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1.07.15 07:01 수정 2021.08.17 21:08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6천평 유리온실서 매주 12만 포기 생산
한승진 대표 “고급상추로 세계시장 공략”
농진청 ‘리빙랩’ 연계…사계절 재배 가능
광활한 6000평 유리온실에서 자라는 샐러드용 상추. 이곳에서 매주 12만포기가 생산돼 국내와 해외로 납품되고 있다. ⓒ배군득 기자
#.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농서다. 1429년에 관찬으로 간행해 이듬해 각 도 감사와 주, 부, 군, 현 및 경중 2품 이상에서 나눠줬다. ‘新농사직썰’은 현대판 농업기법인 ‘디지털 농업’을 기반으로 한 데일리안 연중 기획이다. 새로운 농업기법을 쉽게 소개하는 코너다. 디지털 시스템과 함께 발전하는 농업의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상추는 깻잎과 함께 1~2위를 다투는 ‘쌈채소’로 유명하지. 최근에 여러가지 쌈채소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선호도 1위는 상추라고. 그런데 상추가 샐러드 시장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거 알아?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웰빙 채소코너에 예쁘게 진열된 상추같지 않은 상추가 바로 샐러드용이야. 예를 들면 햄버거에 들어가는 양상추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동안 국내에서는 샐러드용 상추가 생소했는데, 스마트팜 기술이 도입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어. 특히 일본과 중국의 수요가 높아 수출도 가능한 제품이지. 상추의 고급화로 농가 수익이 많아졌으면 좋겠어.”
샐러드용 상추는 흔히 ‘양상추’로 통용돼 왔다. 일반 쌈용 상추와 달리 식감이 아삭하고 영양소도 많아 샐러드나 샌드위치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상추와 같은 ‘잎채소(엽채류)’는 재배 방법은 쉽지만 고온에 취약해 여름철 농작물 피해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주식회사 아름은 국내 최대규모 스마트팜 시스템을 갖추고 샐러드용 상추만 집중 재배하는 농업기업이다. 영세 농가들의 쌈용 상추 재배와 차별화를 시도해 국내에서 전혀 다른 품종을 개발해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시장도 개척하고 있다.
80억여원 들여 완공한 스마트팜…프리미엄 상추 지평 열다
전북 김제에서 샐러드용 상추를 재배하는 아름은 민간자본 80억원을 들여 만든 대표적 스마트팜이다. 지난해 2월에 완공돼 매주 12만 포기를 생산하는 시설을 갖췄다.
아름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부침을 겪었다. 지난해 2월 완공과 동시에 터진 코로나로 네덜란드 기술자들이 모두 철수하면서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6000여평의 광활한 스마트팜은 코로나 영향으로 납품이 뚝 끊겼다.
한승진 대표가 직접 설계한 레일시스템. 옆에서 자동으로 급수를 해주고 기울기를 조절해 녹조를 차단한다. ⓒ배군득 기자
한승진 아름 대표는 “지난해 7월에는 2만5000포기를 폐기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앞선 5~6월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며 “더구나 노지상추 등 싼값에 치여 수익률이 뚝 떨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여기에 4월 말 큰 업체들과 계약이 종료되면서 판로개척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노지상추로 인식되는 싼 가격이 발목을 붙잡았다. 기업형 농장인 아름 입장에서는 영세 농가 먹거리를 뺏는다는 편견을 깨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샐러드용 상추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노지상추 시장에서 벗어나 프리미엄 상추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주요 유통가에 하나 둘 입점 문의가 이어졌다. 올해 6월 말 현재 아름이 구상하는 매출의 75%까지 회복하는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아름이 보유한 샐러드용 상추는 ▲살라플라워 ▲살라트리오 ▲살라앙상블 ▲케이녹스 등이다. 관련 특허만 10건이다. 이들 상추를 재배하는 스마트팜 시설은 유리온실과 비닐하우스, 노지 전시포로 구성돼 있다. 상추는 재배부터 수확 전까지 모두 전용 기계(EBB Bed)가 한다. 이 기계 역시 한승진 대표가 직접 구상했다.
상추 재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온도 제어도 ‘환경제어 계측기’를 통해 컨트롤 한다. 유리온실 내부 온도편차는 ± 0.2 ℃ 수준이다. 뜨거운 한여름에도 유리온실은 적정 온도 유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대표는 “좋은 품질을 위해서는 좋은 환경도 중요하지만 시설 투자에 주저하면 안된다”며 “우리는 자체 개발한 특허 시스템 MGS(Moving Gutter System) 등으로 최상급 상추를 보급하는데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인력은 상추를 레일에 심는 작업만 한다. 나머지는 레일에서 시간별, 성장별로 알아서 움직인다. ⓒ배군득 기자
“퀄리티 좋은 제품을 값싸게 파는 것은 아마추어”
한 대표의 기업 철학은 명확하다. 우수한 제품을 제값에 제공하는 것이다. 그만큼 품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확고하다. 그가 샐러드용 상추에 눈을 돌린 것은 5년 전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는 제1회 국제종자박람회가 인연이 됐다.
이후 2017년 살라플라워를 처음 상표등록한 이후 10건의 특허가 샐러드용 상추에서 나오게 된다. 한 대표는 2019년 말까지 샐러드용 상추로 5~6만 포기를 납품했다. 특히 중국 상해 판로를 개척하면서 성장 가능성을 타진했다.
스마트팜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확신도 이 무렵이다. 지난해 초에는 네덜란드 등 첨단 스마트팜 기술이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 견학했다. 이후 국내에서 시설투자를 위해 대기업 문을 두드렸지만 대부분 가능성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한승진 대표는 좋은 제품을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살라플라워는 상추의 고급화를 성공시킨 첫 단추였다. ⓒ배군득 기자
한 대표는 “이미 유럽은 스마트팜이 안착돼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인력으로 농사를 짓는다. 더 좋은 환경과 시스템이 있는데 여기에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라며 “스마트팜은 6차 산업과 연계도 가능하다. 상추밭에서 샐러드 파티를 여는 것은 상상만해도 행복한 일 아닌가. 스마트팜이라서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상추가 여전히 영세 농가 전유물이다. 자연스레 싼 값에 공급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아름처럼 기업형 농장이 영세 농가 수익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한 대표는 “우리는 철저하게 샐러드용만 생산한다. 유통저항이 만만치 않아 조기 시장진입이 쉽지 않았다”며 “상추도 디스플레이를 해야 한다. 부케 같은 샐러드용 상추는 보기만해도 먹음직스럽다. 퀄리티가 좋은 제품을 값싸게 파는 것은 아마추어 발상이다. 최상의 상품을 가치있게 소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마트팜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다. 시설투자 없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터득했다. 한 대표의 스마트팜 예찬론은 앞으로 우리나라 농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그는 “스마트팜 완공 이후부터 여름철 세균, 질병 등이 쉽게 관리되고 있다. 녹조도 자유롭다. 여름을 넘기는 것이 관건인데 스마트팜은 이 문제가 해결된다”며 “농가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 습도 낮추는 노력도 필요하다. 일반 농가에서 상추를 수확하는데 평균 12주가 걸린다. 우리는 6주에 수확한다. 생산성과 시간 모두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아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제품 외적인 곳에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것이다. 대부분 국내 인력을 쓴다. 이 역시 한 대표의 고집이다. 하지만 계속 오르는 최저임금으로 언제까지 국내 인력을 채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한 대표는 “요즘 인턴만 채용해도 인건비 부담이 크다. 최저임금 인상이 우리와 같은 기업형 농장은 버티기 힘들다”며 “주변에서는 국내 근로자를 채용하면 망한다고 하더라. 그렇더라도 버틸때까지 버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현장에서 연구하는 ‘리빙랩’…여름 상추 재배 가능해졌다
농촌진흥청은 아름 현장에서 여름철에도 상추를 재배할 수 있는 기술연구가 한창이다. 지난해 9월 ‘잎채소 수경재배용 양액냉각기’를 개발한 것도 리빙랩의 성과다.
리빙랩은 기술 또는 사회의 혁신을 목표로 고안된 현장 중심적 문제해결 방법론이다. 농진청도 이 방법을 활용해 현장에서 해결책을 찾는데 집중했다.
대부분 시설원예 작물 재배 적정온도는 20∼30℃로, 고온에 노출되면 고온장해가 발생한다. 특히 상추 등 잎채소는 생육 적온이 15∼20℃인 저온성 작물이다. 30도℃ 이상에서는 발아와 잎 분화가 멈추고 양분 흡수가 저하된다.
재배 적정온도를 맞추기 위해 여름철 온실 전체 공간을 냉방하면 생산비가 증가하고 환기, 차광, 기화식 냉방 등은 효과가 낮다.
엽채류 수경재배용 고효율 양액냉각 시스템 ⓒ농촌진흥청
농진청이 개발한 시스템은 대용량 양액탱크 전체를 냉각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온실에 양액을 공급하는 소형탱크를 설치한 뒤 우선 냉각하고 순차적으로 대용량 양액탱크를 냉각하는 방식이다. 작은 냉각기로 정밀하게 양액 온도를 제어할 수 있다.
소형탱크, 양액탱크, 냉각기를 삼방밸브로 연결하고 삼방밸브 출구 온도에 따라 양쪽 탱크에 연결된 밸브를 열고 닫아 소형탱크 양액 온도를 18∼20℃로 유지한다. 여분 냉열로는 양액탱크를 냉각하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이 시스템 냉각기는 기존 양액탱크 전체에 적용되던 냉각기의 50% 정도로 농가의 설치비 부담도 크지 않다.
실제로 농가에서 리빙랩으로 시험한 결과 여름철 외부기온 35℃, 온실 기온 42℃ 조건에서도 공급 양액 온도는 18∼20℃로 유지됐다. 상추 뿌리 부분 온도는 20∼25℃였다. 상온 양액을 공급하는 온실보다 상추 뿌리 발달은 2배 증가했다. 고온 스트레스 저항성이 증가해 상추 무게 또한 150% 늘어났다.
권진경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사는 “여름철 폭염에 따른 잎채소 수경재배 농가 생산성 저하를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기후변화가 일상이 된 시대에 맞게 시설원예 농가의 고온피해를 줄이기 위한 고효율 냉방기술 연구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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