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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 이상 수뢰 공무원 '무조건 파면'인데.. 법관은 '정직' [탐사기획-법관징계 리포트]

ngo2002 2021. 2. 8. 07:56

 

이창수 입력 2021. 02. 08. 06:04 댓글 76.

(상) 한없이 가벼웠던 법관의 죗값
징계 사례 43건 중 38건 '위신실추' 최다
정직·감봉·견책뿐.. '솜방망이' 징계 그쳐
징계 후 법복 벗고 1∼2년 내 변호사 개업
항명 등 법원 내부 사안엔 중징계 '엄정'
법적으로 제정된 '법관 징계기준' 없고
재판 독립 위한 신분보장 '보호막' 작용
5년 전 '정직 6개월 ↑ 연금 감액' 추진
정권 바뀐 이후 개선된 제도 별로 없어

탄핵은 일반적인 절차로는 파면할 수 없는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한 가장 무거운 징계 제도다. 헌정 사상 첫 현직 법관 탄핵소추를 놓고 찬반 양론이 뜨거운 이유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탄핵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사법부로선 치욕스러운 사태이지만 자초한 측면이 크다. 국민 신뢰를 저버린 법관에 대한 징계 잣대 자체가 엄정하지 않고, 그마저 제대로 갖다 대지 않은 게 관행처럼 굳어진 지 오래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가 곪을 대로 곪아 터진 게 최근 법관 탄핵과 김명수 녹취록 논란이다. 현행 법관징계제도의 실태와 문제점을 진단하고, 선진국 사례와 개선 방향 등을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1993년 김영삼정부 출범 직후 이뤄진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는 사법부를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었다. 대규모 땅투기 의혹에 휩싸인 김덕주 당시 대법원장 등 법관 십수명이 법복을 벗었다. 법원에 대한 국민 신뢰가 바닥을 쳤고, 이는 1995년 6월 법관윤리강령 제정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법관윤리강령은 법관 윤리를 제고하고 재판 신뢰를 회복할 획기적인 조치가 될 것입니다.”(최종영 당시 법원행정처장)

법관 윤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형성된 것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윤리강령 제정 직후 헌정 사상 첫 법관 징계가 이뤄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징계는 조직의 도덕성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로부터 25년, 법원은 과연 국민 염원대로 모범을 보여 왔을까.

7일 세계일보 취재팀이 공무원 징계 및 윤리 전문가들과 함께 1995년 이후 25년간 법관 징계 43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는 실망스럽다. 법관이 아닌 이들의 잘못에 엄정했던 법원은 ‘제 식구’들의 잘못에는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사법부 수장이 약속한 징계 법관에 대한 공무원 연금 삭감 등의 대책도 ‘공염불’에 그쳤다.

◆43건 중 38건 ‘위신 실추’… 수뢰·향응 최다

1956년 제정된 법관징계법은 법관이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리거나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을 때 징계하도록 해놓았지만 40년 가까이 유명무실했다. 물의를 일으키면 징계 대신 법복을 벗고 나가는 게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첫 징계 대상은 1995년 8월 이선희 서울가정법원 판사였다. 그는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왔다가 법원의 위신 실추를 이유로 ‘감봉 6개월’ 징계를 받았다. 전체 43건(정직18건·감봉16건·견책9건) 중 이 같은 ‘위신 실추’가 38건이었고, 비위 유형은 뇌물수수와 음주운전, 성비위, 폭행, 막말 등으로 다양했다.

징계 법관 42명 중 21명이 남성 부장판사였고, 징계 당시 나이(평균 43.2세)는 30대가 12명, 40대가 24명, 50대가 6명이었다. 최고령과 최연소는 각각 57세(뇌물수수), 31세(지하철 몰카)였다. 징계 이후엔 대체로 법복을 벗었다. 수감자와 현직을 제외한 28명 중 14명이 징계 후 1년, 5명이 2년 이내에 변호사로 개업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이규진 전 부장판사만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른 공무원은 ‘무조건 파면’인데 법관은 ‘정직’

“이건 뭐, 솜방망이나 다름없네요….”

분석에 참여한 전문가 3명은 법관 징계를 다른 공무원 징계 사례와 비교 분석한 뒤 한목소리로 “징계 수위가 눈에 띄게 낮다”고 평가했다. 3명 모두 43건 중 13건(30.2%)은 ‘(다른 공무원 징계와 비교해) 약하다’고 판단했다. 3명 중 2명이 ‘약하다’로 판단한 건은 13건이었다. 3명 모두 ‘평이하다’고 본 건 배우자 상해(정직 2개월) 등 3건뿐이었다.

법원은 특히 법원 바깥에서 저지른 비위에 온정적이었다. 대법원 공고에 따르면, 2019년 5월 김세준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혈중알콜농도 0.163%의 만취 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2018년 12월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 시행 이후였지만 대법원 결정은 감봉 2개월에 그쳤다. 이는 같은 해 3월 국토교통부 국장급 간부가 음주운전(0.151%)으로 정직 1개월을 받은 것과 대비된다.

장세영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2016년 11월 음주운전을 하다가 고속도로에서 차량 2대를 친 뒤 달아났다. 인적 피해를 낸 음주뺑소니는 당시 공무원징계령 기준으론 최소 정직, 현재 기준으로 최소 해임인 중대범죄이지만 법원은 감봉 4개월로 매듭지었다.

반면 법원 내부 잡음엔 엄정했다. 2007년 10월 정영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부적절 처신 판사들이 징계 없이 요직으로 발령되고 있다”며 대법원장 징계를 주장하다가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는 공판검사 성추행(정직 1개월)이나 택시기사 폭행(감봉 6개월)보다 수위가 높았다. 강호석 인천시 행정심판위원(변호사)은 “표현의 자유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정직까지 내린 것은 과도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들쭉날쭉한 징계수위는 법관 징계에 관한 양정기준이 법원 내부에 따로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유봉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법관은 징계기준이 법적 형태로 제시되어 있지 않은데, 변호사와의 이해충돌이나 재판 관련 정보 취급, 정치적 의견 표명 등에 관한 징계기준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해선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오정일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다른 공무원과 비교한다면 상급자에게 하는 정보보고가 기획업무에 속할 수 있다”며 수위가 강했다는 의견을 냈고, 나머지 2명은 대체로 약했다고 판단했다.

재판 독립을 위한 신분보장 조항은 사실상 비위 법관들의 ‘보호막’으로 작용했다. 2015년 이후 억대의 뇌물수수로 구속된 최민호·김수천 판사에게 내려진 징계는 정직 1년이 전부였다. 2015년 정부는 100만원 이상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무조건 파면’ 하도록 법을 바꿨으나 법관은 예외였다. 그해 뒷돈 516만원을 받은 50대 경찰은 원칙에 따라 파면됐다.

파면·해임이 공무원에게 치명적인 이유는 추후 공직 임용이 제한되고 연금과 퇴직수당이 크게 깎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법관들은 다른 공직자보다 비난 가능성도 크고 더 무거운 죄를 저질러도 불이익은 더 적게 받는다는 얘기다.

◆연금 삭감으로 ‘제머리 깎겠다’더니

사법부도 이런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다. 2016년 뇌물수수로 현직 판사가 구속되자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정직 6개월 이상 법관의 연금 감액 등 각종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국회 탄핵소추가 필요한 파면 조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그에 준하는 징계 규정을 마련해 법관들의 일탈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여태껏 연금 감액을 비롯해 비위 법관의 재판 배제 조치 등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다른 공무원들처럼 징계부가금을 5배로 높인 게 사실상 전부다. 법원행정처 측은 “당시 추가 검토 후 현실적인 여러 문제로 연금 감액 등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맞다”며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 신설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팀=이창수·송은아·김선영·이창훈·이희진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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