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34.소백산(4)- 비로봉에서 바라본 하늘정원 |
입력시간 : 2010. 10.25. 00:00 |
남부럽지 않은 제일의 승지 소백산
북쪽으로 펼쳐진 충청도 땅 남한강
유홍준 "한국 제일 자연정원" 극찬
신비한 자연의 조화에 혀만 내둘러
땀 흘리며 올라왔던 여태까지의 길이 평범한 등산로였다면 소백산 최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광은 신선의 세계에서 관조한 환상의 경치였다. 겹겹으로 포개진 산들이 조금은 다른 색으로 자신을 나타낸다. 명산으로 불려오는 국내의 거의 모든 산을 올라가본 필자였지만 소백산의 비로봉처럼 산의 대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는 산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방으로 휘돌며 어디를 보아도 산산 산뿐이다.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충청도 땅으로 하얀 우유 빛의 남한강 물줄기가 아스라이 이어질듯 끊어질 듯 보이다 말다를 계속하며 안개 속으로 숨어버렸다.
서 있는 비로봉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보이는 것은 오로지 산뿐이다. 모든 산들이 소백산을 바라본다. 집중적인 시선을 받아온 소백산은 으스대며 뻐길 만한데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초연하다. 남부럽지 않은 제일의 승지를 보듬고 있으니 그럴 만하리라고 생각됐다.
정상에는 지정등산로를 만들어서 그 길로만 걷게 했고 일반 초지에는 금줄을 쳐서 부로 들어갈 수 없게 했다. 뿐만 아니라 마로 엮은 그물을 씌어 토사의 유출을 막은 곳곳에서는 다시 자라기 시작한 이름 모를 꽃들이 고개를 내밀며 끈끈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사방에는 오직 山 山 山!
우리나라가 산악국가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산들의 세상, 보이는 것은 오직 산뿐이다. 서북쪽으로 비닐하우스처럼 흰빛으로 희끗 희끗 보이는 남한강이 인상적이다.
보이는 山들은 비로봉을 향해 충성서약이라도 한 듯 소백산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 유홍준 교수는 ‘남도문화 답사기’에서 소백산에서 내려다본 앞산을 한국 제일의 자연정원이라고 말했는데 옳은 말이다. 가깝게 보이는 앞산은 검은 녹색으로 조금씩 멀리보이는 산은 떨어진 거리에 따라 짙은 청색으로 보인다. 멀어질수록 희미해진 스카이라인이 겹쳐지고 포개진 수많은 산들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그렇다.
겹겹이 켜켜이 포개진 모든 것들은 산 산 산!
이곳에 와보지 않고는 감히 한국의 山을 논할 수 없을 것이다. 검 녹색에서 멀어질수록 짙은 청색으로, 아주 멀리는 아스라이 시커멓게 하나의 작은 점으로 보이는 산들의 집합! 한국 제일의 명산 처임이 분명했다.
바닥에는 납작한 돌을 깔고 2m높이의 기둥 돌에 새겨 쓴 '소백산 비로봉'으로 우뚝 선 모습이 듬직하기만 하다. 돌 밑에는 작은 글씨로 1천439.5m의 높이로 정상임을 말해주어 반갑기만 하다. 비석을 세 바퀴나 돌면서 손끝으로 만져본 돌 맛이 매끄럽고 깊게 파 쓴 글체가 기계로 새겨 쓴 흔적임을 알 수 있었다. 비문의 뒤에는 서거정 시인의 소백산 예찬 시가 써 있었다.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백 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 솟았네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하늘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정상에 둥그렇게 쳐진 울타리에 기대어 사방팔방으로 산들의 대 파노라마를 보면서 한국의 미래가 넓게 펴지기를 바랐다. 한쪽에는 경관해설 판이 있어서 소백산맥에서 태백산맥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봉우리들의 세세한 모습들을 조망할 수 있었다. 부드러운 토산에 올랐으니 ‘소백 능선’을 주제로 시 한편을 지어 보았다.
하늘에 핀 연꽃이라 비로봉이고
첨성대 위에 올린 돔이 천체 관측소이며
어두운 하늘에서 꿈을 찾아 별을 본다
민족의 영산으로 백두대간이 꿈틀거린다.
철쭉과 야생화로 능선은 천연색이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과 함께 서니
키를 넘는 철쭉이 능선 길을 가렸지만
신비한 봉봉이 희방하늘 폭포라네.
서너 명이 겨우 비켜 갈 수 있는 지정등산로 울타리 뒤쪽에는 전혀 다른 철책이 둘러쳐 있었다. 주목 군락지 감시초소가 그 뜻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나무껍질이 붉은 색이고 속살도 유달리 붉어 붉을朱자가 붙은 주목은 흔히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나무’라고 말한다. 주변 일대가 온통 주목의 세상이다.
수백 년에서 천년을 넘게 살고 목재도 단단하기가 차돌 같은 주목을 보호하기 위해서 막아둔 울타리가 주목나라의 국경선 같았다. 주목의 목재는 결이 곱고 단단하며 아름답기 때문에 고급가구로 사용된다. 나뭇결이 곧고 다듬기가 쉬우며 붉은 색에 광택까지 있어서 높은 벼슬의 양반들이 죽었을 때 관을 짜는 목재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높게 둘러친 철책 속의 주목이 철갑을 두른 듯하여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주목은 원래 교목으로 똑바르게 성장하는 수목이지만 이곳은 고산지대의 무서운 강풍으로 인해 대부분이 휘어져서 모습이 기묘하기 그지 없었다.
이미 죽어버린 고사목 사이로 이끼가 파랗게 덮인 주목의 몸통은 천년의 나이 값에 어울리는 아름드리이지만 모진 북풍에 짓눌려 아담한 키에 두세 길이 넘지 않는다. 오동통한 땅딸이였다. 이미 생을 다한 주목도 그냥하얀 가지로 멋진 모습을 자랑한다. 죽어서도 천년을 견딘다는 끈끈한 인내심이 본받을 만하다.
천년의 세월은 한없는 인고의 세월이었을까(?) 헛되게 보낸 무상의 세월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령이 200~400년이나 된 주목 1천500여 그루가 4만5천여 평의 면적에 무리를 지어 자생하고 있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는다고 한다.
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국망봉과 연화봉에 이르는 능선을 따라 3만 여 그루가 분포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니 애석하기만 하다. 특히 이곳의 휘어지고 꾸불꾸불한 주목은 기묘한 모습으로 많은 생각을 자아내게 했다. 신비한 자연의 조화에 설명할 말이 부족할 뿐이다. 거친 산에서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려면 나무의 가지나 몸통은 뒤틀리고 굽어지게 마련이다. 억척스레 살아남은 주목이 자랑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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