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26. 속세를 떠났으니 진정한 유토피아다(1) 속리산은 불덩이처럼 훨훨 타오르는 별 |
입력시간 : 2010. 06.16.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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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언제 찾아도 볼거리 풍부해
충주호에 고인 물 남한강 흘러들어
대한 8경중의 하나인 속리산은 반도의 허리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이 험한 준령으로 굽이쳐 내려가다 내륙의 한가운데에 솟아올랐다. 계곡은 골이 깊고 산세가 웅장하기만 하다. 더구나 하늘과 맞닿은 스카이라인은 온통 바위 뿐으로 연결되는 봉이 기암괴석으로 기묘한 신의 창조물이라 하겠다.
깔린 구름위로 솟아오른 바위들이 야외 수석전시관인 양 착각이 들 정도로 자태를 뽐내는 돌들의 집합장소이다. 풍수가들은 속리산을 타오르는 불덩이 같이 훨훨 타는 별이라고 했다. 돌의 형세가 높고 크며 겹쳐진 봉오리의 뾰쪽한 돌 끝이 무리지어 있어서 처음 피는 연꽃 같고 또 횃불에 불을 붙여 피워 올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山이 속리산이라 불리어지게 된 유래는 이 山주변에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산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입산수도함으로서 속세를 떠난다는 의미로 변속할 속(俗)자와 떠날리(離)자를 써서 속리산이라 부른다고 하니 얼마나 아름다운 山인지 알만하다.
달리 생각하면 속리산이란 이름도 조금은 이상하다. 속세를 떠났다면 이속(離俗)으로 불러야 옳다. 난해한 속리의 뜻을 푼 자는 조선시대 나주의 문인 임백호(林白湖)가 풀어냈다. 그는 속리산에서 중용을 8번이나 읽은 다음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진리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를 멀리한다고 했다. 산이 사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산을 떠난다고 보았다. 깨달음의 길로 가야할 사람들은 오히려 귀찮아했다. 속리산은 원래 신들이 거주하는 산이었다. 그 뜻을 살려 제일봉의 이름도 천황봉이다.
속리산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도(道)를 통한 산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를 아직 통하지 않았으면서도 산과 가깝게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 도를 멀리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고 항상 머물러 있으려 하는데 사람들은 속세를 떠나 속리산을 찾는다.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난센스라 하겠다.
속리산은 골마다 넘치는 물이 폭포를 만들며 힘차게 흘러내린다. 아무렇게나 생긴 돌 사이로 흐르는 물은 기운껏 울어댄다. 거친 세파에 찌든 사람들이 찾아와 때 묻은 발을 씻을까봐 두려워한다. 물은 화난 자신의 얼굴을 숨기고 소리만 질러댄다.
“우르릉 쾅쾅….”
오늘 오를 문장대와 천황봉(1쳔58m)은 속리산의 주봉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상관없이 언제 찾아보아도 볼거리가 풍부한 산이다. 경북 상주시와 충북 보은군의 경계에 위치해서 두개의 도를 아우르고 있다. 먼저 속리산으로 오르기 편한 상주 장암리에서 산행의 첫발을 시작했다. 속리산의 동쪽에서 문장대로 오르고 능선 따라 가다가 천황봉을 오른 다음에 그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일주산행인 것이다.
문장대를 진산으로 하는 상주시 화북면 우복동을 내려다보고 능선을 따라 가다보면 속리산의 제일봉 천황봉이 보인다. 그곳에서는 보은군 내속리면 삼가리에 아담하게 자리한 우복동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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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때의 풍수 학자였던 이중환은 평생을 바쳐 한권의 책 '택리지'를 남겼다. 택리지는 책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보다는 집단으로 마을을 이루며 사대부들이 살만한 넓은 땅을 소개한 책이다. 조선사회에서 사대부는 주류사회를 이루고 사는 핵심인물들이었다.
벼슬을 지낸 사람은 대부(大夫)라 했고 양반은 양반이되 벼슬을 지내지 못한 사람은 선비士라 했다. 양쪽을 어울린 양반 집안에 끼려면 적어도 정오품이상의 벼슬을 지낸 자라야 사대부라고 불렀다. 정오품이라면 육조의 정랑, 홍문관의 교리직이다. 외직으로 군수는 정사품이며 현령이 오품, 현감은 종육품에 해당된다.
당시에 사람대접을 받고 살려면 그쯤은 되어야 했다. 양반은 아무나 양반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집안의 뿌리가 든든하고 대대로 살아오며 지역을 지켜갔다. 그들이 살아갈 곳은 신중하게 골라 터를 일궈가야 했고 그래서 택리지가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대부들이 살아갈 마을로 점지한 곳은 산에 숲이 울창해야했고 계곡에는 물이 차고 넘쳐야 한다. 낮에는 햇볕이 따갑게 비춰주고 밤에는 별빛이 내리쪼이며 공기가 맑아야 살만한 곳이었다. 물소리 바람소리가 너무 거세지 않고 지세는 부드러워야한다. 양지바른 그곳은 따뜻하고 편안하며 그래서 경치도 수려한 곳이라야 했다. 도대체 이런 조건을 구비한 곳이 어디에 있을까?
속리산을 끼고도는 일대를 택리 할 만한 제일지로 여겼다. 이제 산에 들어가면 택리의 조건과 주변의 가거지가 선택할만한 곳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대부들은 마을의 입지를 어떻게 잡았을까? 산수와 산업, 교통 등을 보아서 주거지별로 나누었다. 가거지可居地란 사람들이 탈 없이 그저 살만한 곳을 말한다. 복지福地는 경치도 아름답고 풍수가 어울린 곳으로 중앙정치무대에서 밀려난 자들이 절취부심 기회를 노리며 안거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운둔지는 세상에서 큰 뜻을 펼치기에는 역부족인 사람들로 서자나 역적으로 몰린 집안의 자손들이 숨어 지낼 수 있는 곳이다. 계속되는 병란과 난리를 피해서 생명을 지킬만한 곳은 피병지(避兵地)라고 했다. 마음을 풀고 유유자적하며 심오한 자연 속에 머물며 자신을 찾아가는 곳으로는 수단지(修丹地)라고 하며 공부하는 수련지로 여겼던 것이다.
정감록의 십승지에서는 복지와 피병지가 겹치는 곳이 많다. 정감록은 금서로서 어느 누구도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었다. 참서나 예언서는 믿지 못할 요사스런 책으로 치부해버렸기 때문이다.
속리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 산행 길의 오르는 길목에 활짝 핀 개나리가 화사하기만 하다. 산악회 여성회원들의 수줍은 볼처럼 맑은 연분홍의 개나리가 예쁘기만 하다. 새롭게 돋아난 나무 가지의 새순사이에 떼를 지어 핀 개나리는 영랑 소월의 입에서 등산객의 손으로 전해지며 하늘거리는 폼이 화사한 꽃 소식의 전령사 같다.
산의 본래 이름은 산봉우리가 9개여서 구봉산, 금강산처럼 아름답다하여 소금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망이 훤히 트인 문장대(1천054m)의 북쪽에서부터 상학봉(861m), 묘봉(874m), 관음봉(982m)이 있고 문장대의 동쪽으로 문수봉(1천31m), 신선대, 입석대, 비로봉(1천32m)과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황봉(1천58m)이 길게 잇대어 서있다.
지금 내가 오르는 계곡의 상주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문경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괴산 쪽의 세속을 떠난 곳에서 정이품송이 있는 달천을 지나 충주호에 고인 물은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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