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산행,걷기)

53.김옥의 新 남도기행- 아름다운 숲길이 장관인 태안사

ngo2002 2011. 8. 25. 15:50

김옥의 新 남도기행- 아름다운 숲길이 장관인 태안사


입력시간 : 2009. 11.10. 00:00


해탈교·능파각 건너면 피안의 세계

법력 높은 큰 스님 말씀 바로 진리

보물급 문화재가 즐비한 천년고찰

괜히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날에는 홀 산사를 찾아가는 길로 위안에 큰 도움을 준다. 작은 오솔길을 쉬엄쉬엄 거슬러 오르며 산사로 오르는 동안 어느새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을 것이다. 태안사로 진입하는 오솔길은 요즘에 보기 드문 오솔길로 아름다운 옛 풍경길이 이어진다. 싸르락 밟히는 풀 섶 길과 온갖 새소리, 숨어 부는 바람소리, 물소리 또한 정겹다. 숲길을 걷는 동안 마음가득 채워지는 평안함이 태안을 이룬다. 귀래교, 정심교, 반야교. 해탈교가 있다. 다리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흐르는 물에 툴툴 털어 버리자.

해탈 교를 지나면 태안사의 명물로 가을 단풍이 태안사 풍경 중 제일로 찬사를 받는 능파각이 보인다. 태안사의 첫 경치와 만나는 시작이다.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맑은 계곡물. 그 위쪽으로 의연히 서있는 아름다운 능파각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능파' 란 우아하게 걷는 신선의 걸음걸이’를 뜻하는 말로 이미 육신은 신선지경의 세계와 닿아 있으니 그저 바라만 보아도 고된 세상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피안의 세계에 와있는듯 마음이 살찌고 영혼이 맑아진다. 능파각을 건너 계속 오르면 6.25 상잔의 비극이 남긴 경찰 충혼탑이 보인다. 매년 8월 6일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


곧이어 예쁜 문양으로 곱게 치장된 일주문이 나오면서 태안사의 풍경이 한눈에 잡힌다. 그림같이 수려한 연못 가운데는 삼층석탑(사리탑이라고도 함)이 있다. 분수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가 비를 뿌리듯 사방으로 흩어지면 햇살에 반사돼 무지갯빛을 발하는데 정말로 환상적이다. 일주문 계단 아래 우측에는 역대 고승들의 숨결이 깃든 부도군 이 자리하고 있다. 부도전에는 광자대사탑(보물 제274호)과 광자대사 윤다의 부도비(보물 제275호)와 석종형 부도 3기, 팔각원당형 부도가 있다.

석가의 진신 사리를 모신 광자대사 부도비에는 석가여래의 음성, 범음(梵音)과 같이 아름다운 고운 소리로 운다는 불경에 나오는 전설의 새(가릉빈가)가 있다.

부도전 왼편에는 근고청중(뜻-삼가 청중에게 고합니다) 팻말이 세워져있다.

'生死事大. 無常迅速. 寸陰可惜. 愼勿放逸'

태안사에 주석하며 불사를 일으키고 옥과 성륜사의 불사도 일으킨 뒤 입적한 청화스님이 남긴 법어다.

풀이하자면 '삶과 죽음이 큰일이지만 짧은 세월은 빨리가버리니 방심하지 말고 게으지말고 수행에 정진하라.는 가르침이다.

청화스님은 불가에 귀의한 이후 50여 년 동안 하루 한 끼와 오후엔 식사를 하지 않는 오후불식(午後不食), 묵언, 잠잘 때조차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해왔던 선승이다.

청화스님은 6·25때 불타버린 퇴락한 태안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21명의 도반과 함께 3년동안 묵언 수도하며 일주문 밖을 나서지 않는 3년 결사를 했다. 당시 이 결사는 수도 정진을 게을리 했던 불가에 충격을 던져준 일침이었. 태안사 문화재는 바라(보물 제 956호)와 태안사 동종(보물 제1349호)이 있다. 이 바라는 효령대군이 세종과 왕비·왕세자 등의 수복을 위해 제작한 것이다. 현재 바라를 볼 수 없지만 추후 유물전시관을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완성되면 국내애서 유일하다는 거대한 바라의 실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태안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선원건물이다. 저절로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배알 문이 보인다. 계단을 올라가면 볼 수 있는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은 부도가 세워질 때 하사받은 이름이다. 섬세하고 정교한 탑은 예술적 극치를 이룬다.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이라는 혜철의 부도(보물 제273호)와 부도비는 그의 위치를 대변해주 듯 대웅전 건물 뒤 가장 높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려태사 장절공 신숭겸장군 묘(목무덤)

태안사 경내에서 뒷길로 오르면 스님들이 직접 재배하고 경작한 차밭, 야채밭, 다양한 과실수 밭이 제법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이 고요한 산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고려태사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목무덤이 있다. 장절(壯節)이란 자신을 대신하여 장렬히 전사했다 해 태조 왕건이 내린 시호이다. 곡성출신으로 평산 신씨의 시조인 신숭겸 장군은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의 건국에 큰 공을 세운 4태사(신숭겸, 복지겸, 홍유, 배현경)의 한 사람으로 개국공신이다. 왕건은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과 한 가족의 결의를 맺었다. 해서 이들의 성씨를 지닌 사람끼리는 결혼을 피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한다. 그가 전사하자 그의 용마가 머리를 물고 고향과 인접한 태안사의 뒷산(신숭겸 장군이 어릴 적 무술을 연마했던 태안사 뒷산 동리산(봉두산)에 와서 3일간을 울다가 굶어 죽었다. 이를 발견한 태안사 승려들이 필시 신숭겸 장군의 머리요 그의 애마라는 것이리라 믿고 장군 단에 말의 무덤과 신장군의 무덤을 만들어 매년 3월 16일 신제와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사찰의 승려들에게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신숭겸 장군이 애지중지 했던 용마는 신숭겸 장군이 어려서 대황강 용소에서 목욕을 하다가 굴에서 나온 용마를 얻었다고 한다. 목무덤은 고려 전형적인 석축으로 둘러싸인 형식이다. 제단 석에는 절의 표시가 새겨져있는데 이는 절에서 관리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묘를 더 좋은 곳으로 이장하려고 지관을 불러 봉분 해체작업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봉분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허연 연기가 솟아오르자 이를 두렵게 여기고 겁이 나 그대로 놔두고 말았다고 한다.



주변 볼거리 - 용산재

신숭겸 장군의 출생지인 목사동면 용산재는 선조 22년(1589년)에 창건해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으로 신숭겸 장군( ~927) 탄생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유적이다. 용산 재에는 평산 신씨 33대손인 신종국씨가 종가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용산재 뒷산(신유봉)에는 신숭겸 장군이 무예를 닦았다는 훈련 터가 있고 아래 언덕에는 변소로 이용했다는 측간(치간) 바위가 있다. 또한 화장산(525m)은 죽곡면에 있는 산으로 신숭겸장군이 이곳에서 무예를 익혔으며 당시 입었던 갑옷을 숨겨두었다는 바위 철갑바위가 있다고 전해진다. 죽곡면 삼태리에는 말을 매었다는 계마석이 있다.

대황강 가운데에는 여울과 소와 바위가 있다. 이 소에서 신숭겸 장군이 목욕하였다해서 용소라 이름하고 그 여울 역시 용탄(龍灘)이라 하였다. 여울 옆에 용암이라는 큰 바위가 있다. 보성강의 용탄 여울에서 목욕을 하는데 큰 바위굴 에서 용마가 나와 장군에게 다가오자 그는 즉시 이 말을 타고 5리 정도의 거리인 유봉리의 산을 날았다. 이로부터 그 산 이름을 신유봉(申遊峰)이라 부르게 되었고, 용마가 나온 바위는 용암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찾아가는 길

석곡IC-석곡면 소재지-석곡면사무소-석곡초등학교-압록과 구례로 가는 11번국도

-(4km)목사동면-18번국도-18번국도-태안사



먹을거리-나루터식당


나루터 이름 그대로 어부가 운영하는 조그만 서민식당이다. 꾸며진 것도 없다. 시골집 그대로다. 남편은 다슬기에 관해서는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박사다. 직접 강에 나가 채취해 식탁에 올린다. 정성껏 고아낸 다슬기 엑기스도 판매하고 있다. 갖가지 생선도 잡는다. 모든 요리는 생물만 취급한다. 있으면 팔고 없으면 안 판다. 재료가 좋지 못한 경우이면 절대 음식을 팔지 않는다. 이렇듯 모든 음식에는 정직과 정성이 묻어있다. 추운 겨울에 입안 개운하며 건강을 챙기는데 더없이 좋은 다슬기 한 그릇 시키면 양이 엄청나다. 문의- 061-362-5030



사진/ 1.울긋불긋한 단풍 잎으로 물든 고즈녁한 태안사 숲 길.

2.해탈교 지나 태안사 제일의 풍경을 자랑하는 능파각.

3.4.5.6.7.웅장한 모습이 일품인 일주문과 경내 부도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그리고 적인선사조륜청정탑. 모두가 보물급 문화재다.

8.6·25전쟁의 상처를 안고있는 경찰 충혼탑.

9.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건국에 일등의 공을 세운 장절공 신숭겸의 말무덤.



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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