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명리

32. 곡식의 종자와 인종을 구할 보신의 땅(2)

ngo2002 2011. 4. 18. 09:12

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32. 곡식의 종자와 인종을 구할 보신의 땅(2)
입력시간 : 2010. 08.09. 00:00


시대를 풍미했던 풍수사 남사고는 조선 명종 때의 예언가로 소백산을 보면서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려 빼어난 자태의 소백산에 반한 나머지 정기가 가득 차서 천년동안 병란이 들지 않을 땅이라고 했다.
천년 동안 병란이 들지 않을 땅

풍수사 남사고 천하 제일 산이라 극찬

정감록은 땅의 중심 '곤륜산'으로 불러

꽃이 만발하고 나무로 뒤덮어야 '山'

멀리서 보면 멧부리가 솟아나지 않고 엉기어 있는 듯하다. 구름 가듯 물 흐르는 듯하여 하늘에 닿아 북쪽이 막혀있고 신선이 살고 있다는 흰 구름이 언제 보아도 산의 정상을 가리고 있다.

시대를 풍미했던 풍수사 남사고는 조선 명종 때의 예언가로 소백산을 보면서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렸다. 빼어난 자태의 소백산에 반한 나머지 정기가 가득 차서 천년동안 병란이 들지 않을 땅이라고 했다. 탄복을 한 그는 땅바닥에 엎드려 코가 빠지도록 큰절을 드렸다.

“이 산은 사람을 살려내는 산이다.”

그는 소백산이 병란을 피하고 인간의 목숨을 이어가는데 제일의 산이라고 했다. 유익한 목적에 맞고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서 쓸 만한 산이 소백산이다. 오직 목숨을 구걸한 피난지가 십승지는 아니다. 세상을 제도할 인물이 태어날 그곳이 십승지였다. 6·25 때 피바람을 피해 십승지를 믿고 그곳으로 찾아든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민도가 낮았던 당시에는 무턱대고 정감록을 바이블삼아 믿었던 자들이 많이 있었다. 너무 갑자기 일어난 전쟁이라 겁에 질린 나머지 약해진 마음으로 허겁지겁 갈팡거리며 숨어들 곳을 찾아 나서기도 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십승지가 깊은 산속이거나 교통의 오지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와는 반대로 몸을 피한 그곳이 격전지가 되어 큰 피해를 본 곳도 있었다. 그러자 정감록은 혹세무민하는 미신이며 엉터리고 몹쓸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차라리 승지를 찾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우리나라는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이라고 할 것 없이 십리만 뛰어나가면 산이다. 전 국토의 70%가 산이기 때문에 굳이 숨어들 필요도 없이 앉아있는 그 자리는 산이라는 의미이다.

승지를 찾아 헤맨 자들은 함께(Togetherness)해야 한다는 정신이 부족했던 나약한 소치라 여겨진다. 스스로 자기무덤을 팠던 꼴로 자업자득이었던 것이다. 나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귀한 존재임을 망각했던 것이다.

정감록은 당시의 시대정신을 배반한 절대금서였다. 일반 대중에게 유포될 수 없었다. 집권층이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탄생된다니 어떤 왕인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책을 받아들이려하겠는가? 금서령을 어기면 본인은 물론 극형에 처해지고 삼족이 멸종될 우려도 있었다.

고려 때의 형제 이심과 이연이 제갈공명보다 더 용하다는 촉나라의 도사 정감을 모시고 조선팔도를 유람하며 보고 느낀 답사내용을 기록한 책이 정감록이다. 조선왕조의 흥망과 그 뒤를 이을 나라를 예언한 것으로 대화형식의 여행기록문이라 하겠다.

그들은 땅의 중심을 곤륜산(崑崙山)으로 보았다. 하늘을 지탱해주는 기둥이 곤륜산이고 땅에서 일어난 일을 하늘에 전달해주는 통로로 보았다. 그래서 산은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고 나무로 뒤덮여 있으며 바위와 돌은 귀한 옥이고 보석으로 되어있다고 믿었다. 서왕모(西王母)가 아리따운 선녀들을 거느리고 사는 선경의 산으로 여겼던 것이다. 한개만 따먹어도 천년을 산다는 천도복숭아 밭도 그 곳에 있는 것으로 여겼다.

지상의 모든 것은 곤륜산에서 시작한다. 남으로 뻗은 산줄기는 중국으로 들어갔고 동쪽으로 뻗은 것은 백두산까지 와서 치솟아 조선의 산과 물을 만들었다. 백두산에서 한줄기 대간이 기운차게 남으로 뻗어 내리며 금강산을 이루고 태백산에 이른다.

태백에서 잠시 멈췄다가 서쪽으로 구부러져 속리산으로 가고 다시 남하하면서 소백산과 지리산에서 멈춘다. 소백산의 남쪽은 십승지 중에서 으뜸으로 보았다. 배산임수의 요건에 맞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의 자연관에서는 하늘과 땅을 우주로 보았고 그 사이에 낀 인간도 고도의 사고능력과 정신을 가진 우주로 보았다. 천, 지, 인 삼재사상이라 하겠다. 이러한 우주는 겉으로는 규모, 자격, 능력, 특성, 활동 등 모든 면에서 기(氣)가 중심이며 기에 의해서 생하고 멸하며 성하고 쇠한다고 믿었다.

하늘에 흐르는 기를 살펴서 뜻을 헤아리는 천문이 있고 땅에 흐르는 기를 짚어서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 풍수지리이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에 받은 우주의 기를 음양, 오행, 십간, 십이지로 풀어서 그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것을 사주명리라고 한다. 몸에 흐르는 기와 천지간에 흐르는 기를 합하려는 기 운동은 일종의 철학이자 과학이다.

땅의 기(氣)는 하늘에서 받는다. 기는 다시 산을 솟아오르게 했고 강물이 흐르게 했다. 땅위에 있는 모든 만물을 살아가도록 해주고 또 죽게도 했다. 원동력은 기였으며 주로 백두대간에 인접한 곳이라야 금수강산에 드는 발복지로 여긴 것이다. 인간사회를 흥하고 망하게 하는 것도 땅에서 얻어지는 기로 보았다.

십승지의 대부분은 백두대간에 뿌리를 두고 그 인근에 있다. 착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는 것도 하늘의 뜻이고 기에 의해서 움직였다. 이를 풍수지리도참사상이라고 하는데 경건한 마음으로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땅의 기를 살피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미리 알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난리가 벌어진 다음에 십승지로 찾아 들어가면 목숨을 건지고 새로운 세상을 살아간다. 새 인물 정 도령이 건설하는 새 세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잘난 사람이 잘사는 것은 물론이며 보잘 것 없는 사람도, 못난 사람도 힘이 없거나 불구자도 공평하게 잘사는 세상이 온다.

정 도령은 그런 지상낙토를 건설하는 자로 믿어왔다. 십승지에 들어간 사람들은 이때를 기다려 정 도령의 사업에 적극 참여하면 큰 공을 세우고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십승지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들어가는 시기나 절차가 있었다.

십승지에 들어가는 것은 단순하게 난리를 피해 몸을 웅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숨어서 힘을 키우고 비축했다가 때가 되면 세상에 나와 대중 앞에 선다는 것이다. 깊은 못에 몸을 숨기고 승천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용을 잠용(潛龍)이라고 한다. 십승지에서는 그곳으로 먼저 들어가 후천개벽의 때를 기다려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잠용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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