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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파트 60년 2‘시범아파트’ 맏형 회현아파트…탈연탄 중앙난방 도입

ngo2002 2021. 7. 7. 09:56

399호 2021년 06월 07일

  • 5월 3일 찾은 서울 중구 회현2시민아파트. ‘ㄷ’ 자 모양의 정가운데 중정을 조성했다. 중정에는 오래된 장독이 땅속 깊이 묻혀 뚜껑만 드러나 있다. 사진 고성민 조선비즈 기자

    MBC ‘무한도전’, tvN ‘대탈출’, 넷플릭스 ‘스위트홈’, 영화 ‘친절한 금자씨’ ‘추격자’ ‘주먹이 운다’ ‘하녀’ ‘사월의 끝’, 아이돌그룹 빅뱅의 뮤직비디오 ‘거짓말’, 온라인 게임 ‘서든어택’⋯. 이들엔 공통점이 있다.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것. 오래된 분위기와 특유의 설계로 영화·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 아파트는 서울 남산자락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시 중구 회현동1가에 위치한 회현2시민아파트(회현2시범아파트·회현아파트)다. 주거공간인 3~7층 아파트가 ‘싹둑’ 잘려 나간 삼일시민아파트를 제외하면 회현아파트는 현존하는 유일한 시민아파트다. 아파트 커뮤니티의 효시인 중정(中庭·마당)을 조성했고, 당시 최첨단 기술인 중앙난방 시스템을 도입해 ‘시민아파트의 개량형’으로 평가받는다.

     

     

    회현2시민아파트의 복도. 사진 고성민 조선비즈 기자

    와우 참사 지켜보며 완공

    1968년 대규모 주택 공급 정책으로 펼쳐진 시민아파트 사업은 1970년 4월 서울 마포구 와우시민아파트가 준공 4개월 만에 붕괴하며 금세 실패로 드러난다. 이때부터 시민아파트 건설은 전면 중지되고 순차 철거된다. 당시 준공 막바지였던 회현아파트는 구조물 보강을 거쳐 1970년 5월 준공됐다. 애초 시민아파트로 계획됐으나 ‘와우의 비극’과 작별한다는 의미에서 시범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준공됐다. 김현옥 서울시장이 “앞으로 아파트는 이곳(회현시민)을 시범(示範) 삼아 튼튼하게 지으라”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

    회현아파트는 1개 동, 352가구다. 공급면적 15평(50㎡)·전용면적 11평(36㎡)으로 거실과 방 2개, 개별 화장실 구조다. 앞서 준공된 시민아파트가 통상 공급면적 11평·전용면적 8평(26㎡), 거실 겸 복도와 방 1개, 공동 화장실 구조라는 점과 비교하면 평면을 꽤 개선했다. 건물 높이도 10층으로 다른 시민아파트(4~7층)보다 높다. 경사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건물 지상 6층과 7층에 각각 건너편 언덕으로 오갈 수 있는 구름다리를 만든 점도 눈에 띈다. 엘리베이터 없는 고층 건물의 단점을 주변 지형을 이용해 보완한 것이다.

    회현아파트는 좁은 면적에 많은 가구가 거주할 수 있도록 ‘ㄷ’ 자 모양으로 지어졌다. ㄷ 자 모양 아파트 한가운데에는 중정(中庭·마당)이 있다. 입주민이 함께 김장하고 장독을 보관하는 공동 마당 역할을 했다. 아직도 이곳엔 오래된 장독이 땅속 깊이 묻혀 뚜껑만 드러나 있다. 장독대 둘 공간이 없다는 게 당대 아파트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유용한 공간이었다. 대한주택공사가 1970년 6월 발간한 잡지 ‘주택’은 이렇게 썼다.

    “독립주택에서 생활하는 것에 비하여 아파트는 개인 소유의 정원이 없어 우리의 생활, 특히 식생활에 수반되는 장독대를 둘 곳이 마땅치 않은 점이 제일 문제시되고 있으며, 가구 집기 등을 놓을 자리 문제로 아파트의 불편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회현아파트는 연탄가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시 최신식 기술인 중앙난방도 도입했다. 시민아파트는 통상 연탄 아궁이 방식(아궁이에 직접 연탄을 땜)이었으나, 회현아파트는 중앙난방(별도 난방시설에서 온수나 스팀을 생산해 각 가구로 공급) 방식을 택했다.

    난방 방식의 변화는 아파트 평면의 변화와 직접 관련이 있다. 연탄 아궁이 방식은 부엌이 난방과 취사 두 가지 역할을 맡아야 한다. 따라서 부엌은 거실·침실보다 한 단차 낮으며, 식사는 자연스레 부엌이 아닌 거실·침실에서 이뤄진다. 연탄 보관 공간도 꼭 있어야 한다. 반면 중앙난방은 거실·침실의 단차를 없애고 부엌이 자유롭게 배치되도록 한다.

     

     

    5월 3일 찾은 서울 중구 회현2시민아파트. ‘ㄷ’ 자 모양의 안쪽에 6층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가 설치돼 있다. 사진 고성민 조선비즈 기자

    당시 최고 입지…철거 않고 리모델링

    이처럼 ‘개량형 시민아파트’로 지어진 회현아파트는 시민에게 환영받았을까. 꽤나 진화한 구조에다 당시 1급지에 속하는 입지로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여의도와 강남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고, KBS가 남산에 있을 때여서다.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와 가수 윤수일씨, 은방울자매 등 유명인들이 회현아파트에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는 준공 50년이 지나 인기 단지와는 거리가 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엔 매매 사례가 전혀 없는데, 2004년 11월 정밀안전진단 결과 안전등급 D급(재난위험시설물)으로 판정된 뒤 서울시가 철거를 추진하며 주민에게 보상금을 주고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실거래 공개는 2006년부터 이뤄진 까닭으로 거래 사례가 남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시유지로 토지 지분은 서울시가, 건물 지분은 주민이 각각 갖고 있어 서울시는 협의 매수로 철거를 추진했다. 대부분이 이주했으나, 현재까지 353가구 중 53가구(15%)는 거주 중이다. 서울시는 2016년 이 아파트를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하기로 방향을 틀어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맡아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5월 3일 찾은 회현아파트는 건물 외벽이 부서지고 일부 통행로엔 ‘낙석 주의’ 안내문과 함께 출입금지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오후 3시에도 복도는 밤처럼 어두웠고, 이격된 복도 창문 사이로 종종 바람이 스며들며 음산한 소리를 냈다.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습한 공기가 느껴지며 곰팡내가 올라와 섬뜩한 기운도 들었다. ‘촬영 명소’인 이유를 납득했다.

    회현아파트에 30여 년간 거주했다는 세입자 조모(66)씨는 “복도는 시커멓고 교도소 같지만 집 안은 내부 수리를 다 해놔서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조씨는 “친구가 1976년쯤 이 아파트를 150만원 주고 샀다가 나중에 280만원에 팔고 청담동으로 이사했다”면서 “입주 초기엔 연예인도 살 정도로 인기 좋은 아파트였다”고 말했다. 그는 “보증금 300만원, 월세 30만원에 거주하고 있다”면서 “서울시가 전용 12평(40㎡) 이하 공공임대아파트나 이사비를 보상으로 주는데, 더 넓은 국민임대에 당첨되면 이사비를 받아 이주할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