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지식/공부미락

이정우의 철학카페. 風雲의 시대를 살다 간 들라크루아

ngo2002 2011. 8. 29. 09:03

風雲의 시대를 살다 간  들라크루아  (1798∼1863)
back / close this window
역동적 화풍에 혁명이 감돈다

낭만주의 시대의 아들로 저항정신 드러내… 당대를 우회적으로 묘사하며 탈현실 추구

Liberty Leading the People, 1830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iberty Leading the People
1830, 캔버스에 유채. 260×325cm. 파리 루브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서구의 역사에서 거대한 전환점을 이룬다. 대혁명을 통해 탄생한 저항정신과 역사의식은 19세기 전체를 지배했다. 새로운 역사 실험이 이루어진 것이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고, 1815년에는 비엔나회의를 통해서 보수적인 질서가 복고된다. 그러나 1830년의 7월혁명, 1848년의 2월혁명, 그리고 파리 코뮌으로 이어지는 줄기찬 혁명의 열기는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풍운(風雲)의 시대를 살다 간 들라크루아 (Eugene Delacroix, 1798∼1863)는 시대의 분위기를 자신의 화폭에 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시대의 아들이었다.

“조국을 위해 그림 그릴 수 있어야”

들라크루아가 얼마나 일관되고 확고한 정치의식이 있었는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리면서 “내가 조국을 위해 직접 싸우지는 못했을지라도, 최소한 조국을 위해 그림을 그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라고 한 데서도 볼 수 있듯이, 그에게는 분명 시대의 공기를 호흡하려는 의식이 존재했던 것 같다. 이 그림에는 당대 프랑스 혁명에 참여했던 여러 계층의 인물들이 상징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그 한가운데에 자유의 여신이 깃발을 들고서 민중을 이끌고 있다. “여기에서 내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현대적 주제, 즉 바리케이드입니다.” 물론 들라크루아가 시대의 아들이라 한다면, 그것은 좁은 의미의 정치의식에 있어서보다는 19세기 전체의 사회적-문화적 분위기에 있어서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구의 19세기에는 두 가지 사조가 팽팽하게 대립했다. 한쪽에는 실증주의가 있었으며, 과학적 실증성과 합리성을 존중하는 이 철학은 19세기 학자들 일반의 성향이었다. 다른 한편에는 낭만주의가 있었으며, 합리성에 대비되는 열정과 낭만을 추구했다. 물론 빼어난 사유들은 이 두 측면이 조화를 이루는 사람들에게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기도 하지만, 그 낭만주의가 실증성을 배제하는 황당한 낭만주의는 아니다. 들라크루아는 누구 못지않게 다양한 정보들을 얻고자 노력한 인물이며, 동시에 그 정보들을 낭만주의의 역동성 안에 녹여놓을 줄 안 인물이었다.

낭만주의 사유에서 문학과 역사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수학을 모범으로 했던 고전적인 학문은 공간적 사유, 정적인 사유, 법칙적인 사유를 구가했으며, 이런 흐름은 19세기에 들어와 모든 담론이 역사(넓게는 진화론)를 배경으로 하면서 시간적 사유, 동적인 사유, 우발성이 깃들인 사유로 전환된다. 때를 같이해서 문학은 그때까지 사유의 변방에 머물러 있었던 타자들(광기, 꿈, 죽음, 폭력…)을 형상화하기 시작한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에는 이런 문학적-역사적 교양이 거대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그의 그림들은 곧 19세기라는 시대의 형상화라고도 할 수 있다.
The Barque of Dante,1822
사진 / <단테의 조각배>(The Barque of Dante,1822)
Oil on canvas,189 x 242cm, Musee du Louvre, Paris


서구의 고전적인 화가들이 늘 그랬듯이 들라크루아 역시 고대에 심취했다. 그는 고대의 문학작품들과 역사를 섭렵했으며, 그런 지식들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이끌어내곤 했다. 그러나 그는 고대의 고전적인 미를 복구하려 했던 다비드, 앵그르 등의 고전주의와는 달리, 조화와 우아미보다는 역동성과 힘을 추구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미켈란젤로나 루벤스를 떠올리는 것은 필연적이다. <단테의 조각배>는 그가 고전에 어떤 힘과 역동성을 불어넣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제리코의 <메뒤즈 호의 뗏목>을 어느 정도 본떴으나 그림에 깔려 있는 문학적-역사적 배경이 들라크루아 고유의 색깔을 내고 있다.

고대 역사 섭렵하며 알레고리 애용

The Massacre at Chios,Detail,1824 사진 / <키오스섬의 학살>(The Massacre at Chios,1824).
캔버스에 유채. 417×354cm. 파리 루브르박물관.


고전에 대한 이런 심취는 다른 한편으로 현대의 그리스에 대한 애정으로 나타났다. 1822년에 발생한 그리스 독립전쟁은 트로이 전쟁의 현대판으로 인식되었으며, 많은 낭만주의 작가들이 그리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1824년에 그린 <키오스 섬의 학살>은 터키군인들이 키오스 섬의 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시공간이 편집되어 있으며, 이것은 신고전주의의 대원칙인 ‘행위의 일치’라는 원칙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낭만주의 음악가들이 그랬듯이 화가들 역시 형식적인 면에서도 고전주의의 틀을 무너뜨린 것이다. <미솔롱기 폐허에 선 그리스> 역시 그리스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으며, 평생 알레고리(寓意)를 애용했던 들라크루아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낭만주의는 현실을 넘어서려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지만, 동시에 현실에 발을 디디려고 노력했던 인물들은 자연히 알레고리로 기울었다. 탈현실적인 예술세계를 추구하면서도 그러한 노력에 당대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담으려 했다는 점에서, 알레고리가 들라크루아 예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들라크루아 예술의 이런 성격은 이국에 대한 취향으로도 나타났다. 1832년에 알제리를 정복한 프랑스는 모르네 백작이 이끄는 사절단을 보내 모로코의 중립을 이끌어내려 했다. 들라크루아는 바로 이때 백작을 따라 모로코에 가게 된다. 탕헤르와 아틀라스 산맥, 메크네스 등을 경험한 들라크루아는 그 경험으로부터 강렬한 예술적 영감을 얻어낸다. 낭만주의자에게 낯선 세계로의 여행만큼 가슴 뛰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 여행으로부터 그는 맹수들에 대한 관심, 이국 여인들에 대해 느끼는 에로틱한 감성, 그리고 용맹한 술탄들이 풍기는 영웅적 풍모 같은 영감들을 길어냈다. 이런 영감들은 그가 그린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에 압축된다.

박진감 넘치는 구도, 화려한 색상

The Death of Sardanapal,1827 사진 /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The Death of Sardanapal,1827~1828).

캔버스에 유채. 392×496cm. 파리 루브르박물관.


낭만주의 회화의 빛나는 걸작인 이 그림은 시인 바이런의 <사르다나팔루스>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됐다. 아시리아의 군주인 사르다나팔루스는 수도 니네베가 적군의 손에 떨어지자 분신자살을 선택한다. 그는 분신을 하기 전에 자신의 처첩들, 그리고 그가 총애하던 말들과 개들까지도 모두 죽인다. 병사들이 여인들과 동물들을 죽이고 단말마의 고통이 화면 전체를 수놓는다. 그 역동적인 장면 한가운데에서 사르다나팔루스는 마치 명상하듯이 한 팔을 머리에 괴고 누워 있다. 그가 장작더미 위에 있는 모습은 곧 그 역시 분신할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뒤에서는 벌써 불이 붙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한 여인은 왕의 침대에 두 팔을 펼친 채 엎드리고 목을 길게 뻗어 자신의 목을 자르기를 기다린다. 반면 다른 한 여인은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화면 전체가 놀랍도록 역동적이며, 화려한 색상과 박진감 넘치는 구도가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 대단한 걸작이다.


※ 출처. [이정우의 철학카페 15.들라크루아] <한겨레21/2002년 1월 30일 제395호>

☞ Click all the images & titles for ZOOM!
Liberty Leading the People, 1830 Liberty Leading the People, 1830
Liberty Leading the People - Detail of Liberty
Liberty Leading the People
- Detail of musket-bearer (Delacroix self-portrait)


※ 제목 : 이정우의 Cafe | Delacroix. 2003년 03월 25일. read: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