) 최치원이 글을 짓고 직접 글씨를 썼다는 진각선사 부도비가 천 년의 역사를 감내하며 꿋꿋하게 서 있다. 대웅전 옆에는 마치 감실 안에 부처님을 모신 것처럼 바위 한 면에 소박하게 조각한 마애불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정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대웅전에서 일주문 쪽으로 가는데 흙집에 억새지붕을 얻은 전통찻집도 보인다. 쌍계사 인근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녹차가 재배되기 시작한 곳이다. 대부분이 자연산인 이곳 녹차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다향(茶香)이 진동하는 쌍계사를 빠져나오면서 일주문을 쳐다본다. 일주문의 현액이 '지리산 쌍계사'가 아닌 '삼신산 쌍계사'로 되어있다. 삼신산은 두류산, 방장산과 함께 지리산의 다른 이름 중의 하나인데, 이는 중국의 신선사상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일행은 꽃 없는 십리 벚꽃길을 지나 화개장터로 간다. 화개나루에서 건너편 광양 땅으로 건너가는 줄나룻배의 모습이 주위의 섬진강과 어울려 그지없이 평화롭다. 이곳 화개는 술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다. 다름아닌 화개 막걸리 맛 때문이다. 화개 막걸리는 포천 이동 막걸리, 무안 청계 막걸리와 함께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는 뚝배기 집에 들어가 돼지두부찌게와 밥을 시키고 김치와 여러가지 나물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신다. 화개 막걸리 맛에 정갈스러운 음식이 6시간 이상의 산행에서 싸인 피로를 풀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리산 삼신봉에 취하고 화개 막걸리에 취해 차에 오른다. 정적에 휩싸인 지리산을 뒤로 하고 섬진강의 평화로운 물줄기를 벗삼아 달리는 우리의 차 안에서는 흥겨운 노래가락이 이어진다. "산에 산에 꽃이 피네 / 들에 들에 꽃이 피네 / 꽃이 피면 새가 울면 / 임이 잠든 무덤가에 / 꽃은 다시 피련만은 / 임은 어이 못오시는고 / 산유화야 산유화야 / 너를 안고 내가 운다" (1996. 9. 1)

 *산행코스 -.

제1코스 : 청학동(1시간 30분) → 삼신봉(1시간 30분) → 삼불재(1시간 30분) → 불일폭포(50분) → 쌍계사(20분) → 주차장 (총 소요시간 : 5시간 40분)

-. 제2코스(삼신봉 미경유) : 쌍계사 주차장(20분) → 쌍계사(1시간) → 불일폭포(2시간) → 삼불재(1시간) → 청학동 (총 소요시간 : 4시간 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