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57] 2011, 토끼의 해로 보는 토끼
토끼가 달에 산다는 이야기, 고구려 벽화에도 나오죠
배영대 기자
고구려 벽화 속 토끼
고구려 고분이 많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 지역의 장천 1호분(5세기 후반) 벽화에 토끼가 나온다. 달에서 방아를 찧는 모습의 옥토끼가 두꺼비와 함께 표현되어 있다. 평양 지역의 덕화리 1·2호분, 개마총, 진파리 1·4호분, 내리 1호분 등에도 옥토끼가 등장한다. 이 토끼가 찧고 있는 것은 보통의 떡이 아니라 좀 더 특별한 것 같다. 고구려 벽화 속 토끼는 달의 정령으로서 불사약을 제조하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달 속 계수나무는 불사목(不死木)이다. 계수나무의 어린 껍질과 어린 가지는 예로부터 혈액순환과 해열에 주요한 한약재로 사용됐다. 달 속 토끼가 찧는 선약의 재료가 계수나무인 셈이다. 조선 후기 한글 고소설 ‘별주부전’에서 별주부가 남해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생간을 구하려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토끼의 간 역시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믿었던 것이다.
신라 토우·수막새, 고려 고분·향로의 토끼
통일신라의 수막새에도 토끼가 나온다. 뚜껑이 닫힌 항아리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는 토끼가, 왼쪽에는 두꺼비가 항아리의 뚜껑을 여는 형상이다. 동그란 모양의 수막새는 그 자체가 달이다. 토끼와 두꺼비는 달을 지키는 동물이며, 항아리는 불로장생의 약 항아리로 해석된다. 김유신 장군 묘의 십이지신상에서도 당연히 토끼가 포함된다. 머리는 토끼이고, 몸은 사람의 형상이다. 갑옷을 입고 오른손에 긴 방패, 왼손에는 단검을 들고 있다.
고려 고분인 수락암동 1호분의 십이지신에서도 토끼를 볼 수 있는데, 통일신라 시기의 십이지신 모습이 인신수두(人身獸頭)인 것과 달리, 사람의 관모 장식을 하고 있다. 고려 청자 칠보투각향로는 세 마리 토끼가 떠받치는 구조다. 토끼 위에는 연꽃 무늬가, 다시 그 위에는 둥근 달이 조형되어 있다.
역사 자료 속 토끼
고려 제8대 현종 2년(1011년) 5월에는 서경(평양) 사람이 머리 하나에 몸뚱이가 둘 달린 토끼를 왕에게 바쳤고, 제26대 충선왕 1년(1309년) 8월에는 토끼가 왕궁인 수녕궁에 나타난 것이 화제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전한다.
지혜와 꾀의 상징
경상북도 문경시 ‘토끼비리’라는 지명의 유래는 흥미롭다. 토천(兎遷)이라고도 부른다. 고려 태조가 이 지역에서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했을 때 토끼가 절벽을 따라 뛰어가며 길을 안내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의 후백제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백두대간을 넘어 고모산성 부근에 도달했을 때 더 이상 진군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타고 달아났다. 왕건은 군사들을 이끌고 토끼가 간 길을 따라 진군해 무사히 이 구간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후 ‘토끼길’이란 뜻으로 토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문경 사람들은 토끼비리라고 부른다. 비리는 문경 지역 방언으로 벼랑으로 풀이된다.
불교 속 토끼, 희생의 이미지
양산 통도사, 수원 팔달사 등의 벽화에는 거북이 등에 탄 토끼 모습을 볼 수 있다. 불교에서 토끼의 이미지를 중시했음을 방증한다. 토끼가 희생제물이 되어 병자를 고쳤다는 이야기는 민간전설로도 전해진다.
조선 후기 예술과 토끼
조선 후기 미술 가운데 토끼 그림으로는 조영석(1686∼1761)의 ‘암하춘토(巖下春兎)’, 변상벽(1730∼?)의 ‘토끼’, 최북(1712∼1786)의 ‘추토(秋兎)’, 김득신(1754∼1822)의 ‘추계유금(秋谿遊禽)’ 등을 꼽을 수 있다. 김홍도(1745∼?)가 그린 8폭 영모 병풍에도 토끼가 등장한다.
호랑이와 토끼를 함께 그린 그림들도 주목할 만하다. 심사정(1707∼1769)의 ‘황취박토(荒鷲搏兎)’와 ‘호취박토(豪鷲搏兎)’, 최북의 ‘호취응토(豪鷲凝兎)’ 등이다. 호랑이에게 쫓기는 토끼의 모습을 그렸다. 이 같은 흐름은 조선 말기의 민화로 이어지면서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해 간다. 호랑이에게 담뱃대를 들이대며 담배를 권하는 토끼(사진)를 묘사하기도 한다.
조선 후기의 각종 문자도(文字圖)에도 토끼가 등장한다. 대개 부끄러움을 뜻하는 ‘치(恥)’자에 매화와 함께 그려진다. ‘치’자에는 충절과 절개로 유명한 백이·숙제의 고사를 담고 있다고 한다. 토끼의 이미지가 확장되는 느낌이다. 이 밖에 토끼가 물고기·새·거북이 등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민화도 전해진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민초들의 꿈을 익살과 해학으로 승화시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도움 받은 책=『십이지신 토끼』(책임편집 이어령, 생각의나무, 2010년 11월 출간)
자료 제공=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이원복 국립광주박물관 관장, 생각의나무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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