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입력 2021. 05. 25. 10:48 댓글 41개
[특집]계절과 강도 상관없이 잘려나가는 도시의 나무들, 대안은 없을까
서울 구로구에 있는 500가구 남짓 소규모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몸뚱이만 남은 나무가 서 있다.
2021년 1월 산림청이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30억 그루의 새 나무를 심겠다고 발표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탄소흡수를 늘리기 위해 30살 이상 된 나무를 베고 어린나무를 심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정부 예산을 들여 오히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는 전문가와 환경단체의 비판이 쏟아졌다.
산림청은 여전히 녹화와 임업에 집중하고 있다. 산숲 녹화가 끝났는데도 기존 인력·조직을 유지하려고 불필요한 새 사업을 발굴해왔다. 탄소를 줄인다면서 거대한 숲을 베고 어린나무를 심겠다는 모순적인 이 사업이 대표적이다.
도시 속 나무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도시를 급하게 만드느라 크고 빠르게 자라는 나무를 심었다. 이런 나무가 너무 커졌다고 강한 가지치기를 하면 잘린 곳부터 부패가 일어나 속이 썩고 쓰러지게 된다.
이번 사태는 나무와 숲과 관련해 우리가 앞으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백만년 동안 나무와 숲으로부터 아낌없는 도움을 받아온 사람이 이제 나무와 숲을 위해 작은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_편집자주
아파트에 들어서자 잎사귀와 가지가 사라진 나무가 마른 몸을 드러낸다. 곧게 솟은 나무 기둥은 두 갈래로 뻗은 거대한 새총 같다. “홀라당 벗겨졌네.” 나무 앞을 지나가던 아파트 주민이 말했다. 아파트 안쪽에는 나무 30여 그루가 똑같이 몸뚱이만 남은 채 놀이터를 감싸고 있다. 햇볕이 내리쬐는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5월18일 서울 구로구의 지은 지 30년 넘은 500가구 남짓한 소규모 아파트 단지 모습이다.
인천 부평구 인천 부개초등학교는 담장 너머까지 자랐던 목련·벚나무·단풍나무 등의 가지와 잎을 잘라냈다. 인근 차량정비소에서 봄엔 꽃잎이, 가을엔 낙엽이 차 위로 내려앉아 세차가 어렵다고 민원을 넣었다. “나무는 자라나면 끔찍하다. 저렇게 잘라도 안 죽는다. 언젠가 다시 거대한 모습으로 변한다.”(정비소 운영자 ㄱ씨) 닭발 모양처럼 몸통만 남은 나무에 푸른 잎이 몽실몽실 달렸다.
가로수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가로수 길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운명이 갈렸다. 전선이 있는 곳에서만 나무가 뭉텅이로 잘려나갔다. 나무와 전선은 1.5m 간격을 유지하라는 한국전력의 규정 때문이다. 이 나무는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도심의 열을 내려주지만, 최대 50m까지 자라는 큰키나무다. “외국에선 안전상의 이유로 배전선로 아래 키 작은 나무를 심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점이 고려되지 않고 큰키나무를 심은 곳이 많다.”(이진범 서울시 푸른도시국 조경과 가로수 전문관)
서울 구로구 한 아파트 입구에 가지와 잎이 몽땅 잘린 나무의 모습.
국내외 지침은 ‘강한 가지치기’ 금지
나무의 생명을 위협하는 ‘강한 가지치기’는 수도권을 넘어 전국적 현상이다. 페이스북에서 운영되는 ‘가로수 가지치기 시민제보’에선 9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닭발 모양’이 된 나무를 전북 전주, 충북 보은, 대구 등에서 찾아 제보했다. “고도성장을 경험한 한국은 나무도 빠르고 높게 자라는 종으로 심었다. 서로 다른 도시 공간의 형편에 걸맞은 나무를 적당한 간격을 두고 심지 않아놓고는 이제 너무 커져서 불편하다며 나무를 마구 잘라낸다.” 시민단체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최진우 대표의 설명이다.
1980~90년대 가로수는 플라타너스가 대세였다. 플라타너스 키가 1년에 2m씩 자라면서 일조권을 해치자 인기가 금세 사그라졌다. 서울시의 플라타너스는 2004년 9만8065그루에서 2019년 6만2474그루로 3만 그루 넘게 줄었다. 단풍이 예쁜 은행나무로 인기가 옮겨갔지만 암나무 열매에서 냄새가 심해 문제가 됐다. 그렇다고 뿌리 내린 나무를 함부로 없애긴 어려워 ‘강한 가지치기’가 자주 활용된다.
이는 국제기준에 어긋난다. 국제수목관리학회와 미국국가표준협회는 나뭇가지의 4분의 1 이내로 가지를 치도록 정하고 있다. 그 이상을 자르면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서다. 우리나라의 지침은 다소 느슨하다 ‘서울시 마포구 녹지보전 및 녹화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보면 가로수를 포함한 도로변 사유지 나무에 강한 가지치기를 하지 말라고 돼 있다. 서울시에서도 강한 가지치기를 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과 더불어 우수 사례를 각 구에 홍보한다.
문제는 서울시 가이드라인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조권을 침해한다고, 낙엽을 치우기 힘들다고, 냄새가 난다고, 벌레가 많다고, 쓰러지면 위험하다고, 이런저런 이유로 강한 가지치기가 일상화됐다. 아파트·상가의 나무들은 사유지이기에, 학교는 학교장의 재량으로 가능한 일이다.
가지치기 의뢰를 받은 많은 조경업자는 나무가 알몸이 될 때까지 가지를 쳐댄다. 한봉호 서울시립대 교수(조경학·환경생태계획 전공)는 “살아 있는 나무의 가지와 줄기는 막 자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큰 줄기는 놔두고 작은 가지를 기술적으로 쳐가면서 나무 모양을 잘 갖춰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나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조경을 하는 편이다. ‘나무병원 인증’처럼 나무를 제대로 알고 잘라내는 기술력을 검증받은 업체에 나무 가지치기를 발주해야 한다.”
나무 종류에 따라 가지치기가 적합한 계절이 따로 있다. 침엽수는 10~11월이나 3~4월, 상록수는 5~6월이나 9~10월, 낙엽수는 7~8월이나 11~3월이다. 앞서 <한겨레21>이 방문한 서울 구로구의 아파트 단지는 4월에 가지치기를 대대적으로 했다. 햇빛을 가린다는 주민들의 항의에 밀려 가지치기에 적합한 시기를 기다리지 못했다. “(가지치기에 따로) 시기를 정한 것은 아니다. 최근 민원이 많이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다. 입찰받아서 아파트 전체를 조경업체에 용역 맡겼다.”(관리사무소 관계자) 가지치기 비용은 380만원.
민원, 전선, 보도블록, 일조권 때문에
인간은 고마운 줄 몰라도 도시 나무의 효용은 분명하다. 서울시립대 환경생태연구실 연구원의 연구를 보면, 가로수를 잘 심으면 도로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30% 줄일 수 있다. 여름에는 가로수가 보도의 온도를 차도보다 2도 정도 낮춘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다양한 나무가 어울려 자라 ‘도시숲’을 형성한다. 이런 도시 나무에 강한 가지치기를 일삼으면 문제가 생긴다.
먼저 나무줄기를 크게 베면 절단면으로 세균이 침투할 수 있다. 겉으론 문제없어 보여도 잘린 곳부터 부패해 결국 속이 썩고, 병든 나무는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진다. 4월30일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에선 플라타너스 가로수 5그루 가운데 한 그루가 밑동이 꺾여 도로로 넘어졌다. 이 사고로 40대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가 나무에 깔렸다. 나무 내부가 썩어서 일어난 사고였다.
“가로수가 넘어지는 이유는 수명이 다했기 때문이 아니다. 플라타너스만 해도 수명이 400살이다. 살아 있는 가지를 잘라 내부가 부패한 탓이다. 보도나 차도 공사를 하다가 뿌리를 자르고 시멘트로 덮어버리기도 한다. 뿌리에서 시작된 부패가 몸통까지 이어져 나무 속이 비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나무가 쓰러진다.”(이홍우 수목관리사)
서울 구로구 구일중학교 담장에 핀 꽃을 감상하는 마을 주민들.
“공동주택 녹지도 공공 관리 필요”
나무와 인간이 공생할 방법이 없을까. 아파트 등 사유지의 나무를 공공재 관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큰 나무들이 자라 도시에 녹음을 울창하게 했다. 공동주택의 녹지와 나무는 녹음을 제공하고 탄소를 흡수하고 미세먼지를 줄인다. 그런데 공동주택 녹지 수목은 제대로 관리가 안 된다. 관리비 절감이라는 이유로 과도하게 자르거나, 재건축시 잘 자란 아름드리나무를 그대로 폐기하고 있다.” 김진일 경기도 도의원(더불어민주당)의 말이다.(‘과도한 가지치기 문제 해결을 위한 숙의토론회’ 회의록, 2021년 2월28일)
학교 나무는 교육청에서 관리 예산을 받아 전문가에게 맡기는 방법이 있다. 인천 부개초등학교는 ‘학교 숲사랑 모임’을 자체 운영하고 있다. 고정호 교장은 “나뭇가지를 치는 데 학교 운영비 280만원가량을 써서 나무병원으로 등록된 업체에 맡겼다. 학생들도 학교에 심은 여러 나무를 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고 동네 나무까지 가꾸는 봉사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교정을 한 바퀴 돌아보니 살구나무, 이팝나무, 백목련, 산딸나무 등 20종 넘는 나무가 이름표를 달고 자라고 있었다.
전선과 맞닿아 잘려나가는 가로수는 한국전력, 지방정부가 자원을 투자해 ‘전선 지중화’라는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 지중화가 장기적 과제라면 서울시가 제시한 타원형 가지치기는 당장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이다. 이진범 가로수 전문관은 “배전선로를 침해하지 않는 나무 모양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예를 들어 타원형으로 나무를 잘라 그늘을 확보하고 나무 높이는 줄이는 식이다. 다만 나무 모양을 고려해 가지치기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어, 현재 한전과 협의된 단가로는 이 가이드라인대로 진행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나무를 아직 모른다
기후위기, 열섬 현상, 미세먼지까지 환경문제가 끊이지 않는 도시에서 인간은 나무를 필요로 하지만 나무를 잘 알지 못한다. “다 큰 나무를 자르는 방법도 있지만 어린나무가 자라날 때 주변 환경에 맞게 ‘구조전정’(어린 수목이 특정한 구조로 자랄 수 있도록 유도)을 해주면 자주 가지치기하지 않아도 되는 나무로 성장한다. 짧게는 3년, 길게는 4~5년에 한 번만 (가치치기를) 해도 된다. 국제수목학회에서 가르치는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잘 모른다.”(이홍우 수목관리사)
서울 가로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19년 기준 서울시 가로수는 30만7351그루로, 2004년 27만6779그루에 견주면 3만 그루가 많아졌다. 앞으로 더 많은 나무와 살아가야 할 우리는 나무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제 나무를 배워야 할 시간이다.
글·사진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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